‘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이란 이름만으론 실체를 알 수 없는 법안이 19대 국회 마지막까지 쟁점이 되고 있다. 서비스법은 이름만으로는 정체를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우선 서비스산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대다수 국민들은 추상적으로 이해할 뿐더러, 이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에 ‘기본법’이라는 테두리까지 씌우는 의도는 더더구나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8월 대국민 담화, 9월 국무회의에 연이어 이 법을 ‘경제활성화’ 법안에 포함해서 국회통과를 압박했고, 10월 22일 여야 영수회담격인 5자회동에서까지 빼놓지 않고 언급해서 대통령이 집착하는 법안이라는 점은 분명해졌다. 거기다 대통령은 작년 10월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3년째 상임위에 묶여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처리되면, 가계소득이 증가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무려 ”69만개의 일자리”까지 언급을 하며, 서비스법 통과의 장미빛 미래를 광고했다.
서비스산업과 서비스법
서비스산업이라고 하면 그나마 과거 교과서에 실려있는 개념을 떠올리는게 가장 정확하다. 1차 농,림어업 2차 제조업 3차 서비스산업으로 분류되는 개념으로, 선진국으로 갈수록 서비스산업이 발전한다고 우리는 사회시간에 배웠었다. 실제로 2011년 발의된 최초의 서비스법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문구가 들어있다. 「제2조(정의)…“서비스산업”이란 농림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을 말한다」 가 그것이다.
즉 서비스산업이란 무형의 재화를 제공하는 모든 산업을 포괄하는 것으로 그 범위는 상업활동 모두와 금융, 교육, 의료, 관광등등 전범위에 걸쳐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이런 기본법이 없이도 서비스산업은 팽창했고 발전했는데 왜 이런 법 도입을 하려는 것일까?
서비스법은 2011년 11월 18대 국회에서 처음 등장했다. 도입할때부터 법안의 위법성 때문에 큰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첫째는 포괄적인 서비스산업 기준으로 인해 기본적 공공서비스 영역이 모두 대통령 시행령으로 산업으로 규정되는 점이었다. 이는 공공영역을 산업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로, 철도, 운송, 가스, 전기 등 공공서비스 전체를 ‘서비스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정책을 산업정책으로 귀속하는 걸 의미했다.
둘째는 이 법안에 따라 구성되는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의 장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장관으로서 직접 교육부나 보건복지부 장관보다 상위에서 법령이나 사안을 개폐할 막대한 권한을 휘두르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법이 규정하는 위임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상위법을 두는 규정이라서 18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폐기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19대 국회에 서비스법을 재상정했다. 포괄적 위임으로 논란이 있자, 농어업, 제조업 제외 모든 산업을 「제2조(적용범위) 이 법은 의료, 교육, 관광‧레저, 정보통신서비스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서비스산업(이하“서비스산업”이라 한다)에 대하여 적용한다.」 로 축소하였다. 그러나 기재부 권한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든 사안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결국 전체 서비스산업에서 의료,교육,관광,정보통신 이라는 한정된 영역으로 대상 범위가 일부 축소된 점이 그나마 차이점이었는데, 이는 의료,교육,관광의 중요성을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서 병원부대사업확대, 영리자회사허용, 의료호텔허용, 영리병원 첫 허가 등등 파상공세식의 의료민영화 시도가 몰아 닥쳤다. 그리고 작년 시정연설에서 대통령은 서비스법과 함께 원격의료를 허용할 수 있는 의료법 개정, 국내 비영리병원들의 해외영리병원투자, 보험사와의 직계약, 광고규제완화, 국제의료법 등을 거론할 정도로 ‘의료민영화’에 광분해 있었다.
의료가 핵심인 이유
2015년 3월 17일 보건의료부분을 서비스법에서 제외하면 법안 통과에 동의하겠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과 새누리당, 청와대의 합의(3자회담)가 있었다. 그러나 이 합의는 불과 며칠만에 청와대에서 거부당해 무산되었다.
특히 2015년 10월 22일 청와대 5자 회담에서는 구체적으로 ‘보건의료’를 제외하고는 통과시킬 수 있다는 야당의 의견을 재차 번복해서 거부하기까지 하였다. 이후 올 1월이 되어서는 강석훈 새누리당 기재위 간사가 “(보건•의료 부분을 서비스발전법에서 빼자는 야당의 주장은)김치찌개 끓이는데 김치를 빼고 끓이자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보건의료 부분이 이 법의 핵심임을 자임했다.
사실 ‘보건의료’가 제외되어도 서비스법의 문제점은 심각하다. 앞서 보았듯이 기재부가 교육, 법률등 모든 부분에서 절대적 지위를 가지고, 공공서비스 부분까지 민영화시킬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건의료’ 부분이 서비스법의 핵심이란 점은 이 법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일단 교육 같은 경우 이미 100조원대의 사교육 시장이 열려있다. 대학도 대부분 사립학교이다. 지금도 높은 등록금과 사교육비로 가계가 아우성인데, 더 확장할 시장은 사립고등학교 정도이다. 관광도 마찬가지이다. 해외관광유치는 지난 20년간 여러경로로 확장되어 왔다. 국내관광시장은 갈수록 팍팍해지는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상 확장이 쉽지 않다. 금융은 이미 금융위원회를 통해 연금시장까지 시장화한 상태로 더 민영화할 부분을 찾기가 어렵다. 부동산, 음식숙박 등은 아시다시피 자영업과 중개업의 천국이며, 국가가 나서서 이런 사업을 부추긴 지 오래되었다.
정말 수많은 서비스산업 중에 아직까지 민영화가 덜 된 부분은 ‘보건의료’가 그나마 유일하다. 우선 한국의 사회보험제도 중 유일하게 그나마 기능을 하는 ‘건강보험’이 있고(국민연금과 비교해보자), 의료업은 영리를 추구할 수 없다는 법조항 때문에 영리병원도 쉽게 도입되지 못한다. 또한 약가 및 진료수가가 일정부분 공적보험에서 통제되고 있다. 무엇보다 관광, 교육등은 추락하는 경제상황에서 서민들이 지출을 줄이는 부분이지만, 아프면 줄이고 줄여도 돈을 쓸 수 밖에 없다. 즉 아직까지 팽창할 여지가 있고, 국민들이 더 많은 의료지출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보건의료’ 부분이다.
이런 보건의료 부분의 특징 때문에, 미국을 제외한 OECD국가 대부분이 보건의료는 공공재로써 국가에서 통제한다. 한국처럼 민간에서 병원을 경쟁적으로 짓고, 공적보험이 보장하는 보장성이 엉망이지 않도록 관리한다. 미국만이 이런 구조에서 별개인데, 미국의 전국민의료비는 국민총생산의 20%에 육박하고, 여기에 기생하는 보험, 제약, 병원자본의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그 이유는 미국만이 ‘보건의료’를 산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벌들과 경제관료, 대통령은 미국의 보건산업이 마냥 부럽기만 한 모양이다.
한국의 망가진 보건의료제도조차 미국식으로 더욱 망가뜨리려는 시도가 서비스법에 ‘보건의료’를 포함시키려는 핵심 의도다.
서비스법이 가져올 미래
계속된 경제위기에서도 재벌들은 엄청난 사내유보금을 쌓아두었다. 이제 확실한 투자처는 공적영역밖에 남아있지 않다. 서민들이 의존하던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고 영리화하면 재벌들의 경제는 활성화가 되겠지만, 서민들에겐 재앙뿐이다. 그런 점에서 서비스법은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완전한 민생파탄법안으로, ‘보건의료’가 제외되더라도 통과되어선 안된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보건의료’가 포함된 서비스법이 통과된다면 어떻게 될까? 일차적으로 병원, 제약산업의 투자개방이 촉진될 것이다. 이는 현재의 건강보험제도 외에 원격의료를 기반으로 한 민간자본 중심의 ‘건강관리서비스’와 이와 연계된 각종 의료기기시장의 확대를 뜻한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이미 통과시킨 영리자회사 허용등을 기반으로 각종 투기자본의 투자가 확대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보건복지부의 눈치라도 보던 의료민영화는 기재부가 앞장서서 수행할 것이다.
지금도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해 17조가 넘는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금이 남아있다. 그런데, 국민들은 더욱더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든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건강보험재원은 임상시험, 의료기기개발등으로 빠져나갈 공산이 크다.
박근혜 정부 3년만에 공약이었던 4대중증질환 국가보장 100%는 걸레짝이 되었고, 작년에는 역사상 최초의 영리병원까지 허가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 의료인 면허제도, 병원허가건, 의료기기 및 제약산업 규제 등등을 모조리 서비스산업의 테두리에 넣게 된다면 어찌될까? 그 암울한 미래는 단지 영화속의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높은 의료비 때문에 찢어진 상처를 달궈진 바늘로 직접 꿰매고 있는 다큐멘터리 씨코(SICKO)의 현실이 남의 나라 일이 결코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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