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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백지화한다는 발표 이후 비판 여론이 드세졌다. 특히 지역가입자 중 저소득층에 대한 부담경감책이 백지화된 것 때문에, 청와대도 다음 날 백지화가 아니라 유보된 것이라며 한 발 뒤로 빠지는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1월 30일 정부가 우선 올해를 넘기기 위한 대응책을 제시했다. 올해 상반기 중에 보험료 적용 기준을 조정하여 지역가입자 중 연소득 500만 원 이하의 경우에는 건강보험료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게 요지다. 또한 건강보험 부과체계 전면 개편도 내년에는 시행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정부와 기획단은 소득중심 부과체계 개편의 개혁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송파 세 모녀' 사건까지 거론하면서 빈곤층의 보험료 부담을 상당히 고려한 조치라는 점을 부각했다. 이른바 1만6천여원의 '기본보험료' 부과로 보험료를 경감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빈곤층의 경우 기존의 5만원 대의 보험료가 1만6천여원으로 줄어든다는 것이 실례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오히려 건강보험 체납세대를 또 다시 양산할 조치일 뿐 개혁방향이라고 볼 수 없다. 전 재산인 현금 70만 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남겨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송파 세 모녀'의 현실에서 말해주듯이, 기본적으로 연소득 500만 원 이하인 세대는 보험료를 낼 수 없는 무소득 세대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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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건강보험공단 누리집 화면 캡처.
ⓒ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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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전체 790만 세대 중 소득이 없는 세대는 430만 세대에 이른다(2012년 1월 기준). 과반수가 보험료 지불 능력이 없는 세대다. 여기에 정부가 지역가입자에게 부과하겠다는 정액보험료 1만6천여원도 부과하기 어려운 보험료 1만5천 원 미만 세대가 약 12%를 차지하며, 6개월 이상 장기 보험료 체납자도 지역가입자 중에 10%에 이른다(2012 건강보험통계연보).

정부의 주장대로 '소득'만을 기준으로 형평 부과를 달성하겠다면, 우선 재산도 없고 소득도 없는 사람들은 부과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즉 건강보험제도가 아니라 국가의 공공부조(의료급여)의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산부과 기준을 일부 완화하거나 일정액의 정액보험료를 부과하도록 하여 저소득층의 보험료 부과를 여전히 강제하고 건강보험제도 아래에 두려는 것이다. 건강보험은 기본적으로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보험료를 내는 최소한의 동참이 필요한 구조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도 보험료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빈곤층은 별도의 영역에서 관리하는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빈곤층을 건강보험의 '무임승차자'로 보고 개인 책임을 끝까지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보험료 경감' 조치이며 부과체계 개편방안이 마치 큰 개혁방안인 것처럼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빈곤층의 보험료 부과가 형평부과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이는 정부 책임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 

부담 능력 없는 빈곤층은 건강보험이 아니라 '의료급여'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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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고를 겪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송파 세 모녀'가 집주인에게 남긴 메모와 70만 원이 든 봉투
ⓒ 서울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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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송파 세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때문이 아니라 부양의무자 기준과 잘못된 근로능력평가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즉 애당초 부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건강보험 가입자에 포함시킨 것이 문제다.

정부는 공공부조의 영역에서 의료보장을 담보하는 국가의 핵심 역할을 방기하고, 이러한 책임을 여전히 건강보험제도와 같은 사회보험에 전가하고 있다. 때문에 201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2010년 빈곤층이 14.73%(중위소득의 50% 미만)인데,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매년 줄어 현재 약 2%대에 불과하다(2012 건강보험통계연보).

정부 책임과 국고부담은 최소화하면서 이와 같은 빈곤층의 상당수를 굳이 건강보험 영역에 남겨두고 일정액이라도 보험료를 부과하라고 강제하는 것이 타당한가? 건강보험제도에 남아서 그래도 보험료를 경감해주니 고마운 줄 알면서 수용하라고 하는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지금 여론에서 백지화되었다고 뭇매를 맞고 있는 건강보험 부과체계 기획단 안을 자세히 뜯어보면 '서민증세'와 다름이 없다.

여기에 '소득기준'을 강화한다면서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파생되는 소득인 퇴직소득, 양도소득, 상속 및 증여소득은 모두 배제하여 오히려 이들의 무임승차를 허용하였다. 보험료 부과의 상한선도 폐지하지 않아 30억 원 이상 재산이나 100억 원 이상 재산이나 똑같은 보험료를 낸다.

또한 지역가입자에게 부과되는 재산부과 기준이 문제라면서도 저소득층에게 굳이 기여책임을 부과하고 정액보험료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의료급여 확대나 저소득층의 보험료 전액 면제 등 정부 책임(건강보험 지역재정의 국고부담 강화)은 거론조차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공공부조 확대 내용이 빠져 있긴 하지만, 지역가입자의 역진적 재산점수를 개선하고 피부양자의 종합소득 부과를 강화하므로, 개혁적 조치가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일시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폭탄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부조 확대 배제, 기업 부담 증대 방안, 상한제 폐지 등을 논외로 하면, 실제로 이번 개선책의 대상은 대부분 연금소득처럼 소득 파악이 용이한 계층의 부담으로 대부분 전가될 소지가 다분하다.  

게다가 기본보험료는 한 번 도입되면 인두세(일정 연령 이상의 주민 한 사람당 일률적으로 부과되는 세금, 우리나라의 주민세와 유사)적 성격으로, 향후 건강보험 재정 확충시 월급쟁이의 보험료 인상과 함께 가장 먼저 인상될 항목이다. 

무엇보다 제도의 합리성은 단순히 현재 시점에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국가책임과 기업책임을 배제한 과정에서 노동자, 서민들이 향후 증가할 건강보험료를 어떻게 채울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나 건강보험 부과체계 기획단은 무려 1년6개월 이상 이런 중요한 문제는 배제하고, 재산 부과 방식 하나 가지고 세월을 낭비했다.

여기에 박근혜정부는 이런 논의의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두려워 아예 개선 시도 자체를 백지화 하였다. 그리고는 고작 연 500만 원 소득 이하의 보험료를 건강보험 흑자로 메꾸겠다고 한다(현재 건강보험 누적흑자는 12조가 넘는다). 이 흑자는 전적으로 국민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병원에 가지 못해 생긴 것인데, 생색은 국가가 내고 있는 꼴이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발표하려던 안은 재정중립을 실제로 이루지 못한다. 2012년 건강보험공단의 소득중심 부과체계 시뮬레이션 자료만 봐도 지역가입자 부담인 7조3166억(2011년 기준)원을 종합소득부과 수준으로는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의 첫 서민증세 시도인 '건강세'(부가가치세에 0.1~0.5%의 건강보험료 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가 논의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 국고부담 강화나 공공부조 확대가 동반되지 않는 부과체계 개편안은 필연적으로 향후 월급생활자의 보험료인상이나 부가가치세의 건강보험료 부과 같은 역진적 구조를 강화하는 방편이 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이번 기회에 국고지원 확대나 공공부조 확대를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지금 건강보험 부과체계개편 논란 이면에 숨어 있는 정부의 술수에 더 이상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정부 개편방안의 본질은 정부책임은 최소한 억제하고 고소득자보다는 월급생활자와 서민들 중심의 보험료 수입 증대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입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75147.html



등록 : 2015.01.25 19:46수정 : 2015.01.26 09:11

김공회의 경제산책

연말정산을 둘러싼 민심이 매섭다. 이를 둘러싸고 오가는 의견들 중에, ‘어차피 복지로 돌아갈 것인데 이 정도 증세도 못 받아들이는가’라는 진보진영 일각의 쓴소리가 유독 귀에 걸린다. 우리 국민은 민도가 낮고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 아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대의는 보지 못한다는 낮은 탄식도 들려온다. 정말 그러한가?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사회적 연대정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엔 몇 가지 짚을 점이 있다.

첫째, 뭔가 거꾸로 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극심한 불황과 소득양극화로 위축된 서민의 삶을 펴줄 책임은, 현 체제에선 시민이 아니라 정부가 진다. 흉흉한 민심을 달래고 사회를 안정시킬 책임도 정부의 것이다. 만약 이런 과업을 수행할 재원이 모자란다면, 정부가 납세자들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연말정산에 대한 불만이 비등해지자 조삼모사 식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으며, 진보진영 일부 인사들은 ‘우리가 스스로 내자’라면서 무책임한 정부를 오히려 돕는 모양새다.

둘째, 세금 내기 싫은 것을 인간 본성이라긴 어려워도 시민이 자발적으로 증세를 이끈 예는 역사에서 찾기 어렵다. 증세론자들이 인용하기 좋아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모국 미국에서조차 소득세 최고세율이 한때 90%를 훌쩍 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도로 누진적인 세제의 도입은 선진적 시민의식의 발로였다기보다는 전쟁과 공황에 의해 강제된 것이었다. 최근 증세·복지반대론자들이 악용하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는 조세저항의 역사’라는 말이 일리가 아주 없진 않다.

셋째, 실제로 근대사는 민초들이 세금부담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현 사태의 주범인 소득세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세목이다. 그보단 예로부터 세금은 물품거래나 시설사용 등에 매겨졌고, 귀족이나 성직자는 면세를 받았다. 이렇게 세제는 원래 역진적이었던 것. 20세기 초 도입된 누진소득세제의 진보성은 그러한 역진성을 부분적으로나마 상쇄했다는 데 있다. 피케티가 지적했듯, 오늘 우리의 급선무는 최근 크게 줄어든 소득세의 누진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번 연말정산 사태의 원인이 된 세법 개정 과정에 ‘민의’가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국회의 법안심의 과정에서 과연 해당 상임위 국회의원들은 개정 법률안의 내용과 의의,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숙의했는가? 혹시 그 법안들을 정략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는가? 이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국회 회의록을 찾아보면 될 일이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이쯤 되면, 연말정산 앞에서 터지는 서민의 울화통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연소득 5500만원 이상자에 대해 세금을 조금씩 더 걷는 이번 조치는 ‘부자증세’이므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과연 이것이 극단적인 소득양극화의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종류의 ‘부자 증세’인가? 최고소득세율을 80%선까지 올려야 한다는 피케티의 외침은 벌써 잊혔는가? 현재 소득세 최고세율은 38%로서, 이 세율은 연간 개인소득 중 1억5000만원이 넘는 부분에 적용된다. 100억을 벌든 1000억을 벌든 똑같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052103495&code=990303


시론
[시론]건강보험료 누가 더 내야 하나
우석균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건강과대안 부대표
건강보험료가 문제다. 애초 이 문제가 불거지게 된 계기는 ‘송파 세 모녀’의 건강보험료가 월 5만원인데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퇴직 후 건강보험료가 0원이 될 수 있다는, 김종대 전 건보공단 이사장의 발언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보험료 부담, 그리고 의료비 부담은 큰 문제다. 현재 지역가입자 중 월 5만원 이하의 보험료를 내는 336만가구 중 50%가 3개월 이상 보험료를 못내고 있다. 이 수치는 지역가입자의 20%에 해당한다.

누가 이들의 건강보험료를 내주어야 할까. 당연히 국가다. 우리나라의 의료급여 즉 건강보험료와 병원비 면제를 받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3%다. 그러나 정부연구소인 보건사회연구원은 2013년 절대빈곤인구를 11%, 상대빈곤인구를 16%로 추계했다. 절대빈곤인구만 따져도 정부가 책임을 안지는 사람이 국민의 8%인 380만명이다. 미국만 해도 15~19%가 미국판 의료급여인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는다.

송파 세 모녀의 건강보험료는 줄이거나 없애야 하지만 이를 김종대 전 이사장처럼 퇴직자 보험료와 비교하면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개혁안’을 믿어야 할까? 그 ‘개혁적’이라는 건강보험료 개선안은 국가의 책임을 빠뜨리고 있다. 국가가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로소득자나 퇴직자가 돈을 더 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 ‘개혁’안에 따르면 퇴직자로서 공적연금을 연 2000만원(월 167만원) 받으면 피부양자에서 탈락돼 월 6만5000원을 내고 여기에 집이라도 한 채 있으면 10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 이 퇴직자는 부자인가? 그리고 연금으로 167만원 받는 사람이 소득의 10%를 내야 하는 것이 ‘개혁적’인가? 반면 진짜 부자들의 자산소득에는 한없이 관용적인데 상속, 양도, 증여소득에는 건강보험료를 부과하지 않고 주식배당에도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돈은 누가 더 내야 할까? OECD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사회보험료 부담의 가장 큰 차이는 기업이 내는 보험료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OECD 국가 기업들이 사회보험료로 내는 돈은 평균 GDP의 5.3%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2.5%다. 기업이 GDP의 2.8%를 덜 내는 것이다. 반면 월급쟁이들이 내는 보험료는 OECD 평균 3% 내외로 거의 차이가 없다. 당연히 기업이 더 내야 한다. 기업이 OECD 평균으로만 내도 40조원이다. 건강보험재정이 작년에 44조원 정도다.

한국은 노동자와 기업이 보험료를 50 대 50으로 내지만 프랑스는 노동자가 35%, 기업이 65%이고 스웨덴은 기업이 80%를 낸다. 또 프랑스는 아예 건강보험재정을 대기업 매출액의 0.1~0.2%를 걷어서 충당한다. 여당 대표는 “고부담·고복지로 갈지, 저부담·저복지로 갈지” 정해야 한다면서 “복지 수준을 높이려면 국민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단다. 그러나 정작 복지국가들은 ‘국민’이 아니라 ‘기업’이 훨씬 많은 돈을 낸다.

누가 더 내야 하나? 현재 14%에 불과한 국고지원액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일본은 37%, 프랑스는 47%, 대만도 26%다. 또 진짜 부자들에게 건강보험료를 더 거둬야 한다. “사용자 및 경영자 단체의 거센 반발”로 없애기 힘들다는 재산에 부과하는 ‘30억원’ 상한선부터 없애야 한다. 30억원을 가지나 300억원의 재산이 있으나 재벌회장들이 똑같이 건강보험료를 200여만원만 내는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의 부담을 늘려야 한다.

재벌기업들을 놔두고, 또 국가의 사회복지 지출이 적은 채로 놓아둔 채 월급쟁이나 연금소득자들에게 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이 사회정의인가? 큰 도둑은 놔둔 채 잘못된 곳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이다. 가난한 서민과 덜 가난한 연금 퇴직자들이 부담과 혜택을 두고 싸우게 만드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상용 수법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복지국가는 서민들이 서로 사이 좋게 나누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1% 부자들과 자본에게 복지 부담을 강요해서 얻어냈다.<끝>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8007.html


등록 : 2014.10.02 18:37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국민건강보험은 한국의 사회복지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제도이지만, 보장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72.2%에 훨씬 못 미치는 55.3%로 높지 않다. 이렇게 낮은 의료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및 재원 확충이 절실하다. 그런데 정부는 지속적으로 의료영리화를 추진하고 있고, 최근엔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을 개선하려고 한다. 보험료 부과는 가입자들의 보험료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부과 대상이 확대된다면 건강보험 수입이 증대되어 의료보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보험료 부과에서 중요한 것은 소득 재분배에 기여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다. 만약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노동자가 고자산가보다 더 많은 비율의 보험료를 부담하게 된다면 건강보험제도의 정당성은 위축될 것이다. 그러므로 총자산(재산 및 소득)에 따른 보험료 부담은 사회보험제도인 건강보험의 정신을 실현하는 기본이자 원리가 된다.

정부가 예고한 건강보험에 대한 ‘소득중심 부과체계’는 표면적으로 현재보다 더 공정한 부과기준을 마련할 것 같은 프레임으로 보인다. 그런데 제시됐던 몇가지 기준을 보면 과연 더 공정한 부과기준이 마련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현재 부과기준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누어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이것은 소득만으로 보험료 부과가 가능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구분한 것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파악이 어렵고, 자신의 소득보다 하향 신고하는 경향 등으로 소득뿐만 아닌 재산, 자동차, 가족 수 등을 보험료 산정에 반영해 왔다. 이로 인해 직장가입자의 재산에 대한 보험료 미적용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었다. 또한 지역가입자의 재산에 부과됐던 보험료율은 매우 역진적이다. 예를 들면 지역가입자의 재산액이 1억5000만원 이하인 경우 1~1.14%인 반면, 3억 0.69%, 5억 0.53%, 10억 0.32% 이런 식으로 재산이 많을수록 보험료율은 축소되어 1000억인 경우 0.01%만 부과한다. 그런데 공단과 정부는 전월세에 대한 보험료 부과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가입자의 재산에 대한 보험료 기준을 매우 불공정한 것으로 평가했다. 소득 증대와 관련 없는 전월세와 같은 ‘비증식 재산’에 대한 부과기준은 과감하게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사례를 내세워 고액 자산가들의 재산에 대한 부과기준이 사라지게 된다면 결국 그 혜택은 부자에게만 돌아가게 된다. 더욱이 근로소득, 사업소득, 초과금융소득, 연금소득 등과 같은 소득 부과 기준은 확대하겠다면서, 상속 및 증여소득에 대해서는 재산적 속성이 있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이것은 불로소득을 재분배 영역에서 배제하는 것과 같다. 반면 모든 저소득층에게 가구 소득과 상관없는 정액의 최저보험료 도입을 제안했다. 이 두가지를 대비해서 보면,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보험료 책임에서 제외되고, 저소득층은 현재 보험료보다 많은 정액의 보험료를 책임지게 되는 역진성이 발생한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혁의 원칙은 더 강한 소득 재분배와 재정확충 기반 마련에 맞춰져야 한다.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왜곡된 대립구조가 아니라, 자본과 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부과기준이 필요하다. 총자산이 기준이 된다면 직장가입자의 재산 및 피부양자 문제도 합리화될 수 있다. 소득 재분배 기능 제고와 재정확충을 위해서는 부동산과 같은 불로소득 재산에 대한 보험료 부과 기준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재고되지 않는다면 부과체계 개편 역시 서민증세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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