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 분야 대선과제 시리즈 칼럼⑧] 기후위기와 감염병에 대응하는 보건의료 정책

 

한국의 이번 대통령 선거는 참 이상하다

[사회보장 분야 대선과제 시리즈 칼럼⑧] 기후위기와 감염병에 대응하는 보건의료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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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 선거는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심각한 보건위기에서 치러진다는 느낌이 없다. 코로나19 보건위기에 대한 방역, 백신 접종, 치료 대응 등에 대한 공방을 봐도 수준이 유아적이다.

방역 관련해서 유력 야당 후보인 윤석열은 자영업자들을 의식해서 '방역패스 폐지' 같은 지엽적인 문제 논란에 집중하거나 백신 접종대상에 대한 완화를 주장하는 식의 반정부 공세만 있고, 여당 후보 이재명은 '디지털 방역'이란 이름의 영업시간 제한 완화를 주장한다. 모두 방역조치로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의 표만 바라볼 뿐 방역대응을 위한 인력, 대응체계 강화 주장은 없다. 2년간 방역현장은 녹초가 되어 아우성인데 말이다.

백신 관련해서도 청소년 대상 접종만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방역대상, 범위, 백신 접종대상은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다. 한국의 의료대응능력과도 연동된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의료대응능력은 거의 부수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 창궐의 역사를 볼 때 백신 특허를 유예하여 저소득 국가의 백신 도입이 시급하지만, 백신 특허 유예안에 대한 입장을 내는 후보는 없다. 참고로 문재인 정부도 바이든 정부조차 지지하는 백신특허 유예안에 대해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명백한 다국적 제약회사와 금융자본 눈치보기다. 한국이 진정 선진국이 되려면 이런 세계적 위기에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작년 11월 말 우리는 병상 부족으로 코로나 대기환자가 1200명까지 폭증하는 상황을 목도했다. 이는 코로나 이외의 환자 진료에도 영향을 줬고, 의료 붕괴 직전으로 의료대응 자원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의료자원 마련에 대한 논의 역시 미비하다. 그나마 이재명 후보는 12월 31일에 70여 개 거점에 공공병원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코로나 환자의 80% 이상을 진료하고 있는 공공 의료기관 확충은 이제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후보는 '필수의료 국가책임제'라는 이름으로 민간의료기관에 돈('공공정책수가')을 줘 공공의료사업을 하게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 시기 국가 책임의 중요성을 외면할 수 없으니 이름은 '국가책임제'로 지었으나 '음압병실, 중환자실, 응급실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 교육훈련비를 사용량에 상관없이 공공정책 수가로 지급할 것'이라고 밝히며 기존의 건강보험제도하에서 행위에 따른 보상체계로 '수가'를 지급하는 방식을 일종의 정책수가로 운영비용까지 보존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민간병원이 그간 주장한 공공의료사업 위탁 비용을 공적으로 보존받겠다는 논리의 재탕이다. 국가가 직접, 음압병실, 중환자실, 응급실을 운영하고 의료인력을 고용해 훈련, 양성, 배치하면 될 문제를 굳이 '공공정책수가'로 민간에 공급하자는 것은 민간병원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19 위기, 보건위기일 뿐 아니라 무분별한 시장주의의 결과

위기의 시기에도 민간 공급자의 이익에 앞장서는 시장주의자가 주요 대통령 후보인 것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위기의식이 정치권에서는 유독 매우 낮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위기는 보건위기일 뿐 아니라 무분별한 시장주의의 결과다.

무차별적인 자연파괴와 선별적 보건제도는 지난 수십 년간의 시장근본주의에 의해 조장되었다. 그 결과 지난 20여 년간 수차례 신종 감염질환(조류독감,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의 경고까지 받아왔다. 그때마다 수익성과 시장 자율에 맡겨진 사회 시스템은 엉망이 되었다.

때문에 코로나19 시기 대부분의 선진국은 보건체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보수당이 집권한 영국조차 국영 의료체계 확대를 위해 증세를 하는 상황이다. 스웨덴, 독일, 스페인, 이태리는 이미 막대한 보건재정을 투입했고, 투입할 예정이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감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폭탄, 외국인 건강보험 유용 등을 주장하며 건강보험체계 긴축을 부추기고, 불신과 편견만 조장한다. 세계적 추이에 완전히 역행하는 셈이다.

한국의 이번 대통령 선거는 참 이상하다. 부동산 감세에 집중하면서 보건의료체계에 어느 정도의 재정을 투입하고, 인력을 충원하고, 백신 특허를 유예해 저소득국가의 백신 접근권을 확대할 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코로나19는 보건위기가 아니라, 그냥 잠시 지나가는 천재지변인가?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신들의 영역인가? 아마도 이런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지각 있는 사람들과 주요 선진국에서 본다면 한심하게 볼 뿐 아니라, 개발지상주의 한국의 미래까지도 의심하게 만들 것이다. 제발 이제라도 최소한의 진지함이 보이는 대통령 선거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형준 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입니다.

정부가 얼마 전 이집트와 K-9 자주포 수출계약을 체결했다고 광고했다. 자주포로서 최대 규모의 수출을 기록했다고 자화자찬했을뿐더러, 방위산업체인 한화디펜스와 방위사업청 외에도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수출입은행이 유기적인 협력을 해 수출계약을 성사시켰다고 밝혔다.

한국은 수출을 중심에 두는 제조업 국가로서 수출성과를 핵심 경제성과로 간주하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수출품목의 성격과 상관없이 많이 팔기만 하면 좋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마약류나 사행산업류 관련 상품을 많이 수출하는 게 자랑일 나라는 없다.

무기거래는 윤리적으로 볼 때 ‘더러운 거래’로 간주된다. 무기는 전쟁과 살상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장력은 필요악이다. 스스로 무기를 만들 수 없는 약소국들에 자위권을 위한 무기를 공급했다는 변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이 무기를 팔고 있는 나라들이 그런 약소국들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에 대체로 큰 무기거래는 지정학적 갈등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번에 2조 원을 판매했다는 이집트, 4조 원대 계약을 했다는 아랍에미레이트는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는 중동에 있다. 1조 원대 수출하는 호주도 최근 중국포위전략에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 간주된다. 무기판매로 얻는 경제적 이익과 별개로 판매지역의 긴장을 고조시켰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더구나 이번 판매는 대통령, 외교부, 수출입은행까지 동원된 거래다. 개별 무기산업체가 해외에 판매하는 방식과 달리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나서서 금융대출까지 끼워 판매를 성사시켰다. 전 세계 각종 전쟁의 배후로 지목되는 미국식 군산복합체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최소한 대통령이 나서서 판매해야 할 상품에 무기가 있다는 게 한국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놀랍다.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인식이 ‘자주국방’ 이념과 보수파에 대항하는 애국주의 때문에 계속 조장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정부일수록 보수 우파의 공격을 의식해 국방비를 늘리고, 무기를 수출하고 최신무기를 개발하는 일을 더 광고한다. 이미 한국의 국방비는 주변 국가들의 비율을 훨씬 넘어서는 국민총생산의 2.8%다. 중국 1.7%나 일본 1%와 비교해 절대액은 적을 수 있겠지만, 비율로는 매우 높다. 총액으로도 북한의 국내총생산 1.5배가량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반도에서 한국에 축적된 국방자원은 남북 비교는 무의미하고, 동북아 주요 국가들과 견주어도 한국은 긴장의 한 요소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비대칭무기인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중국도 무장을 강화하고, 일본도 우파들이 재무장을 주장한다. 동북아는 여기에 미국의 중국포위전략과 이 때문에 발생하는 대만독립문제 등으로 전 세계의 화약고로 변신하고 있다. 국방력을 강화하면 할수록 긴장만 고조되는 지역이다.

이런 지역에서 행정부까지 나서 해외에 무기수출을 독려하는 건 현 정부가 추구했던 한반도 평화전략과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한국이 최소한 자기방어를 위한 국방력을 유지하고 해외에 무기수출을 기획하지 않는 평화지향국가로써 자리매김해야 ‘한반도 평화구축’이라는 언사에 진정성이라도 느껴지지 않겠는가?

끝으로 전쟁무기 판매는 장부에 실적으로 남겨놓는 예의까지 무시하고 주요 언론과 정치권에서 칭찬하는 사회 분위기는 세계 평화에 대한 한국사회의 공감능력까지 떨어뜨린다. 국방예산을 줄여 사회복지와 기후변화대응에 써야 한다는 주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무기수출 조장은 멈춰야 국제적으로 평화국가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평화지향과 무기수출의 모순을 느낄 수 없는 나라가 되어선 곤란하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19110&path=202202

2022년이 밝았다. 올해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연속되어 행정권력을 연달아 선출하는 보기 드문 한해다. 선거에서 다뤄야 할 수많은 쟁점이 있을 것이다. 특히 2년간 지속되어온 코로나 팬데믹은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를 변화시켰고,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서 코로나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이 코로나 위기가 사실은 무차별 자연파괴,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란 점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하고 생태친화적인 대전환을 이뤄야 하는 과업이 이번 선거에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기후위기 문제는 인류의 생존이 걸린 만큼 무엇보다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

2021년 한해만 보더라도 미국 텍사스 지역까지 도달하는 한파와 이로 인한 정전사태가 있었고, 최근에는 역대급 토네이도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건물이 파괴되었다. 캘리포니아, 그리스, 호주권역의 이상고온은 대규모 화재를 불러일으켰고, 저지대는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기게 되었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계속 나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기후과학자들의 분석으로는 현재의 기상이변은 1990년대 인류가 배출한 탄소로 인한 온난화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배출하고 있는 막대한 온실가스의 후폭풍은 앞으로 10여 년 이후에 닥친다고 한다.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는 문제는 차일피일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물론 한국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이제 주요 산업국가의 하나인 한국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당장 어떤 식으로 탄소 중립에 도달할지에 대해서 치열하고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한국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서도 기후 악당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아직 미진한 전환계획만 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까지 대선을 앞둔 국면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이나 코로나 이후의 대전환에 대한 토론과 논의는 거의 없다. 여전히 경제성장률과 주가지수 등으로 대표되는 팽창지향의 경제 정책이 주된 화두이고, 에너지전환 정책 등은 주요 선진국 중 가장 후미에 있다. 앞으로 닥칠 기후변화와 또 다른 신종 감염병 대응체계 등은 지금 당장 준비해도 되돌리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지만, 당장 눈앞의 이권과 이해관계가 더 강하게 반영되는 선거국면은 너무나 안타깝다.

물론 이런 데에는 우리 사회 지식인들, 그리고 이 문제를 주되게 주장해 온 환경운동가들의 한계도 한몫했다. 기후문제 해결을 개인의 실천과 친환경 소비 문제로 국한했거나, 과학적 정보전달 선전수준의 거대담론화만 한 점이 그렇다. 따라서 우리가 필요한 모든 정책에 탄소 중립의 가치와 전환적 방향성이 담겨야 한다. 예를 들면 보건의료정책에서는 과잉 의료공급과 수도권 집중화를 해결할 공공병원과 공공클리닉을 지방에 균등하게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지방 공동화를 부추기고 어쩔 수 없는 의료이용을 위해 수도권으로 쏠리는 에너지를 줄이는 건 탄소 중립 과제임과 동시에 공공의료 확대라는 시대 과제와 일치한다.

또 다른 예는 대중교통과 자전거 등 친환경 연계 교통수단의 확대다. 이 역시 시민 건강과 편의성 외에 탄소 중립 과제에 부합되는 방향성으로 전 지역에 확대 도입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전기자동차 확대 등 이동수단 문제는 물론이고 교육 문제도 수도권 쏠림을 막고 지방 균형발전을 통해 탄소 중립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정책과제가 기후위기를 막는 방안과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밝히고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 탄소 중립이 우리 삶의 모든 곳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대통령 후보 토론도 최소한 한차례는 기후위기 대응만을 쟁점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올 한해 선거에 모든 정책을 기후위기 대응의 중장기적 과제와 견주어 평가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게 지금 지식인과 정치권의 책무다. 그리고 그런 평가 속에서 이제 말해야 한다. 탄소 중립에 투표하자.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16560&path=202201

편집인의 글

 

정형준 | 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최저임금 관련된 논의가 최근 수년간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의 비율이 2005년 10%를 넘어섰고, 작년까지 18.2%로 증가했다. 최저임금 이하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1/5정도인 것이다. 이처럼 최저임금이 미치는 영향은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관련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한 사안이 되었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대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최저임금은 사실 매년 정규직노동자들이 사측과 협상해 결정하는 임단협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여기에 조기퇴직, 노령화로 인한 시간근무자가 늘어나면서 전일근무자에 해당되는 월급개념보다는 시급이 지닌 의미도 사회전반으로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 논의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쟁점 중 하나였다. 문재인 정부도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2020년까지 현재 6470원에서 1만 원으로 상향하려는 약속을 지키려면 매년 큰 폭의 인상을 추진해야 한다. 그 결과 7월 15일 내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결정되었다. 전년대비 16.4% 인상안이며  10여 년만에 두 자리수가 인상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10월호 복지동향은 최저임금과 관련된 논의를 최근쟁점, 거버넌스, 국제적 변화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2020년까지 1만 원으로 최저임금을 올리는 약속을 한만큼 이를 통해 앞으로 복지운동에서도 최저임금인상을 통한 복지지형의 변화를 어떻게 추진할지 고민하는 계기도 필요하다.


또한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사회적 합의 과정이 여전히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되었다. 최종적으로 최저임금이 표결로 처리되었는데, 사실 공익위원이 노동자측을 지지하지 않았다면 6,625원을 제시한 공급자들의 의견이 관철되었을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과정에 대한 공개, 토론보다는 정부가 추천한 공익의원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되어지는 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최저임금 결정의 투명성은 우선적으로 확보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끝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이 1만 원이 되었을 때, 문재인 정부의 약속처럼 소득이 증대되어 늘어날 가계 가처분소득만큼, 사회보험재정을 위시한 사회복지전반의 재정확충도 기대된다. 당장 내년 인상될 최저임금에 연동하여 증가할 건강보험수입이 서민들의 의료비절감에 사용되길 기대한다. 이런 과정이 임금인상과 복지확대의 선순환일 것이다.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page=40&document_srl=1424876&listStyle=list

반복지 구조조정의 시대

 

정형준ㅣ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20대 총선이 끝났다. 결과는 누가 봐도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임이 분명하다. 집권보수당(새누리당)이 제2당이 되었고, 전체의석의 고작 40%수준만을 확보했다. 이는 지난 3년간 박근혜정부의 독선과 실정에 대한 민의의 심판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수많은 잘못이 있지만, 가장 국민들이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전월세 값 상승으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는 등 몸이 아파도 병원 가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고,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비정규직이거나 파트타임인 경우가 많고 정규직을 구하기 어려워 소득확보는 어렵다. 나쁜 일자리까지 합쳐 통계를 내보았더니 2016년 4월 실업률이 IMF 이후 최고점이라 한다. 특히 청년실업은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적으로 노인빈곤율, 자살률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들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프레임과 낙수효과 같은 논리가 이젠 문제해결이 될 수 없고 ‘복지’확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확산되고 있었다. 이미 지난번 총선과 대선 때 박근혜대통령과 새누리당조차 ‘복지’를 선거전면에 내걸 정도로 사회적 안전망, 복지제도의 확충은 시대적 요구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복지’와 관련해서 역행을 반복하고 있다. 노인기초연금 20만원은 사실상 ‘개악안’이 되었다. 4대중증질환 국가보장 100%는 거짓말이었고 무상보육, 무상급식은 공공연히 공격을 받았다. 지방교육 교부금을 축소해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불상사도 연출했다. 공공의료기본계획은 ‘공공의료말살계획’ 이었고, 역사상 최초로 공공병원(진주의료원)이 폐원되기도 했다. 국민들은 공적연금의 강화를 원했지만, 정부는 거꾸로 공무원연금개악을 통해 전체 공적연금의 지분만을 축소했다. 정말 박근혜정부야말로 ‘복지’로 당선이 되었지만, 복지축소, 복지훼방 정부였다.

 

총선에서의 정권심판여론은 ‘반복지’ 방향을 ‘친복지 방향으로 전환하라는 민의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복지확충보다 먼저 정부여당과 야당이 공감대를 표시한 부분은 전혀 다른 부분이다. 다름아닌 ‘구조조정’이 첫번째 합의점이 된 형국인데, 처음에는 조선, 해운 등이 거론되다 이제는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었다. 병원구조조정를 빌미로 2006년부터 약 10년간 의료민영화법으로 불리며 통과되지 못한 병원인수합병(의료법 일부개정안)을 야당이 상임위에서 합의해주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인 ‘창조경제’를 ‘구조조정’이 대체하는 국면까지 가는 느낌이다. 야당이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협력하겠다고 하자 정부여당은 역할까지 주문하고 있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의 방향성이다. 조선과 해운의 경우 인수합병을 정부가 주도하고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투여하겠다는 그림이다. 반면 인력부분에 대해서는 정리해고, 직무전환 등의 사실상 노동자 및 서민 쥐어짜기가 교묘히 제시되고 있다. 물론 총선 전에도 박근혜 정부는 노동법개악과 성과급, 저성과자해고로 대표되는 양대지침을 제시하여 노동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려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방향을 ‘구조조정’이라는 틀거리속에 집어넣어, 명분을 제시하려는 것이고, 이를 야당이 같이 동조하는 것이다. 최근모 경제지에서 2011년 한진중공업파업을 예로 들며, 정리해고를 선제적으로 시행하지 못해서 조선업의 위기가 왔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번에는 확실한 정리해고를 주문한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IMF이후 한국에서 해고는 ‘살인’이다. 고도 실업의 시기에 해고된 노동자가 일자리를 다시 찾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초임이 낮은 청년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여기에 복지후진국인 한국에서 실업수당, 연금도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적다. 의료비도 본인부담금이 높고, 주거비용도 상승해서 해고되면 몇 달 만에 통장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다. 높은 노인빈곤율은 피부양세대의 실업이 모든 세대를 빈곤하게 만드는 축으로도 작용한다. 2007년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수많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자살을 했다. 도저히 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재취업을 할 때까지 이들은 택배기사, 대리운전 등을 전전해왔다. 그나마 쌍용차는 거대사업장이고, 파업투쟁을 하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경우다. 

 

즉 지금까지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의 엉망진창 복지하에서 ‘정리해고’는 ‘살인’이 되었다. 때문에 구조조정이란 단어는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은 엄혹하다. 특히 국가와 사회가 자본의 손해에만 책임을 지는 지금까지의 ‘구조조정’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 가뜩이나 복지재정도 없어서 그나마 최근에 시작한 무상급식, 무상보육도 못한다면서 재벌의 사내보유금이나 재벌오너의 자산이 아닌 공적자금지원이 납득이 될 리 만무하다. 더구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 될수록, 재정이 부족하다며 ‘복지’는 더욱 뒷전으로 돌려질 것이 아닌가?

 

즉 구조조정이란 그냥 서민들 쥐어짜기일 뿐,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논의하는 논리가 될 수 없다. 거꾸로 복지확대에 재원을 투자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논의를 줄이고, 노동자서민들의 생존이 보호되면서 지속가능성도 밝아지지 않겠는가? 때문에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반복지이다. 따라서 선거 때 최저임금 인상, 재벌들의 사내유보금 사용, 각종 복지서비스의 증대를 주장했던 정치권이 복지확대보다 먼저 ‘구조조정’에 동의한 것은 또 다른 ‘반복지선언’이다. 못내 아쉬운점은 공약집에 잉크도 마르기전에 벌이는 이런 행각으론 앞으로 ‘복지’가 구호에만 머물지 않을까 하는 답답함이다. 그리고 총선결과가 반복지에 대한 심판이었던 만큼 야당의 ‘배신’은 씁쓸하다.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page=41&document_srl=1431612&listStyle=list

총선공약과 복지

정형준 l 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이하 총선)에서는 복지공약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이전과 비교되는 특징이 나타났다. 우선 2010년 무상보육, 무상급식을 기점으로 한 지방선거 이후, 복지공약이 6여년 만에 주요정책의 중심부에서 줄어들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제1야당(당시 민주통합당)의 핵심공약이 보편복지 확대였고, 그 내용에도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보육”의 무상 3종 세트가 있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핵심공약에 ‘맞춤형복지’가 있었고, 이것이 생애주기별이란 선별적 단어가 붙긴 했었지만, 무려 0세부터 60세 이상까지 나이별로 순서대로 빼곡히 들어있었다. 특히 양육수당과 보육비를 완전히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같은 해 치러진 대통령선거를 봐도, 여당인 박근혜 당시 후보도 노인기초연금 20만원,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100% 같은 복지공약을 전면에 내세웠었다. 야당은 말할 필요도 없이 복지공약이 선거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복지공약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고 전면은커녕 내용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제 1야당의 핵심 공약에도 복지공약이 들어있긴 했지만, 내용을 보면 기초연금 30만원 지급, 국민연금 공공투자, 부과체계 개편 등으로, ‘무상 3종세트’와는 비교할 수준이 아예 안 되었다. 3당이 된 국민의당의 경우는 복지공약이 새누리당과 비슷한 구색맞추기 수준이었고, 의료복지정책의 경우 ‘실손보험료 인하’ 같은 위험한 공약까지 포함됐다. 실손보험은 보충형보험으로 건강보험이 강화되면 사멸될 것이고, 실손보험료 인하는 민간보험의 심사평가기능 인정과 연결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놓친 결과였다. 이외에도 주류정당들의 공약에서 고전적으로 중요했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공약이 빠지고, 건강보험 재정형평성(부과체계 개편)이 우선순위를 차지한 점도 특징이었다. 또한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 강화계획도 언급이 없었다.

 

키워드로 살펴봐도 여러 정당의 공약집에서 ‘복지국가‘란 단어를 사용한 곳은 더불어민주당, 노동당, 녹색당뿐이었는데, 그나마 노동당은 일부에서 그 의미조차 부정적으로 사용했다. ‘무상의료’란 단어도 정의당, 녹색당, 민중연합당만이 사용해서, 다시금 진보정당의 소유물로 축소되었다. 단순히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에서도 OECD 평균수준의 보장성강화조차 포함되지 못했다.

 

복지공약이 이처럼 과거보다 힘을 잃은 근본 원인은 사실 경제위기가 계속되었기 때문인 것이 사실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2,3년간 반짝 반등하던 시기에 복지확대여력이 최근 4년간의 연속된 경기후퇴로 ‘경제성장’ 담론에 잠식된 경향이 크다. 익히 알다시피 2009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조차 ‘아버지(박정희)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밝히면서 ‘복지국가’를 거론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가속화는 복지보다는 ‘최저임금, 기본소득’ 등의 직접 분배문제에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외에도 대다수 국민들의 가처분소득 자체가 줄어드는 경제적 여력의 협소화도 ‘무상’복지란 용어의 실효성에 대한 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간 확대되었던 복지영역도 공공성보다는 영리성이 강조되어 복지서비스에 대한 신뢰도 금이 가고 있다. 무엇보다 복지서비스를 대부분 민간에 위임해서 제공하다 보니, 무상보육을 도입해도 어린이집은 엉망이고, 장기요양보험에도 불구하고, 요양원의 관리 실태는 국민들이 보기에 실망스럽다.

 

이런 상황 때문에, 대중적으로 복지요구가 가진 효용성이 많이 반감된 측면이 없잖아 있다. 이는 물론 복지운동진영이 그간 복지서비스의 공적공급의 중요성을 일부 간과한 책임도 반영한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복지영역축소의 우려점은 복지쟁점 자체의 비중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작 축소된 복지쟁점의 영역을 차지하는 가치들이 ‘경제민주화’나 ‘기본소득’’최저임금인상’ 같은 긍정적인 부분의 경제적 가치만이 아닌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복지서비스까지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전면적인 ‘복지산업화’ 요구가 가치 측면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버젓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대표적으로 19대 국회 막바지까지 정부가 강행통과를 주문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의 경우가 그렇다. 보건복지, 교육 같은 얼마 남지 않은 복지영역들과 전력, 수도, 가스 같은 공공서비스 부분을 돈벌이로 전락시키려는 ‘기재부독재법’인 서비스법이 경제활성화법으로 바뀌어 선전되고 있다. 고전적으로 복지서비스는 공공적이어야 하는데, 이제는 복지가 자본축적과 시장경쟁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뒤틀림이 강조되는 국면인 셈이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집권여당 공약은 이런 부분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회복지영역을 차세대 산업동력으로 거론하고, 보건의료산업화를 촉발하고, 교육, 법률부분 시장화를 대놓고 주장한다.

 

국민의당은 아예 서비스법에 대한 언급도 없고, 더불어민주당조차 보건의료등 공공부분만 제외되면 된다는 불철저함이 공약집에 버젓이 올라있다. 서비스법이 가진 반복지 이데올로기효과를 우습게 보는 상황이다.

 

여기에 총선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부는 한술 더 떠서 7대연금과 사회보험의 잉여자금을 더 공격적으로 금융시장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고수익 금융상품에 이를 투자하는 것은 사회보험의 자금을 재벌들의 안정적인 자금줄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복지서비스의 자산이 완전히 사적자본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는 것이고,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의 상품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도 적용하려는 입법예고도 총선기간에 벌어졌다. 신약을 공익적으로 국민들에게 제공할 것도 아닌데, 제약회사의 이윤창출에 국민들의 보험료를 사용한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산업발전명목으로 쉽게 거론되고 있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복지공약의 축소는 복지서비스 및 복지국가로의 길만 멀어지는 효과가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영리화를 부추기는 경향을 방조․강화한 경향이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복지가 단순히 시혜가 아닌 점은 복지의 확대가 ‘경제민주화’요, 최저임금상승과 기본소득 도입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주택, 실업, 건강, 연금 등의 기본적 복지가 충실하다면 우리에게는 소득증대와 마찬가지 효과가 오는 것이다. 더 나아서 소득증대는 높은 가격, 낮은 품질의 서비스들이 존재한다면, 실제 가처분소득증대에 도움이 안 되지만, 복지확대, 특히나 공적확대는 가격과 질을 정치적으로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어 더 효과적이다. 복지확대는 각종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및 영리화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때문에 ‘복지’ 가 단순히 복지만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총선에서 복지쟁점의 실종이 못내 아쉽다.



2013년 4월 15일 레프트21(102호)

http://left21.com/article/12880

마르크스주의로 세상 보기왜 자본주의는 건강·생명을 망가뜨리는가


정형준

진주의료원 폐업 시도를 계기로 의료불평등이 부각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민간병원보다 저렴한 공공병원에서 진료받는다. 또, 소득이 높을수록 의료이용률이 더 높고, 질병에 걸릴 확률은 낮고, 기대여명은 길다.

즉,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는 의료 이용은 물론 건강 상태 등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19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이처럼 병의 원인을 환경과 사회관계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 중시됐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서 장티푸스, 결핵, 구루병의 병리와 역학을 상세하게 분석하면서, 의학적 개입만으로는 이런 질병들이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비르효(R. Virchow)는 실레지아 지방에서 발생한 발진티푸스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토지 개혁과 소득재분배, 주거 개선, 그리고 다른 사회적 프로그램을 요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의료가 ‘개인의 질병 치료’로 협소화되기 시작했다.

간절한 소망 진주의료원의 한 환자가 두 손을 꽉 쥔채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는 집회에 함께 하고 있다. ⓒ이윤선

 이런 변화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의료를 사회구조와 연결시키면 결국 지배계급에 대한 공격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질병의 원인을 세균이나 개인의 특성으로 돌리고 싶어 했다.

둘째는 의료를 더 쉽게 상품화하려는 시도 때문이었다. 질병의 원인이 개별 세균이나 개인의 생물학적 상태라면, 그 치료 방법도 상품으로 판매되기 적합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의료서비스가 분화되고 각각에 가격이 쉽게 매겨졌다.

그러나 이런 개별 의료기술의 발전보다는 자본주의 생산 발달과 대중투쟁이 건강에 미친 영향이 훨씬 크다. 수명 증가와 영아사망율 감소는 사실 영양상태, 공중위생, 식품위생이 향상된 덕분이었다.

또, 제2차세계대전 시기의 영국, 혁명 이후의 쿠바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문제 해결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묻는 분위기가 고조될 때 건강지표들도 향상된 바 있다. 그리고 서구의 ‘무상의료’ 제도, 한국의 전 국민 건강보험 역시 대중투쟁의 산물이었다.

물론 의료기술의 발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영향마저도 자본주의에서는 심지어 왜곡을 겪는다. 대표적인 것인 정신질환들이다.

우울증이나 자살 등은 사실 사회적으로 영향을 받음에도, 자본주의 의료에서는 개인 책임으로 환원된다. 의학기술의 발전은 수많은 뇌신경전달물질을 약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결국 정신질환의 치료로 약물이 많이 사용되게 됐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이러한 과정을 각종 연구 등을 통해 확산하고, 당장의 효과를 기반으로 하나의 의학적 정설을 만들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란 개념은 미국에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을 치료하면서 만들어졌고,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는 교육 통제에 어긋나는 아이들을 질병군으로 묶으면서 만들어졌다.

협소화와 왜곡

즉 질병을 철저하게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과정과 의학기술의 발전이 결합해, 새로운 질병과 약품시장을 창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외, 환경오염, 잘못된 작업환경 등이 새로운 질환을 만들어 낼 때도 그 해결책은 약물치료, 개인요양 등에 국한됐다.

현재의 의학적 치료는 결코 질병의 원인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노동자들도 질병의 원인이 체제 자체이고 소외된 노동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이것을 바꿀 집단적 힘을 깨닫지 못하면 좌절을 느끼게 된다. 즉 분노가 이윤 체제로 향하기보다는 의학기술, 약물, 치료 등등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의료는 이윤 체제와 환경이 만들어 내는 문제점을 숨기는 기능과 함께, 하나의 새로운 상품시장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 때문에 미디어를 통한 수많은 건강 강좌나 명의 칼럼이 실제로 대중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과정을 극복하는 길은 사회적 차원의 해결책을 강조하는 데 있다.

우선, 자본주의하에서도 의료의 시장화ㆍ상품화를 저지하거나 또한 필수의료를 무상으로 하려는 사회적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근본에서는 돈이나 신분에 따라서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소외, 경쟁, 잘못된 작업환경이 사라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끝>

2010년 10월 2일 레프트21(41호)

http://left21.com/article/8655

시민회의의 틀린 계산법


정형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내세운 구호는 ‘1만 1천 원의 기적’이었다. 1인당 1만 1천 원만 더 내면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회의는 OECD 국가들의 보장성 수준을 목표로 공공의료비 비중을 산정해 계산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계산법의 근간이 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확충 및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전략 개발 연구’(2009년 9월)를 보면 2011년까지 공공의료비 비중을 OECD 평균 수준(73.1퍼센트)으로 높이는 데 지역가입자는 1인당 월평균 2만 1천4백75원, 직장가입자는 1만 7천3백11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보고서는 “1인당 월평균 1만 5천 원 내외, 가구당 4만 원 내외의 건강보험료를 추가 부담하면 건강보장 선진국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전 국민이 누릴 수 있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 보고서 내용의 대부분을 근거로 한 ‘시민회의’가 막상 정치적 구호로는 필요한 보험료 인상액을 대폭 낮춰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시민회의의 계산은 모두 OECD 평균에 준하는 공공의료비 비중을 목표로 추계한 것이다. 

그러나 OECD 평균 수준의 공공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에서 OECD 평균 공공의료비 비중을 추계의 근거로 사용한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병상수를 기준으로 OECD 평균 공공병상 비중은 70퍼센트를 넘지만 한국은 10퍼센트가 안 된다.

따라서 한국에서 공공의료비 비중을 높이려면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지금까지 한 번도 지켜진 적 없는 국고지원 비율이 지켜질 거라고 전제한 점과, 1백만 원 의료비 상한제를 위한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지 않고 계산한 것 등이 허점이다.<끝>

2010년 10월 16일 레프트21(42호)

http://left21.com/article/8717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노동자 보험료 선제 인상은 “사회연대” 아닌 양보일 뿐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

 

보험료 우선 인상을 주장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 참여 인사들이 그동안 언론에 기고한 글을 모아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 시민의 힘으로 출발》을 펴냈다. 

이 책은 ‘시민회의’를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저자들은 ‘시민회의’를 진보진영이 비판한 것을 두고는 피상적으로만 대응한다. 

대표적으로 ‘노동자들이 먼저 양보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 책은 답하지 않는다. 

낸 것보다 더 받기 때문에 양보가 아니고, 노동자가 내는 만큼 ‘법적으로는’ 기업과 국가도 낼 것이므로 손해가 아니라는 게 답변이라면 답변이다.

그러나 보험료 인상에 대한 노동자들의 거부감은 보험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건강보험 제도가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복지 제도임에도 그동안 노동자들의 부담이 부자들이나 기업주들에 견줘 상대적으로 높고 충분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건강보험료가 누진율이 아니라 정률로 부과되고 부자들의 납부 탈루가 너무나도 쉽다. 이명박조차 2002년까지 편법으로 보험료를 2만 원씩만 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민간보험’보다는 낫다는 논리로 이런 문제들에 눈감아 버린다. 건강보험은 소득만큼 내고 필요한 만큼 받는다고 과장한다. 이런 제도들로 “사회연대”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부를 기업주들이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득만큼 내고 필요한 만큼’ 받는 복지 제도란 있을 수 없다.

‘시민회의’가 부러워하는 영국, 프랑스, 스웨덴의 보장성 높은 의료제도는 노동계급이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지 먼저 보험료를 인상하겠다는 식의 ‘사회연대’ 선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시민회의’는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올리는 것을 “혁신적”인 “진보의 패러다임 변화”로 받아들여 달라고 주문한다. 오건호 위원의 말을 빌리면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 대중교통체계 개편으로 정치적 권위를 획득했듯이, 진보운동도 모델 사례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혁신과 패러다임 변화는 자본가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박형근 교수는 “‘건강보험 하나로’가 현실화되는 것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버지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파에게까지 추파를 던지는 듯한 인상을 줘 영 찜찜하다. 

이런 후퇴와 양보를 전제로 한 ‘모델 사례’는 복지 확대의 원동력인 노동자들의 투쟁과 계급의식에 악영향을 줄 뿐이다.

심지어 최근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조차 먼저 국가ㆍ기업의 부담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자고 주장하자 ‘시민회의’의 처지는 궁색해졌다. ‘시민회의’가 민주당과 다른 점이 좀더 노골적으로 노동자들의 양보를 주장한다는 점이 됐기 때문이다.

‘시민회의’ 주도자들은 진보진영이 제시하는 다른 대안들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보험료 우선 인상 철회는 논의할 수 없다고 한다. ‘시민회의’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대의가 아니라 보험료 우선 인상 즉, 노동자들의 양보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보험료 우선 인상을 정당화하는 변명으로 가득 찬 이 책은 ‘시민회의’의 군색한 처지를 보여 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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