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코로나19 대응으로 전담병원, 선별진료소 등에서 의료진 탈진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물론 긴박한 감염 질환 대응을 위해 모두가 집중하다 보니 일부에게 부담이 가중되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만 해도 벌써 1년 6개월이 넘었다. 치료현장의 아우성은 어제오늘이 아닌데 대응은 없다면 이는 방치일 뿐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병상이 인구대비 1, 2위를 다툴 정도로 많지만, 의료인력 특히 간호인력은 꼴등 수준이다. 간호인력이 많아야 오진과 부작용을 피할 수 있으며, 빠른 사회복귀도 가능하다. 한국은 극악의 인적구조다 보니 신규 간호사의 상당수는 몇 년 안에 임상현장을 등진다.

때문에 대부분 국가는 병상에 최소한의 간호인력기준이 있다. 규정이 법적이진 않더라도 공공병원이 대부분인 유럽국가에서는 병원운영위원회 등에서 간호인력이 부족하면 병동을 폐쇄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환자 30명을 간호사 1명과 지원인력이 돌봐도 제재가 없다.

정부는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인력 충원을 유도해왔지만, 그 근간이 ‘간호등급제’로 보상을 더 해주는 게 전부다. 환자대비 간호사가 비율이 높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기준 외인 병상을 폐쇄하거나 등급 외 병원을 운영중단 시키는 조치는 없다. 그렇다 보니 높은 간호등급을 유지할 수 있는 대형병원은 수익을 늘리는 데까지 인력을 더 고용했지만, 지방 중소병원은 인력수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등급 외에 머물렀다.

이런 구조 속에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의 의료의 질 차이는 커지고, 국민들은 당연히 대형병원을 선호한다. 간호등급제는 당근만 제공하면서, 대형병원만을 위한 제도로 전락했다. 거기다 워낙 엉망인 중소병원이 많다 보니 대형병원들도 해외 기준만큼의 인력을 충원하지는 않고 딱 등급제로 수익이 최대화되는 지점까지만 고용을 유지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환자대비 간호인력 정책은 여전히 인센티브를 더 주니 마니에 머물러 있고, 등급 외 병원의 병상을 폐쇄하면 지역사회 중소병원이 없어져 어쩔 수 없다는 핑곗거리도 존재한다.

이런 시장중심 인력 공급과 민영의료 공급은 이제 의료진, 환자는 물론 사회적 문제다. 지방에서도 서울 대형병원을 선호해 불필요한 비용을 소모할 뿐 아니라, 의료 불평등으로 지방 공동화에도 영향을 준다. 또한, 병원의 낮은 인력 충원으로는 지역사회 경제효과도 발생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간호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와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우선 기준 외 병상은 운영을 멈춰야 한다. 한국은 병상 포화국가지만, 공공병상과 제대로 된 인력기준을 지키는 병상은 부족하다. 중소병원이 인력기준 미달로 폐쇄위기인데도 꼭 지역사회에 필요하다면, 국가가 인력기준을 맞추도록 지원을 하거나 공공매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냥 민간공급자의 선의에 기대고 환자를 핑계로 이를 모면하도록 한다면, 앞서 살펴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코로나 국면에서도 총파업을 예고했다. 의료현장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호소다. 파업의 일성은 인력확충이다. 코로나19 시기 ‘덕분에’를 외치면서도 필수사회서비스인 의료 부분의 인력 충원을 외면한 대가다. 최근 4차 유행으로 매일 2000명 안팎의 확진자가 나와도 치료대응은 난항이다. 시급한 방역정책 전환 논의의 핵심은 충분한 치료대응능력이며 그 핵심은 의료인력 확충이다. 그리고 가장 시급한 것은 병상에 충분한 간호인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인력 기준을 지키지 못하는 병원과 병상을 놔두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방치하는 것이다. 명확한 병상대비 인력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고, 기준 외 병상은 과감히 폐쇄하자. 썩은 살을 도려내야 새 살이 자랄 수 있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08377&path=202108

메르스, 코로나19 등 신종 감염질환의 주요 감염경로 가운데 하나가 병원이었다. 요양병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중요한 화두가 간병인 감염 관리다.

한국에서 간병인은 어떤 자격도 아니고, 병원이 고용하는 직원도 아니다. 중요한 환자 관리를 의료인이나 병원 직원이 아니라 환자나 환자 가족이 사사로이 고용한 간병인에게 맡기는 행태가 이어지는 건 간병서비스를 의료서비스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부수적’으로 보이는 지원 행위가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최근 논란이 되는 병원 내 집단감염뿐 아니라 낙상이나 욕창 같은 합병증 및 사고 예방이 대표적인 예다.

좋은 간병인이 의료진 못지않게 중요한 근거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이유로 선진국 대부분은 간병을 건강보험이나 국가의료체계 일부로 본다. 간호사가 이런 서비스를 다 하는 나라가 태반이고, 최소한 병원에 고용된 교육받은 인력이 간병 서비스에 준하는 것들을 지원한다. 한국의 간병인은 개인 고용이고, 간병 용역업체를 통해 공급되면서 제대로 된 교육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사적 간병노동이다 보니 24시간제이고, 고강도 노동으로 상당수는 중국 동포들이 취업비자로 이 일에 종사하는 게 현실이다.

간병노동은 대다수가 나이 든 여성들의 몫이다. 즉 이 노동은 주변화되어 있고, 동시에 공적 관리 밖에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간병이란 거동이 불가능하고 타인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환자들이 어쩔 수 없이 이용해야 하는 서비스다. 이러한 서비스를 개개인에게 부담하게 하는 건 후진적이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년 전부터 간병 문제는 3대 비급여의 하나로 건강보험이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재정 부족을 핑계로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7년 전에 시작된 시범사업인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간병 문제를 건강보험으로 일부 해결하고 있다. 때문에 시민들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찾아 병원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 서비스의 국민 만족도는 높지만,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실은 턱없이 부족하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의 확산이 더딘 이유에 대해서 병원들은 인력 고용이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보상체계를 현실화하고 신규 간호사와 기존 간병인을 지원인력으로 전환하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다. 실제 간병 문제 해결의 큰 장애물은 간병서비스를 부차적이고 개인적으로 간주하는 인식과 이에 기생하는 민간 공급자들이다. 특히 민간 공급자들은 인력관리소처럼 수수료만 가져간다. 국가가 책임지는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간병비 부담으로 퇴원을 해버리거나, 막대한 간병 비용과 상호 책임전가로 가족 공동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간병지옥이 따로 없다. 이젠 감염 관리뿐 아니라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제대로 된 간병서비스를 공공 영역에서 공급해야 한다.

2021-05-25 29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622029011

최근 성심병원에서 체육대회 장기 자랑에 병원간호사들을 동원하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한 일이 보도됐다. 이 병원은 장기자랑 준비를 하는 시간 및 추가 근무에 대해서 수당도 지급하지 않았다. 신입간호사들에게 밤낮없이 춤연습을 시켰으며, 짧은 치마, 민소매 등의 복장을 강요했다는 진술도 잇달았다. 여기에 차출된 간호사들은 무려 행사 2주전부터는 춤연습만 했다고 한다.

사실 평범한 시민들이 보기에 아픈 사람을 돌보고 치료하는 병원에서 감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경우들을 많이 보아왔다. 즉 이번 사태로 밝혀진 내용은 정도가 심하지만 성심병원만의 독특한 병원문화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한국의 여러 병원에서 송년회에서 장기자랑을 시키고, 시간수당을 지급하지 않았으며, 각종 폭언과 ‘태움’문화에서 간호사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이런 비정상적인 문화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개선되기는커녕 병원내에서 암묵적으로 유지되는 현실에 정상적인 사람들은 납득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병원 내 극단적 권위주의와 간호사에 대한 부당한 강요 등은 세습된 ‘문화’만은 아니다. 그 근본에는 한국의료체계가 성장,축적한 본원적 방식이 놓여 있다.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본관 모습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본관 모습ⓒ민중의소리

한국의 병원

한국의 병원은 기관수로 95% 가량이 민간병원이다. 즉 대부분이 개인이나 민간비영리법인이 운영한다. 이는 OECD 국가 대부분 민간병원이 20-30% 선인 것과 비교해서 너무 높은 수치이며, 의료민영화의 천국인 미국의 70%선과 비교해도 높다. 사실 한국의 민간병원 비율은 OECD 국가 최고수준이다.

그런데 원래 한국이 애초부터 민간병원 천국인 것은 아니었다. 해방 당시를 보면 당시는 민간병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병원이 몇 개 없었고, 대부분이 공공병원이었다. 일본제국주의는 한일합방이후로 일본군 주둔지에 병원을 지었다. 이것이 지금 대부분의 지방의료원의 효시다. 또한 1930년대 만주사변이후로는 한반도를 후방 병참기지화 하면서 공공병원을 좀더 확충했다.

문제는 해방 이후로 공공의료기관이 거의 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부 국립대병원을 제외하면 공공병원은 일제가 만든 유산들이 고작이다. 그렇다면 왜 공공병원을 늘리지 않았을까? 우선 해방이후 미국식 종합병원, 전문의제도등이 이식되면서 의료부분에 대해서는 시장지향점이 분명해졌다. 또한 한국전쟁이후 폐허속에서 의료공급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다.

1960년대 말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필수의료의 요구가 늘어갈때도 박정희 정권은 의료공급만은 철저히 민간에 의존했다. 건강보험이 도입되는 과정에서도 의료수요는 모조리 민간병원이 독식했다. 이런 과정에서 초기에 작은 의원에서 시작한 개인의사들이 유명해지고 병상이 커지면서 병원을 짓게되고 이를 확대축적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번 갑질사태가 밝혀진 성심병원도 1960년대말 의료수요를 기반으로 확대해서 대학교까지 만든 민간병원자본(인제대 백병원, 순천향병원, 김안과 건양대병원, 을지병원, 차병원, 길병원 등)의 표본 중 하나다.

이들 민간병원들은 병상을 확충하면 할수록 돈을 벌었기 때문에, 계속 병원을 늘려가거나 병상을 늘리는 방식의 축적을 계속했다. 성심병원의 경우만 보더라도 한강성심, 강남성심, 강동성심, 춘천성심, 평촌성심, 동탄성심 등 계속 병원을 늘린 대표적 사례다. 이런 축적은 빠른 병상확충을 우선하면서 병원설립자가족의 막강한 권력과 기형적인 권위주의, 높은 수익성을 기반으로한 병원 확대를 특징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모형이 이후 국공립병원은 물론 재벌들이 만든 병원에도 이식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공공병원이 의료체계의 모델이 되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빠른 증식형 민간병원이 공공병원의 모델이 되었다. 이 과정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례라고 볼 수 있어 씁쓸할 따름이다.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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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노동강도와 위계질서

이들 민간병원은 병원수익성과 팽창을 기반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승진등을 미끼로 강력한 위계질서를 양산했다. 살아남아 위로 진급한 의료인들에게는 높은 권한이 부여되고, 일부는 병원관리에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우선 애초부터 한국은 의사,간호사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들 병원은 의사는 물론이고 간호사 한명이 수십명의 환자를 돌보는 체계에서 발전해왔다. 정상적인 병상관리에서 수십명의 환자를 한명의 간호사가 돌볼 수 없기 때문에, 간병은 가족에게 맡겨졌다. 또한 간호조무사와 잡무를 담당하는 하위파트너가 확충되어 이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런 일부업무(간병 및 이송 등의 업무)가 가족과 하위파트너로 빠졌다고 해도, 의사인력도 적었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해야 할 의료업무가 늘어갔다. 간호사들은 간호기록, 활력징후측정, 투약 같은 기본적인 환자 돌보기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는 의사들이 주로 하는 근육주사, 혈관주사, 정맥 주사 수액공급에 튜브교체 등의 업무까지 해야했다. 여기에 간병을 가족들에게 맡기고, 문병객을 제한하지 않는 민간병원의 영리추구 때문에 환자보호자 응대까지 해왔다.

이런 높은 노동강도는 수간호사-주임간호사-평간호사-간호조무사-보조인력으로 이어지는 위계질서 속에서 유지되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일을 놓치거나 실수를 하면 서로 힘들어졌기 때문에, 항상 고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특히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시간은 서로의 책임소재문제가 겹쳐져 간호사들의 태움문화가 만들어졌고, 신경질적인 분위기가 정착되었다.

사실 외국은 한국처럼 많은 환자를 한 간호사들이 절대 돌보지 않는다. 병상의 특징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체로 4명 안팎의 환자를 한 간호사가 돌본다. 한국은 간호인력에서 여유가 있는 병원조차도 15명에서 20명정도의 환자를 일반적으로 한 간호사가 돌본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 환자치료수준이 올라간 것은 모두 병원노동자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어서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노동강도를 기반으로 민간병원은 팽창하고 경영진들은 돈을 벌었지만, 계속된 경쟁과 축적압력으로 병원노동자들은 더욱 쥐어짜져왔다. 인력확충이나 노동자들의 처우가 일부라도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이후 노동조합등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하지만, 이런 위계질서는 노동조합설립과 가입에 대한 불이익, 특히 병상내 진급누락 등의 불이익을 발생시켜 간호사들의 정상적인 노조활동조차 가로막힌 상태다.

제46회 국제간호사의날인 5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계단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보건의료분야 50만개 일자리 창출 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인력법 제정, 50만 일자리 창출을 촉구하고 있다.
제46회 국제간호사의날인 5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계단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보건의료분야 50만개 일자리 창출 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인력법 제정, 50만 일자리 창출을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공공성이 관건

이런 병원내 위계문화와 오너일가의 갑질, 부당노동, 살인적 노동강도 해결은 우선 적절한 인력 충원과 노동강도 조정이 해결책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병상관리가 정착하는데 과연 민간병원들이 인력충원을 통해서 이를 제대로 구현할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병원의 수익성을 우선으로 하고 있고, 2000년대 이후로 이제는 주요도시에서는 병상과잉으로 민간병원들 사이의 경쟁도 격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력을 늘려도 병동관리가 아니라 QI, 교육, 잡무 등으로 말짱 도로묵이 되기 일쑤다.

결국 적절한 인력확충과 병상관리는 적정모델 설립이 필요하다. 개인이 설립한 혹은 이사회를 오너일가가 좌지우지 하는 병원이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정책적으로 이런 모델병상을 개발하여 긍정적인 모델을 양산하는게 가장 현실적 대안이다. 당장 병상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적정인력과 적정노동강도의 병상을 시범운영하고 여기에 자원배치를 해야 한다.

물론 병상대비 한국의 간호사수는 절대수치에서도 매우 낮다. 인구 1000명당 6명으로 독일(13.1명)이나 일본(11명)에 반도 안된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높은 노동강도와 태움문화는 그 조차 활동간호사의 수마저 줄어버렸다. 간호사면허 보유자중 약 13만명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간호사를 더 배출하는 것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들 간호사들이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조건 역시 적절한 노동강도와 일하는 보람일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가지 사회적 방안이 마련되고 있지만, 민간의료기관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이번성심병원 경우를 보듯이 순진한 생각이다. 인력을 늘리면 병상경쟁을 위해 시간외 병원홍보등에 간호사등을 배치하는 병원들까지 새롭게 생겨나는 상황에서 적정진료는 모델이 필요하고 공적인 책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역할을 외국에서는 대부분 공공병원이 하고 있다. 이미 민간병원이 공공의료마저 망가뜨리고 있는 한국의료체계라고 공공병원을 포기해선 안된다. 현재 한국의 공공병원이 가진 위계적 병원문화와 높은 간호사 노동강도 역시 개선의 대상이다.

결국 어디선가 적정진료모델을 시범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간호대학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결코 인력문제가 해결 될 수 없다. 공공병원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간호사들이 인간적인 노동을 통해 환자치료의 질을 향상할 수 있기 위해서도 절실하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민간병원을 매입하여 적절한 노동강도의 병원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위계질서속에서 개개인의 윤리회복이나 병원경영진의 개과천선만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관념이 아니라 체제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4년간 지속적인 민영화 전략을 추진해왔다. 철도, 전기, 수도, 가스 등등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공적 영역을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민간영역으로 이동시켰다. 민영화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동원되었는데, 철도의 경우는 민간자본이 투여된 다른 철도구간(수서발 구간)을 만들었다. 가스, 전기는 배급방식 등을 통해 ‘민영화’를 추진한다.

이러한 ‘민영화’ 시도 중에서 의료부문은 직접적인 ‘영리병원’ 설립시도가 있었다. 더불어 기존의 비영리법인의 사적자본 영역을 더욱 확장시키는 부대사업확대, 영리자회사설립, 병원인수합병 허용 시도등이 나타났다. 물론 민영화에 대한 대중적 반감과 노동조합의 투쟁등으로 이러한 과정은 박근혜 정부의 의도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영리병원은 박근혜 정부가 역사상 최초로 허가했지만, 제주도에 40병상수준의 피부미용병원으로 한정되어 허가되었다. 병원인수합병허용은 지난 국회 말 통과를 앞두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민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현 정부가 항상 하는 이야기는 ‘민영화’가 아니라는 항변이다. 수서발 KTX도 민영화는 아니고, 효율화이며, 전기, 가스의 민간기업 분배하청도 효율화일 뿐이다. 무엇보다 의료민영화와 관련해서는 항상 하는 이야기가 ‘국민건강보험을 지키므로 민영화가 아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박근혜정부는 지난 4년간 국민건강보험을 지켰을까? 지키는 건 기대하지 않지만, 약속을 했으니 많이 망가뜨리지는 않지 않았을까?

공기업 경영평가의 그늘

우선 지난 4년간 박근혜 정부 들어 누적된 건강보험 흑자는 이제 무려 20조가 넘는다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집권 첫해부터 누적흑자를 역대 최고로 갈아치우더니 매년 12조(2014), 16조(2015), 이제는 20조를 넘긴 것이다. 건강보험이 매년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구조라는 점에서 흑자는 그 자체로 현 정부의 의료정책 실패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년 남는 흑자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해야 할 건강보험공단조차 이를 자랑해왔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상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상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매년 건강보험 흑자를 경영공시로 자랑한 이유는 공기업 경영평가에 흑자경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를 통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임원들은 막대한 소득을 챙겼다. 성상철 건보공단 이사장은 작년 말 취임하고도 무려 지난해만 4천348만원의 성과급을 받았고 상임이사진과 상임감사진은 각각 평균 3천478만원, 3천188만원씩을 수령했다.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쓰지 않았는데, 도리어 임원들은 배를 불리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민간보험회사의 임원들이 받는 성과급과 다르지 않았다.

여기다 건강보험 흑자로 각종 펀드투자 및 국공채채권투자를 하는 것도 모자라, 2017년에는 흑자가 있다고 법에 명시된 국고지원금액도 축소한 상황이다. (건강보험재정 순증상황에서 무려 2000억 축소발표) 이는 건강보험제도를 전적으로 국민들의 호주머니로 유지하겠다는 전략이고, 건강보험 재정도 민간보험처럼 금융자산으로 관리하겠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이를 위한 큰 틀 중 하나가 공기업 경영평가에서의 수익성 중심 기준이었다. 암튼 이런 정도니 박근혜정부는 건강보험을 지키기는커녕 망가뜨렸다고 보는 게 맞다.

이런 상황은 여타 공기업도 비슷하다. 공기업이 가지고 있는 공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그냥 서비스 쥐어짜기, 노동강도강화, 비정규직 고용 등을 통해 흑자경영만 하면 도리어 평가점수가 올라갔다. 그리고 이런 경영평가 지표는 실제로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에만 맞춰져 비정규직고용을 늘리고, 서비스질이 하락하면 점점 더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공기업경영지표가 수익성 중심이 되면서, 사실상 공기업은 민간기업과 비슷하게 기능하도록 강요받았다.

의료영역에서는 건강보험뿐 아니라, 공공병원에도 이런 지표가 적용되었다. 때문에, 공공병원들도 돈 안되는 공공의료 서비스나, 적정진료보다는 비보험진료나 부대사업에 더 집중했다. 최근 들어 공공병원에 저소득층이 더 입원하기 힘들게 되고, 보라매병원등은 로봇수술 같은 고가의 비보험 수술을 할 경우 성과급을 적용하려는 문서까지 공개된 상황 모두가 이런 경영평가의 여파다. 국립대병원들도 경영평가를 받으면서, 채산성과 수익성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최근에 서울대병원은 지하 1층에 대대적인 쇼핑몰을 열려고 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따라서 공기업 경영평가는 직접적인 ‘민영화’ 조치는 아니지만, 공적 역할을 훨씬 더 영리적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외재적 ‘민영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내재적 민영화

이런 경영평가를 통한 전체적 ‘민영화’압력을 박근혜 정부는 행사하면서, 이번에는 또 다른 방법을 강구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성과연봉제’ 도입이다. 현 정부는 성과급을 통해 경영효율화, 일하는 공기업을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사실 공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 사회근간을 유지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느냐 인데 말이다.

29일 공공부문 노동자 총파업 총력투쟁 집회에 앞서 국민건강보험공단노조 조합원들이 성과연봉제·퇴출제 저지를 위한 총파업 총력투쟁 사전집회를 여의도 KBS 앞에서 진행 구호를 외치고 있다.
29일 공공부문 노동자 총파업 총력투쟁 집회에 앞서 국민건강보험공단노조 조합원들이 성과연봉제·퇴출제 저지를 위한 총파업 총력투쟁 사전집회를 여의도 KBS 앞에서 진행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암튼 정부 주장은 공공부문 노동자들까지 성과에 따라 임금을 구분해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기업의 상당수가 이렇게 하여 매우 효율적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앞서 보았듯이 공기업의 임원들에게 도입된 성과급을 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일단 임원들의 성과급은 앞서 말한 공기업 경영성과와 연동되어 있었다. 때문에, 건강보험공단의 임원 중 누구도 건강보험 흑자를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을 위해 사용하자고 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를 못 쓰게 쥐어짜고, 생계형 체납자들의 체납율을 낮출수록 성과급을 더 받았다. 이는 건강보험공단을 민간보험회사와 비슷하게 만드는 효과였다.

이런 탈공공적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낙하산 임명된 건강보험의 이사장과 임원들이 모두 성과급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그동안 저항하며,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과 건강보험 강화를 위해 싸워온 것은 다름 아닌 건강보험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었다. 건강보험 노동자들의 주된 역할은 건강보험을 잘 관리해서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공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사장이 아니라, 주로 조직된 노동조합을 통해서 구현되었다. 건강보험 노동조합은 흑자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써야한다고 누구보다 앞장서 투쟁해 왔다.

또한 건강보험 노동자들은 소득이나 상황에 맞추어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경감방안등을 제안하고, 눈감아준 경우가 없지 않았다. 일선에서 가난한 체납자들의 형편을 조정하는 것이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에게 성과급이 적용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기존의 진급심사정도에 적용되던 징수실적이 연봉에 반영되면서, 생계형 체납자를 비롯한 빈곤층의 보험료 징수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는 민간보험회사의 ‘보험왕’ 경쟁과 비슷한 구조를 불러올 것이다.

또한 건강보험의 올바른 사용을 주장해온 노동조합도 내부의 성과급 경쟁과 분열로 전 국민의 건강권 확보에 취약해 질 수 있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건강보험의 성격이 공적보험으로 공공서비스의 보루가 아니라, 민간보험사처럼 성과에 따른 연봉을 받고, 경영실적으로 평가받게 됨으로써, 사실상 의료비 절감이 아니라, 의료비 긴축에 동참하게 되는 효과다.

앞서 말한 공기업 경영평가와 성과급이 모두 도입되면 건강보험공단의 메커니즘은 보장성 강화가 아니라, 보장성 답보 혹은 축소를 통한 공단의 실적 강화(흑자 유지)에 완전히 맞춰진다. 내부의 동학도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적 성과급 경쟁만이 남는다. 이는 가뜩이나 의료비 부담으로 어려운 국민들에게는 재앙이고, 건강보험공단이 민간보험과 마찬가지의 수익자부담 구조로 바뀌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민영화’와 다름없다.

이런 과정 때문에 공기업의 성과연봉제 도입은 사실상 내재적 ‘민영화’ 조치이고, 직접적으로 ‘민영화’를 주장하지 않지만, ‘민영화’로 가는 꼼수다.

12일 오전 공공운수노조 공공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노조원들이 서울대병원 본관 로비에서 '성과급제 반대, 최업규칙 개악 저지' 의료공공성 확충을 위한 임단협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12일 오전 공공운수노조 공공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노조원들이 서울대병원 본관 로비에서 '성과급제 반대, 최업규칙 개악 저지' 의료공공성 확충을 위한 임단협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공기업 성과연봉제 저지 투쟁에 연대하자

지금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과 서울대병원을 위시한 병원이 파업 중이다. 주된 쟁점은 공기업 성과연봉제 저지이다. 국민건강보험은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된 전국민건강보험의 산물이고, 이후 10여년간 지속된 건강보험 통합운동의 성과이다. 이를 민간보험회사처럼 바꾸려는 시도 중 하나가 성과연봉제 도입이란 것을 건강보험 노동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병원노동자들도 이미 의사성과급제로 수많은 ‘과잉진료’와 ‘인력쥐어짜기’를 경험했다. 만약 공공병원에 노동자들에게도 성과급이 도입된다면 병원에서 돈벌이경쟁이 극한에 도달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매우 더딘 과정이지만 IMF이후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공공서비스가 날로 영리화 되는 과정의 완결판이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근간인 노동자들의 ‘공공의식’을 말살한다는 점이다.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정신, 공공성은 물론이고, 사회전반의 공공성이 말살되게 된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별다른 설명도 없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이간질하던 수법처럼, 공기업 노동자들과 국민들을 이간질해서 마치 ‘철밥통’이 고임금을 유지하려 파업을 한다고 선동적으로 비난하는 보수언론과 정부야 말로 자신의 기득권과 뻔뻔스러움을 드려다 봐야 한다. 지금 성과연봉제저지를 위해 거리로 나선 파업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보내자. 지금 남의 일처럼 무시하고 지나간다면, 앞으로 우리가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받을 때 나와 우리 아이들이 피눈물을 흘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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