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헬스케어법, 개인건강정보 갈취 위장 법안이다
기업이 개인 건강정보를 쉽게 취득해 이용할 수 있는 악법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디지털헬스케어 및 보건의료데이터 활용법안’(이하 디지털헬스케어법)이 그것이다. 법안명만 봐서는 ‘디지털헬스케어’가 무엇인지, ‘보건의료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도입 취지도 국민건강에 이바지하고, 이를 통해 의료기술이 발전한다고만 되어 있다. 요약문을 읽어봐도 이 법안이 가진 위험성과 초법성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
이 법은 개인정보법, 의료법, 약사법 등에 규정된 제3자 제공범위를 무시하고 개인 건강정보가 쉽게 전송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위험성과 초법성을 내포하고 있다. 각각의 법률에 규정된 제한 사항을 하위 행정법안인 보건복지부령으로 재규정하는 위법성에 더해 개인 건강정보를 무차별 전송하고 집적하기 위해 ‘디지털헬스케어’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디지털헬스케어’란 아직까지 불분명하고 연구과제 대부분이 광범위하다. 일종의 신기루 같은 영역인데, 법안은 이를 ‘지능정보기술과 보건의료데이터를 활용하여 질병을 예방·진단·치료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일련의 활동과 수단’으로 설명한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산진료정보부터 스마트워치에서 측정하는 건강정보까지, 보건의료 서비스 전반을 뛰어넘는 뭔가가 ‘헬스케어’라는 식이다. 그러나 실상은 의료법, 약사법, 국민건강증진법 등에 명시된 내용을 포괄해 언급하는 수준이다. 이런 얼렁뚱땅 용어로 법안이 제안된 이유는 각종 법률에 규율되어 각각의 개정과 규제 완화가 쉽지 않은 문제를 법안 하나로 해결하기 위함이다. 빅테크 기업과 민영보험사들의 민원 수리를 위한 꼼수인 것이다.
의료법과 약사법 등은 민감 정보의 핵심인 개인 건강정보 이동의 보안상 책임과 제3자 전송에 대한 제한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정보 유출로 인한 부작용과 무차별 상업적 이용을 제한하기 위한 정당한 조치다. 반면 디지털헬스케어법은 개인 건강정보의 합법적 갈취와 집적화에 목적을 둘 뿐 나머지 내용은 매우 취약하다. 예를 들어 별도의 ‘심의위원회’를 만들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애초에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의료법을 통해 해결하면 되는 일을 별도의 위원회와 입법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법에 군더더기가 생긴다. 이미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수십년 전부터 의료현장에 도입된 디지털 장비나 전산차트를 별도 법안에 규정된 시범사업이나 위원회 등에서 추진할 이유가 없다. 대체로 이러한 별도의 허가 및 운영 조치는 완화된 규정을 낳게 마련이다. 이는 편법적인 규제 완화다.
국회가 나서 뜬구름 잡는 누더기 입법안을 논의하는 건 가뜩이나 투기세력이 눈독 들이는 한국 바이오 산업의 난맥상을 부추기는 일이다. 디지털헬스케어법에서 정말 개정하고 싶은 내용은 각각의 법률안에서 내실있게 논의해야 한다. 그게 정직한 길이고, 정도(正道)다.
정형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 실행위원·의사
https://www.khan.co.kr/opinion/contribution/article/20231120203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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