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장 분야 대선과제 시리즈 칼럼⑧] 기후위기와 감염병에 대응하는 보건의료 정책

 

한국의 이번 대통령 선거는 참 이상하다

[사회보장 분야 대선과제 시리즈 칼럼⑧] 기후위기와 감염병에 대응하는 보건의료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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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통령 선거는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심각한 보건위기에서 치러진다는 느낌이 없다. 코로나19 보건위기에 대한 방역, 백신 접종, 치료 대응 등에 대한 공방을 봐도 수준이 유아적이다.

방역 관련해서 유력 야당 후보인 윤석열은 자영업자들을 의식해서 '방역패스 폐지' 같은 지엽적인 문제 논란에 집중하거나 백신 접종대상에 대한 완화를 주장하는 식의 반정부 공세만 있고, 여당 후보 이재명은 '디지털 방역'이란 이름의 영업시간 제한 완화를 주장한다. 모두 방역조치로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의 표만 바라볼 뿐 방역대응을 위한 인력, 대응체계 강화 주장은 없다. 2년간 방역현장은 녹초가 되어 아우성인데 말이다.

백신 관련해서도 청소년 대상 접종만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방역대상, 범위, 백신 접종대상은 사회적 합의의 대상이다. 한국의 의료대응능력과도 연동된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의료대응능력은 거의 부수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변이 바이러스 창궐의 역사를 볼 때 백신 특허를 유예하여 저소득 국가의 백신 도입이 시급하지만, 백신 특허 유예안에 대한 입장을 내는 후보는 없다. 참고로 문재인 정부도 바이든 정부조차 지지하는 백신특허 유예안에 대해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명백한 다국적 제약회사와 금융자본 눈치보기다. 한국이 진정 선진국이 되려면 이런 세계적 위기에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작년 11월 말 우리는 병상 부족으로 코로나 대기환자가 1200명까지 폭증하는 상황을 목도했다. 이는 코로나 이외의 환자 진료에도 영향을 줬고, 의료 붕괴 직전으로 의료대응 자원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의료자원 마련에 대한 논의 역시 미비하다. 그나마 이재명 후보는 12월 31일에 70여 개 거점에 공공병원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직접 발표했다.

코로나 환자의 80% 이상을 진료하고 있는 공공 의료기관 확충은 이제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후보는 '필수의료 국가책임제'라는 이름으로 민간의료기관에 돈('공공정책수가')을 줘 공공의료사업을 하게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 시기 국가 책임의 중요성을 외면할 수 없으니 이름은 '국가책임제'로 지었으나 '음압병실, 중환자실, 응급실 설치와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 교육훈련비를 사용량에 상관없이 공공정책 수가로 지급할 것'이라고 밝히며 기존의 건강보험제도하에서 행위에 따른 보상체계로 '수가'를 지급하는 방식을 일종의 정책수가로 운영비용까지 보존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민간병원이 그간 주장한 공공의료사업 위탁 비용을 공적으로 보존받겠다는 논리의 재탕이다. 국가가 직접, 음압병실, 중환자실, 응급실을 운영하고 의료인력을 고용해 훈련, 양성, 배치하면 될 문제를 굳이 '공공정책수가'로 민간에 공급하자는 것은 민간병원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코로나19 위기, 보건위기일 뿐 아니라 무분별한 시장주의의 결과

위기의 시기에도 민간 공급자의 이익에 앞장서는 시장주의자가 주요 대통령 후보인 것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위기의식이 정치권에서는 유독 매우 낮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위기는 보건위기일 뿐 아니라 무분별한 시장주의의 결과다.

무차별적인 자연파괴와 선별적 보건제도는 지난 수십 년간의 시장근본주의에 의해 조장되었다. 그 결과 지난 20여 년간 수차례 신종 감염질환(조류독감,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의 경고까지 받아왔다. 그때마다 수익성과 시장 자율에 맡겨진 사회 시스템은 엉망이 되었다.

때문에 코로나19 시기 대부분의 선진국은 보건체계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보수당이 집권한 영국조차 국영 의료체계 확대를 위해 증세를 하는 상황이다. 스웨덴, 독일, 스페인, 이태리는 이미 막대한 보건재정을 투입했고, 투입할 예정이다. 반면 윤석열 후보는 감세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폭탄, 외국인 건강보험 유용 등을 주장하며 건강보험체계 긴축을 부추기고, 불신과 편견만 조장한다. 세계적 추이에 완전히 역행하는 셈이다.

한국의 이번 대통령 선거는 참 이상하다. 부동산 감세에 집중하면서 보건의료체계에 어느 정도의 재정을 투입하고, 인력을 충원하고, 백신 특허를 유예해 저소득국가의 백신 접근권을 확대할 지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다.

코로나19는 보건위기가 아니라, 그냥 잠시 지나가는 천재지변인가?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신들의 영역인가? 아마도 이런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지각 있는 사람들과 주요 선진국에서 본다면 한심하게 볼 뿐 아니라, 개발지상주의 한국의 미래까지도 의심하게 만들 것이다. 제발 이제라도 최소한의 진지함이 보이는 대통령 선거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정형준 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입니다.

한국에서 공적의료보험이 시작된 지 45년이 됐다. 전국민건강보험이 시작된 지도 35년이고,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으로 나아간 지도 24년차다. 단연코 건강보험은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사회복지제도다. 때문에 2008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및 축소 방침 보도는 '의료민영화 반대' 물결이 됐고, 당시 광우병 촛불시위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영리자회사 도입 등 연성 의료민영화를 시작했을 때도 정부는 '건강보험을 지키겠다'는 홍보물을 만들어 의료민영화는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건강보험 사랑'이 있어 시장만능주의 정치인이라도 건강보험을 감히 건들겠다는 정책을 자신 있게 펴지 못한다. 약한 수준의 의료민영화 발언도 정치인에겐 치명적이다. 건강보험을 강화하겠다는 주장은 많지만 건강보험을 축소하거나 건강보험영역을 민영화하겠다고는 쉽게 말하지 못 한다. 하지만 한국의 건강보험이 마냥 안전한 것은 아니다. 드러내놓고 건강보험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잠식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을 훼손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의 발전과 성장을 바라지 않는 적들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건강보험 잠식하는 민영보험

우선 건강보험의 축소를 원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은 민영보험사(금융자본)들이다. 민간 금융자본은 미국식 의료제도인 민영의료보험 중심의 의료보장제도를 바란다. 물론 당장 이런 제도로의 전환은 의료민영화 자체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민영보험사는 조금씩 건강보험을 잠식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째로 보충형 보험인 실손의료보험을 확대해 왔다. 현재 한국의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4000만 명을 넘었다. 재정 규모도 정액보험을 제외하고도 연간 25조 원에 육박한다. 건강보험의 1/4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고작 10여 년 정도가 걸린 셈이다. 건강보험을 방치한다면 현재의 성장 속도로 건강보험 총재정의 1/2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둘째는 민영보험 시장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영역을 축소하려 한다. 윤석열정부가 지난해 인증한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를 보면 고혈압, 당뇨 등의 만성질환관리는 민영보험사와 연계된 사기업이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다 국민건강보험법상 건강보험이 해야 하는 건강증진, 예방 등의 사업도 사기업이 하도록 전환하려고 하는데, 애초에 '건강관리서비스'업 자체가 미국에서 보험사들이 운영하는 사업이란 점을 본다면 그 본질은 더 명확하다.

셋째는 의료기관과 민영보험의 직불제 추진이다. 미국처럼 의료기관과 민영보험사가 직접 의료비를 전달받는 체계는 민영보험확대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1단계인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라는 진료기록의 보험사전송의무 법안은 얼마 전 국회를 통과했다. 보험회사와 금융 관료들은 이를 국민 편의를 위한 것으로 포장했지만, 그 본질은 보험회사와 의료기관의 직접 연계를 통해 직불제로 나아가려는 시도다.

이처럼 민영보험은 지난 30여 년간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를 제한하고, 건강보험의 관리 영역을 침범하고, 의료기관과 직접 진료 정보를 교류하려 했다. 끝으로 미국식으로 의료기관에 직접 의료비를 제공해 직계약을 맺고자 야금야금 건강보험을 잠식하고 있다. 문제는 애초에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높다면 이런 시도는 어려웠을 것인데, 한국의 보장율은 OECD 꼴등 수준으로 답보상태다. 보장률이 낮아 국민도 울며 겨자먹기로 실손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윤 대통령, 건강보험 재정 공포 조장
건강보험을 공격하는 민영보험사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정부도 한몫한다. 윤석열정부는 OECD 꼴등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는커녕, 이전 정권 공격을 위해 보장범위를 줄이려는 최초의 정부다1). 여기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건강보험 재정파탄 공포를 퍼뜨리고 있다2). 실제 한국의 건강보험 총재정은 국민총의료비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현재 총의료비가 연간 220조 원가량인데, 건강보험 총재정은 고작 90조 원 정도다. 낭비 없는 건강보험 재정관리가 중요하다고 국민 직접의료비를 줄일 수 있는 건강보험 재정확대를 방기하는 건 앞서 밝힌 민영보험사만 좋은 정치다.

여기에 '약자복지'를 말하면서 병·의원 이용이 과다한 극소수 환자들이나 외국인 가입자들에 대한 보장 수준을 축소하려 한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문제해결을 위해 시범 사업 중인 '한국형 상병수당제도' 예산도 삭감했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의료공급 부분에 대한 개혁이나 지불제도개편 등은 방기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쥐어짜겠다는 시도만 하고 있는 셈이다. 건강보험재정 파탄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기에 앞서 법에 약속된 건강보험 국고 지원이라도 제대로 한다면 일말의 일관성이라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윤석열 정부도 여전히 국고 지원을 기대수익의 14%에 훨씬 못 미치는 11% 수준으로 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건강보험 재정 공포를 조장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포퓰리즘'으로 몬다는 건 사실상 민영보험 활성화란 점에서 나쁜 정치다. 아마도 스스로 사회서비스의 시장화3)를 주장했던 수준으로 노골적인 민영보험 활성화를 외치기에는 국민 정서와 여론을 살핀 듯하다. 하지만 그 본질이 진정한 건강보험 재정 건정화가 아니라 민영보험 살찌우기라는 건 건강보험 국고 지원액 축소, 보장 범위와 대상 축소, 공공의료 방기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재정 관료들의 악행 

끝으로 민영보험사와 윤석열 정부의 나쁜 정치를 연결시키는 고리는 재정 관료들이다. 이들 재정 관료들은 민영보험사와 카르텔을 이뤄 건강보험의 성장을 막고, 민영보험 활성화를 위해 지난 30여 년간 노력해왔다.

우선 앞서 이야기한 건강보험 국고 지원을 누락해 건강보험 재정 확대를 막고 재정 위기를 초래했다. 사회보험시절(2000년까지) 지역가입자의 보험재정 국가납입분도 한 번도 제대로 납부한 바 없었고, 이를 승계한 국민건강보험의 국고 지원액도 매년 누락했다. 이 누락분만 가입자들의 보험료 징수처럼 소급해서 제대로 했다면 건강보험 보장성이 5포인트 수준은 상향됐을 것이다.

재정 관료들이 그간 건강보험 국고지원을 계속 누락한 이유는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초래해 보장률을 답보 상태로 만들고, 전반적인 공보험 비중을 축소하기 위해서였다. 실손보험의 시장 장악력이 올라가자 정부부처인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실손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 건강지킴이' 광고를 한 것은 이런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일례다. 여기에 최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진료 정보를 수집하는 곳으로 민영보험사들의 손해율을 계산하는 '보험개발원'을 상정한 것도 금융위원회와 재정 관료들이다.

재정 관료들은 정권이 바꿔도 용어를 바꿔가면서 건강보험 재정 긴축을 획책하고, 건강 영역의 민간금융시장의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 문재인 정부가 문재인 케어라는 보장성 강화안을 내는 상황에서도 금융위원회는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등의 건강 상품화에 앞장섰다. 2014년에는 '2060재정전망'이라는 공포 마케팅을 하면서 건강보험 누적 적자가 2040년에는 600조 원이 넘는다는 보고서를 낸 것도 재정 관료들이다.

최근에 KDI를 통해 지방의료원 신축 경제성 평가를 통해 대통령 공약인 공공의료기관 설립을 무산시킨 것도 역시 재정 관료다. 재정 관료들이 재정공포와 긴축재정을 추구하는 체계는 모든 사회보험에 미치는 영향이 비슷한데, 그 결과는 결국 민영의료보험과 사적연금 시장의 확대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배울 것

이처럼 건강보험을 야금야금 공격하고 소극적인 건강보험 정책을 통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한국에서 30여 년간 해온 일은 건강보험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민영보험사, 윤석열 정부, 재정관료 같은 강력한 자본과 정치 집단이 한국에만 있지는 않다.

가까운 일본을 보면 아베를 위시한 일본 신우파정부(자민당 신우파)와 일본민간보험사도 비슷한 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지는 않았는데, 이는 일본의 건강보험이 매우 높은 보장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실손보험이 팔리지 않는다. 또한 일본은 의료공급자들이 건강보험진료와 비급여진료를 섞어서 하지 못하도록 '혼합진료금지'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민간의료 공급자들인 의사들조차 아베 정부의 민영보험활성화, 신의료기술활성화 정책에 강력히 반대했다. 결국 건강보험의 약한 고리인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건강보험의 적들이 암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건강보험 제도는 1980년대 노동자대투쟁으로 전 국민으로 확대됐고, 의료보험 확대를 위한 투쟁의 성과로 2000년 국민건강보험의 단일보험자로 성장해왔다. 아직도 한국의 건강보험은 갈 길이 멀다. 가까운 일본의 입원 보장률 92%에 비해 한국은 67%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의 부가 늘어나도 답보 상태인 건강보험 보장성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건강보험의 적들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히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를 기치로 투쟁에 나서고 있다. 노동자 투쟁으로 건강보험의 적들을 조속히 패퇴시켜주길 바란다. 그 혜택은 극소수 부자들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와 서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주석] 
1) '보장성 강화정책은….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 2022년 12월 13일 대통령 국무회의 모두발언 중
2) 2040년 재정적자가 6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2022년 12월 14일 대통령실 설명(건강보험보장성 축소를 대통령이 밝힌 데 따른 답변)
3) "이 사회보장 서비스 자체가 하나의 경쟁이 되고, 시장화되면서 이것이 산업화된다고 하면, 이거 자체도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또 팩터(factor)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좀 많은 재정을 풀어서 사회보장을 부담을 해 주려고 하면, 그러면 사회보장 서비스 자체도 시장화가 되고, 산업화가 되고, 경쟁 체제가 되고 이렇게 가야 됩니다. 그냥 뭐 사회적 기업이다, 난 사회보장 서비스로 한다, 그래서 일률적으로 거기에다가 돈 나눠주고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는 그거는 그냥 돈을 그냥 지출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시장화되지 않으면, 그것이 성장에 기여하는, 그런 성장 동력이 되지 않습니다."(사회보장 전략회의 모두 발언 2023.5.31)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형준씨는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입니다.

미국 드라마를 볼 때마다 의료문제가 인상 깊다. 마피아들이 민영 보험료를 깎기 위해 기업에 거짓으로 취직해 이름이라도 걸치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 보장 범위가 더 넓은 보험 가입을 조건으로 임금인상을 양보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미국에서도 민영보험 문제는 풍자의 대상, 조롱거리다. 미국의 저소득 노동자, 흑인, 이주민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단연코 높은 의료비다. 직장에서 해고됐을 때도 소득 손실보다 병원에 갈 수 없다는 두려움이 더 크다.

혹자는 미국도 한국처럼 공보험을 만들면 되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런 노력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민영보험 시장이 너무 커져 공보험을 도입하기에는 정치적·재정적 부담이 막대했다. 민영보험사를 국유화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고, 작게나마 공보험을 시작해 커지면 민영보험시장 잠식 문제로 민영보험사에 막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미국 정치권이 민영보험사에 포섭돼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나마 미국의 65세 이상은 메디케어라는 공적보험이 있다. 이는 민영보험사가 수익성이 없다며 공보험에 양보했기에 가능했다. ‘오바마 케어’ 역시 기본 민영보험 상품이라도 가입하도록 강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미국의 높은 의료비, 높은 보험료, 차별적인 의료 이용의 핵심 배경은 민영보험 체계다.

이런 이유로 2008년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민영보험 활성화 정책을 발표했을 때 결사반대 목소리가 컸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민영보험 활성화가 의료민영화라는 것을 시민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민영보험사들은 민영보험 활성화 정책을 여러 모양으로 포장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정책이다. 이름만 보면 ‘청구 간소화’란 편의성에 중점을 둔 정책으로 보이지만 민영보험사가 진료 정보를 전산으로 수집하는 것을 합법화하는 게 핵심이다. 민영보험사가 개인 건강정보를 갖고 싶어 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평균 손해율을 계산하고, 지불 또는 가입 거절 등에 활용하고 보험료 담합을 하기 위해서다. 이는 민영보험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준다. 병원과 민영보험의 직접 연결 고리도 된다.

국가기관의 인정을 받은 민영보험이 의료 체계에 깊이 침투하면서 낭비도 커졌다. 공보험 보장률이 답보 상태인 큰 이유 중 하나는 실손보험이 부추긴 비급여 진료 때문이다. 민영보험은 이제 건강보험과 비슷한 지위와 역할까지 요구한다.

윤석열 정부는 기업이 만성질환 관리를 하도록 건강관리 서비스를 인정하고, 기업 플랫폼이 비대면 진료를 중계하고, 이들 사업에 민영보험사도 진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제 민영보험사는 청구 간소화란 명분으로 진료 정보까지 전산 수취하려 한다. 게다가 이런 논의는 보건복지부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도 아닌 금융위원회, 산업자원부가 주도하고 있다. 공보험에 미치는 영향 평가조차 없다.

조심스럽지만 미드 속 현실을 한국에서도 조금씩 체험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2023-06-02 26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602026003

‘혼합진료’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생소하지만 우린 일상에서 혼합진료에 노출돼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와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를 섞어서 진료하는 게 혼합진료다.

혼합진료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유래했다. 일본에는 급여와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걸 엄격하게 금지하는 ‘혼합진료 금지’ 조항이 있다.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안전성과 효용성이 있는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는 만큼 효과가 떨어지거나 입증되지 않은 비급여 의료서비스가 마구잡이로 동시에 시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다른 주요 선진국에서도 요양급여 범위를 벗어나는 비용을 받거나 요양급여 외의 시술 또는 약품을 쓰고서 환자에게 비용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비용은 잔액청구(ballance billing)로 규정돼 프랑스나 캐나다 일부 지역에서만 일부 허용된다.

하지만 한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직장 건강보험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재정 여력이 충분치 않아 약품이나 의료행위를 모두 요양급여 대상으로 두지 못했다. 그 결과 건강보험 급여와 비급여를 혼합해 진료하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고, 비급여는 통제불능 상태로 남게 됐다. 이로 인해 의료기관은 수익성 높은 비급여에 집중하게 됐다. 비급여 영역이 계속 증가하는 이유다.

차라리 비급여만 하는 의료기관이면 건강보험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텐데, 이를 섞어서 제공하다 보니 건강보험 진료를 하면서 돈벌이가 추가됐다.

비급여에 의료기관의 운영이 좌우되다 보니 효과가 있는 의료서비스가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되도록 노력하는 의사들도 줄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가격이 싸지고 보상이 적어진다는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주요 선진국 의사들이 보험의 보장 범위를 넓히려고 애쓰는 것과 비교된다.

혼합진료를 금지했다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 항목만으로 충분한 치료가 이뤄지도록 필수 의료 분야에서 의사들이 노력하고 근거를 축적했을 것이다.

비싼 치료가 더 좋을 것이란 막연한 환상도 비급여 확대를 조장했다. 방송과 언론의 부추김도 한몫했다.

애초 혼합진료를 금지했다면 건강보험 영역은 근거 중심으로 발전하고, 건강보험 급여 항목만으로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보상이 이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결과 건강보험 보상 수준은 낮고, 의료기관은 비급여로 수익을 벌충하는 기이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의료 영리화와 민간 의료보험 중심인 미국조차 환자가 계약한 보험 외 진료를 보상하거나 허용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도 살 만한 나라가 됐고 건강보험재정도 규모가 있다. 경상의료비도 국민총생산의 9%를 넘어갔다. 따라서 앞으로 보편적 건강 보장을 넓히고 불필요한 낭비 의료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혼합진료를 중단해야 한다. 국민도 급여와 비급여를 명확히 인지해 필요한 의료를 선택하는 실질적인 선택권을 되찾아야 한다.

2023-04-21 30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30421030003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건강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대여명과 건강수명이 늘고 질환 치료율도 올랐다. ‘결핵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감염 질환 관리에 취약했지만 이조차 부족하나마 좋아지고 있다. 이런 양상은 보건의료체계보다는 영양·위생 상태, 교육, 노동조건 등 사회 조건이 개선된 영향이 크다.

건강 문제에 있어 의료영역 의존성은 생각보다 낮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으로 네트워크, 경제, 문화, 환경 등을 꼽는다. 합병증 감소와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보건의료제도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건강 문제에서는 개인보다 사회적 조건이 우선된다.

최근 건강정책에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건강 상황 개선의 요소였던 노동시간 축소에 제동이 걸리고, 대통령이 나서 야간노동을 장려하려 한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28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300시간 정도 길다. 그나마 지난 10년간 200시간 정도 줄었고 여기에 야간노동, 특히 연속 야간노동이 부족하나마 감소하고 있었다. 긴 노동시간은 건강에 치명적이다. 휴식이 부족해 재생과 충전 시간이 없어지고 질병 상태가 악화하거나 회복이 더뎌지게 된다. 신체활동시간을 유지할 여유도 줄어 건강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신체의 재생시점을 망가뜨리는 야간노동은 최악의 질병 상태를 유발한다.

미국암학회가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이유는 이런 까닭이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등산과 걷기, 요가, 자전거타기 등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비율은 2006년 28.3%에서 2022년 45.5%로 늘었다. 이런 사회체육의 증가는 개개인의 건강 상태를 직접적으로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네트워크를 강화한다. 토요일 휴무를 비롯해 실제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노동시간 문제는 단순히 일하고 쉬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건강 문제와 직결된다. 수많은 근골격계 질환도 대부분 잘못된 자세와 누적된 노동환경 탓으로 볼 수 있다. 유럽이나 일본 수준으로 노동시간이 낮았다면 병원에 가기 전에 쉬면서 나아졌을 환자도 많았을 테다.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면 병원 내원도 줄어든다.

노동시간은 낮은 출생률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육아 시간이 부족하고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도 없다.

하지만 노동시간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서도 한국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당장 노동시간과 유연근무를 늘리면 일부 개별기업은 이익을 보겠지만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될지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당장 눈앞의 이익 때문에 개별기업의 효율성만 높이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무엇보다 지난해 말 대통령은 건강보험 재정 상태를 걱정하며 보장성 축소를 천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재정을 더 빠르게 고갈시킬 노동 유연화에 반대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은가. 우리 국가와 사회의 영속성을 감안하더라도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건강 문제로 재논의해야 마땅하다.<끝>

2023-03-10 30면

 

병원에는 묻지 않는 책임

길병원이 지난해 말 전공의 미달로 인력이 부족하다며 소아과 입원진료 중단을 선언했다. 전국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16%가량으로 대다수 교육병원에 전공의가 태부족한 상황이다. 지원율이 떨어진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핵심은 환자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소아 환자가 줄어들다 보니 소아과의 개원 경쟁력이 떨어졌다.

원래 전문 과목은 경증 환자나 외래진료를 위해 수련하고 자격을 취득하는 게 아니다. 입원 환자와 중증진료를 위해 교육받는 게 대부분의 국가에서 상례다. 하지만 한국에선 전공의를 그저 대형병원이 낮은 임금으로 고용 가능한 의사 인력으로 간주해 왔다. 그 결과 지원율이 널뛰기를 한 지 오래다. 병원이 전문의를 최소한으로 고용하고 전공의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결과가 작금의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시장 실패가 예상된 보건의료인력 부문에도 최소한의 장치들은 있다. 우선 중증진료를 우선시해야 하는 ‘상급종합병원’은 진료 과목과 인력 기준이 높다. 전문 과목의 수는 물론이고 중환자실 인력 기준이 까다롭다. 당연히 소아과 전문의인 신생아 중환자실 전문의도 기준 내 인력이다.

그 대가로 상급종합병원은 30%의 가산을 받고 의료질평가지원금도 100% 받는다. 추가재정지원뿐 아니라 그 병원에 상급종합병원이라는 국가가 인정하는 지위가 부여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따라서 이런 지위에 있는 병원에서 벌어지는 의무방기 행위에 대해 정부가 따져 묻고 시정을 지시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소아과 입원진료 중단 사태에 대해 정부가 그런 역할을 했다는 기사를 보지 못했다. 길병원은 무려 상급종합병원인데 말이다. 거기다 길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소아과 입원진료를 중단하면 소아 응급환자 진료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 지정 권역응급의료센터 역할이 가능한지 당장 점검해야 한다.

애초부터 정부가 지정한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있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소아과 입원진료 중단을 선언한 것 자체가 심각한 모순임에도 이를 정부가 방치한 게 더 큰 문제다.

상급종합병원에 추가되는 재정비용은 꼭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균형 있게 제공하라는 취지다. 권역응급센터에 배정되는 가산비용도 마찬가지다. 수익성이 있는 진료 과목에서 벌어들인 초과 이익을 손실이 발생하는 진료 과목의 인력 배치 등에 투입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일률적인 가산을 할 이유가 없다. 전공의가 부족하면 전문의를 더 고용하면 될 문제다. 아마도 길병원은 전문의에게도 낮은 처우를 강요했을 공산이 크다.

결국 이 문제는 소아과의 위기라는 측면보다는 정부의 방임 속에서 병원이 단물만 빼먹고 나 몰라라 한 사건이다. 이런 행태를 방치한다면 앞으로 대형병원들은 더욱더 수익성에만 치중하고 필수의료서비스는 방기할 수 있다. 당장 상급종합병원과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위 박탈은 물론 각종 정부 연구용역 지원 중단도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더 큰 파국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2023-01-27 26면

보장성 확대는 포퓰리즘 아닌 사회적 책무

지난 화요일 오전 진료 중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밝히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겠다며 사실상 보험 범위 축소를 언명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보장성을 유지하면 재정 파탄이 온다는 것이다.

사실 낭비 없고 효율적인 건강보험 재정 운영은 당연한 국가의 책무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료행위를 평가하고 재정 관리를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재정 누수 원인은 다양하다. 주요 선진국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안을 시행 중이다. 우선 과잉 진료 문제는 심사평가뿐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확립, 일차의료 강화, 주치의제와 같은 환자등록제 등으로 해결하거나 지불제도를 개편해 대응한다. 정의로운 재정 확보 방안은 소득이 높고 여력이 되는 계층이 보험료를 더 내도록 하고, 국고 지원을 늘려 해결하는 것이다. 환자들의 과잉 의료행위를 부추기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민영보험도 규제해야 한다.

낭비와 무임승차가 있다면 이런 정책들을 조속히 시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정책 대안 없이 대통령이 나서 다짜고짜 재정 파탄이 올 테니 보장성을 낮추겠다고 주장하는 건 처음 봤다. 역대 대통령들은 누구나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해 왔다. 무엇보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저 수준이다. 한국이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보장률을 지금보다 15% 이상 올려야 한다.

특히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첨단 의료기술과 고가의 신약들이 도입되는 상황에서는 보장성을 높이지 않는 한 건강보험 혜택 범위가 축소될 가능성이 더 크다.

보장성 확대로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상처럼 보장성은 쉽게 오르지 않는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선별적인 보장성 강화안을 추진했지만 되레 보장성이 떨어진 경험도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나서 건강보험 재정 파탄과 같은 공포를 조장하고, 정치적 이유 혹은 재정 문제로 공적보험의 가치를 포기하는 방향성을 제시한 건 책임 위반이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보장 범위를 줄이면 건강보험 재정이 건실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절약한 금액만큼 국민들은 의료비를 더 내야 한다. 의료비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어쩔 수 없이 집행되는 것이다. 과거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중병에 걸리면 집을 팔아야 했기 때문에 만든 게 건강보험이다.

얼마 전 무릎 관절염이 심해 관절 수술을 권유한 어르신이 다시 돌아왔다. 수술을 하지 못한 이유를 물어보니 수술비가 너무 부담이 된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수술비를 달라는 얘기를 차마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는 인공관절 치환 수술의 본인부담금도 부담이 되는 퇴행관절염 환자가 한국에는 아직 너무 많다.

특히 노인들은 소득보장제도가 미비해 꼭 해야 하는 수술 부담액도 크게 다가온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미국보다 낫다는 게 유일한 위안인 수준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보다도 못하다. 취약계층, 노인, 장애인의 의료비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도 건강보험의 보편적 보장 범위 확대다.

민영보험이 있고 일정 소득이 있는 국민이 아니라 바로 지금도 돈 때문에 받아야 하는 수술을 못 받는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알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보장성 강화가 포퓰리즘이라면 주요 선진국은 공적보험제도로 다 망했을 것이다. 보험 확대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다. 국민 건강 보장을 정치화해선 안 된다.
2022-12-16 25면

이태원 참사의 반성문

믿지 못할 참사가 발생했다. 다른 곳도 아닌 서울 도심에서 사람들이 깔려 수백명이 숨지고 다친 끔찍한 인재다. 현장은 영상을 통해 날것 그대로 공개됐다. 이를 보고 현장으로 달려간 봉사자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자극적이고 근거 없는 각종 소식의 유통을 부추겼다.

모두가 경황없고 정신없는 틈에 파편화되고 부수적인 정보의 확산은 언론에서도 고스란히 재생산됐다. 대표적으로 ‘어디에서 넘어졌는가, 누가 밀었는가’라는 부차적인 문제의 확산부터 ‘밀어’라고 외친 사람의 고의성, 개인방송을 위해 참사를 조장했다는 풍문 등이 그랬다. 의학적으로는 어떤 병리기전으로 사망했는지를 비롯해 복부 팽창의 원인, 심폐소생술과 골든타임 등의 보도가 쏟아졌다. 압사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나도 여러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주로 깔림은 어떤 기전으로 질식을 일으키는지, 심폐소생술 회생 이후 합병증, 여러 임상 증상에 대한 해석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답을 했다.

나 또한 이런 질문에 대응하고자 생리학적·병리학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논문을 찾아봤다. 실제로 몇 명 정도의 하중이 어느 정도 압력(뉴턴)으로 발생하면 흉곽의 팽창을 막는 질식이 되는지, 앞뒤뿐 아니라 측면 압력은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다룬 내용들이다. 이 밖에도 다발성 골절이 일으킬 수 있는 지방색전증, 다발성 장기 부전, 복막 출혈, 갈비뼈 골절로 일어날 기흉과 혈흉 등 수십 가지의 중요한 합병증과 중증 유발 질환을 찾아봤다. 이런 의사로서의 관심사 중 일부는 다시 여러 사람에게 전파돼 가십처럼 처리됐다.

이런 가운데 평소 존경하던 예방의학과 교수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희생자 및 환자들의 국제질병사인코드명은 병리적으로 이 참사를 탐구하던 내게 경종을 울렸다. 흔히 상병명으로 불리는 이 코드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진단서의 진단명에 해당한다. 이 분류법은 임상병리학적인 목적으로 세계보건기구 참여 국가들의 의학 연구에도 사용된다. 이번 참사 환자들의 진단명은 ‘W52.5 군중 또는 사람의 쇄도에 의한 으깨짐, 밀림 또는 밟힘, 상업 및 서비스 구역’으로 명료하다.

즉 참사로 인한 사망과 질병 발생의 본질은 사람들의 쇄도로 인한 외상이며, 이는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의학적 원인이다. 으깨짐, 밀림, 밟힘 등으로 인한 병리적 문제는 다음 순위인 것이다. 사전 예방의 원칙과 분절적 의료 상업화를 반대했던 내 주장과 모순되는 지적 탐구를 하고 이를 언론을 통해 확산시킨 스스로가 부끄러워진 순간이었다.

사실 한국은 보건의료 영역에서도 예방 부분이 매우 취약하다. 우선 일차의료체계가 없어 국민이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스스로 아픈 곳을 확인하고 의사를 골라 만나야 한다. 국가가 제공하는 예방 서비스는 사실상 건강검진이 전부다. 주치의나 환자등록제처럼 선진국에서 제공하는 예방적 처치가 없다 보니 만성질환 유병률도 높다.

그런데 이번 참사에서 드러난 ‘예방 무시’는 이보다 더했다. 대응 부재, 경고 무시 등이 날마다 폭로되며 참사의 본질로 드러나고 있다. 보건의료적으로도 응급체계, 심폐소생술 같은 부분적 문제가 아닌, 군중 집합에 대응하는 예방의학적 접근의 부재가 드러났다. 이태원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이는 상황에 대응하고자 보건당국은 어떤 준비를 했을지 궁금하다. 압사가 아니더라도 생길 수 있는 수많은 공중보건 위기에 대해 예방 조치는 충분했을까. 벌어진 참사를 병리적으로 해부해 환원하기보다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책임과 의무, 대안과 예방을 이야기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잠시나마 공중보건 원칙에서 예방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료인의 기본을 망각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문이다.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2022-11-04 25면

건강보험 재정적자? 정부가 법 지키면 된다

건강보험료를 미납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고지서가 날아들 것이다. 현재 규정상 6개월 이상 미납하면 자동으로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회사가 내야 하는 건보료가 미납되면 해당 노동자들의 건강보험(건보) 자격은 문제 삼지 않지만, 결국 공단이 사업장 압류 등 법적 방법으로 이를 대부분 다 받아낸다. 회사가 파산한 경우도 재산정리를 해서 미납분을 회수한다.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위해 운영하는 공적건강보험제도에서 미납을 방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미납은 국민건강권을 훼손할 수 있는 해당 행위이고 탈법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거의 15년간 건강보험료를 미납하고도 이를 채우지 않는 곳이 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다.

건보를 최초 설계할 때부터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중 직장가입자의 회사납입분만큼을 정부가 부담하도록 돼 있었다. 1988년부터 건보가 통합되는 2000년까지도 정부가 이 부담분을 제대로 납입한 적은 없다고 한다. 통합 이후로는 연간 건강보험 예산의 14% 상당은 일반회계에서, 6% 상당은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하도록 법에 명시했다. 2007년 제정된 법률은 5년 한시법안이지만, 그나마 5년마다 갱신되며 유지됐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15년간 단 한 번도 이 법이 정한 대로 국고 지원을 한 적이 없다. 미납금 총액은 32조원에 육박한다.

이 정도 금액이 제대로 충당됐다면, 국민 개개인이 부담하는 건보료가 낮아졌거나 보장성을 높여 환자 부담이 많이 줄었을 테다. 특히 지난 15년간 국민들의 보험료는 비율적으로도 많이 올랐다. 우리 국민들이 낸 건보료 부과비율은 2007년에는 회사분 포함해서 소득의 4.8%였다. 현재는 7.1%다.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이 거의 2배가량 올라갔다. 반면 정부는 지원 비중을 늘리기는커녕 미납만 했다.

고령층이 많아지고 노동인구가 감소하면 소득에 보험료만 부과하는 구조로는 건강보험재정구조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조세에서 부담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건 국제적 상례다. 가까운 일본은 전체 건보재정의 40%가량을, 대만도 26%가량을 국가가 부담한다. 그만큼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줄이고 보장성을 높여 가계의료비를 줄이는 데 일조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방향에 완전히 역행해 왔다. 그 결과 전체 건보 재정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1% 남짓이다. 혹자는 조세나 건보료나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오는데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조세와 보험료는 그 구성이 다르다. 조세는 소득, 재산, 기업이익, 소비 등 전 부문에서 확보되고 기본적으로 누진적이다. 부담 능력에 따라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한다. 조세정의 차원에서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보험료는 정률로 상한과 하한이 있어 역진성까지 나타난다. 보험료에 의존하는 방식은 결국 지속 가능성도 떨어진다.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은 조세로만 건강보장을 운영하는 나라도 매우 많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가 수행한 MRI, CT 등의 검사 급여를 되돌려 건보 재정 누수를 막겠다고 했다. 보장성을 축소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비난에 열을 올리며 건보 재정이 머지않아 파탄이라도 날 것처럼 불안감만 자극했다.

기획재정부는 재정 파탄에 대비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올리지 않고 개개인이 의료비를 더 부담토록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상습적으로 마땅히 내야 할 돈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숨기고 있다. 설령 건보 재정이 파탄나더라도 국민건강권을 위해서는 국가 예산을 최우선으로 배정하는 게 국가의 의무라는 인식조차 없다.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재부 출신으로 지명된 현실이 씁쓸하다. 정부는 건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법을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길 바란다.
2022-09-23 25면

자율이 아니라 생명

정권이 바뀌면서 코로나 대유행 대응기조가 ‘과학방역’으로 선전됐다. 어떤 ‘과학’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던 찰나 또 다른 방역기조가 나왔는데 바로 ‘자율방역’이다. 과학과 자율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모르겠으나 자율방역은 그 이름에 걸맞게 정부와 사회의 역할을 줄이는 방향성이 분명했다. 우선 코로나 검사 비용이 부활하거나 늘었다. 코로나 확진자 치료 비용도 늘고 무상 치료 날짜도 줄었다. ‘자율’은 개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공적 지원은 축소한다는 논리다.

문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난맥상이다. 우선 숨은 확진자가 늘고 있다. 과거 밀접접촉자 및 무증상자에게 무상으로 제공된 선별검사를 유료화하면서 증상이 없는 접촉자들은 검사를 꺼리고 있다. 확진자 생활지원금이 거의 없어져 자가키트에서 양성이 나와도 일을 하는 확진자도 늘었다. 자영업자, 플랫폼노동자 등 유급병가를 쓸 수 없는 사람들은 지원금도 없으니 확진을 숨기고 일하기를 선호한다.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제도는 아직도 몇몇 지역에서만 소규모 시범사업뿐이고, 유급휴가는 정규직 일부만 기능한다.

이렇다 보니 유행 규모가 실제 어느 정도인지도 명확지 않다. 숨은 확진자는 계속 연쇄감염을 일으키고, 집단면역수준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줄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행규모를 통제한다는 측면에서 ‘자율’방역은 방역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증상이 없거나 경증인 확진자들에게 검사비나 생활지원금을 주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라면 소탐대실이다. 코로나가 감기 수준의 질환이 아닌 이상 국민의 의료비 등 부담은 크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정부의 재정긴축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가계로 부담을 전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치료 부분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확진자 진료를 하는 임상현장이 양극화된다. 치료비도 제대로 지원되지 않고, 지원금도 없는데 굳이 경증으로 병원을 찾을 리 없다. 생활치료센터도 거의 없어져 고위험군을 모니터링하는 체계도 붕괴했다. 이 때문에 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아 위중증환자 병실은 여유가 생기는 착시효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경증에서 시작해서 증상이 악화하는 환자들이 날로 늘고 있다. 이들은 제때 치료를 시작하지 못해서 갑자기 악화된다. 대부분 노인, 기저질환자들이다. 애초에 확진이 되자마자 치료제를 투약했다면 악화되지 않을 환자들이 포함된 셈이다. 통계상 드러나는 환자보다 숨은 중증환자가 늘어나는데, 중등도환자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환자가 더 늘어도 아마 중환자병상은 이전처럼 포화상태는 아닐 것이다. 자율방역 속에서는 요양원, 요양병원에서 확진돼 격리되다가 악화된 환자들은 치료비용이 무서워서라도 기꺼이 죽음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노동 능력이 없고 힘을 잃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해 입소한 시설과 병원에서도 비용 때문에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이 방역정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방임이라고 불러야 한다. 방임의 여파는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4월 코로나 유행으로 65세 이상 초과사망율이 전년 대비 31.4% 늘었다. 아마 이번 유행이 끝나면 65세 이상 초과사망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이야기했다. 방역체계에서 이 자유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바로 국가와 사회의 책임방기다. 방임이 자율로 포장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제대로 된 방역체계, 치료체계를 갖췄다면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치명률이 낮고, 위중증병상이 충분하다는 데이터가 아니라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길은 자율과 방임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2022-08-1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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