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필수의료 살리기” 실체는 건강보험 민영화 [왜냐면]

‘의료개혁’으로 포장된 의료 민영화 ①

전진한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정부가 ‘의료대란’ 수습에 다음달 초까지 건강보험 재정 2조3448억원을 지출할 전망이다. 환자 불편과 고통을 해소하거나 의료비 부담 절감에 쓰는 게 아니다. 대부분 민간 대형병원들의 매출 손실을 메워주기 위해서다. 재난 상황에도 정부 관심사는 오로지 병원 자본의 이윤이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멋대로 쓰는 것이 이 정부 들어 예삿일이 됐다.

이른바 ‘필수의료’ 개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으로 병원 보상을 늘린다는 ‘수가 인상’을 남발한다. 무려 연 5조원 넘게 쓴다고 한다. 대체 그 돈은 어디서 난단 말인가? 정부는 이미 2월에 답을 내놓았다. ‘의료개혁’ 핵심인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다. 정부는 건강보험 패러다임을 ‘의료비 부담 완화’에서 ‘필수의료 살리기’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우선 기존 패러다임을 “급격한 보장성 확대”로 환자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해 “불필요한 의료쇼핑 증가”를 일으킨 구태로 규정했다. 보장성 강화 정책이 “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치고 “필수의료에 대한 미흡한 투자로 중증·응급의료 등 공백(을) 초래”했단다. 엉터리 분석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입원보장률은 오이시디 평균은 90%지만, 한국은 68%에 그친다. 그래서 의료비 본인 부담이 주요 국가들과 견줘 과중하다. 무엇보다 보장범위가 좁아 비급여가 범람해 과잉진료가 만연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애꿎게 환자들을 비난하며 건강보험 보장을 축소하고 본인 부담을 인상할 계획이다.

한술 더 떠 건강보험에 미국 민영보험 같은 최소부담금 제도도 검토 중이다. 일정액 이하는 환자 본인에게 100% 부담을 지우는 제도다. 또 보험료 일부를 자신이 노후에 쓸 의료비로 스스로 적립해두는 ‘저축계좌’도 고려한다고 한다. 의료를 많이 이용하면 페널티를 주고, 적게 이용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한다. 사회보험을 해체하고, 각자도생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 패러다임으로 ‘필수의료 살리기’를 앞세운다. 대체 ‘필수의료’란 무엇인가? 정부는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을 꼽는다. 그런데 심근경색·뇌졸중 치료가 필수면,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만성질환 관리는 왜 필수가 아닌가? 소아 진료는 필수고, 중장년·노인 진료는 필수가 아닌가? 피부과, 성형외과가 필수가 아니라면 화상 환자 피부 치료와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의 재건 성형도 비필수인가?

결국 의료행위를 ‘필수’와 ‘비필수’로 구분하는 건 사회적 합의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뜻하는 대로 필수의료를 협소하게 쓴다면 예방, 재활은 물론 대부분의 필수적 의료서비스가 제외된다. 의료는 사회보편적 필수서비스고 국가는 그것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 국제기구에서는 ‘보편적 건강보장’ 맥락으로 이 말을 쓴다. 공중보건과 의료보장에 누구나 접근할 권리를 추구한다는 개념에 가깝다. 의료정책연구소의 2022년 10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필수의료’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연상한 단어는 ‘건강보험’(18.8%)이었다. ‘응급 및 중증’(6.5%)을 떠올린 사람은 많지 않았다. 즉 국민도 보편적 건강보장 영역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정책 키워드가 그간 ‘건강보험 보장성’이었다면, 윤석열 정부는 이를 ‘필수의료’로 대체하는 프레임 전환을 시작했다. 그 목적은 의료가 다 ‘필수’는 아니니 국가 책임을 묻지 말라는 이데올로기 전쟁이다. 이런 식이니 중증이 아닌 경증환자 응급진료를 보장하는 것은 ‘필수’도 ‘의무’도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쫓겨난 의료 분야는 자연히 기업들의 시장이 된다. 만성질환 관리와 치료는 윤석열 정부 들어 ‘비필수’로 격하됐고 행정적으로 ‘비의료’가 됐다. 민영보험사, 테크기업 등이 이 틈에 ‘건강관리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른바 경증 의료행위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사업영역이 된다. 사실상 영리병원 허용이고 건강보험 민영화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말하는 ‘필수의료’마저 살릴 수 없다. 응급, 중증, 소아, 분만이 외면받는 이유는 의료 시장화와 건강보험의 취약성 때문이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는 부르는 게 값이고, 그 돈벌이 기회를 좇아 의사들은 큰 병원을 떠난다. 그래서 해법은 건강보험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다수 서민에게 건강보험이 ‘필수’다. 윤석열 정부는 그 필수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기업과 부자들을 위해 우리에게 필수인 건강보험을 민영화하는 것, 그게 바로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의 실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163657.html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869441&plink=REL&cooper=SBSNEWSEND


뉴스 > 사회

생계 위협하는 '재난적 의료비'…빈곤층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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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08 17:06|수정 : 2015.03.0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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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갑자기 큰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고통스러운 건 물론이고, 감당 못 할 병원 치료비에도 시달리게 됩니다. 이런 '재난적 의료비'를 쓴 가구를 조사해 봤더니 무려 30%가 빈곤층으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윤나라 기자입니다.

<기자>

체내에서 단백질이 생성되지 않는 희귀병에 걸리기 전까지, 44살 김 모 씨는 200만 원 정도의 월급에 저축한 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료가 시작되고 천문학적인 치료비가 들면서, 생활은 급격히 궁핍해졌습니다.

[환자 유가족 : 병원비, 입원비, 약값 다해서 1천만 원 정도 들었어요. 한 달에.]

정부 지원을 받을 만큼 생활고에 시달렸고 지난해 9월 숨졌습니다.

[유가족 : 저희는 준비를 한다고 했어요. 의료보험도 있었고, 너무 못사는 것도 아니었고. 누나가 아프면서 우리한테 치명타가 된 거죠.]

김 씨 경우처럼 의료비가 가처분 소득의 40% 이상일 경우 재난적 의료비라고 합니다.

한양대 의대 연구팀이 재난적 의료비를 지출한 가구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가구의 30%가 지출 이후 빈곤층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이 낮다 보니, 든든한 안전망이 못 된 겁니다.

우리나라 환자의 의료비 본인 부담률은 35.9%로, 일본 14%, 독일 13%, 프랑스 7.5%에 비해 크게 높습니다.

[신영전/한양대 의과대학 교수 : 국민건강보험이 보장을 충분히 못 해주기 때문에 나머지는 자기가 내야 하는데 그 부분의 비율이 유난히 높은 거죠.]

정부가 암과 희귀병 등 4대 중증질환에 대해 보장성을 확대해 나가고 있지만, 저소득층이 큰 병에 걸렸을 때 재난적 상황을 피하기엔 여전히 미흡합니다.

(영상취재 : 김대철·배문산, 영상편집 : 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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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백지화한다는 발표 이후 비판 여론이 드세졌다. 특히 지역가입자 중 저소득층에 대한 부담경감책이 백지화된 것 때문에, 청와대도 다음 날 백지화가 아니라 유보된 것이라며 한 발 뒤로 빠지는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1월 30일 정부가 우선 올해를 넘기기 위한 대응책을 제시했다. 올해 상반기 중에 보험료 적용 기준을 조정하여 지역가입자 중 연소득 500만 원 이하의 경우에는 건강보험료 부담을 경감하겠다는 게 요지다. 또한 건강보험 부과체계 전면 개편도 내년에는 시행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정부와 기획단은 소득중심 부과체계 개편의 개혁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송파 세 모녀' 사건까지 거론하면서 빈곤층의 보험료 부담을 상당히 고려한 조치라는 점을 부각했다. 이른바 1만6천여원의 '기본보험료' 부과로 보험료를 경감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송파 세 모녀'와 같은 빈곤층의 경우 기존의 5만원 대의 보험료가 1만6천여원으로 줄어든다는 것이 실례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오히려 건강보험 체납세대를 또 다시 양산할 조치일 뿐 개혁방향이라고 볼 수 없다. 전 재산인 현금 70만 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남겨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송파 세 모녀'의 현실에서 말해주듯이, 기본적으로 연소득 500만 원 이하인 세대는 보험료를 낼 수 없는 무소득 세대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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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건강보험공단 누리집 화면 캡처.
ⓒ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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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전체 790만 세대 중 소득이 없는 세대는 430만 세대에 이른다(2012년 1월 기준). 과반수가 보험료 지불 능력이 없는 세대다. 여기에 정부가 지역가입자에게 부과하겠다는 정액보험료 1만6천여원도 부과하기 어려운 보험료 1만5천 원 미만 세대가 약 12%를 차지하며, 6개월 이상 장기 보험료 체납자도 지역가입자 중에 10%에 이른다(2012 건강보험통계연보).

정부의 주장대로 '소득'만을 기준으로 형평 부과를 달성하겠다면, 우선 재산도 없고 소득도 없는 사람들은 부과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즉 건강보험제도가 아니라 국가의 공공부조(의료급여)의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재산부과 기준을 일부 완화하거나 일정액의 정액보험료를 부과하도록 하여 저소득층의 보험료 부과를 여전히 강제하고 건강보험제도 아래에 두려는 것이다. 건강보험은 기본적으로 사회보험이기 때문에, 보험료를 내는 최소한의 동참이 필요한 구조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도 보험료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빈곤층은 별도의 영역에서 관리하는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빈곤층을 건강보험의 '무임승차자'로 보고 개인 책임을 끝까지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보험료 경감' 조치이며 부과체계 개편방안이 마치 큰 개혁방안인 것처럼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빈곤층의 보험료 부과가 형평부과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이는 정부 책임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 

부담 능력 없는 빈곤층은 건강보험이 아니라 '의료급여'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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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고를 겪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송파 세 모녀'가 집주인에게 남긴 메모와 70만 원이 든 봉투
ⓒ 서울지방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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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송파 세 모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때문이 아니라 부양의무자 기준과 잘못된 근로능력평가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즉 애당초 부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건강보험 가입자에 포함시킨 것이 문제다.

정부는 공공부조의 영역에서 의료보장을 담보하는 국가의 핵심 역할을 방기하고, 이러한 책임을 여전히 건강보험제도와 같은 사회보험에 전가하고 있다. 때문에 2012년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2010년 빈곤층이 14.73%(중위소득의 50% 미만)인데,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매년 줄어 현재 약 2%대에 불과하다(2012 건강보험통계연보).

정부 책임과 국고부담은 최소화하면서 이와 같은 빈곤층의 상당수를 굳이 건강보험 영역에 남겨두고 일정액이라도 보험료를 부과하라고 강제하는 것이 타당한가? 건강보험제도에 남아서 그래도 보험료를 경감해주니 고마운 줄 알면서 수용하라고 하는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지금 여론에서 백지화되었다고 뭇매를 맞고 있는 건강보험 부과체계 기획단 안을 자세히 뜯어보면 '서민증세'와 다름이 없다.

여기에 '소득기준'을 강화한다면서 경제력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파생되는 소득인 퇴직소득, 양도소득, 상속 및 증여소득은 모두 배제하여 오히려 이들의 무임승차를 허용하였다. 보험료 부과의 상한선도 폐지하지 않아 30억 원 이상 재산이나 100억 원 이상 재산이나 똑같은 보험료를 낸다.

또한 지역가입자에게 부과되는 재산부과 기준이 문제라면서도 저소득층에게 굳이 기여책임을 부과하고 정액보험료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의료급여 확대나 저소득층의 보험료 전액 면제 등 정부 책임(건강보험 지역재정의 국고부담 강화)은 거론조차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공공부조 확대 내용이 빠져 있긴 하지만, 지역가입자의 역진적 재산점수를 개선하고 피부양자의 종합소득 부과를 강화하므로, 개혁적 조치가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일시적으로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폭탄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부조 확대 배제, 기업 부담 증대 방안, 상한제 폐지 등을 논외로 하면, 실제로 이번 개선책의 대상은 대부분 연금소득처럼 소득 파악이 용이한 계층의 부담으로 대부분 전가될 소지가 다분하다.  

게다가 기본보험료는 한 번 도입되면 인두세(일정 연령 이상의 주민 한 사람당 일률적으로 부과되는 세금, 우리나라의 주민세와 유사)적 성격으로, 향후 건강보험 재정 확충시 월급쟁이의 보험료 인상과 함께 가장 먼저 인상될 항목이다. 

무엇보다 제도의 합리성은 단순히 현재 시점에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국가책임과 기업책임을 배제한 과정에서 노동자, 서민들이 향후 증가할 건강보험료를 어떻게 채울지를 결정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 그러나 건강보험 부과체계 기획단은 무려 1년6개월 이상 이런 중요한 문제는 배제하고, 재산 부과 방식 하나 가지고 세월을 낭비했다.

여기에 박근혜정부는 이런 논의의 불똥이 자신에게 튈까 두려워 아예 개선 시도 자체를 백지화 하였다. 그리고는 고작 연 500만 원 소득 이하의 보험료를 건강보험 흑자로 메꾸겠다고 한다(현재 건강보험 누적흑자는 12조가 넘는다). 이 흑자는 전적으로 국민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병원에 가지 못해 생긴 것인데, 생색은 국가가 내고 있는 꼴이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발표하려던 안은 재정중립을 실제로 이루지 못한다. 2012년 건강보험공단의 소득중심 부과체계 시뮬레이션 자료만 봐도 지역가입자 부담인 7조3166억(2011년 기준)원을 종합소득부과 수준으로는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의 첫 서민증세 시도인 '건강세'(부가가치세에 0.1~0.5%의 건강보험료 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가 논의된 것이다.

따라서 지금 국고부담 강화나 공공부조 확대가 동반되지 않는 부과체계 개편안은 필연적으로 향후 월급생활자의 보험료인상이나 부가가치세의 건강보험료 부과 같은 역진적 구조를 강화하는 방편이 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이번 기회에 국고지원 확대나 공공부조 확대를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지금 건강보험 부과체계개편 논란 이면에 숨어 있는 정부의 술수에 더 이상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정부 개편방안의 본질은 정부책임은 최소한 억제하고 고소득자보다는 월급생활자와 서민들 중심의 보험료 수입 증대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 건강세상네트워크 정책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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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공단이 16일 발표한 '2014년 건강보험 재정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건강보험은 4조 6천억 원의 흑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누적 흑자는 자그마치 12조 8천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총 진료급여비가 40조 원 남짓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1년 건강보험지출의 1/3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돈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지난해에도 건강보험 총수입은 계속 증가했다. 2014년 총수입은 전년대비 7.4% 증가해 48조 5천억 원이었다. 정부는 직장가입자 수 증가, 보수월액 증가, 누적적립금 규모가 커진데 따른 이자수입 증가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반면 지출은 43조 9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5.7% 늘었지만 증가율은 전년 7.0%에 비해 둔화됐다.

우선 국민건강보험이 흑자를 내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건강보험은 지출과 수입이 일치해야 한다. 건강보험은 국민연금처럼 매년 돈을 남겨서 적립하는 것이 아니라 걷은 보험료 전액을 환자 치료에 지출해야 한다. 그것이 건강보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재정 흑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 해에 그만큼의 금액을 환자 치료비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한 해 흑자를 봤다면, 다음 해에는 저소득층 의료보장을 확대하거나, 본인부담금 등을 경감하여 보험료를 낸 국민들에게 의료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지출 예산을 짜야 한다. 아니면 보험료를 낮추는 것이 맞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3일, 4대 중증질환과 3대 비급여 등 국정과제, 생애주기별 필수의료 중기 보장성 강화에만 이 돈을 쓰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1년에 3천억 원 정도만 쓰겠다고 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국가보장 100%'가 사실이려면, 이 보장성 강화안에 필요한 재정은 국민들이 낸 보험료가 아니라 국고지원으로 전액 충당하는 게 맞다. 

이런 재정지원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밝힌 보장성 강화안을 모두 실행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누적 흑자 금액인 12조 8천억 원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결국 정부는 흑자 누적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건강보험 재정흑자 유지하려는 정부의 속셈

질병관리본부의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원에 가고 싶으나 가지 못한 환자의 21.7%가 가정 경체 형편을 이유로 들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난해 11월 발표한 '최저생계비이하 비수급 빈곤층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 경험이 있는 비수급 빈곤층이 36.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높은 본인부담금 때문에 병원에 못 가는 환자가 이렇게 많은 상황에, 국민건강보험은 보험료를 남겨 저축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최근 4년간 반복되었기 때문에, 정부를 향한 의심을 쉽게 거둘 수 없다. 

특히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계획은 이 의심을 더욱 굳히게 만든다. 건강보험 재정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도록 한 법률 규정이 2016년 말 만료되는데, 이에 대해 기재부가 만기 도래에 따라 재정지원 방식 등을 재점검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사실 국민건강과 보건의료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법안의 연장뿐 아니라 14%밖에 안 되는 기존의 국고지원금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정부지원금을 축소하는 데 있어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재정흑자를 계속 누적하고 있다.

건강보험 흑자는 건강보험 급여확대와 본인부담금 인하에 쓰여야 한다. 또 정부가 내놓은 보장성 강화안도 병원 퍼주기식 항목 나열로 가는 것은 곤란하다. 보장성 강화안은 환자들의 실제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이미 비용효과가 입증된 건강보험 급여범위 내에서 법정 본인부담금을 경감하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입원 법정본인부담금을 현재의 20%에서 0%로 만드는 데에 드는 돈은 3조 원 남짓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5일 입원기간에 따라 차등하여 최대 40%까지 본인부담을 늘리는 방안을 입법예고(관련기사 : 돈 없으면 입원 안 돼...박근혜, 국민 분노 직면할 것) 중이다. 이는 국민들이 낸 보험료는 곳간에 쌓아두고, 의료비 부담을 국민들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건강보험 누적흑자 12조 8천억 원은 바로 이런 국민들의 의료비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우선 쓰여야 한다. 그리고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금은 축소가 아니라 늘려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이 경감되고,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요구를 묵살하고 계속 흑자 쌓아두기와 국고지원축소를 획책한다면 의료비 때문에 분노한 국민들의 정권퇴진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 사회진보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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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월 5일, 환자의 입원료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예고기간 ~3월 17일). 내용은 불필요한 장기입원 유인을 줄이기 위해 입원일수가 15일이 넘어가면 현행 20%인 법정본인부담금을 30%로 올리고, 30일이 넘어가면 40%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환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빠른 퇴원을 종용해 국민의료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심보다.

물론 불필요한 장기입원 유인을 줄이는 대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법이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증대시키는 방법이어야 할까? 이 법안대로라면 한 달 이상 입원 시 체감입원료가 최대 두 배까지 늘어나게 된다. 아파서 입원한 환자에게 노골적으로 의료비 부담을 떠넘기는 퇴행적인 정책이며, 직접적인 의료복지 축소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비를 경감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되었다. 그리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겠다며, 4대 중증질환의 경우 국가보장을 100%까지 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태껏 한 일은 각종 의료민영화 추진으로 건강보험을 약화시키고 공약들도 누더기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 술 더 떠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급여범위의 개악까지 서슴지 않으려 한다.

병원이 아니라 환자가 책임을 지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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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입원료 본인부담금을 높이는 계획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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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중기 보장성 강화 계획'도 병원이 급여화를 원하는 항목들의 추가 수용에만 초점을 맞췄다. 시민사회단체는 입원료 등 필수 보장 항목의 법정본인부담금을 낮추는 방안이 보편적 복지확대임을 주장해왔다. 그런데 누더기보장성확대를 입원료 부담증대의 핑계로 대고 있다. 3대 비급여 대책으로 상급병실을 축소해 병실료 부담이 완화되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장기 입원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상급병실 축소는 고작 4인실 기준일 뿐더러(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등은 이미 15년 전부터 4인실이 기준 병실이었다), 현재 한국의 병상포화 상황을 고려하면 특별히 장기입원요인이 더 커질 공산은 없다. 역으로 입원비 증가는 모든 환자들이 체감하는 것으로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가계 의료비 증가요인이 될 뿐이다. 설사 불필요한 장기입원 문제가 크다 해도, 그 책임을 환자들에게 떠넘겨서 되겠냐는 것이다. 

한국의 입원환자 재원 일수는 OECD 나라 중 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암시하는 것처럼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다. 2012년 OECD '한국 의료의 질 검토보고서'도 행위별수가제(의료행위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기는 것)와 민간 중심의 경쟁적 의료공급체계를 원인으로 지목했다(일본도 입원까지 행위별수가제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더구나 한국은 OECD 나라 중에 병상 수가 증가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고, 환자 대비 병상수도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장기입원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간호 인력이 적정하게 유지되어야 입원환자 간호 및 처치가 잘되어 빨리 쾌유하므로 재원일수가 줄어드는데 한국은 병상 당 간호 인력이 OECD 평균의 1/4 수준도 안 된다. 이는 OECD 국가 중 꼴등이다.

게다가 열악한 한국의 복지제도는 그나마 있는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에 아픈 몸을 의지하게 하는, '쏠림현상'도 만들고 있다. 아픈 노인들이 건강보험의 울타리 안에라도 있고 싶어 하는 걸 '도덕적 해이'라고 단정해 말할 수 있나? 퇴원하고 외래로 치료 받을 수 없는 사회적 환경은 어찌하란 말인가?

따라서 여타 복지의 확충이 우선 필요하다. 사회에 복귀해서 외래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 의료제도 내에서도 ▲지불제도 개선(행위별수가제를 포괄수가제나 총액예산제로 재편) ▲공공병원 확충 ▲민간병상 규제 ▲간호인력 확충이 불필요한 장기재원일수를 줄이는 실질적인 대안이다. 이런 점에서 의료공급구조에 먼저 손대지 않고 의료이용자의 경제적 부담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원인은 파악하지 않고 결과만 문제 삼는 옳지 않은 방식이다.

'장기입원일수' 카드 꺼낸 정부의 속내

그런데 정부가 수많은 의료이용 문제 가운데서도 장기입원일수를 우선 거론해 환자부담을 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입원 본인부담률 상승은 건강보험 재정지출 축소로 직접 연결된다. 현재 건강보험 누적 흑자가 12조 원인데 이를 활용해 환자부담을 줄이기는커녕 재정흑자폭을 늘리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정부의 의도는 여러 측면에서 의심스럽다.

우선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지원 만기도래(2016년)에 대비하여 재정지원 방식 등 재점검"을 중요과제로 언급하였다. 사실상 건강보험 국고보조금 축소를 시사한 것이다. 

지금도 정부가 사후정산을 거부하여 미지급한 국고보조금이 2013년까지 7년간 8조 5천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제 아예 법적으로 보장된 14% 국고지원금도 축소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건강보험의 재정흑자가 쭉 유지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국민들의 부담은 늘리고 건강보험 재정지출은 줄이는 정책을 펴려는 것은 아닌가 의심된다. 사실 건강보험의 정부 부담을 줄이려는 시도는 명백한 복지긴축정책이다. 

정부의 계획대로 환자본인부담률이 높아지면, 대형병원에 입원한 가난한 사람들은 퇴원을 빨리 하려 할 것이고, 병상 회전율은 높아질 것이다. 이는 곧 대형병원의 이득으로 돌아간다. 사실 진료비는 입원초기 일주일 정도에 가장 많이 나온다. 입원초기에 각종 검사나 수술 등의 처치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원일수가 길어질수록 병원의 수익은 감소한다. 즉, 입원본인부담금이 인상돼 장기입원자의 조기퇴원을 이끌면 이끌수록 병실이 비는 일이 드문 대형병원들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의료비 부담 획기적 경감이 한국에선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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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부담률이 높아지면,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퇴원하는 환자들이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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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0가구 중 1가구가 '재난적 의료비'로 고통을 받는다. '송파 세모녀'도 가족병원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현재의 의료보장제도도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전체적으로 상황이 안 좋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런 식의 의료복지긴축을 견딜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이런 가격정책은 거의 '무상의료' 수준의 복지국가에서나 한 번 써봄직한 수단이다.

한국의 상황에 맞는 정책은 지금 당장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경감시키는 것이다. 그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번 입원본인부담금 인상은 이런 당면 과제에 완전히 역행하는 '민생파탄책'이나 다름없다. 지난 2년간 노골적 의료민영화정책 추진으로 의료비 폭등을 부채질하던 박근혜 정부가 이제는 미흡하게나마 법적으로 보장된 건강보장영역까지 파탄 내려 하는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올리는 퇴행정책이 아니라, 건강보험 흑자로 생긴 12조 원을 당장 국민들의 의료비 경감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돈 때문에 아픈 몸을 끌고 빨리 퇴원하는 국민들의 분노와 직면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무상의료운동본부정책위원이자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입니다.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75147.html



등록 : 2015.01.25 19:46수정 : 2015.01.26 09:11

김공회의 경제산책

연말정산을 둘러싼 민심이 매섭다. 이를 둘러싸고 오가는 의견들 중에, ‘어차피 복지로 돌아갈 것인데 이 정도 증세도 못 받아들이는가’라는 진보진영 일각의 쓴소리가 유독 귀에 걸린다. 우리 국민은 민도가 낮고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 아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대의는 보지 못한다는 낮은 탄식도 들려온다. 정말 그러한가?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사회적 연대정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엔 몇 가지 짚을 점이 있다.

첫째, 뭔가 거꾸로 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극심한 불황과 소득양극화로 위축된 서민의 삶을 펴줄 책임은, 현 체제에선 시민이 아니라 정부가 진다. 흉흉한 민심을 달래고 사회를 안정시킬 책임도 정부의 것이다. 만약 이런 과업을 수행할 재원이 모자란다면, 정부가 납세자들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연말정산에 대한 불만이 비등해지자 조삼모사 식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으며, 진보진영 일부 인사들은 ‘우리가 스스로 내자’라면서 무책임한 정부를 오히려 돕는 모양새다.

둘째, 세금 내기 싫은 것을 인간 본성이라긴 어려워도 시민이 자발적으로 증세를 이끈 예는 역사에서 찾기 어렵다. 증세론자들이 인용하기 좋아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모국 미국에서조차 소득세 최고세율이 한때 90%를 훌쩍 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도로 누진적인 세제의 도입은 선진적 시민의식의 발로였다기보다는 전쟁과 공황에 의해 강제된 것이었다. 최근 증세·복지반대론자들이 악용하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는 조세저항의 역사’라는 말이 일리가 아주 없진 않다.

셋째, 실제로 근대사는 민초들이 세금부담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현 사태의 주범인 소득세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세목이다. 그보단 예로부터 세금은 물품거래나 시설사용 등에 매겨졌고, 귀족이나 성직자는 면세를 받았다. 이렇게 세제는 원래 역진적이었던 것. 20세기 초 도입된 누진소득세제의 진보성은 그러한 역진성을 부분적으로나마 상쇄했다는 데 있다. 피케티가 지적했듯, 오늘 우리의 급선무는 최근 크게 줄어든 소득세의 누진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번 연말정산 사태의 원인이 된 세법 개정 과정에 ‘민의’가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국회의 법안심의 과정에서 과연 해당 상임위 국회의원들은 개정 법률안의 내용과 의의,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숙의했는가? 혹시 그 법안들을 정략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는가? 이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국회 회의록을 찾아보면 될 일이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이쯤 되면, 연말정산 앞에서 터지는 서민의 울화통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연소득 5500만원 이상자에 대해 세금을 조금씩 더 걷는 이번 조치는 ‘부자증세’이므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과연 이것이 극단적인 소득양극화의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종류의 ‘부자 증세’인가? 최고소득세율을 80%선까지 올려야 한다는 피케티의 외침은 벌써 잊혔는가? 현재 소득세 최고세율은 38%로서, 이 세율은 연간 개인소득 중 1억5000만원이 넘는 부분에 적용된다. 100억을 벌든 1000억을 벌든 똑같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2052103495&code=990303


시론
[시론]건강보험료 누가 더 내야 하나
우석균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건강과대안 부대표
건강보험료가 문제다. 애초 이 문제가 불거지게 된 계기는 ‘송파 세 모녀’의 건강보험료가 월 5만원인데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퇴직 후 건강보험료가 0원이 될 수 있다는, 김종대 전 건보공단 이사장의 발언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보험료 부담, 그리고 의료비 부담은 큰 문제다. 현재 지역가입자 중 월 5만원 이하의 보험료를 내는 336만가구 중 50%가 3개월 이상 보험료를 못내고 있다. 이 수치는 지역가입자의 20%에 해당한다.

누가 이들의 건강보험료를 내주어야 할까. 당연히 국가다. 우리나라의 의료급여 즉 건강보험료와 병원비 면제를 받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3%다. 그러나 정부연구소인 보건사회연구원은 2013년 절대빈곤인구를 11%, 상대빈곤인구를 16%로 추계했다. 절대빈곤인구만 따져도 정부가 책임을 안지는 사람이 국민의 8%인 380만명이다. 미국만 해도 15~19%가 미국판 의료급여인 메디케이드 혜택을 받는다.

송파 세 모녀의 건강보험료는 줄이거나 없애야 하지만 이를 김종대 전 이사장처럼 퇴직자 보험료와 비교하면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개혁안’을 믿어야 할까? 그 ‘개혁적’이라는 건강보험료 개선안은 국가의 책임을 빠뜨리고 있다. 국가가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로소득자나 퇴직자가 돈을 더 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 ‘개혁’안에 따르면 퇴직자로서 공적연금을 연 2000만원(월 167만원) 받으면 피부양자에서 탈락돼 월 6만5000원을 내고 여기에 집이라도 한 채 있으면 10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한다. 이 퇴직자는 부자인가? 그리고 연금으로 167만원 받는 사람이 소득의 10%를 내야 하는 것이 ‘개혁적’인가? 반면 진짜 부자들의 자산소득에는 한없이 관용적인데 상속, 양도, 증여소득에는 건강보험료를 부과하지 않고 주식배당에도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돈은 누가 더 내야 할까? OECD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사회보험료 부담의 가장 큰 차이는 기업이 내는 보험료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OECD 국가 기업들이 사회보험료로 내는 돈은 평균 GDP의 5.3%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2.5%다. 기업이 GDP의 2.8%를 덜 내는 것이다. 반면 월급쟁이들이 내는 보험료는 OECD 평균 3% 내외로 거의 차이가 없다. 당연히 기업이 더 내야 한다. 기업이 OECD 평균으로만 내도 40조원이다. 건강보험재정이 작년에 44조원 정도다.

한국은 노동자와 기업이 보험료를 50 대 50으로 내지만 프랑스는 노동자가 35%, 기업이 65%이고 스웨덴은 기업이 80%를 낸다. 또 프랑스는 아예 건강보험재정을 대기업 매출액의 0.1~0.2%를 걷어서 충당한다. 여당 대표는 “고부담·고복지로 갈지, 저부담·저복지로 갈지” 정해야 한다면서 “복지 수준을 높이려면 국민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단다. 그러나 정작 복지국가들은 ‘국민’이 아니라 ‘기업’이 훨씬 많은 돈을 낸다.

누가 더 내야 하나? 현재 14%에 불과한 국고지원액을 대폭 늘려야 한다. 일본은 37%, 프랑스는 47%, 대만도 26%다. 또 진짜 부자들에게 건강보험료를 더 거둬야 한다. “사용자 및 경영자 단체의 거센 반발”로 없애기 힘들다는 재산에 부과하는 ‘30억원’ 상한선부터 없애야 한다. 30억원을 가지나 300억원의 재산이 있으나 재벌회장들이 똑같이 건강보험료를 200여만원만 내는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의 부담을 늘려야 한다.

재벌기업들을 놔두고, 또 국가의 사회복지 지출이 적은 채로 놓아둔 채 월급쟁이나 연금소득자들에게 돈을 더 내라고 하는 것이 사회정의인가? 큰 도둑은 놔둔 채 잘못된 곳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이다. 가난한 서민과 덜 가난한 연금 퇴직자들이 부담과 혜택을 두고 싸우게 만드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상용 수법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복지국가는 서민들이 서로 사이 좋게 나누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1% 부자들과 자본에게 복지 부담을 강요해서 얻어냈다.<끝>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8007.html


등록 : 2014.10.02 18:37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국민건강보험은 한국의 사회복지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제도이지만, 보장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72.2%에 훨씬 못 미치는 55.3%로 높지 않다. 이렇게 낮은 의료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및 재원 확충이 절실하다. 그런데 정부는 지속적으로 의료영리화를 추진하고 있고, 최근엔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을 개선하려고 한다. 보험료 부과는 가입자들의 보험료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부과 대상이 확대된다면 건강보험 수입이 증대되어 의료보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보험료 부과에서 중요한 것은 소득 재분배에 기여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다. 만약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노동자가 고자산가보다 더 많은 비율의 보험료를 부담하게 된다면 건강보험제도의 정당성은 위축될 것이다. 그러므로 총자산(재산 및 소득)에 따른 보험료 부담은 사회보험제도인 건강보험의 정신을 실현하는 기본이자 원리가 된다.

정부가 예고한 건강보험에 대한 ‘소득중심 부과체계’는 표면적으로 현재보다 더 공정한 부과기준을 마련할 것 같은 프레임으로 보인다. 그런데 제시됐던 몇가지 기준을 보면 과연 더 공정한 부과기준이 마련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현재 부과기준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누어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이것은 소득만으로 보험료 부과가 가능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구분한 것이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파악이 어렵고, 자신의 소득보다 하향 신고하는 경향 등으로 소득뿐만 아닌 재산, 자동차, 가족 수 등을 보험료 산정에 반영해 왔다. 이로 인해 직장가입자의 재산에 대한 보험료 미적용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었다. 또한 지역가입자의 재산에 부과됐던 보험료율은 매우 역진적이다. 예를 들면 지역가입자의 재산액이 1억5000만원 이하인 경우 1~1.14%인 반면, 3억 0.69%, 5억 0.53%, 10억 0.32% 이런 식으로 재산이 많을수록 보험료율은 축소되어 1000억인 경우 0.01%만 부과한다. 그런데 공단과 정부는 전월세에 대한 보험료 부과 사례를 중심으로 지역가입자의 재산에 대한 보험료 기준을 매우 불공정한 것으로 평가했다. 소득 증대와 관련 없는 전월세와 같은 ‘비증식 재산’에 대한 부과기준은 과감하게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 사례를 내세워 고액 자산가들의 재산에 대한 부과기준이 사라지게 된다면 결국 그 혜택은 부자에게만 돌아가게 된다. 더욱이 근로소득, 사업소득, 초과금융소득, 연금소득 등과 같은 소득 부과 기준은 확대하겠다면서, 상속 및 증여소득에 대해서는 재산적 속성이 있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이것은 불로소득을 재분배 영역에서 배제하는 것과 같다. 반면 모든 저소득층에게 가구 소득과 상관없는 정액의 최저보험료 도입을 제안했다. 이 두가지를 대비해서 보면,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보험료 책임에서 제외되고, 저소득층은 현재 보험료보다 많은 정액의 보험료를 책임지게 되는 역진성이 발생한다.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혁의 원칙은 더 강한 소득 재분배와 재정확충 기반 마련에 맞춰져야 한다.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의 왜곡된 대립구조가 아니라, 자본과 부자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는 부과기준이 필요하다. 총자산이 기준이 된다면 직장가입자의 재산 및 피부양자 문제도 합리화될 수 있다. 소득 재분배 기능 제고와 재정확충을 위해서는 부동산과 같은 불로소득 재산에 대한 보험료 부과 기준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재고되지 않는다면 부과체계 개편 역시 서민증세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이상헌 ILO 연구조정관(genevelee@gmail.com)

'폴라니의 추' 라는 게 있다. 20세기 중반에 명성을 떨쳤던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의 자본주의 경제 분석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자본주의는 노동, 토지, 화폐와 같이 상품이 아닌 것을 시장논리에 입각하여 극단적으로 상품화시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를 위협한다. 경제위기도 그렇게 해서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반드시 파국에 직면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규제하고 노동을 보호하려는 제도적 정책적 개입이 생긴다. 역사적으로 노동법이나 복지국가도 그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물론 시장규제가 또 지나치게 진행되면, 이에 대한 반발로 시장주의가 득세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시장근본주의와 극단적 개입주의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한다. 폴라니가 세계 2차 대전 이후까지의 자본주의 역사를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다.

2008년 경제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폴라니의 추'가 되돌아오는 역사적 대전환이 시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 경제위기가 명백히 시장의 실패였고 극단적인 시장근본주의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단순한 금융시장의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80년대 이후로 진행된 금융시장 규제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와 같은 시장주의적 정책에 기이한 구조적 위기였다. 그 결과 소득 불평등은 급격하게 증가해서 경제효율성조차 위협하게 되었다. 조셉 스티글리츠가 주장했듯이 경제위기는 "불평등의 대가"였다. '폴라니의 추'가 오른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시작된 지 오년이 지났지만, '폴라니의 추'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일 조짐이 아직 보이질 않는다. '실패한' 시장을 교정하려는 노력이 드물었다. 물론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으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경우가 태반이다. 금융시장을 규제하려는 국제적 정책 공조 노력은 변죽만 올리고 아직 큰 성과는 없다. 국가별로 산발적인 노력이 있을 뿐, 유럽 연합 내에서조차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노동시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소득 안정성을 높이려는 정책 노력도 좌초 분위기다. 오히려 복지제도를 공격하는 목소리만 높아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위기의 원인도 시장근본주의적 정책이 아니라 "원칙없는 복지주의"라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야말로 주객전도다.

그 결과는 최근 통계지표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경제위기 발발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으나 납세자들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생존했던 금융기관들은 이미 경제 이전의 수익성을 회복했다. 다른 실물 부문은 아직 힘들다. 일반 노동자들의 월급은 삭감되었지만, 금융기관 임원의 연봉은 다시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있다. 대기업은 급성장한 이윤 덕분에 현금을 쌓아두고 있지만, 일반 가계는 여전히 빚에 허덕대고 있다. 불평등은 경제위기 동안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때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면, 경제위기 이후 이윤몫은 전후 최고 수준을 갱신하고 있다. 임금몫은 그만큼 계속 줄고 있다(그림 참조). 불평등 개선을 통해 안정적인 소비수요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건전한' 성장을 도모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모델에 대한 약속은, 현재로는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폴라니의 추'가 왼쪽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오른쪽으로 계속 밀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흥미롭게도 금융부문의 전문가들조차도 우려스러운 견해를 내놓고 있다. 임금몫은 줄어 소비수요는 상대적으로 감소하지만, 상대적으로 증가한 이윤몫은 소비수요에 대한 불안감으로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경제가 빠른 시기에 회복하여 성장하기는 힘들다. 최근에 파이낼셜 타임즈가 "자본이 노동의 몫을 채어갔지만, 승리는 공허할 뿐"이라는 기획 기사를 실은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Financial Times, "Capital gobbles labour's share, but victory is empty", 2013년 10월 14일자). 이 기사는 한 투자은행 관계자를 인용했다. "(이런 추세라면) 자본주의는 자신을 파괴할 씨앗을 뿌린다고 한 마르크스가 결국 옳지 않을까 걱정이다. 소비 수요가 없어진다면 자본주의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그래서 불안하다.

그렇다면, 이번 경제위기에서 왜 '폴라니의 추'는 움직이지 않는가? 그 해답은 '폴라니의 추'는 '갈릴레오의 추'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갈릴레오의 추는 중력의 힘으로 자동적으로 움직이지만, 인간의 경제에는 그런 중력이 주어져 있지 않다. 결국은 사람이 움직이어야 한다. 추를 움직일 사회정치적 세력이 있어야 한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기에는, 새로이 형성된 노동조합과 시민세력들이 폴라니의 추를 움직였다. 뉴딜도 그렇게 나왔다. 유럽의 복지국가도 마찬가지다(물론 2차 대전의 역할도 무시는 못한다). 하지만, 이번 경제위기에는 '월스트리트 점령운동'과 같은 파편적인 움직임 외에는 눈에 띄는 게 없다. 1%의 힘은 더 강고해졌다.

결국 자본주의를 보다 안정적이고 인간적으로 바꾸는 일은 힘의 균형을 새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 금융시장을 개혁하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도록 노동시장을 바꾸고, 시민적 권리로서 최소한의 소득 보장을 제공하는 사회보장 제도를 구축하는 것도 힘의 균형 회복에 기초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일시적 성공이 있더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이를 위해 노동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 긴급하다. 특히 노동에 제 목소리를 주는 게 중요하다. 노동에게 발언권이 없으면, 시장주의의 일방통행을 막을 길이 없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정부들이 그나마 약해진 노동의 목소리를 더 약화시키려고 안달이다. 아예 목소리를 막으려 하는 정부도 있다. 이래서는, '폴라니의 추'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 대가는 지금보다 더 혹독할 것이다. 베트남 전쟁이라는 거대한 추에 맞섰던 존 레논을 패러디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건, 노동에게 목소리를 주자는 것일 뿐이다"(All we are saying is give labour a voice). 자본주의를 염려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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