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필수의료 살리기” 실체는 건강보험 민영화 [왜냐면]

‘의료개혁’으로 포장된 의료 민영화 ①

전진한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정부가 ‘의료대란’ 수습에 다음달 초까지 건강보험 재정 2조3448억원을 지출할 전망이다. 환자 불편과 고통을 해소하거나 의료비 부담 절감에 쓰는 게 아니다. 대부분 민간 대형병원들의 매출 손실을 메워주기 위해서다. 재난 상황에도 정부 관심사는 오로지 병원 자본의 이윤이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멋대로 쓰는 것이 이 정부 들어 예삿일이 됐다.

이른바 ‘필수의료’ 개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으로 병원 보상을 늘린다는 ‘수가 인상’을 남발한다. 무려 연 5조원 넘게 쓴다고 한다. 대체 그 돈은 어디서 난단 말인가? 정부는 이미 2월에 답을 내놓았다. ‘의료개혁’ 핵심인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다. 정부는 건강보험 패러다임을 ‘의료비 부담 완화’에서 ‘필수의료 살리기’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우선 기존 패러다임을 “급격한 보장성 확대”로 환자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해 “불필요한 의료쇼핑 증가”를 일으킨 구태로 규정했다. 보장성 강화 정책이 “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치고 “필수의료에 대한 미흡한 투자로 중증·응급의료 등 공백(을) 초래”했단다. 엉터리 분석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입원보장률은 오이시디 평균은 90%지만, 한국은 68%에 그친다. 그래서 의료비 본인 부담이 주요 국가들과 견줘 과중하다. 무엇보다 보장범위가 좁아 비급여가 범람해 과잉진료가 만연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애꿎게 환자들을 비난하며 건강보험 보장을 축소하고 본인 부담을 인상할 계획이다.

한술 더 떠 건강보험에 미국 민영보험 같은 최소부담금 제도도 검토 중이다. 일정액 이하는 환자 본인에게 100% 부담을 지우는 제도다. 또 보험료 일부를 자신이 노후에 쓸 의료비로 스스로 적립해두는 ‘저축계좌’도 고려한다고 한다. 의료를 많이 이용하면 페널티를 주고, 적게 이용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한다. 사회보험을 해체하고, 각자도생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 패러다임으로 ‘필수의료 살리기’를 앞세운다. 대체 ‘필수의료’란 무엇인가? 정부는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을 꼽는다. 그런데 심근경색·뇌졸중 치료가 필수면,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만성질환 관리는 왜 필수가 아닌가? 소아 진료는 필수고, 중장년·노인 진료는 필수가 아닌가? 피부과, 성형외과가 필수가 아니라면 화상 환자 피부 치료와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의 재건 성형도 비필수인가?

결국 의료행위를 ‘필수’와 ‘비필수’로 구분하는 건 사회적 합의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뜻하는 대로 필수의료를 협소하게 쓴다면 예방, 재활은 물론 대부분의 필수적 의료서비스가 제외된다. 의료는 사회보편적 필수서비스고 국가는 그것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 국제기구에서는 ‘보편적 건강보장’ 맥락으로 이 말을 쓴다. 공중보건과 의료보장에 누구나 접근할 권리를 추구한다는 개념에 가깝다. 의료정책연구소의 2022년 10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필수의료’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연상한 단어는 ‘건강보험’(18.8%)이었다. ‘응급 및 중증’(6.5%)을 떠올린 사람은 많지 않았다. 즉 국민도 보편적 건강보장 영역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정책 키워드가 그간 ‘건강보험 보장성’이었다면, 윤석열 정부는 이를 ‘필수의료’로 대체하는 프레임 전환을 시작했다. 그 목적은 의료가 다 ‘필수’는 아니니 국가 책임을 묻지 말라는 이데올로기 전쟁이다. 이런 식이니 중증이 아닌 경증환자 응급진료를 보장하는 것은 ‘필수’도 ‘의무’도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쫓겨난 의료 분야는 자연히 기업들의 시장이 된다. 만성질환 관리와 치료는 윤석열 정부 들어 ‘비필수’로 격하됐고 행정적으로 ‘비의료’가 됐다. 민영보험사, 테크기업 등이 이 틈에 ‘건강관리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른바 경증 의료행위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사업영역이 된다. 사실상 영리병원 허용이고 건강보험 민영화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말하는 ‘필수의료’마저 살릴 수 없다. 응급, 중증, 소아, 분만이 외면받는 이유는 의료 시장화와 건강보험의 취약성 때문이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는 부르는 게 값이고, 그 돈벌이 기회를 좇아 의사들은 큰 병원을 떠난다. 그래서 해법은 건강보험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다수 서민에게 건강보험이 ‘필수’다. 윤석열 정부는 그 필수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기업과 부자들을 위해 우리에게 필수인 건강보험을 민영화하는 것, 그게 바로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의 실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163657.html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869441&plink=REL&cooper=SBSNEWSEND


뉴스 > 사회

생계 위협하는 '재난적 의료비'…빈곤층 추락

  •  5,387
  •  4

입력 : 2015.03.08 17:06|수정 : 2015.03.08 21:42

공유하기


<앵커> 갑자기 큰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고통스러운 건 물론이고, 감당 못 할 병원 치료비에도 시달리게 됩니다. 이런 '재난적 의료비'를 쓴 가구를 조사해 봤더니 무려 30%가 빈곤층으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윤나라 기자입니다.

<기자>

체내에서 단백질이 생성되지 않는 희귀병에 걸리기 전까지, 44살 김 모 씨는 200만 원 정도의 월급에 저축한 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료가 시작되고 천문학적인 치료비가 들면서, 생활은 급격히 궁핍해졌습니다.

[환자 유가족 : 병원비, 입원비, 약값 다해서 1천만 원 정도 들었어요. 한 달에.]

정부 지원을 받을 만큼 생활고에 시달렸고 지난해 9월 숨졌습니다.

[유가족 : 저희는 준비를 한다고 했어요. 의료보험도 있었고, 너무 못사는 것도 아니었고. 누나가 아프면서 우리한테 치명타가 된 거죠.]

김 씨 경우처럼 의료비가 가처분 소득의 40% 이상일 경우 재난적 의료비라고 합니다.

한양대 의대 연구팀이 재난적 의료비를 지출한 가구를 조사한 결과, 조사대상 가구의 30%가 지출 이후 빈곤층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수준이 낮다 보니, 든든한 안전망이 못 된 겁니다.

우리나라 환자의 의료비 본인 부담률은 35.9%로, 일본 14%, 독일 13%, 프랑스 7.5%에 비해 크게 높습니다.

[신영전/한양대 의과대학 교수 : 국민건강보험이 보장을 충분히 못 해주기 때문에 나머지는 자기가 내야 하는데 그 부분의 비율이 유난히 높은 거죠.]

정부가 암과 희귀병 등 4대 중증질환에 대해 보장성을 확대해 나가고 있지만, 저소득층이 큰 병에 걸렸을 때 재난적 상황을 피하기엔 여전히 미흡합니다.

(영상취재 : 김대철·배문산, 영상편집 : 김형석)


http://omn.kr/bpya


기사 관련 사진
ⓒ sxc

건강보험공단이 16일 발표한 '2014년 건강보험 재정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건강보험은 4조 6천억 원의 흑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누적 흑자는 자그마치 12조 8천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총 진료급여비가 40조 원 남짓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1년 건강보험지출의 1/3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돈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지난해에도 건강보험 총수입은 계속 증가했다. 2014년 총수입은 전년대비 7.4% 증가해 48조 5천억 원이었다. 정부는 직장가입자 수 증가, 보수월액 증가, 누적적립금 규모가 커진데 따른 이자수입 증가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반면 지출은 43조 9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5.7% 늘었지만 증가율은 전년 7.0%에 비해 둔화됐다.

우선 국민건강보험이 흑자를 내는 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건강보험은 지출과 수입이 일치해야 한다. 건강보험은 국민연금처럼 매년 돈을 남겨서 적립하는 것이 아니라 걷은 보험료 전액을 환자 치료에 지출해야 한다. 그것이 건강보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재정 흑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 해에 그만큼의 금액을 환자 치료비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한 해 흑자를 봤다면, 다음 해에는 저소득층 의료보장을 확대하거나, 본인부담금 등을 경감하여 보험료를 낸 국민들에게 의료 혜택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지출 예산을 짜야 한다. 아니면 보험료를 낮추는 것이 맞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3일, 4대 중증질환과 3대 비급여 등 국정과제, 생애주기별 필수의료 중기 보장성 강화에만 이 돈을 쓰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1년에 3천억 원 정도만 쓰겠다고 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국가보장 100%'가 사실이려면, 이 보장성 강화안에 필요한 재정은 국민들이 낸 보험료가 아니라 국고지원으로 전액 충당하는 게 맞다. 

이런 재정지원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밝힌 보장성 강화안을 모두 실행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누적 흑자 금액인 12조 8천억 원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결국 정부는 흑자 누적 기조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인 셈이다.

건강보험 재정흑자 유지하려는 정부의 속셈

질병관리본부의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병원에 가고 싶으나 가지 못한 환자의 21.7%가 가정 경체 형편을 이유로 들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난해 11월 발표한 '최저생계비이하 비수급 빈곤층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한 경험이 있는 비수급 빈곤층이 36.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높은 본인부담금 때문에 병원에 못 가는 환자가 이렇게 많은 상황에, 국민건강보험은 보험료를 남겨 저축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최근 4년간 반복되었기 때문에, 정부를 향한 의심을 쉽게 거둘 수 없다. 

특히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계획은 이 의심을 더욱 굳히게 만든다. 건강보험 재정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도록 한 법률 규정이 2016년 말 만료되는데, 이에 대해 기재부가 만기 도래에 따라 재정지원 방식 등을 재점검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사실 국민건강과 보건의료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법안의 연장뿐 아니라 14%밖에 안 되는 기존의 국고지원금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정부지원금을 축소하는 데 있어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 재정흑자를 계속 누적하고 있다.

건강보험 흑자는 건강보험 급여확대와 본인부담금 인하에 쓰여야 한다. 또 정부가 내놓은 보장성 강화안도 병원 퍼주기식 항목 나열로 가는 것은 곤란하다. 보장성 강화안은 환자들의 실제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설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이미 비용효과가 입증된 건강보험 급여범위 내에서 법정 본인부담금을 경감하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입원 법정본인부담금을 현재의 20%에서 0%로 만드는 데에 드는 돈은 3조 원 남짓이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5일 입원기간에 따라 차등하여 최대 40%까지 본인부담을 늘리는 방안을 입법예고(관련기사 : 돈 없으면 입원 안 돼...박근혜, 국민 분노 직면할 것) 중이다. 이는 국민들이 낸 보험료는 곳간에 쌓아두고, 의료비 부담을 국민들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건강보험 누적흑자 12조 8천억 원은 바로 이런 국민들의 의료비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우선 쓰여야 한다. 그리고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금은 축소가 아니라 늘려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이 경감되고,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요구를 묵살하고 계속 흑자 쌓아두기와 국고지원축소를 획책한다면 의료비 때문에 분노한 국민들의 정권퇴진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 사회진보연대 회원입니다.


http://omn.kr/bo32


정부는 2월 5일, 환자의 입원료 본인부담률을 높이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예고기간 ~3월 17일). 내용은 불필요한 장기입원 유인을 줄이기 위해 입원일수가 15일이 넘어가면 현행 20%인 법정본인부담금을 30%로 올리고, 30일이 넘어가면 40%까지 올리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환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빠른 퇴원을 종용해 국민의료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심보다.

물론 불필요한 장기입원 유인을 줄이는 대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방법이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증대시키는 방법이어야 할까? 이 법안대로라면 한 달 이상 입원 시 체감입원료가 최대 두 배까지 늘어나게 된다. 아파서 입원한 환자에게 노골적으로 의료비 부담을 떠넘기는 퇴행적인 정책이며, 직접적인 의료복지 축소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비를 경감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되었다. 그리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겠다며, 4대 중증질환의 경우 국가보장을 100%까지 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태껏 한 일은 각종 의료민영화 추진으로 건강보험을 약화시키고 공약들도 누더기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 술 더 떠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급여범위의 개악까지 서슴지 않으려 한다.

병원이 아니라 환자가 책임을 지는 꼴

기사 관련 사진
▲  정부가 입원료 본인부담금을 높이는 계획을 내놨다.
ⓒ sxc

관련사진보기


2월 3일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중기 보장성 강화 계획'도 병원이 급여화를 원하는 항목들의 추가 수용에만 초점을 맞췄다. 시민사회단체는 입원료 등 필수 보장 항목의 법정본인부담금을 낮추는 방안이 보편적 복지확대임을 주장해왔다. 그런데 누더기보장성확대를 입원료 부담증대의 핑계로 대고 있다. 3대 비급여 대책으로 상급병실을 축소해 병실료 부담이 완화되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장기 입원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상급병실 축소는 고작 4인실 기준일 뿐더러(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등은 이미 15년 전부터 4인실이 기준 병실이었다), 현재 한국의 병상포화 상황을 고려하면 특별히 장기입원요인이 더 커질 공산은 없다. 역으로 입원비 증가는 모든 환자들이 체감하는 것으로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가계 의료비 증가요인이 될 뿐이다. 설사 불필요한 장기입원 문제가 크다 해도, 그 책임을 환자들에게 떠넘겨서 되겠냐는 것이다. 

한국의 입원환자 재원 일수는 OECD 나라 중 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암시하는 것처럼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이 아니다. 2012년 OECD '한국 의료의 질 검토보고서'도 행위별수가제(의료행위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기는 것)와 민간 중심의 경쟁적 의료공급체계를 원인으로 지목했다(일본도 입원까지 행위별수가제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다).

더구나 한국은 OECD 나라 중에 병상 수가 증가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고, 환자 대비 병상수도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장기입원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간호 인력이 적정하게 유지되어야 입원환자 간호 및 처치가 잘되어 빨리 쾌유하므로 재원일수가 줄어드는데 한국은 병상 당 간호 인력이 OECD 평균의 1/4 수준도 안 된다. 이는 OECD 국가 중 꼴등이다.

게다가 열악한 한국의 복지제도는 그나마 있는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에 아픈 몸을 의지하게 하는, '쏠림현상'도 만들고 있다. 아픈 노인들이 건강보험의 울타리 안에라도 있고 싶어 하는 걸 '도덕적 해이'라고 단정해 말할 수 있나? 퇴원하고 외래로 치료 받을 수 없는 사회적 환경은 어찌하란 말인가?

따라서 여타 복지의 확충이 우선 필요하다. 사회에 복귀해서 외래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 의료제도 내에서도 ▲지불제도 개선(행위별수가제를 포괄수가제나 총액예산제로 재편) ▲공공병원 확충 ▲민간병상 규제 ▲간호인력 확충이 불필요한 장기재원일수를 줄이는 실질적인 대안이다. 이런 점에서 의료공급구조에 먼저 손대지 않고 의료이용자의 경제적 부담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원인은 파악하지 않고 결과만 문제 삼는 옳지 않은 방식이다.

'장기입원일수' 카드 꺼낸 정부의 속내

그런데 정부가 수많은 의료이용 문제 가운데서도 장기입원일수를 우선 거론해 환자부담을 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입원 본인부담률 상승은 건강보험 재정지출 축소로 직접 연결된다. 현재 건강보험 누적 흑자가 12조 원인데 이를 활용해 환자부담을 줄이기는커녕 재정흑자폭을 늘리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정부의 의도는 여러 측면에서 의심스럽다.

우선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는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건강보험 재정지원 만기도래(2016년)에 대비하여 재정지원 방식 등 재점검"을 중요과제로 언급하였다. 사실상 건강보험 국고보조금 축소를 시사한 것이다. 

지금도 정부가 사후정산을 거부하여 미지급한 국고보조금이 2013년까지 7년간 8조 5천억 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제 아예 법적으로 보장된 14% 국고지원금도 축소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건강보험의 재정흑자가 쭉 유지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국민들의 부담은 늘리고 건강보험 재정지출은 줄이는 정책을 펴려는 것은 아닌가 의심된다. 사실 건강보험의 정부 부담을 줄이려는 시도는 명백한 복지긴축정책이다. 

정부의 계획대로 환자본인부담률이 높아지면, 대형병원에 입원한 가난한 사람들은 퇴원을 빨리 하려 할 것이고, 병상 회전율은 높아질 것이다. 이는 곧 대형병원의 이득으로 돌아간다. 사실 진료비는 입원초기 일주일 정도에 가장 많이 나온다. 입원초기에 각종 검사나 수술 등의 처치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원일수가 길어질수록 병원의 수익은 감소한다. 즉, 입원본인부담금이 인상돼 장기입원자의 조기퇴원을 이끌면 이끌수록 병실이 비는 일이 드문 대형병원들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의료비 부담 획기적 경감이 한국에선 상식

기사 관련 사진
▲  본인부담률이 높아지면, 돈 때문에 할 수 없이 퇴원하는 환자들이 늘어날 것이다.
ⓒ sxc

관련사진보기


한국의 10가구 중 1가구가 '재난적 의료비'로 고통을 받는다. '송파 세모녀'도 가족병원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현재의 의료보장제도도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전체적으로 상황이 안 좋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이런 식의 의료복지긴축을 견딜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이런 가격정책은 거의 '무상의료' 수준의 복지국가에서나 한 번 써봄직한 수단이다.

한국의 상황에 맞는 정책은 지금 당장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경감시키는 것이다. 그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번 입원본인부담금 인상은 이런 당면 과제에 완전히 역행하는 '민생파탄책'이나 다름없다. 지난 2년간 노골적 의료민영화정책 추진으로 의료비 폭등을 부채질하던 박근혜 정부가 이제는 미흡하게나마 법적으로 보장된 건강보장영역까지 파탄 내려 하는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올리는 퇴행정책이 아니라, 건강보험 흑자로 생긴 12조 원을 당장 국민들의 의료비 경감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돈 때문에 아픈 몸을 끌고 빨리 퇴원하는 국민들의 분노와 직면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무상의료운동본부정책위원이자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