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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1.25 19:46수정 : 2015.01.26 09:11

김공회의 경제산책

연말정산을 둘러싼 민심이 매섭다. 이를 둘러싸고 오가는 의견들 중에, ‘어차피 복지로 돌아갈 것인데 이 정도 증세도 못 받아들이는가’라는 진보진영 일각의 쓴소리가 유독 귀에 걸린다. 우리 국민은 민도가 낮고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 아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대의는 보지 못한다는 낮은 탄식도 들려온다. 정말 그러한가?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사회적 연대정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엔 몇 가지 짚을 점이 있다.

첫째, 뭔가 거꾸로 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극심한 불황과 소득양극화로 위축된 서민의 삶을 펴줄 책임은, 현 체제에선 시민이 아니라 정부가 진다. 흉흉한 민심을 달래고 사회를 안정시킬 책임도 정부의 것이다. 만약 이런 과업을 수행할 재원이 모자란다면, 정부가 납세자들에게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연말정산에 대한 불만이 비등해지자 조삼모사 식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으며, 진보진영 일부 인사들은 ‘우리가 스스로 내자’라면서 무책임한 정부를 오히려 돕는 모양새다.

둘째, 세금 내기 싫은 것을 인간 본성이라긴 어려워도 시민이 자발적으로 증세를 이끈 예는 역사에서 찾기 어렵다. 증세론자들이 인용하기 좋아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모국 미국에서조차 소득세 최고세율이 한때 90%를 훌쩍 넘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도로 누진적인 세제의 도입은 선진적 시민의식의 발로였다기보다는 전쟁과 공황에 의해 강제된 것이었다. 최근 증세·복지반대론자들이 악용하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의 역사는 조세저항의 역사’라는 말이 일리가 아주 없진 않다.

셋째, 실제로 근대사는 민초들이 세금부담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현 사태의 주범인 소득세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세목이다. 그보단 예로부터 세금은 물품거래나 시설사용 등에 매겨졌고, 귀족이나 성직자는 면세를 받았다. 이렇게 세제는 원래 역진적이었던 것. 20세기 초 도입된 누진소득세제의 진보성은 그러한 역진성을 부분적으로나마 상쇄했다는 데 있다. 피케티가 지적했듯, 오늘 우리의 급선무는 최근 크게 줄어든 소득세의 누진성을 복원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번 연말정산 사태의 원인이 된 세법 개정 과정에 ‘민의’가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국회의 법안심의 과정에서 과연 해당 상임위 국회의원들은 개정 법률안의 내용과 의의,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숙의했는가? 혹시 그 법안들을 정략적 거래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는가? 이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국회 회의록을 찾아보면 될 일이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이쯤 되면, 연말정산 앞에서 터지는 서민의 울화통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연소득 5500만원 이상자에 대해 세금을 조금씩 더 걷는 이번 조치는 ‘부자증세’이므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과연 이것이 극단적인 소득양극화의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종류의 ‘부자 증세’인가? 최고소득세율을 80%선까지 올려야 한다는 피케티의 외침은 벌써 잊혔는가? 현재 소득세 최고세율은 38%로서, 이 세율은 연간 개인소득 중 1억5000만원이 넘는 부분에 적용된다. 100억을 벌든 1000억을 벌든 똑같다.

김공회 정치경제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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