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후진국 미국을 추앙하는 나라

 

정부가 7월부터 ‘건강관리서비스 인증제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건강관리서비스라고 하니 언뜻 들어서는 건강을 관리하는 좋은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게 과연 순수하기만 한 것일까. 건강관리를 기업이 사업으로 확장한다는 개념인데, 건강관리의 범주가 사실 무한대에 가까워 개인 헬스케어 전체를 사업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건강관리를 기업서비스로 제공하는 나라는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에서 건강관리서비스가 성행하는 이유는 딱 하나, 의료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미국은 의사진찰료가 기본 400달러가 넘는다. 검사하고 치료받으면 1만 달러, 우리 돈으로 1000만원 정도는 손쉽게 넘긴다. 생존을 위해서는 의사를 만날 일을 줄여야만 한다. 비용절감에 혈안이 된 민간보험회사 역시 보험료 지급액을 줄이기 위해 건강관리를 잘하면 보험료를 깎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과 달리 공공의료 체계를 갖춘 나라들에서는 건강관리는 당연히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건강관리는 사업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모든 건강관리 서비스는 건강보험이 책임진다. 유럽도 주치의가 건강관리를 담당한다.

건강증진으로 돈벌이를 하려고 덤비는 대한민국조차 건강관리서비스는 입법 사안이었다. 예방과 건강증진을 목적에 명시한 국민건강보험법과 상충될 뿐만 아니라 의료법이 규정하는 의료행위 제한 조건과도 부딪친다. 때문에 2009년과 2010년 이미 두 차례 입법 논의 결과 의료민영화 사안으로 분류돼 폐기된 바 있다. 보건 당국이 이를 다시 되살려 인증제를 실시하겠다고 하는 건 입법부 결정을 무시하고 행정독재를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물론 절차 자체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애초에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제도에서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공백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만성질환을 관리할 일차의료체계를 갖추거나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는 건 관심도 없고 지역사회 건강증진이나 사회체육과 체육시설 확충은 나몰라라 했다. 결국 국민들은 그 빈자리를 노리는 보험사와 정보기술 기업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그동안 보건 당국은 일차의료체계를 도입하지 못하는 걸 민간 병의원 의사들 반대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사실 개인사업자인 의원급 의사들이 주치의 제도에 호의적일 리 없다. 한국에서 상당수 의원은 돈벌이 의료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환자등록제도인 주치의 제도가 도입되면 과잉진료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찾으라고 정부가 존재한다. 명백한 문제를 방치하는 건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사회체육시설이나 건강증진사업도 비슷하다. 정부는 사회체육시설 확충에 민간헬스업체가 반대한다고 둘러댄다. 지역사회 건강증진사업은 민간주간보호센터와 민간요양시설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시작도 못 한다. 여기에다 예산도 문제다. 예방과 건강증진 사업에 배정되는 예산은 거의 없다. 어린이들이 운동을 하기 위해 체육학원에 등록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 미국조차 생활체육은 공공 영역이 담당한다.

동네의원과 민간헬스장, 민간요양시설 때문에 하지 못한다던 건강관리를 이제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민간기업을 인증해 주겠다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사업가들 눈치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면서도 꾸준히 건강 영역을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민간에 개방하는 시도는 이율배반 아닌가. 이럴 거라면 차라리 복지부를 해체하고 민간사업자들의 로비스트 단체로 재등록하는 게 어떠냐고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대통령이 말한 ‘공정’과 ‘상식’이 미국식 의료모델 도입이라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2022-07-01 25면

쉬는 게 중요하다

 
내가 진료하는 대다수 환자들의 경우 가장 중요한 치료는 ‘휴식’이다. 오랜 기간 반복된 동작, 부하, 잘못된 자세에서 비롯된 질환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도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대체로 휴식을 통해 치료가 됐다. 사실 의학의 역사를 봐도 병원이 생긴 결정적 이유는 휴식의 중요성 때문에 입원을 시키면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도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자마자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현실은 어떤가. 한국에선 아플 때 쉬는 게 가장 어렵다. 우선 아플 때 쉬면 소득이 보장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유급병가는 대기업, 공무원, 교사 같은 직종에서만 보장된다. 근로기준법에 유급병가가 명시되지 않은 탓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시행하는 질병소득보장제도인 상병수당도 없다. 상병수당이 없는 주요 국가는 미국, 이스라엘, 한국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 비정규 노동자는 아파도 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다 노동시간이 길고, 대체인력은 적어 아파도 웬만하면 일을 하는 문화가 있다. 직장에선 아파서 쉬겠다는 이야기를 하기엔 눈치가 보인다. 제도적 장치가 없으니, 아플 때 쉬는 부담은 대부분 개인 책임이다. 직장에서는 본인의 연차를 써야 하고, 자영업자는 다른 사람을 고용하거나 문을 닫아야 한다.
 
정책이 없어서 쉴 수가 없으니 진료현장도 온통 빠른 치료에 집중한다. 해외에서는 2주 정도 쉬면서 관찰하는 통증질환도 당장 수술이나 주사치료를 하기 일쑤다. 약물사용의 강도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약을 먹어가면서 당장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쉬지 못하니 수술을 하고 나서도 별도의 전문적인 재활치료로 빠른 복귀를 종용받는다. 물을 많이 마시면 되는 상황인데도 수액치료를 하는 직장인들이 넘친다.

빠른 치료는 결국 과잉진료와 검사 남발로 이어진다. 의료기관도 교과서에 실린 정식 진료보다는 빨리 낫게 하는 방식에 집중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에 1차 의료체계도 없고, 쉽게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의료체계까지 덧붙여지다 보니 한국 의료체계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원스톱’ 진료 홍보까지 나오는 상태다. 가만히 휴식하면서 관찰해야 하는 상당수 질환을 이런 속도전의 대상으로 만든 건 사회적 손실이다. 애초에 유급병가, 상병수당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을 우리 사회는 지불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정치권도 잘 알고 있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에도 상병수당을 즉시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국정과제에서는 후순위로 미뤄지면서 현재는 하루 4만원 수준의 수당을 받는 1만명 대상 시범사업이 예정돼 있다. 하루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당으로 아프면 쉬라는 시범사업은 황당하기만 하다. 거기다 코로나19 2년을 거치면서 이제서야 1만명 수준의 시범사업 시행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주요 선진국처럼 이전소득의 80%까진 안 되더라도 하루 최저임금 수준의 병가수당은 공약대로 즉시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조속히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수준인 이전소득의 최소 60% 이상을 26주까지는 보장하는 상병수당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추가로 근로기준법에 최소 유급병가를 명시해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질병으로 인한 무급휴가권과 휴직권이 사회적 상식이 되고, 아픈데 계속 일해야 하는 인권유린 상황에 놓이지 않을 수 있다.

흔히 의료기관에서 발급받는 진단서 말미에 쓰여 있는 ‘안정가료’의 의미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한다’는 뜻이다. 진단서에 쓰인 대로 할 수 없는 나라가 ‘이제 선진국’이라고 주장하는 건 창피한 일이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520025010

코로나19 초기도 아니고 2년이 다 되어가는데 병상이 부족하다니, 모두 황당한 심정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그간 충분한 의료대응 역량을 확보하지 않았다. 이른바 케이(K)-방역 성공에 기대어 땜질식 의료대응을 해왔을 뿐이다. 병상 동원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없어, 확진자 수가 증가해 병상이 간당간당하면 그때마다 공공병원을 더 동원했다. 그조차 한계에 부딪히면 민간병원을 대상으로 행정명령을 발동해 1%, 1.5%, 3% 이런 식의 ‘찔끔 (치료병상) 동원’만 거듭해왔다. 그 결과 빠른 속도로 확진자가 늘자 이제 병상이 부족하고 사망률이 치솟게 된 것이다.

이제라도 파국을 막으려면, 사람들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총체적인 의료체계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병상과 인력 등 의료 자원이 많은 곳은 코로나19 치료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형병원들이 중환자 병상만 제한적으로 내놓는 게 아니라 일반 치료병상의 15~20% 정도를 코로나 환자에게 배정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동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 대신 미룰 수 있는 관절수술이나 각종 검사 등 대형병원의 비응급, 비중증 치료는 지역사회 의료기관으로 넘겨주고 상당수 외래환자도 1차 의료기관에서 관리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돈벌이 목적의 의료는 당분간 멈추고, 후순위로 미룰 수 있는 의료서비스는 최소 자원 투입으로 이뤄지도록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가 하는 것처럼 대형병원 눈치보기식 1~3% 수준의 병상 동원 명령으로는 코로나 중환자 치료도 불가능할뿐더러, 정부가 호언한 ‘일일 확진자 만명 수준에서 관리’가 가능할 수 없다. 지역 전담병원도 중등도 환자 치료만 대체로 가능하므로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코로나는 잠시 지나가는 메르스가 아니라, 변이를 거듭하는 팬데믹으로 어떤 양상을 보일지 알 수 없고 언제 종료될지도 미지수다.

분절적인 의료대응으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위중증 치료가 끝나면 코로나19 환자를 공공의료원으로 옮기는 방식도 중단해야 한다. 대학병원급 의사들이 더 많이 코로나 중환자 진료에 참여하고, 비응급질환 전문의들이 가능한 범위까지 진료를 넓혀 이를 메꿔야 한다. 코로나 환자 진료와 여타 진료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을 상정해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미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은 모든 의료진이 코로나 환자만 치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공공의료원들은 애초에 중환자 진료를 할 충분한 장비도 인력도 자원도 없었는데 말이다.

아울러 정부는 이러한 긴급 의료대응 체계를 집행하기에 앞서 비응급 수술이나 검사 등의 연기를 감내해야 하는 국민들에게 현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정치’에 나서야 한다. 실제 대형병원들에 대한 치료병상 동원 행정명령이 내려진 지 한달이 지났지만 동원된 병상은 목표치의 50%도 되지 않는다. 정부는 명령서에 서명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의료 현장을 방문하고 병상 동원을 위한 의료인력 직접 고용과 재정 지원 약속을 해야 한다. 병원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병상 인력기준을 코로나 진료부터 즉각 적용하고, 충분한 인력을 교육·양성해 현장에 파견해야 한다.

지금은 병원을 지켜야 할 상황이 아니고 병원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민들이 병상을 기다리다 죽고 있고, 제때 인공호흡기를 달지 못해 죽고 있다. 이게 전쟁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스페인은 팬데믹 초기부터 민간 병상을 한시적으로 국유화해 운용했다. 그간 정부가 공공병원을 확충하지 못했으면, 민간병원이라도 사력으로 동원해야 하지 않는가?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호는 사람부터 살리고서야 가능한 말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23106.html

이제 방역이 완화되는 시점이지만, 우리 국민들은 지난 2년간 '한국 의료의 민낯'을 체감했다.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은 확진자에도 병상이 부족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환자 진료 의료인과 방역 인력은 돌려막기로 충원됐다. 수적으로 매우 적었던 공공병원이 전담병원으로 전환돼 거의 총동원됐다. 그 결과 그간 진료받던 환자들, 특히 취약 계층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이들 상태에 대해선 아직 제대로 된 평가조차 없다.

대형병원 중환자 병상을 1%, 2% 이런 식으로 조금씩 코로나 환자 대응에 내놓으라고 명령했지만 대형병원들은 코로나 일반 병상을 거의 내놓지 않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호전된 환자는 다른 전담병원으로 이송돼야 했다. 거꾸로 전담병원은 중환자를 진료할 능력이 없어 대형병원으로 이송하면서 장거리 환자 이송이 다수 발생했다. 이는 전담병원 역할을 한 대다수 공공병원의 중환자 진료 역량이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작년부터는 이런 공공병원마저 부족해지자 민간 중소병원도 일부 전담병원에 지원했다. 이들 중소병원도 주요 공공병원과 마찬가지로 사실 중등도 코로나 환자만 주력으로 진료했다. 중환자 진료 역량이 있는 병원은 전담병원에 지원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전담병원의 기존 의료진들은 상당수가 이직하고 새로 충원됐다. 코로나 환자 진료를 하지 않는 진료과나 의료 인력이 필요 없어졌고 코로나 진료와 관련된 부분만 특화하면서 대부분을 감염병상처럼 이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야전 병상 체계와 유사하게 운영됐다.

문제는 이제 코로나 환자가 줄어들고, 코로나19를 독감처럼 외래치료로 관리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야전 병상은 전쟁이 끝나면 철거된다. 즉 전담병원의 기능과 재건에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도 공공병원 중 상당수는 기존 지역사회 진료체계를 복원하는 데 수년이 걸릴 듯하다. 전담병원을 신청한 민간 병원도 다시금 경영상 위기를 겪을 것이다. 코로나 진료를 위해 충원했던 의료진이 일반 종합진료로 이행하려면 인력 구조조정은 기본이 된다.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는 애초부터 예상 가능했다. 병원을 몇 개씩 비워가며 전담병원을 만드는 과정은 가장 손쉬운 결정이지만 외국에서 이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극단적인 단일 진료체계를 상정해서는 지속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환자의 치료 성과에서도 여러 합병증과 다른 질병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에 종합병원 기능이 있어야 유리했는데 한국은 진료의 질은 일찍이 포기했다. 무엇보다 적은 수의 확진자를 두고도 전담병원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민간 병원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한국 공공병원은 OECD 평균인 71.6%에 비춰 말도 안 되는 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민간 병원들이 수익성도 없고 병원 전체 비용만 상승시킬 코로나 환자 진료에 미온적인 건 당연한 결과다. 민간 병원을 코로나 진료에 참여시키는 데에는 막대한 추가 예산이 필요하고 행정적 절차와 설득이 요구된다. 국가가 소유한 공공병원을 명령으로 비워서 전담병원화하는 것과는 비용과 절차 측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손쉬운 결정은 이제 앞으로 들이닥칠 청구서까지 계산하면 많은 과제를 남긴다. 가뜩이나 부족한 공공병원을 신종 감염병이나 재난 상황을 고려해 방치할 수도 없는데, 향후 정상화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은 막대할 것이다. 기존 의료인력을 충원하는 것에만 최소 4년 이상 걸린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공공병원 시설을 확충해 중환자 진료가 가능하도록 하고, 병원을 새로 짓는 문제도 큰 과제다. 

그런데 새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 방향에는 제대로 된 공공의료 대응 계획이 전무하다. 도리어 윤석열 당선인은 공약에서 민간 의료기관에 정책수가라는 이름의 자본비용을 지불해 의료체계를 강화하겠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된 이유는 다름 아닌 자본 조달 능력이 의료 공급의 '부익부 빈익빈'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공공의료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런 비효율적인 쏠림을 막고 의료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민간 병원에 자본비용을 투입하는 것보다 공공 인프라 확대가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자신의 병원을 보호하는 데 앞장선 대형병원에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할 게 아니라 고사 직전인 공공의료에 더 큰 투자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팬데믹에는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20417131218000

바이오헬스산업에 대한 기대는 이미 10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 아마도 주요 선진국들이 보유한 제약산업과 의료기기산업의 높은 부가가치를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백신을 우선 개발·공급한 다국적 제약회사와 개발사는 천문학적인 돈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팬데믹의 특성인 총력전 측면에서 앞으로 닥칠 또 다른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바이오산업 생태계는 국가의 준기간산업이 되어야 할 당위성까지 생겼다. 그런데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실질적이고 실력을 갖춘 바이오산업 체계 논의는 뒷전이고, 당장 규제 완화를 통해 빠른 시장 진입만 노리는 한심한 주장만 반복되고 있다.

우선 정부부터 이에 부화뇌동했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포스트 코로나 의료기기 산업 육성'을 명분 삼아 체외진단기기에 대해서는 '안정성이 수용 가능한 경우 한 차례에 한해 시장 진입 허용'이라는 황당한 제안을 내놓았다.

체외진단기기는 대체로 안전하지만 정확도와 비용효과성 때문에 시장 진입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 정확도가 부족한 제품이 1년간 진입한다고 경쟁력이 생길 리도 만무하다. 아마 그 기간 동안 사기 제품을 팔아먹거나, 임상시험조의 데이터를 무상으로 확보하거나, 극단적인 경우는 주가 조작 대상이 되다가 상장폐지될 공산이 더 크다.

이런 시류에 야당 대선 후보도 비슷한 인식을 보여줬는데, 그는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네거티브 규제'를 하겠다고 주장한다. 우선 원격의료는 이미 사용 중이다. 마치 원격의료가 규제 때문에 안 된다는 주장은 의료법상의 규정으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장비·네트워크 업체들의 입장일 뿐이다. 설사 의료법상 할 수 없더라도 임상시험 등으로 비용효과성이나 정확성을 입증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단 한 번도 비용효과성이나 효용성을 입증한 바 없다.

애초부터 원격의료는 기술 발전 단계의 문제지 법률적 문제가 아니었는데도, 이를 계속 정치적 문제로 다룬 세력들은 규제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무가치 기업들이었다. 이미 원격 모니터링기기 및 원격 진료장비는 초음파진단기, 방사선장비 사용처럼 효과가 있는 경우 진료에도 도입되어 있다. 따라서 의료법 개정부터 하자는 주장은 효과와 안정성이 불분명한 의료기술의 막무가내 도입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즉 보건의료체계 내 안정성과 효용성을 평가하는 제도들은 단순 산업 규제가 아니다. 의료법, 약사법 등이 규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이다. 한국의 규제가 미국이나 유럽, 일본보다 강하지도 않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한국 임상시험보다 미국 임상시험을 더 신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료기술과 약품 등을 국내에 규제 완화해 도입한다고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국가산업에 이바지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의료기기, 약품에 대한 네거티브 규제 주장은 내국인을 수익 수단으로 볼 뿐 아니라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는 주식시장 상장 및 투자 유치 등의 과정에서 먹튀만 조장하는 것일 수 있다. 주요 선진국의 의료산업의 고부가가치는 그 나라가 가진 강력한 규제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기본적인 가치조차 무시하며 보건의료 규제 완화, 네거티브 규제 등을 투기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일에 국가기관, 대선 후보들이 부화뇌동해선 곤란하다. 한국 바이오헬스산업의 미래는 올바른 가치관에 달려 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11208111517484

윤석열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추진한다는 건 괴담이라고 원희룡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이 밝혔다. 윤석열 당선인은 의료민영화를 언급한 적도 없고 ‘필수의료 국가책임’, ‘공공정책수가’ 같은 정책을 주장해서 억울하다고 한다.

‘괴담’이라고 주장했던 원희룡 본인은 제주도지사로 일하던 2018년 국내 첫 영리병원을 허용한 원죄가 있다. 당시 내국인 진료를 금지한 조건부 허가는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으로 이어져 위법 판결이 나왔다. 며칠 전인 4월 5일에도 허가취소에 대해서 위법 판정이 나왔다. 원희룡의 영리병원 허가는 4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법적 소송으로 한번 허가가 난 영리병원이 내국인 진료까지 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 없어지는 판례가 남게 됐다.

당시 원희룡은 제주도 공론조사위원회 권고까지 어기면서 중앙정치 진출을 위해 영리병원을 허가했다. 최소한 의료민영화 괴담 운운하려면 당시 영리병원을 허가했던 일을 사과하고 반성부터 할 일이다. 하지만 그는 여지껏 이 문제를 사과한 적이 없다.

여기에다 올 2월 제주MBC의 영리병원 허가 관련 대선후보 질의에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는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장, 기회위원장 조합에 국민들이 의료민영화를 의심하는 건 지극히 타당한 일이다. 이를 괴담이라고 하려면 인수위에서 영리병원을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필수의료 국가책임’, ‘공공정책수가’ 역시 이름처럼 국가책임에 걸맞거나 공공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공약은 민간의료기관이 수행하는 분만, 감염, 응급 질환 등 필수의료에 대한 시설 및 자본비용을 ‘수가’로 제공한다는 게 핵심이다. 민간의료기관이라도 공익적인 역할을 한다면 건강보험이 돈을 투입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이는 최소한 그 병원의 지배구조가 공공적이어야 한다. 하다못해 이사회 구성이라도 공익적이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민간소유 병원에 진료비용이 아닌 자본비용을 지불한다면 그냥 공공병원을 더 만드는 게 낫다. 굳이 공공병원을 만들면 되는 비용을 민간의료기관에 ‘정책수가’로 제공할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필수의료를 국가가 책임진다면 당연히 공공의료에서 해야 할 것들을 민간의료기관에 자본비용으로 투입한다는 발상은 명백하게 ‘의료민영화’나 다름없다.

윤 당선인은 대선 유세에서도 공공병원 확충이 필요 없으며 민간의료기관만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환자의 80%가량을 진료한 것이 공공병원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왜곡된 시각이었고, 의료공급은 민간이 해야 한다는 시장주의 발상이었다.

한국은 공공병상 비중이 10%도 안 된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열악하다. 때문에 공공병원을 늘리지 않겠다는 공약도 사실 민간의료기관 활성화 공약으로 ‘민영화’라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건강보험제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건강보험료 폭탄’, ‘중국인이 건강보험 30억 혜택’ 같은 근거 없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민들이 ‘의료민영화’를 걱정하는 걸 근거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의료민영화가 괴담이라고 생각한다면, 영리병원을 금지하겠다고 밝히고 공공병원을 늘리면서 건강보험을 강화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면 된다. 본인들이 주장해서 촉발된 논란을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국민들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곤란하다. 의료민영화란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의료민영화가 아닌 건 아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408025010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의료인 확충 방안은 없이 의사과학자 양성 주장만 이어진다. 특히 집권여당은 지난 7일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1000명가량의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의사과학자’는 의사들이 대부분 환자진료를 하는 임상의사인 관계로 연구만 하는 의사들이 스스로를 규정하고자 만든 용어다. 특히 의료전문주의가 확대되는 미국에서 연구만 하는 의사들이 일정 규모가 되자 ‘의사과학자’ 단체를 만들어 여타 전문의학회처럼 규정된 측면이 크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연구에 전념하는 ‘과학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령 미국국립보건원(NIH)은 연구개발 예산으로 연간 350억 달러를 지출하는 공적연구체계를 바탕으로 모더나 백신 같은 연구 성과도 내고 있다. 연구 성과라는 건 ‘의사과학자’보다는 오히려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기초연구에 투여하고 지속 가능한 연구환경을 만든 데 기인한다.
한국은 의과대학 기초교실부터 열악하기 짝이 없다. 병상을 늘리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민간병원들과 진료수익을 기반으로 개인병원에서 성장한 대형민간병원들의 태생적 한계다. 이를 극복하려면 수익성이 없어 민간병원이 외면하는 기초연구시설을 국공립병원이라도 대규모로 확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기초연구에 투자하기보다는 당장 시판 가능한 상업연구에 관심이 쏠려 있다. 거기다 한국은 미국국립보건원 같은 규모 있는 공적기관도 없고 이를 연계할 국공립병원도 없다.

그럼에도 계속 의사과학자를 양성하자는 주장에는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보이는 투기꾼들의 요청이 상당 부분 담겨 있다. 당장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 입장에서 의사를 연구직으로 고용하면 각종 임상시험 허가를 받거나 시판 허가를 받을 때 이용하기가 쉽다. 제약회사에 고용된 의사들은 임상의사를 상대하거나 인맥을 동원하는 용도에 그칠 뿐이다. 혹여나 민간제약회사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의사라 할지라도 이들은 기초의학연구가 아니라 상업연구만 수행한다.
결국 큰돈을 벌어들인 모더나 백신과 같은 해외 바이오산업을 예로 들면서 의사과학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공적인 기초연구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점은 외면한다. 백보 양보해 의사과학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당장 시급한 건 규모 있고 지속 가능한 공적연구기관이다. 지금도 기초과학연구인력을 찬밥 신세로 만들어 의과대학 쏠림현상을 부추긴다는 건 상식이다.

기본적인 기반 구축과 기초연구 인프라 확충도 없이 그냥 의사과학자 양성만 말하는 건 애초부터 모래성 쌓기다. 더구나 한국은 인구 대비 임상의사도 부족한 실정이다. 결국 비필수 돈벌이 의료로 빨려들어 가는 의료영리화부터 막아야 연구하는 의사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할 수 있다. 이는 규제 완화가 아니고 공적의료체계를 강화해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필수의료중심의 의료공급체계와 공적인 의료인 양성 계획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고, 그보다 우선해서 당장 기초학과 투자와 연구 토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혹여나 토대는 없이 무늬만 의사과학자를 양성한들 과학기술의 발전 단계를 무시한 성과가 나올 리 없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위기에 시급한 필수의료를 책임질 의사 양성 계획보다 우선되지도 않을뿐더러 내용도 공상 수준인데, 왜 자꾸 이런 피상적인 정책이 난무하는지 모르겠다. 바이오기업의 민원 처리 수준인 의사과학자가 아니라 국민건강을 위한 의사 양성을 어떻게 할지를 밝혀야 최소한 국가를 책임지는 지도자를 뽑는 진지한 선거국면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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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은 부족하지만 재정 여력이 안 되니까 이제부터 경찰이 하는 일을 흥신소에 넘기자는 대선공약이 나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소방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소방업무를 사설경비업체에 위탁하자고 하는 건 어떨까. 돈도 많이 드는데 해양조난사고를 해양경찰이 아니라 어민들이 담당하고 보상금을 주는 식으로 바꾼다면 국민들이 지지할까. 제정신이라면 누구도 이런 주장을 하지 못할 것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필수사회서비스라는 인식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 2년을 맞은 지금 감염병 위기 대응은 어떤가.

지금 우리는 병상과 인력 부족이라는 심각한 의료자원 고갈에 직면해 있다. 병상이 모자라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집에서 사망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코로나19 음성이 아니면 응급실 이용이 쉽지 않다. 병상이 부족하자 공공병원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운용하면서 그동안 공공병원이 돌봤던 저소득, 취약계층, 특정감염질환자들이 겪는 치료공백도 커지고 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이미 중환자실 수천개를 건립하고 의료인력을 충원할 법도 한데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공공병원을 쥐어짜며 돌려막기만 한다. 독일은 2020년 3월에 이미 중환자실을 1만 4000개나 건립하고 의료인력을 획기적으로 충원했다. 스페인은 민간병원을 한시적으로 국유화했다. 영국도 특별회계로 국영의료체계 관련 예산을 획기적으로 확충했다. 의료시장화의 선두라는 미국조차 의료장비공급의 준국유화가 이뤄졌다.

5%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 비중을 더 늘리지 않는 건 정부가 여전히 민간의료체계를 공공의료보다도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보건의료를 일반상품처럼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적자를 핑계 삼아 경남 진주의료원을 문닫아 버렸고 신규 공공병원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 통과조차 쉽지 않다.

정규 의료인력을 제대로 충원하지 않는 것도 코로나 국면만 끝나면 불필요한 비용이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공공의료도 민간병원의 몫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 민간병원에 위중증환자 치료를 맡기는 비용으로 지출한 예산이 4조원에 육박한다.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그 정도 돈이라면 대형 공공병원 15개를 새로 지을 수 있었다. 정부에선 그저 민간병원이 효율적이라는 사고방식을 따라갈 뿐이다.

막상 당장 부족한 인력과 빡빡한 병상 운영, 그리고 병원경영 실패를 민간이 책임진다는 데서 오는 이점 외에 중장기적 손실은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다. 과잉진료로 대표되는 불필요한 의료 수요가 양산될 수 있다. 여기에 선택의료영역의 광범위한 확대는 비급여검사와 하나 마나 한 시술들까지 재생산시킨다. 관찰과 안정가료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를 공격적으로 치료하면 민간병원과 의료기기 및 제약회사에는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사무장병원’으로 대표되는 영리적인 병원 설립도 횡행한다.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가 탈법적인 투자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모순의 뿌리에는 민간 운영이 더 낫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민간의료는 사회적으로 효율적이지 않다. 이제 민간 운영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윤석열 후보가 주장한 ‘정책수가’는 공공의료 강화가 아니라 ‘필수의료’ 명분으로 민간병원에 계속 공적자금을 붓겠다는 시도에 불과하다. 단기대책이면 모를까,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감염병 위기를 겪으면서 보건의료는 공공이 맡아야 하는 필수서비스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필수서비스의 민간운영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이는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 이제 의료서비스에서 민간 운영이 효율적이란 망상을 걷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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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세가 무섭다. 확진자 증가뿐 아니라 치료대응능력을 보여 주는 중환자 병상 부족, 병상 대기자 급증, 사망자 급증까지 연일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다. 결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랐던 ‘의료 붕괴’가 임박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공공의료인력을 확충해 감염병 대응 ‘정규군’을 마련하자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 왔다. 보건 위기는 언제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공공병원 신축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공공의료인력 증원도 없었다. 그저 비정규 인력을 충원하고 민간병상을 행정명령으로 동원하는 땜질만 있었다.

지금 위기는 너무나 급박하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내는 것이다. 따라서 확진자 증가를 억제할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멈춤’이 필요하다. 병상 확대를 위한 모든 수단도 동원해야 한다. 비응급과 비필수 의료는 뒤로 미루고 모든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신속한 전환이 필요하다. 백신 접종, 선별진료, 역학조사 뭐 하나 빠져선 안 된다.

이런 속에서도 정부는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다. 마치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영업자 희생이 양자택일 대상인 것처럼 말한다. 재택치료와 병원치료조차 상호보완이 아니라 양자택일처럼 접근한다. 사실 정답은 단순하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자영업자의 손해를 제대로 보상해 주고, 병상을 충분히 확보해 재택치료의 안정성을 확보하면 된다.

애초부터 충분한 재정 투입과 손실보상이 있었다면 거리두기 정책을 일방적인 자영업자 희생으로만 인식할 필요도 없었다. 재택치료를 필수로 하더라도 즉시 이송 가능한 병상이 충분했다면 재택치료에 대한 불신도 없었다. 위기의 1차 책임은 충분한 재정 투입과 공공병상 마련을 외면한 문재인 정부와 기획재정부에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선대위 출범식에서 ‘중환자 병실을 늘리는 데 써야 할 돈을 오로지 표를 더 얻기 위해 전 국민에게 무분별하게 뿌려댔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병상 확대 예산과 전국민재난지원금조차 양자택일의 대상이 된 것이다. 실제로는 대다수 주요 국가들이 막대한 재정지원을 할 동안 최저 수준의 재난지원금을 집행한 게 한국이고, 가장 낮은 수준의 병상 충원을 한 것도 한국이다.

팬데믹은 윗돌 빼서 아랫돌 괸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야만 하는 총력전이다. 지금은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의료대응자원 마련이 선택 영역으로 고려할 만한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현 시기 보건 위기의 해결을 위해 주판 두드리기가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결의를 가져야 한다.

대통령 연설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적극적 재정정책”은 필요 없다. 국민의 생명을 화폐가치로만 환산하거나 양자택일의 대상으로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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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부각된 문제 가운데 하나가 의료공급 불균등이다. 특히 의사·간호사 부족이 심각하다.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종사 의사가 서울은 4.5명인데 경북은 2.1명이다. 물론 대형병원이 서울에 쏠려 있고 중환자 진료가 대도시에 한정돼 당연히 의사가 더 많이 있겠지만, 응급·분만·투석 같은 필수의료시설 취약지까지 많다는 점에서 지방에서 활동하는 의사를 늘려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지방에 의사 부족 문제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이미 40여년 전 건강보험을 도입할 때 미충족의료로 인한 의료수요가 폭등해 지방에 의사가 필요했다. 그래서 의과대학 신설 조건에는 항상 의료취약지에 대학병원을 설립한다는 조항이 붙었다. 때문에 1980년대 이후 들어선 의과대학은 대부분 지역의료를 책임진다는 명목으로 허가를 받았다. 일부는 지방 국립대학 의대 정원을 할당받기도 했다.

울산대 의대는 1987년 지역 병원 설립과 의료인 공급이란 명분으로 허가가 떨어졌다. 하지만 울산대는 임상실습과 교육을 대부분 서울아산병원에서 받는 식으로 사실상 서울에 캠퍼스를 운영했다. 동국대 의대도 경북 경주시를 기반으로 허가받았지만 주된 임상교육을 수도권에서 시행해 시정명령을 받았다. 충북 충주에 있는 건국대 의대도 임상교육 등을 서울에서 대부분 수행한다.

최근 교육부 조사 결과를 보면 울산대, 성균관대, 가톨릭관동대, 순천향대는 시정명령을 받고도 여전히 버티면서 의과대학 캠퍼스를 수도권에 두고 있다고 한다. 결국 지방의사를 양성한다는 명분은 차치하고 기본적으로 지방에서 의학교육을 하지 않으면서 임상교원 충원은 수도권에서 해 수도권 병원 키우기와 쏠림만 부추긴 셈이다.

성균관대는 신설 이후 10여년간 지역의 교육병원조차 지정하지 않고 버티다 마지못해 창원삼성병원을 부속병원으로 지정했지만, 캠퍼스는 서울에 두고 협력병원인 삼성서울병원이나 강북삼성병원에서 임상교육을 진행한다. 성균관대, 울산대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경남이나 울산에서 일할 생각을 할 리 만무하고, 이들 의과대학은 임상교수들의 소수만 지방에서 일한다.

지난해 여름 정부는 ‘지역의사제’를 필두로 의사정원을 늘리려다 대한의사협회 반대에 부딪히자 철회해 버렸다. 그런데 당시 정원을 늘려 주려던 대학 대부분이 의과대학 신설 조건을 어긴 이들 의과대학이었다. 과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수도권 쏠림을 부추기는 의과대학들에 정원을 늘려 준다는 게 제대로 될 리 없다.

정부는 주요 교원과 학생들을 수도권에서 양성하는 의과대학 문제를 30년 넘게 방치하고 있다. 이 문제를 놔둔다면 지역의사 양성이란 취지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대형병원을 가진 이들 의과대학의 눈치를 보지 말고, 설립 취지대로 의학교육이 이루어지고 지방부속병원에서 의대교원을 확보하도록 당장 나서야 한다. 어제의 잘못을 시정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잘못을 방조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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