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7일 건치신문

http://www.gunch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740


한국 ‘의료관광’이 의미하는 것[논설]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

9월 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신성장동력 성과평가 보고대회'에서 헬스케어•교육•관광 등 고부가서비스를 수출 주력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내용 중에서는 특히 ‘의료관광’ 사업 활성화를 빌미로 보험업자가 국외 판매 보험상품과 연계해 국내 의료기관에 외국 환자를 소개•알선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보험업자의 ‘환자 유인,알선’은 이미 2008년 이명박정부 초기에 의료법 개정안 등으로 시도 되었으나 촛불항쟁의 여파 등으로 철회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8월 17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연 자리에서 민간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활동을 허용하는 방안추진을 발표했고, 이에 발 맞추듯 보건복지부가 민간보험사와 보험회사의 해외환자 유치와 관련된 공청회를 8월에만 몇 차례 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한 나라의 보건복지부가 경제논리에 휩싸여 기획재정부의 하수인역할을 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런 안타까움을 넘어 이젠 이 정부가 ‘영리병원 도입’이나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가 여론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자, 마지막으로 들고 나온 것이 ‘의료관광’ 활성화라는 명분이란 점이 놀랍다. 이에 한국에서 ‘의료관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장코자 한다.

첫째. 한국은 ‘의료관광’이 활성화 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인도나 태국, 싱가포르와 같은 ‘의료관광’ 사업으로 유명한 나라들은 실제로 한국보다 많게는 20배 적게는 5배 이상 인건비 차이가 난다. 또한 이들 나라들은 원래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나라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인건비에서 주요선진국과 2배 이상 차이가 나지 않고, 언어가 다르며, 관광사업이 큰 비중인 나라도 아니다. 이 때문에 지금껏 한국의 해외환자진료는 일부 피부,성형과 특정종교(통일교)방문을 제외하면 주재외국인이거나 재미교포들의 치료였다.
그럼에도 ‘의료관광’ 사업을 마치 크게 될 사업인 냥 포장한 것은 지금껏 ‘영리병원도입’을 비롯한 각종 의료영리화정책이 국내에서 저항에 부딪히자, 생각해낸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둘째. 설사 ‘의료관광’이 활성화되더라도 이익보다는 손해가 크다. 정부는 ‘의료관광’을 마치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큰 돈을 쓰고 가는 관광업의 일종으로 선전한다. 하지만 이미 의료관광사업을 시작했던 인도, 태국, 싱가포르 등도 ‘의료관광’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관광’으로 시작된 보험 외 진료, 외국인대상 영리병원 허가문제, 인력유출(brain drain)등으로 건강불평등은 심화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의료접근권은 감소되었다.

WHO 조차 태국에서 벌어진 이러한 부작용을 ‘태국전체 GDP의 0.6%에 지나지 않는 의료관광사업이 건강불평등과 지역의 의료진부족을 낳았다’고 지적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한바 있다. 의료가 돈벌이라는 천박한 사고는 차치하더라도, 의료양극화와 고가의 첨단시술이 활성화되고, 무엇보다 ‘예방’에서 ‘치료’로 의료의 중심이 더욱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의료관광’은 단순한 사업이나, 외국인 대상의 관광업의 일종이 아니라, 국내 건강불평등을 악화시킬 기재가 될 수 있다.

셋째. 의료관광과 관련된 ‘해외환자의 유인,알선’은 결국 의료민영화를 위한 포석일 뿐이다. 한국의 민간보험은 지난 5년간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비롯한 각종 민간의료보험상품을 만들어 시장을 확대해 현재는 33조원가량의 시장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건강보험당연지정제’와 ‘의료기관의 비영리법인만 허용’ 등의 제한장치를 해제해서 병원-보험자 모델로 나아가는 것이 남았다. 이 때문에 보험업자들은 정권초부터 끊임없이 보험이 병원과 연계해서 궁극적으로는 보험회사와 병원이 한 회사가 되는 미국식 모델을 추구해왔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국민여론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쉽지 않았다. 그 결과 마치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냥 고안한 것이 이번의 ‘의료관광’업 활성화를 위한 보험업자의 ‘환자 유인,알선’ 허용안이다. 일단 보험이 환자를 가지고 병원과 거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이 법에 핵심이다. 즉 환자를 매개로 보험은 특정병원과 특별한 계약을 맺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삼성생명병원’ ‘대한생명병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이번 시도는 의료민영화의 또 다른 축인 민간보험사업의 확대는 물론, 병원의 영리화를 위한 포석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5년간 의료영리화를 추진하면서, 언제나 ‘외국인진료’ ‘경제자유구역내’ 라는 단서를 사용해 왔다. 이제 그 마지막을 ‘의료관광’으로 장식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단서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료를 돈벌이로 바꾸어 ‘산업화’하려는 것이 이런 ‘단서’들의 목적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만 현실성도 없고, 한국의 경제상황과 지정학적 상황에서 허울뿐인 ‘의료관광’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는 그만해줬으면 하는 게 바람일 뿐이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끝>

  
 

정형준(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2013년 10월 4일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684847.html


[기고]박근혜 대통령, 대선토론서 “간병비도 보장” 큰소리치더니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대선후보토론 문재인 박근혜 후보

대선후보토론 문재인 박근혜 후보ⓒKBS 생중계 캡쳐



최근 ‘기초연금 20만원’ 공약 폐기와 개악을 두고 말이 많다. ‘기초연금 20만원 공약’이 박근혜 정부의 핵심 복지공약이었기 때문일 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일등공신인 어르신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낸 공약이기 때문이다. 평소 ‘신뢰와 약속’의 정치인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던 박근혜 대통령은 이 때문에 집권 1년차부터 거짓말쟁이의 오명을 쓰게 될 듯 하다.

그러나 ‘기초노령연금 20만원’ 공약만큼 작년 대선에서 논란이 된 복지 공약이 또 있었는데, 바로 전국 방방곡곡에 붙어있던 ‘4대 중증질환 100% 국가보장’ 공약이다. 

대선 TV토론서 “간병비도 보장한다” 큰소리치더니

4대 중증질환에 대해서만 보장성을 100%까지 올리겠다는 이 공약은 이미 작년 대선토론회 때부터도 논란이 되었다. 

우선 100% 보장에 간병비가 들어있냐는 의문이었다. 이에 대해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TV 방송에서 ‘간병비도 보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집권도 하기 전인 인수위에서부터 ‘간병비’ 제외를 기정사실화 하여 큰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후 진영보건복지부 장관 청문회 때에 이르러는 이런 복지 공약이 ‘선거캠페인’이었다는 발언이 있었고, 급기야 4월 1일 건강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첫 회의에 출석한 보건복지부 차관은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공약에 애초부터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차등병실료, 간병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러면서 3대 비급여 경감을 위해 ‘국민행복 기획단’을 꾸린다고 하여 사실상 3대 비급여를 다른 논의테이블로 이관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6월말에 이르러서는 그나마 진료 부분의 비급여에 대해서도 ‘선별급여’라는 중간지대를 두어 환자가 50-70% 부담하는 공인비급여를 신설하려 하고, 급여범위 본인부담액도 전액 면제에서 후퇴하였다.

결국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100% 공약 또한 완전 사기였고, 거짓이었다. 

국민을 기만한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원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는 3대 비급여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실제 공약집에 보면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부분 포함”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75% 수준인 4대 중증질환의 보장률”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75% 수준’이라고 밝혔다는 점이 중요한데, 건강보험공단의 통계를 보면 나머지 25%에 선택진료비, 차등병실료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백번 양보해도 애초부터 최소한 선택진료비와 차등병실료는 포함된 ‘보장성 100%’를 박근혜 정부는 상정했던 것이다. 

즉 비급여를 제외한 것은 집권하자마자 공약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발뺌을 넘어 아예 그 공약이 사실이 아니라고 우기는 사태까지 낳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가 내놓은 4대 중증질환 의료비는 추계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공약 시 내 놓은 안과 다르게 심뇌혈관 질환의 경우 ‘심뇌혈관 질환 중 수술’ 에 대한 것만 추계하고 있다. 그래서 상급병실료 5400억원, 선택진료비 2100억원으로 과소추계했다. 무엇보다 뇌졸중과 같은 핵심 뇌질환에서 중요한 것은 재활치료와 추후관리이다. 그런데 이를 완전 제외했다면 이것이 어떻게 4대 중증질환만이라도 보장하는 것이 될 수 있는가?

최근 보건복지부가 10월 1일부터 비급여 진료인 초음파의 경우 4대 중증질환에 우선 급여 적용을 한다고 광고를 하는 대목도 문제다. 사실 수년전부터 초음파의 급여화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근혜 정부의 성과인양 생색내면서, 급여의 확대범위를 4대 중증질환으로 축소한 것을 공약이행으로 봐야 하는가? 어찌 보면 이는 초음파 급여화의 측면에서는 개악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사태다. 박근혜 정부는 이처럼 이전 정부 때의 계획에 자신의 공약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생색내기만 하려한다.

박근혜 대통령 대선공약 이행하라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중의 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이 수많은 공약을 파기하거나 후퇴시킨 것은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 비판했다.ⓒ김철수 기자


복지공약조차 지키지 못하면, ‘정권 리콜’ 각오해야 

또한 돈 문제를 보면,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원에 단 한 푼의 국고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누더기 ‘보장성 강화안’조차 그동안 국민들이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아 남은 건강보험의 흑자를 재정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이러려면 왜 4대 중증질환부터 보장성을 강화해야 하는지조차 문제가 된다. 국민들이 낸 보험료의 흑자분으로 정권은 자신의 생색만 낼 뿐 실제로 보장성 강화를 위한 추가재정에는 관심이 없으니 이 또한 사기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정부의 로드맵은 기껏해야 환자의 부담을 이전보다 25%정도 경감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100%는커녕 50%도 안 되는 개선인 것이다. 원래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급여 내 보장성이 90%~95%이다. 가장 보장성이 높은 질환군에 대한 보장성 강화안조차 겨우 25% 경감하는 수준이라면, 이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완전 사기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박근혜 정부는 시작부터, 거짓말, 생색내기, 꼼수로 자신의 정책을 드러내 보였다. 혹여나 이제라도 국민들의 분노를 알고 있다면 다른 것은 둘째치더라도 자신의 복지공약만큼은 ‘신뢰와 약속’에 따라 지키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이조차 개악하고 지키지 못한다면 그때는 정권의 ‘리콜’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끝>


2012년 5월 3일 민중의소리

http://www.vop.co.kr/A00000499465.html


親삼성, 비정규직 양산, 의료비 증가…국민건강 담보로 투기하자는 정부

[기고]'송도 영리병원'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


지난달 17일 정부는 국무회의를 통해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했다. 

조선·중앙 '송도 영리병원'에 쌍수 들어
시행령 통과, 총선 끝나자마자 정부가 재벌에 안긴 선물

▲ 중앙일보 18일자 22면.

▲중앙일보 4월18일자 22면.


중앙일보는 "송도 하버드·존스홉킨스 병원 … 2016년 문 열 방법 찾았다"(4월18일자 22면) 기사에서 송도 경제자유구역기획단 이종석 지식서비스투자팀장의 "송도에 국제병원이 설립되면 연간 6만여명의 국내외 환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빌려 영리병원의 도입에 화답했다. 또 중앙일보는 "투자병원은 의료산업의 미래다"라며 의료영리화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왔다. 

조선일보도 "법적 장애물을 10년만에 걷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4월18일자 1면)며 환영하고 나섰다. 

이런 일이 물론 새삼스럽지는 않다. 지난해 7월경 중앙일보는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하는 기사를 무려 90여 꼭지 가까이 실었던 적 있다. 그해 8월 국회에서는 '영리병원' 법의 통과를 주문하고 나섰으나, 결국 여론의 뭇매를 맞고 법안 통과는 좌절된 바 있다. 그러자 9월 정부는 영리병원 지지자인 경제관료 출신의 임채민씨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했다. 

이번 시행령이 통과된 날은 4.11 총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주 월요일이었다. 정부는 총선 뒤 어수선한 틈을 타 재벌에 대한 막판 선물로 이번 영리병원 시행령을 준비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는 지난달 30일 보건복지부는 지식경제부의 시행령에 맞춰 '시행규칙'을 공시하기에 이르렀다. 국민건강을 지켜야 하는 보건복지부가 '영리병원'과 관련해서 완벽하게 지식경제부의 똘마니 역할을 해낸 셈이다. 물론 이러기 위해서 지난해 경제관료 출신을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하지 않았겠나 싶다. 

하여간 정부는 총선 뒤 '뒤숭숭한 민심'과 수많은 정권비리, 미국 광우병 발생 등 어수선한 틈을 타 '영리병원'을 도입하기 위한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영리병원=친재벌·삼성...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이렇게 정부는 영리병원을 집효할 정도로 추진하려고 하는 걸까? 

우선 의료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의료를 영리화하자는 분'들의 핵심논리는 '의료는 산업이며, 규제를 풀어 투자처로 병원을 활용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 경쟁력 강화' 같은 애매모호한 말로 포장해도 "누가 돈을 더 버는 정책일까?" 물으면 답은 분명하다. 바로 병원과 투자자들이 돈을 '더' 벌 수 있다. 

하지만 의료비는 증가한다. 그런데 이걸 왜 국민들이 찬성해야 하나? 지금도 큰 병이 나면 병원가기가 무서울 만큼 체감 병원비는 비싸다. 이전에는 경쟁을 하니 '의료비가 싸진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했지만, 최근에는 병원비가 싸진다는 이야기까지는 안 한다. 하여간 이분들은 세상 모든 것이 돈벌이기 떄문에, 인간의 건강도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삼성재벌의 이익'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이번 시행규칙도 잘 들여다 보면 외국기관과의 연계, 그리고 그 명성도 등이 고려사항에 들어있는데, 이는 송도에 투자컨소시엄을 만든 삼성을 위한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사실 2000년대 초반 영리병원 논란이 시작될 때부터 삼성생명(민간의료보험)-삼성병원(영리병원) 모델이 폭로된 바 있고, 최근 들어 삼성이 차세대 동력으로 바이오산업을 거론한 바도 있다. 

실제로 현재 한국의료의 영리화는 삼성과 현대 양대 재벌이 주도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절대' 아니다. 삼성서울병원과 현대아산병원의 경영선진화가 실제로 '의료진에 대한 인센티브', '병상경쟁', '부대사업 확장', '고가의 건강검진도입' 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영리화 과정을 촉발 시켰다. 현재 이들 병원은 하루 외래환자만 1만명에 육박하는 '매머드급' 병원이 되었다. 

특히 삼성서울병원의 법인은 삼성생명 공익재단인데, 삼성생명 공익재단은 삼성생명 주식을 5% 가량 가지고 있다. 즉, 현재 구조에서도 삼성서울병원은 삼성생명의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삼성이 송도에 영리병원을 짓게 된다면, 이 병원은 공식적으로 병원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는 삼성의 의료산업 네트워크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를 확산하려고 할 것이 틀림없다. 

미국을 보고도 모르나? 결국 건강보험 재정 파탄날 것

이것이 결국 '뱀파이어 효과'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즉 영리병원이 의료비를 올리면서, 다른 병원들도 의료비가 점차 따라 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료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영리병원과 연계된 민간보험상품이 나오면서 의료비는 더욱 급증하고, 향후 건강보험 필수가입등이 와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건강보험체계가 붕괴할 수도 있다. 필수가입이 와해되면 부자들이 먼저 민간보험으로 옮겨 타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쇄적인 흡혈효과가 있기 때문에 영리병원은 단순한 단일 병원의 문제일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미국으로 이민 간 노인들이 미국의 의료비 감당 때문에 역이민하고 있다는 기사가 언론에 공개되었다.다. 실제로 미국에 이민간 한국인들이 의료비 등으로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한 번 병원에 가면 평생 모은 재산을 몽땅 날리는 것은 물론이고,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다. 미국은 알다시피 민간의료, 영리병원의 천국이 아닌가? 미국의 영리화된 의료체계가 한국에도 이런 식으로 영향을 준다. 내국인 영리병원의 의료비 증가가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고용창출? 의료서비스질↑?
영리병원은 비정규직 양산 기관 다름 아냐


그런데도 이런 영리병원이 '좋은 점도 있지 않은가?'라고 하는 분들이 있다. 

우선 고용창출에 유리하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투자가 있으므로 당연히 고용은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비영리병원 등과 비교해 환자대비 의료진의 수 등 모든 부문에서 영리병원의 고용효과가 낮다. 유일하게 고용율이 높은 부문은 병원 경영진이다. 물론 병원 경영진의 월급도 영리병원이 더 높다. 즉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 보다 고용창출 효과도 낮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될 뿐이다. 고로 주주들과 일부 경영진에게만 유리하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는 당연한 결과다. 영리병원은 이윤배당이 우선이라 인건비를 대폭 삭감하거나 비정규직화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나마 인력창출조차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증가이다. 한국은 그렇지 않아도 병상당 간호인력등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대형병원들은 지금도 상당수 의료인력을 외주한 상태이다. 실제 병상당 고용인력이 많고 정규직을 채용하는 곳은 스웨덴처럼 공공병원이 대부분인 무상의료를 실현하는 나라들이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라면 공공병원을 더 설립하거나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것이 해법이다. 

다큐멘터리 '하얀정글' 중 한 장면.

다큐멘터리 '하얀정글' 중 한 장면. 한국판 '식코'라 불리는 '하얀정글'은 힘없는 사람들을 내모는 의료계의 불편한 진실을 고발한다.


의료서비스의 질이 좋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영리병원은 돈벌이를 위한 것인 만큼 피부, 미용성형 등 돈벌이가 되는 분야의 의료서비스 질은 상승할 수 있다. 또한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패키지는 질이 더 좋아 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필수의료서비스 분야는 정반대다. 미국에서는 영리병원 환자가 비영리병원으로 갔다면 연 1만 4천명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투석환자 같은 만성환자면서 가난한 환자들에 대한 시설과 의료인력충원에는 인색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무엇보다 영국, 프랑스, 독일 같은 무상의료 선진국들이 의료비 지출대비 효과에서 미국 같은 영리병원 천국보다 앞선다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 '도박 한 번 해보자고? 공공의료 확충해도 모자랄 판

이처럼 외국에서 영리병원을 도입했던 나라들에서 이미 숱한 문제점이 들어났고, 영리병원의 이점으로 간주되고 있는 부분들은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이제는 일단 한번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을 해보고 평가하자는 주장도 한다. 정말 무책임한 주장이다. 

의료제도는 한 번 잘못 가면 돌려놓기가 어려운 분야라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수 많은 연구논문으로 영리병원 문제점이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망가져 봐야 정신차리겠다는 것은 황당할 따름이다. 개인사업이라면 저질러보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한국의료의 근간을 뒤흔들고, 국민건강과 환자생명을 담보로 한 실험이 용납될 수 있을까? 

실제로 경제자유구역가 이미 6군데가 넘고, 내국인 진료가 되므로 사실상 전국이 영리병원이다. 더구나 공공의료가 7%정도인 한국에서 공공의료를 확충해도 모자랄 판에 '영리병원 한 번 경험해보자'는 주장은 한국 의료를 도박판으로 보는 것이다. 또 한미 FTA의 통과로 외국인이 투자한 영리병원을 되돌리기는 이제 너무나도 힘들어졌다. 따라서 한번 해보자는 주장은 영리병원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의 다름 아니다.

무상의료정책 선언한 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 본 받아야

최근 메트로 9호선이 임의로 요금을 올리겠다고 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오세운, 이명박이 서울시장을 할 당시 서울의 공공시설을 민영화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문제는 9호선의 경우를 봐도 한 번 '영리화 혹은 민영화' 한 공공사업을 되돌리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는 친시장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물론 박원순 서울시장은 9호선 지하철의 공공화까지 지시하며 강력하게 제지하고 나섰다. 시민들이 시장을 잘 뽑았다고 자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지금 송도 영리병원은 어떠한가? 민주통합당 출신의 송영길 인천시장은 걸핏하면 송도 영리병원에 반대하기는 커녕 지지하고 나섰다. 무상의료정책을 선언한 민주당이 자신의 당 출신인 시장의 의료영리화 추진을 막지는 못할 망정, 영리병원에 흐물흐물한 태도를 보인다면 누가 민주당의 무상의료정책을 신뢰하겠는가? 

민주당의 이러한 태도에 국민들의 지지는 회의에 빠질 것이다. 국민들이 박원순 시장을 뽑고 흐뭇해하는 것처럼, 송영길 인천시장도 시민들을 흐뭇하게 할 인천시 제 2의료원 같은 공공의료정책에 지원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시점에서 야당출신 시장을 뽑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영리병원을 막는데 민주당이 끝까지 진지하게 임해주길 기대한다.<끝>

영리병원 절대안돼

23일 오후 무상의료 국민연대, 의료민영화저지 범국민운동본부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영리화 정책의 일환인 경제자유구역법 시행령 개정을 규탄했다.


2013년 10월 12일 레프트21(113호)

http://left21.com/article/11484

의료 복지도 먹튀하고 민영화로 달려가는 박근혜


정형준 (재활의학과 전문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박근혜 정부의 의료 관련 공약의 핵심은 ‘4대 중증 질환 1백 퍼센트 국가 보장’이었다.

‘1백 퍼센트 국가 보장’이란 구호는 그동안 진보진영이 주장한 ‘무상의료’를 차용한 것이고, 이를 4대 중증 질환에 먼저 적용하겠다는 것은 정책의 ‘현실성’을 드러내려는 시도였다. 즉, 부분적이지만 ‘실현하는 무상의료’로 대중을 사로잡으려는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당선하자마자 인수위 시절에 간병비를 제외한다고 밝혔고, 취임 후에는 3대 비급여(차등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를 모두 제외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공약은 점점 누더기가 돼 갔다. 지금은 사퇴한 보건복지부 장관 진영은 인사청문회에서 이 공약이 ‘선거 캠페인용’일 뿐이라고도 했다.

6월에는 비급여뿐 아니라 건강보험 보장 영역(치료 영역)도 전액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부담금을 유지하겠다고 했다. 최종으로는 4대 중증 질환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돈이 기껏해야 이전보다 25퍼센트 정도 경감되는 안이 제시됐다.

4대 중증 질환은 원래 건강보험급여 본인부담금이 5~10퍼센트밖에 안 되는 보장성이 가장 높은 구간이었다. 이 구간의 보장성을 1백 퍼센트로 만드는 것조차 지키지 못한 것은 사기였다.

이처럼 공약을 누더기로 만들고 사기 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의료정책 노선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다음 날 한국 역사 최초로 공공의료기관 폐원 시도가 일어났다. 바로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폐원 시도였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의료ㆍ복지정책의 방향을 예측케 했다. 일단 지자체의 복지 축소에 대해 중앙정부는 철저하게 ‘불개입’을 내세웠다. 즉, 정부가 복지에 대해서는 신자유주의적 방임을 천명하고, 지방정부 탓을 하면서 실제로는 복지 축소의 면죄부까지 얻은 것이다.

둘째, 그나마 건강보험으로 대표되는 보험 부분에서는 째째한 복지 확대는 이루더라도, 공급 부문에서는 병원자본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6개월간 ‘메디텔’, ‘보험업의 환자 유치ㆍ알선’, ‘원격의료’, ‘영리병원’ 등 다양한 의료민영화, 영리화 시도를 계속하면서, 병원으로 돈을 벌겠다는 의지를 불살랐다.

그나마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재정도 국민들이 병원을 가지 않아 생긴 건강보험 흑자를 이용하는 방안만 제시한다.

의료비 상승

또한, 추가예산에 대해서는 이미 기획재정부안 중 하나로 부가가치세에 건강보험료를 추가하는 ‘건강세’ 등을 거론했다. 즉, 의료민영화는 하면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노동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만 하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나 치료재, 검사 등(비급여)에 대해서도 ‘선별급여’라는 차등 급여구간을 두려고 한다.

병원들이 진료비 인상의 주원인인 비급여를 무분별하게 늘리는데,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으면 그 가격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그래서 비급여 진료 중에 일부에 대해 건강보험이 30~70퍼센트만 지원하는 선택구간을 두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병원들이 제멋대로 가격을 정해 받던 각종 검사 비용 등의 가격이 정해지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 의료비 상승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비급여 항목들은 대부분 비필수의료(성형, 미용 등)거나 아직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것들인데, 이를 반쯤 인정해 주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병원들은 이런 진료를 크게 늘릴 것이다. 다른 모든 진료가 그렇듯 환자들은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동안 이런 비급여 항목에 대한 심사평가기준이 없어 곤란을 겪던 민간보험 입장에서는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건강보험의 부분 부담으로 보험 지급액을 일부 줄일 수 있고, 가격 표준화로 분명한 재정계획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 기초가 되는 심사평가는 건강보험에서 다 해 주니 일석이조다.

사실 가장 효과적인 가격 통제는 정부가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건강보험 보장성이 높아지면 정부가 대부분의 진료비를 결정하고 통제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민간의료보험은 필요없게 된다. 이 때문에 필요한 비급여를 모조리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것은 민간보험에 직격탄이 되고, 이를 막는 것이 민간의료보험에게는 사활을 걸 문제다. 선별급여라는 꼼수가 나온 이유다.

이미 박근혜 정부는 5월 민간의료보험이 외국인 환자를 유치ㆍ알선할 수 있게 해 주고, ‘메디텔’이라는 의료호텔을 통해 병원과 연계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민영화와 민간보험, 그리고 병원자본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이를 위해 자신의 공약은 완전 누더기에 사기가 돼 여론의 지탄을 받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끝>

2013년 4월 15일 레프트21(102호)

http://left21.com/article/12880

마르크스주의로 세상 보기왜 자본주의는 건강·생명을 망가뜨리는가


정형준

진주의료원 폐업 시도를 계기로 의료불평등이 부각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민간병원보다 저렴한 공공병원에서 진료받는다. 또, 소득이 높을수록 의료이용률이 더 높고, 질병에 걸릴 확률은 낮고, 기대여명은 길다.

즉,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는 의료 이용은 물론 건강 상태 등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19세기 중후반까지만 해도 이처럼 병의 원인을 환경과 사회관계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 중시됐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에서 장티푸스, 결핵, 구루병의 병리와 역학을 상세하게 분석하면서, 의학적 개입만으로는 이런 질병들이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인 독일의 비르효(R. Virchow)는 실레지아 지방에서 발생한 발진티푸스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토지 개혁과 소득재분배, 주거 개선, 그리고 다른 사회적 프로그램을 요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의료가 ‘개인의 질병 치료’로 협소화되기 시작했다.

간절한 소망 진주의료원의 한 환자가 두 손을 꽉 쥔채 진주의료원 폐업에 반대하는 집회에 함께 하고 있다. ⓒ이윤선

 이런 변화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의료를 사회구조와 연결시키면 결국 지배계급에 대한 공격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질병의 원인을 세균이나 개인의 특성으로 돌리고 싶어 했다.

둘째는 의료를 더 쉽게 상품화하려는 시도 때문이었다. 질병의 원인이 개별 세균이나 개인의 생물학적 상태라면, 그 치료 방법도 상품으로 판매되기 적합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의료서비스가 분화되고 각각에 가격이 쉽게 매겨졌다.

그러나 이런 개별 의료기술의 발전보다는 자본주의 생산 발달과 대중투쟁이 건강에 미친 영향이 훨씬 크다. 수명 증가와 영아사망율 감소는 사실 영양상태, 공중위생, 식품위생이 향상된 덕분이었다.

또, 제2차세계대전 시기의 영국, 혁명 이후의 쿠바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문제 해결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묻는 분위기가 고조될 때 건강지표들도 향상된 바 있다. 그리고 서구의 ‘무상의료’ 제도, 한국의 전 국민 건강보험 역시 대중투쟁의 산물이었다.

물론 의료기술의 발전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영향마저도 자본주의에서는 심지어 왜곡을 겪는다. 대표적인 것인 정신질환들이다.

우울증이나 자살 등은 사실 사회적으로 영향을 받음에도, 자본주의 의료에서는 개인 책임으로 환원된다. 의학기술의 발전은 수많은 뇌신경전달물질을 약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결국 정신질환의 치료로 약물이 많이 사용되게 됐다.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이러한 과정을 각종 연구 등을 통해 확산하고, 당장의 효과를 기반으로 하나의 의학적 정설을 만들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란 개념은 미국에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을 치료하면서 만들어졌고,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는 교육 통제에 어긋나는 아이들을 질병군으로 묶으면서 만들어졌다.

협소화와 왜곡

즉 질병을 철저하게 개인 책임으로 돌리는 과정과 의학기술의 발전이 결합해, 새로운 질병과 약품시장을 창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외, 환경오염, 잘못된 작업환경 등이 새로운 질환을 만들어 낼 때도 그 해결책은 약물치료, 개인요양 등에 국한됐다.

현재의 의학적 치료는 결코 질병의 원인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노동자들도 질병의 원인이 체제 자체이고 소외된 노동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이것을 바꿀 집단적 힘을 깨닫지 못하면 좌절을 느끼게 된다. 즉 분노가 이윤 체제로 향하기보다는 의학기술, 약물, 치료 등등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의료는 이윤 체제와 환경이 만들어 내는 문제점을 숨기는 기능과 함께, 하나의 새로운 상품시장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 때문에 미디어를 통한 수많은 건강 강좌나 명의 칼럼이 실제로 대중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과정을 극복하는 길은 사회적 차원의 해결책을 강조하는 데 있다.

우선, 자본주의하에서도 의료의 시장화ㆍ상품화를 저지하거나 또한 필수의료를 무상으로 하려는 사회적 노력은 여전히 중요하다.

근본에서는 돈이나 신분에 따라서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소외, 경쟁, 잘못된 작업환경이 사라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끝>

2012년 7월 23일 레프트21(86호)

http://left21.com/article/11484

서평,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계급 사회가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가난한 사람들이 더 자주 아프고, 병원 치료받기도 어려운 현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노숙인이나 외국인 노동자, 비정규직들이 더 자주 아프고, 제대로 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무료 진료나 의료 봉사의 대상은 언제나 이런 사회적 약자들이다.

저자는 2010년부터 <한겨레21>에 직접 체험한 바를 기획기사로 실었고, 이를 정리해 이번에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돈이 없고, 보호자가 없어서 고통없이 죽으려고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온 사람들, 야간노동으로 늦게 귀가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을 응급수술해야 했던 사람들, 피를 토해야만 응급실로 이송될 수 있었던 노숙인 등 호스피스 병동과 외상외과, 응급실에서 직접 숙식하며 목격한 바를 구체적으로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기술한다.  

△《대한민국 건강 불평등 보고서》, 나눔의 집, 김기태 지음. 272쪽, 1만4천 원

당뇨병

또한 그곳에서 느낀 문제점들, 예를 들면 돈이 되지 않아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 ‘중증외상센터’, ‘경영합리화’를 한다며 노숙인을 치료하지 않으려는 공공병원 응급실, 민간이 관여하는 응급이송체계 등 저자가 경험한 의료제도의 숱한 문제점 또한 보여 준다.

이 책의 백미 중 하나는 당뇨병에 걸린 두 사람의 생애를 대조해서 보여 주는 부분이다. 같은 병(당뇨)에 걸린 쪽방촌 노동자와 중소기업 사장이 한 사람은 합병증에 시달리고, 한 사람은 건강을 유지하는 현실을 이어지는 쪽마다 대조해서 보여 준다.

저자는 《평등이 답이다》를 쓴 리처드 윌킨슨 같은 유명 연구자들의 성과를 한국의 구체적인 상황을 빌어 르포 형식으로 기술했다.

다만, 빈곤과 건강이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 주지만, 왜 빈곤한지 왜 불평등한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대안이 재분배 확대, 지역 격차 해소 등에 한정되는 것도 아쉽다. 

그럼에도 저자는 가감 없는 사실만으로 ‘계급 사회가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는 점을 어떤 명시적 문구보다 더 잘 전달하고 있다.<끝>

2012년 3월 17일 레프트21(77호)

http://left21.com/article/10974

서평,《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복지국가의 동력은 ‘계급타협’이 아니었다


정형준

<레프트21> 77호 | 발행 2012-03-17 | 입력 2012-03-15

△아스비에른 발 | 남인복(옮긴이) | 부글북스 | 379쪽 | 17,000원

이 책의 원제는 ‘복지국가의 흥망성쇠’다. 저자는 북유럽 복지모델의 대표격인 노르웨이에서 30년간 노동운동을 해 왔고, 그 경험으로 복지국가의 성립과 쇠퇴를 분석적으로 다뤘다.

첫째, 복지국가는 노동운동과 강력한 노동조합의 산물이었다. 또한 ‘20세기 전반기 동안(러시아혁명 포함) 자본과 노동의 세력균형을 바꿔 놓은 투쟁과 대결의 결과’였다. 

따라서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평화적 협상과 협력으로 복지국가를 이룬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것은 운동의 조직적 힘과 당시의 사회적 대결이라는 원인을 간과한 것이다. 

또한 복지국가가 안착하면서 마치 ‘사회협력 이데올로기’가 복지국가의 동력인 것으로 포장됐으나, 저자는 실제 복지국가는 노동의 ‘권력관계’가 자본보다 우위에 있을 때만 유지되었다는 점을 입증한다. 

무엇보다 사회협력 이데올로기는 도리어 사실상 복지 축소의 원인이 됐다. 또한 역사적으로 자본가들도 복지가 사회주의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 때 타협으로 복지국가를 받아들였다. 

결국 ‘계급 타협’조차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의 힘에 바탕을 뒀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둘째,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공세에 복지국가들도 공격받고 쇠퇴했다. 저자는 지난 30년간 가장 수준 높은 복지를 유지한 노르웨이조차 ‘타이타닉의 갑판’일 뿐이었다고 주장한다. 

북유럽 복지국가도 민영화, 노조 조직률 저하, 금융자본의 확대, 독점과 부패 등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정치적으로 ‘사회협력 이데올로기’에 감염된 복지국가의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정당들은 지난 30년간 공격에 취약했고, 일부는 속수무책이었다. 

1990년대 프랑스의 강력한 노동운동 같은 대중투쟁만이 이러한 신자유주의 공격을 좌절시킬 수 있었다. 저자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에서조차 빈부격차 확대, 연금 축소, 공공주택 축소, 에너지시장 민영화 등이 지난 10년간 진행돼 왔다.

권력관계

그중에서도 ‘워크페어’(생산적 복지) 정책은 하나의 상징적 이데올로기 공세였다. 저자는 ‘워크페어’ 정책의 실질적 실패를 차치하고서라도, ‘일을 하면 지원한다’는 수사는 일을 하지 못하면 처벌받게 될 것이라는 인식을 퍼뜨렸고, 노동자들 사이에 ‘불신과 의심’을 심어 놓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때문에 저자는 ‘워크페어’ 정책을 사회민주주의정당과 심지어 노동조합까지 받아들였다는 점에 개탄하며, 명확한 반대를 주문한다.

셋째, 저자는 이런 공격에 충분한 대응을 못한 출발점을 ‘계급 타협’의 시대에 시작된 노동운동의 탈이데올로기화와 탈정치화에서 찾는다. ‘워크페어’나 ‘노동의 잔혹화’ 같은 자본의 공격에 대한 대응을 체제가 아니라 개인에게서 찾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시장자유주의자의 사상을 흡수한 것이 약점이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빈곤과 실업 등을 만들어 낸 원인보다 현상에 집중한 정치를 ‘상징정치’라고 지칭하면서, 좌파정당들도 ‘법적 형식주의’에서 ‘권력 현실주의’로 관심의 초점을 옮겨야 하며, ‘상징정치’를 폐기해야 한다고 옳게 지적한다.

저자는 실제 통계와 여러 전문가들의 분석으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고 현 시기 복지국가의 문제점을 설명한다. 

물론 저자가 자본과 노동의 ‘계급 세력균형’이라는 용어보다는 다소 추상적인 사회학 용어인 ‘권력관계’를 사용해 이러한 변화를 설명한 점은 아쉽다. 

번역자가 노동자를 ‘근로자’로 번역한 점 또한 안타깝다. 

그러나 이 책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알려줘, 현재 복지 논쟁에서 큰 시사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저자가 옳게 주장했듯이 복지국가 건설에 중요한 것은 ‘세금과 재분배’가 아니라 ‘권력관계’다. 그리고 그 ‘권력관계’는 시장자본주의에 맞서 민주주의를 옹호한 투쟁을 강화할 때 확보된다.<끝>


2010년 10월 2일 레프트21(41호)

http://left21.com/article/8655

시민회의의 틀린 계산법


정형준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내세운 구호는 ‘1만 1천 원의 기적’이었다. 1인당 1만 1천 원만 더 내면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회의는 OECD 국가들의 보장성 수준을 목표로 공공의료비 비중을 산정해 계산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계산법의 근간이 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확충 및 보장성 강화를 위한 전략 개발 연구’(2009년 9월)를 보면 2011년까지 공공의료비 비중을 OECD 평균 수준(73.1퍼센트)으로 높이는 데 지역가입자는 1인당 월평균 2만 1천4백75원, 직장가입자는 1만 7천3백11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 

보고서는 “1인당 월평균 1만 5천 원 내외, 가구당 4만 원 내외의 건강보험료를 추가 부담하면 건강보장 선진국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전 국민이 누릴 수 있다”고 제시한다. 

그런데 이 보고서 내용의 대부분을 근거로 한 ‘시민회의’가 막상 정치적 구호로는 필요한 보험료 인상액을 대폭 낮춰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시민회의의 계산은 모두 OECD 평균에 준하는 공공의료비 비중을 목표로 추계한 것이다. 

그러나 OECD 평균 수준의 공공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에서 OECD 평균 공공의료비 비중을 추계의 근거로 사용한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병상수를 기준으로 OECD 평균 공공병상 비중은 70퍼센트를 넘지만 한국은 10퍼센트가 안 된다.

따라서 한국에서 공공의료비 비중을 높이려면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 외에도 지금까지 한 번도 지켜진 적 없는 국고지원 비율이 지켜질 거라고 전제한 점과, 1백만 원 의료비 상한제를 위한 예산을 별도로 책정하지 않고 계산한 것 등이 허점이다.<끝>

2010년 10월 16일 레프트21(42호)

http://left21.com/article/8717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노동자 보험료 선제 인상은 “사회연대” 아닌 양보일 뿐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

 

보험료 우선 인상을 주장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 참여 인사들이 그동안 언론에 기고한 글을 모아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 시민의 힘으로 출발》을 펴냈다. 

이 책은 ‘시민회의’를 이해하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저자들은 ‘시민회의’를 진보진영이 비판한 것을 두고는 피상적으로만 대응한다. 

대표적으로 ‘노동자들이 먼저 양보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 책은 답하지 않는다. 

낸 것보다 더 받기 때문에 양보가 아니고, 노동자가 내는 만큼 ‘법적으로는’ 기업과 국가도 낼 것이므로 손해가 아니라는 게 답변이라면 답변이다.

그러나 보험료 인상에 대한 노동자들의 거부감은 보험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건강보험 제도가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복지 제도임에도 그동안 노동자들의 부담이 부자들이나 기업주들에 견줘 상대적으로 높고 충분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 건강보험료가 누진율이 아니라 정률로 부과되고 부자들의 납부 탈루가 너무나도 쉽다. 이명박조차 2002년까지 편법으로 보험료를 2만 원씩만 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민간보험’보다는 낫다는 논리로 이런 문제들에 눈감아 버린다. 건강보험은 소득만큼 내고 필요한 만큼 받는다고 과장한다. 이런 제도들로 “사회연대”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만들어 낸 부를 기업주들이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득만큼 내고 필요한 만큼’ 받는 복지 제도란 있을 수 없다.

‘시민회의’가 부러워하는 영국, 프랑스, 스웨덴의 보장성 높은 의료제도는 노동계급이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지 먼저 보험료를 인상하겠다는 식의 ‘사회연대’ 선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시민회의’는 노동자들의 보험료를 올리는 것을 “혁신적”인 “진보의 패러다임 변화”로 받아들여 달라고 주문한다. 오건호 위원의 말을 빌리면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 대중교통체계 개편으로 정치적 권위를 획득했듯이, 진보운동도 모델 사례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혁신과 패러다임 변화는 자본가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것일 뿐이다.  

박형근 교수는 “‘건강보험 하나로’가 현실화되는 것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버지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파에게까지 추파를 던지는 듯한 인상을 줘 영 찜찜하다. 

이런 후퇴와 양보를 전제로 한 ‘모델 사례’는 복지 확대의 원동력인 노동자들의 투쟁과 계급의식에 악영향을 줄 뿐이다.

심지어 최근 자유주의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조차 먼저 국가ㆍ기업의 부담으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자고 주장하자 ‘시민회의’의 처지는 궁색해졌다. ‘시민회의’가 민주당과 다른 점이 좀더 노골적으로 노동자들의 양보를 주장한다는 점이 됐기 때문이다.

‘시민회의’ 주도자들은 진보진영이 제시하는 다른 대안들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보험료 우선 인상 철회는 논의할 수 없다고 한다. ‘시민회의’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대의가 아니라 보험료 우선 인상 즉, 노동자들의 양보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보험료 우선 인상을 정당화하는 변명으로 가득 찬 이 책은 ‘시민회의’의 군색한 처지를 보여 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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