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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의료민영화의 지옥문, 결국 열리는가

정형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발행시간 2014-07-01 17:18:10최종수정 2014-07-01 17:15:56

박근혜 정부는 지방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6월 10일 핵심 의료민영화 정책의 추진을 천명했다. 다름 아닌 작년 12월에 밝혔던 의료부문 투자활성화 대책 중 가장 문제가 된 병원의 영리자회사 허용과 부대사업 확대안이다. 이미 국민들과 수많은 전문가들이 이 정책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병원노동자들(병원 노동조합인 보건의료노조와 의료연대노조)도 파업을 벌였다.

우선 정부가 추진하려는 이번 정책은 사실 아주 단순하다. 병원 영리자회사 허용은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게 된다. 그 동안 한국의 병원은 법인이 운영하는 경우 비영리법인만이 개설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병원에서 수익을 거두어도 외부투자자들에게 배당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고작 병원건물 증축, 병상증설이나 의료장비등에 재투자하는 걸로 끝났다. 그러나 영리자회사를 허용하게 되면 실제로 병원의 수익을 다양한 방법으로 외부로 유출할 수 있고, 투기자본 등에 배당할 수도 있게 된다.

부대사업 확대는 병원이 환자진료뿐 아니라 모든 다른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사실상 ‘의료복합기업’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정부 안에 따르면 부대사업의 범위를 단순히 확장한 수준을 넘어서, 건물임대업을 네가티브 리스트로 만들어 사실상 모든 사업을 병원에서 할 수 있게 할 요량이다. 즉 지금까지는 병원이 환자진료를 위해 존재하였지만, 앞으로는 환자들을 유인해서 환자들을 소비자로 할 수 있는 모든 사업을 하는 멀리플렉스센터가 되게끔 하는 것이다.

특히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의료복합기업’은 투자가 가능한 ‘영리회사’가 되므로, 이제 한국에서 병원은 완벽한 상법상 사업체로 재탄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의 건강이나, 환자의 입장에 대해서는 약간의 고려도 없이, 오로지 병원자본과 투자자들의 이익만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환자는 이제 정말 '고객'이 되고, 병원은 이제 정말 '기업'이 된다. 다름 아닌 ‘의료’의 패러다임의 완벽한 변화다.

의료민영화 저지 상징의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노조) 조합원들이 24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보건의료노조 총파업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의료민영화 저지 상징의식을 하고 있다. 이날 보건노조는 1차 경고파업을 진행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이 폐기되지 않을시에는 다음달 22일 전체파업으로 진행할 것을 밝혔다.ⓒ김철수 기자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 결과 ‘불가’로 결론난 의료민영화 정책

그런데 이런 중요한 문제를 정부는 일방적으로 그것도 어떠한 제재조치도 받지 않고 시행하려 한다. 우선 영리자회사 허용은 가이드라인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한다. ‘가이드라인’이란 말 그대로 어떤 정책의 최소한의 테두리만을 설명한 것으로 이는 어떠한 법적 권한도 가지지 못한다. 즉 가이드라인은 ‘지침’일 뿐 어떠한 규제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정부발표에 따른 여러 가지 남용방지 장치는 그냥 공염불일 뿐이다. 게다가 이런 이유로 가이드라인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그냥 정부가 입법예고를 하거나 명문화할 의무가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매일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바꾸는 걸 제어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영리자회사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다는 것 자체가 얼렁뚱땅의 결정판이고, 독재적 발상이다. 문제는 이렇게 대충 뭉게면서 실제로 영리자회사가 병원에 하나둘씩 생기게 되면, 그때는 어떠한 규제나 통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여러 가지 법적장치를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즉 일단 저질러 놓고 보겠다는 심보다.

여기에 부대사업 확대 역시 의료법 개정사항임에도 대충 행정부가 임의로 바꿀 수 있는 시행규칙에서 손보려 한다. 의료법 제49조에서 병원 부대사업 범위를 규정하고 있고, 의료의 공공성과 영리추구금지 규정 및 부대사업외의 사업을 할 때 설립취소사유까지 규정한다. 이는 부대사업의 범위의 한정을 법에서 명시하고자 한 것이다. 특히 이번 시행규칙은 병원이 의료행위에 집중하고 제한된 범위에서만 부대사업을 할 수 있도록(이는 국민의 보건의료권이 확실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한 의료법을 아예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이미 국회 입법조사처의 법률자문에서도 다수의 전문가들이 행정입법인 시행규칙으로 법률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불가함을 밝힌바 있다.

또한 의료법에서 부대사업은 환자 또는 의료기관 종사자등의 편의를 위한 것으로 휴게음식점 등에 준하며, 공중위생에 이바지하고 영리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안은 위 위임한 범위내에 있다고 도저히 볼 수 없다. 예를 들면 여행업, 국제회의업, 외국인환자유치, 목욕장업, 수영장업, 종합체육시설업, 건물임대업 등은 큰 규모와 시설을 요구하며 환자와 종사자의 편의와는 무관한 영리사업이다. 특히 네가티브 방식의 건물임대는 사실상 병원 부동산을 이용한 무제한의 영리행위 허용이 된다. 즉 앞서 말한 대로 의료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별일 아닌 듯이 행정부에서 임의로 뚝딱 처리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얼렁뚱땅식의 정책이 실제 시행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국민의료비는 폭등하게 된다. 국민건강보험이 남아있고, 병원이 의료업이 아닌 다른 사업에서 돈을 버니 의료비는 그대로 라는 것이 정부의 변명이다. 그러나 병원이 하는 대부분의 사업이 사실상 환자와 환자보호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일 수밖에 없다. 또 의료기기와 약품 연구개발, 판매 등은 진료형태까지 바꾸어 가뜩이나 많은 비보험과 과잉진료를 부추길 수 있다. 특히 이를 제한할 장치도 전혀 없는 상황인데 말이다.

여기다 비보험진료 및 의료외비용의 급증은 사실상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급격히 저하시킬 것이다. 가는 비에 옷이 젖듯이, 국민건강보험은 점점 고사되어 가고, 실제로 민간의료보험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리고 그쯤되면 국민건강보험은 공(公)보험으로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데도 국민건강보험이 있으니 상관없을까?

의료재앙의 문이 열린다

게다가 이런 식의 고비용 의료체계와 영리적 의료행태는 단순히 의료비만 올리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는 경쟁의 격화, 병원의 구조조정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일부 대형병원들과 소수의 승자들이 의료체계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고 독점은 심화된다. 그런데 의료에서는 이러한 편중과 재편이 고스란히 환자들의 피해로 되돌아온다는 점이 문제다. 예를 들면 동네에 있는 병원의 진료과목이 바뀌고, 병원이 통째로 사라질 수도 있다. 비까번쩍한 병원에서 고액치료를 받지 않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적정진료를 받을 공간도 사라질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가 된다.

특히 아프면 병원에 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일반 상품처럼 돈이 없으면 소비하지 않으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영리화 되면 될수록 재앙이 된다. 이미 한국의 의료는 지난 20년간 빠르게 영리화 되어왔다. 현재의 의료불평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정말 의료재앙의 지옥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 그것도 얼렁뚱땅 강행하려 한다. 이 때문에 병원노동자들이 나섰고, 국민들이 나서고 있다. 국회에서 논의해야 되는 사안을 행정부가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있고, 국민을 무시하고 있는데, 국회는 참 태평하다. 제1야당은 이에 대해 당론하나 밝히지 못해, 성명서 하나도 국회의원들 개인 판단에 맡겨둔 상황이다. 정말 정부에 맞서야 하는 야당조차 제 역할을 못하는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국민들까지 제 역할을 못할 수는 없다.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병원노동자들의 파업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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