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20일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society/201109/h2011092021281121950.htm

국민건강 높고 실험 안돼, 무상의료의 길로 가야


[이슈논쟁] 국민건강 놓고 실험 안돼, 무상의료의 길로 가야
●반대
고용창출 효과 낮고 그나마 비정규직만 증가
의료 분야는 잘못 가면 되돌리기 어려운 분야

  •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입력시간 : 2011.09.20 21:28:11
페이스북
미투데이
트위터
싸이월드 공감
기사 글자 크게보기
기사 글자 작게보기
인쇄
기사 메일 보내기
기사 구매
  • 관련사진
7월부터 한 중앙일간지가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하는 기사를 크게 싣고 있다. 여기에 현 정부는 강력한 영리병원론자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하는 강수까지 뒀다. 수년간 영리병원과 관련된 논란을 보고 있자면, 매년 한번씩 모양을 바꿔서 나타나는 독감바이러스와 같다는 느낌이다. 매년 등장하는 영리병원 바이러스에 국민건강을 지켜야 하는 의료인으로서 예방접종 하는 심정으로 문제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영리병원론자 주장은 매년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그 핵심은 ‘의료는 산업이며, 규제를 풀어 투자처로 병원을 활용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 경쟁력 강화’ 같은 애매모호한 말로 포장해도 누가 돈을 더 버는 정책일까 물으면 답은 분명하다. 병원과 투자자들이 돈을 더 벌 수 있다. 하지만 의료비는 증가한다. 그런데 이걸 왜 국민들이 찬성해야 하나? 지금도 큰 병 나면 병원 가기 무서울 만큼 체감 병원비는 비싸다. 경쟁이 심화하면 의료비가 싸진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는걸 보면 이 문제는 일단락 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주장은 여전하다.

우선 고용창출을 위해 영리병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투자가 있으니 고용이 당연히 늘겠지만, 여러 연구를 보면 비영리병원등과 비교해 환자대비 의료진의 수 등 모든 부문에서 영리병원은 고용효과가 낮다. 유일하게 고용이 높은 부문은 병원 경영진이다. 물론 병원 경영진의 월급도 영리병원이 더 높다. 즉 영리병원은 고용창출효과도 낮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될뿐더러 주주들과 일부 경영진에게만 유리하단 이야기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영리병원은 이윤배당이 우선이라 인건비를 대폭 삭감하거나 비정규직화하는 것이 관행이다. 즉 그나마 인력창출조차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증가라는 이야기가 된다. 병상당 고용인력이 많고 정규직을 채용하는 곳은 스웨덴처럼 공공병원이 대부분인 나라들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라면 공공병원을 더 설립하거나 확대하는 것이 해법 아닌가.

의료서비스 질이 좋아진다는 주장은 어떤가. 영리병원이 돈벌이를 위한 것인 만큼 피부미용성형 등 돈벌이가 되는 분야의 의료서비스 질은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필수의료서비스 분야는 반대다. 미국에서는 영리병원 환자가 비영리병원으로 갔다면 연 1만 4,000명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투석환자 같은 만성환자면서 가난한 환자들에 대한 시설과 의료인력충원에는 인색하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영국프랑스독일 같은 무상의료국가들이 의료비지출대비 효과에서 미국 같은 의료영리화 모델보다 앞선다는 것도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왜 찬성론자들은 이런 자료를 못 본 척 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일단 한번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을 해보고 평가하자는 주장은 어떠한가. 필자는 이처럼 무책임한 주장을 본 일이 없다. 의료제도는 한번 잘못 가면 돌려놓기가 어려운 분야라 공공성이 더 강조된다. 그런데 이미 수 많은 연구논문으로 영리병원 문제점이 증명됐음에도 굳이 망가져 봐야 정신차리겠다는 체험마니아들을 어찌해야 하나. 개인사업이라면 저질러보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한국 의료 근간을 뒤흔들고, 국민건강과 환자생명을 담보로 한 실험은 용납할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이 이미 6군데가 넘고, 내국인진료가 되므로 사실상 전국 영리병원이다. 더구나 공공의료가 7%정도인 한국에서 공공의료확충을 해도 모자랄 판에 영리병원 한번 경험해보자는 주장은 한국 의료를 도박판으로 보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필자는 돈이 없어 환자를 진료하지 못하게 되는 현실, 역으로 돈 때문에 환자를 진료하는 현실이 가장 가슴이 아프다. 대다수 의료인들도 마찬가지로, 돈과 상관없이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꿈꾼다. 그런데 아픈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윤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는 목적까지 추가하는 영리병원을 어떻게 찬성할 수 있는가. 한국 의료는 이미 의사와 환자 신뢰가 어긋나 있다. 이들이 서로 믿고 치료하고 치료받는 사회로 가는 길은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대다수 선진국이 하고 있는 무상의료로 가는 길이어야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