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7일 건치신문

http://www.gunch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4740


한국 ‘의료관광’이 의미하는 것[논설]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

9월 5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신성장동력 성과평가 보고대회'에서 헬스케어•교육•관광 등 고부가서비스를 수출 주력산업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내용 중에서는 특히 ‘의료관광’ 사업 활성화를 빌미로 보험업자가 국외 판매 보험상품과 연계해 국내 의료기관에 외국 환자를 소개•알선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보험업자의 ‘환자 유인,알선’은 이미 2008년 이명박정부 초기에 의료법 개정안 등으로 시도 되었으나 촛불항쟁의 여파 등으로 철회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8월 17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연 자리에서 민간보험사의 해외환자 유치활동을 허용하는 방안추진을 발표했고, 이에 발 맞추듯 보건복지부가 민간보험사와 보험회사의 해외환자 유치와 관련된 공청회를 8월에만 몇 차례 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한 나라의 보건복지부가 경제논리에 휩싸여 기획재정부의 하수인역할을 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런 안타까움을 넘어 이젠 이 정부가 ‘영리병원 도입’이나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가 여론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자, 마지막으로 들고 나온 것이 ‘의료관광’ 활성화라는 명분이란 점이 놀랍다. 이에 한국에서 ‘의료관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장코자 한다.

첫째. 한국은 ‘의료관광’이 활성화 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인도나 태국, 싱가포르와 같은 ‘의료관광’ 사업으로 유명한 나라들은 실제로 한국보다 많게는 20배 적게는 5배 이상 인건비 차이가 난다. 또한 이들 나라들은 원래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나라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인건비에서 주요선진국과 2배 이상 차이가 나지 않고, 언어가 다르며, 관광사업이 큰 비중인 나라도 아니다. 이 때문에 지금껏 한국의 해외환자진료는 일부 피부,성형과 특정종교(통일교)방문을 제외하면 주재외국인이거나 재미교포들의 치료였다.
그럼에도 ‘의료관광’ 사업을 마치 크게 될 사업인 냥 포장한 것은 지금껏 ‘영리병원도입’을 비롯한 각종 의료영리화정책이 국내에서 저항에 부딪히자, 생각해낸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둘째. 설사 ‘의료관광’이 활성화되더라도 이익보다는 손해가 크다. 정부는 ‘의료관광’을 마치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큰 돈을 쓰고 가는 관광업의 일종으로 선전한다. 하지만 이미 의료관광사업을 시작했던 인도, 태국, 싱가포르 등도 ‘의료관광’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의료관광’으로 시작된 보험 외 진료, 외국인대상 영리병원 허가문제, 인력유출(brain drain)등으로 건강불평등은 심화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의료접근권은 감소되었다.

WHO 조차 태국에서 벌어진 이러한 부작용을 ‘태국전체 GDP의 0.6%에 지나지 않는 의료관광사업이 건강불평등과 지역의 의료진부족을 낳았다’고 지적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한바 있다. 의료가 돈벌이라는 천박한 사고는 차치하더라도, 의료양극화와 고가의 첨단시술이 활성화되고, 무엇보다 ‘예방’에서 ‘치료’로 의료의 중심이 더욱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의료관광’은 단순한 사업이나, 외국인 대상의 관광업의 일종이 아니라, 국내 건강불평등을 악화시킬 기재가 될 수 있다.

셋째. 의료관광과 관련된 ‘해외환자의 유인,알선’은 결국 의료민영화를 위한 포석일 뿐이다. 한국의 민간보험은 지난 5년간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비롯한 각종 민간의료보험상품을 만들어 시장을 확대해 현재는 33조원가량의 시장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남은 것은 ‘건강보험당연지정제’와 ‘의료기관의 비영리법인만 허용’ 등의 제한장치를 해제해서 병원-보험자 모델로 나아가는 것이 남았다. 이 때문에 보험업자들은 정권초부터 끊임없이 보험이 병원과 연계해서 궁극적으로는 보험회사와 병원이 한 회사가 되는 미국식 모델을 추구해왔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국민여론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쉽지 않았다. 그 결과 마치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냥 고안한 것이 이번의 ‘의료관광’업 활성화를 위한 보험업자의 ‘환자 유인,알선’ 허용안이다. 일단 보험이 환자를 가지고 병원과 거래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이 법에 핵심이다. 즉 환자를 매개로 보험은 특정병원과 특별한 계약을 맺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삼성생명병원’ ‘대한생명병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이번 시도는 의료민영화의 또 다른 축인 민간보험사업의 확대는 물론, 병원의 영리화를 위한 포석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5년간 의료영리화를 추진하면서, 언제나 ‘외국인진료’ ‘경제자유구역내’ 라는 단서를 사용해 왔다. 이제 그 마지막을 ‘의료관광’으로 장식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단서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료를 돈벌이로 바꾸어 ‘산업화’하려는 것이 이런 ‘단서’들의 목적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만 현실성도 없고, 한국의 경제상황과 지정학적 상황에서 허울뿐인 ‘의료관광’으로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는 그만해줬으면 하는 게 바람일 뿐이다. 우리 국민들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끝>

  
 

정형준(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