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 곳곳에서 인기다. 어린 시절 놀이를 승자 독식 데스매치와 접목시켜 시장경쟁체제와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해 전 세계적 공감을 얻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인기에 힘입어 외국에서도 드라마 속에 등장했던 놀이를 따라하거나 패러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 어린이들은 막상 이런 골목놀이를 즐기기 어렵다.

일단 오징어를 그리고 놀 수 있는 넓은 공터가 없다. 개발 물결로 작은 공터조차 건물이나 도로가 장악했다. 학교 운동장은 안전관리를 이유로 잘 개방하지 않는다. 공원도 특정운동만 가능한 시설로 꽉 차 있다. 그나마 사회체육시설이나 녹지조차 없는 지역도 부지기수다. 설상가상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또래끼리 어울리는 것도 쉽지 않다. 이래저래 최악의 상황이다

이 때문에 2016년에 세계보건기구가 11~17세 학생들의 신체활동량을 비교한 통계를 보면 한국은 운동 부족으로 분류된 학생 비율이 94.2%나 됐다. 조사 대상 146개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70%를 상향하는 나라들이 대부분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였다는 점을 보면 자원배분 문제가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가 충분히 뛰어놀 수 있는 활동량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무관심한지 알 수 있다. 이런 무관심에는 물론 공간뿐 아니라 과도한 학업경쟁과 학력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공교육에서도 체육활동시간이 줄어들었다.

결과는 청소년 비만율 급증이다. 가공식품 같은 먹거리문제도 있지만 운동량 부족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식이습관만으로는 비만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약물 같은 의학적 접근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수없이 존재하는 ‘비만클리닉’을 보면 딱하기만 하다. 과도하게 마른 체형을 강요하는 외모지상주의도 문제지만, 어린 시절부터 적절한 운동과 신선한 먹거리를 공급하는 해결 방안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등한시하고, 책상 앞에서 수학 문제만 풀게 한 결과가 ‘비만’인데, 이제는 이 비만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만들어 의료상품만 판매하는 상황은 병 주고 약 주는 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약은 효과도 일시적이란 점에서 기만적이다.

사회적 조건은 무시하고 보건의료서비스 대상화를 통해서는 시민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수많은 의사들이 ‘비만’ 치료에 매진하고 있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의료상품화 조장이다. 살을 빼 준다는 각종 보약 광고가 난무하는 사회는 결코 시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결국 ‘오징어게임’을 유행시키고도 막상 골목놀이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라를 바꾸는 게 먼저다. 운동은 헬스장, 태권도장에서 하는 게 아니고 공공교육과 지역사회에서 또래와 어울려 할 수 있어야 일상이 될 수 있다. 학령기 신체활동은 체육전공자들만 키우는 게 아니라 시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해야 한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1019029011

윤석열 정부 조직개편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미정이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폐지와 총리지명자 정도는 공개되었고, 대략의 방향성은 드러나고 있다. 한번 바꾼 정부조직은 관료조직의 성격상 변화에 어려움이 있다. 보건의료 정부조직 개편도 마찬가지다. 식약처가 보건복지부 산하 식약청에서 국무총리 산하 처로 바뀌면서 보건산업계에 영향력에 더 크게 휘둘리게 된 것은 대표적인 경우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보건의료 대응능력 강화에 모두 공감했다. 최근 코로나19를 풍토병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시점에서, 보건의료자원을 통제한 컨트럴타워가 부실하단 지적도 많았다. 질병관리청의 기능이 강화되었지만, 앞으로 닥칠 신종감염병 대응을 위해 독립적인 보건조직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부를 독립시키자는 주장이 나온다. 복지부를 가족복지부로 만들어 여성가족부 폐지 이후 기능 이전을 한다는 계획도 동반된다. 사실 ‘보건부 독립’ 주장은 과거부터 있어왔다. 초기에는 보건부처의 역할과 복지부처의 역할이 다르다는 맥락에서 시작했지만, 메르스와 코로나19 등의 신종감염질환을 겪으면서 보건만 다루는 독립적인 관리부처가 필요하다는 당위성으로 지지를 얻었다. 나름 타당한 주장이다.

반면 ‘보건부 독립’은 보건정책을 복지(공공)정책에 예속시키지 않으려고 하는 보건시장주의자들도 주장했다. 주로 병원협회나 의사협회 같은 공급자단체와 제약기업, 의료기기기업의 주장은 이런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시각은 보건부 독립으로 보건정책이 ‘의료’ 복지가 아니라 보건산업화 중심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런 맥락이 있기 때문에 ‘보건부 독립’이란 주제는 단순히 코로나 대응을 위한 개편안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특히, 한국 보건복지부는 실제 자신의 손발이 될 수 있는 의료조직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국립중앙의료원이나 국립암센터, 국립재활원, 국립정신보건센터 같은 중앙병원을 제외하면 보건소가 그나마 유일한 정책구현 통로다. 거기다 국민들이 크게 의지하는 공공병원인 국립대병원은 교육부 산하이고, 보훈병원, 산재병원, 적십자병원 등은 모두 통제부처가 다르다. 여기다 지방의료원은 지방정부 산하이면서 상황도 열악하다. 즉 독립을 하게 돼도 현재는 바이오산업정책 부처를 제외한 의료진료자원은 여전히 거의 민간과 타 부처에 의존해야 한다.

때문에 독립을 통해 신종감염질환의 컨트럴 타워 필요성을 충족하고, 국민의 보건의료환경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우선적인 전제는 보건부가 통제할 수 있는 손발을 많이 확보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최우선 과제는 OECD국가 최저수준의 공공의료기관을 확대하고 분만취약지, 응급의료취약지마다 공공병원을 설립하는 일일 것이다. 두 번째는 민간의료보험 없이도, 돈이 없어도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자 시절부터 시장중심의 의료체계를 지지해왔고, 건강보험체계 확대에 대한 전망도 밝힌 바 없다. 거꾸로 ‘건강보험료 폭탄’이니 건강보험에 대한 외국인 진료 문제제기를 통해 건강보험 불신 조장까지 서슴지 않았다. 때문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재난의료비지원, 민간의료기관에 대한 ‘정책수가’ 배정 정도가 주요 보건공약이다. 이런 정책방향성에서는 보건부가 독립한들 국민건강증진과 보건서비스 향상에 기여하기 보다는 제약산업, 의료기기산업체를 위한 전담부처화 되거나, 민간의료기관에 읍소해 보건위기를 대응하는 부처가 되고 말 것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보건부가 독립해서 유지되는 이유는 그 나라 보건환경이 매우 공공적이기 때문이다. 보건부독립에 앞서 공공병원 확충과 의료공공성 확대 계획부터 밝히는 게 순리다. 그렇지 않다면 주객전도 꼴이 날 것이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21658&path=202204

정부가 얼마 전 이집트와 K-9 자주포 수출계약을 체결했다고 광고했다. 자주포로서 최대 규모의 수출을 기록했다고 자화자찬했을뿐더러, 방위산업체인 한화디펜스와 방위사업청 외에도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수출입은행이 유기적인 협력을 해 수출계약을 성사시켰다고 밝혔다.

한국은 수출을 중심에 두는 제조업 국가로서 수출성과를 핵심 경제성과로 간주하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수출품목의 성격과 상관없이 많이 팔기만 하면 좋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마약류나 사행산업류 관련 상품을 많이 수출하는 게 자랑일 나라는 없다.

무기거래는 윤리적으로 볼 때 ‘더러운 거래’로 간주된다. 무기는 전쟁과 살상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무장력은 필요악이다. 스스로 무기를 만들 수 없는 약소국들에 자위권을 위한 무기를 공급했다는 변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이 무기를 팔고 있는 나라들이 그런 약소국들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에 대체로 큰 무기거래는 지정학적 갈등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번에 2조 원을 판매했다는 이집트, 4조 원대 계약을 했다는 아랍에미레이트는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는 중동에 있다. 1조 원대 수출하는 호주도 최근 중국포위전략에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 간주된다. 무기판매로 얻는 경제적 이익과 별개로 판매지역의 긴장을 고조시켰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더구나 이번 판매는 대통령, 외교부, 수출입은행까지 동원된 거래다. 개별 무기산업체가 해외에 판매하는 방식과 달리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나서서 금융대출까지 끼워 판매를 성사시켰다. 전 세계 각종 전쟁의 배후로 지목되는 미국식 군산복합체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최소한 대통령이 나서서 판매해야 할 상품에 무기가 있다는 게 한국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놀랍다.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인식이 ‘자주국방’ 이념과 보수파에 대항하는 애국주의 때문에 계속 조장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하는 정부일수록 보수 우파의 공격을 의식해 국방비를 늘리고, 무기를 수출하고 최신무기를 개발하는 일을 더 광고한다. 이미 한국의 국방비는 주변 국가들의 비율을 훨씬 넘어서는 국민총생산의 2.8%다. 중국 1.7%나 일본 1%와 비교해 절대액은 적을 수 있겠지만, 비율로는 매우 높다. 총액으로도 북한의 국내총생산 1.5배가량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반도에서 한국에 축적된 국방자원은 남북 비교는 무의미하고, 동북아 주요 국가들과 견주어도 한국은 긴장의 한 요소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비대칭무기인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중국도 무장을 강화하고, 일본도 우파들이 재무장을 주장한다. 동북아는 여기에 미국의 중국포위전략과 이 때문에 발생하는 대만독립문제 등으로 전 세계의 화약고로 변신하고 있다. 국방력을 강화하면 할수록 긴장만 고조되는 지역이다.

이런 지역에서 행정부까지 나서 해외에 무기수출을 독려하는 건 현 정부가 추구했던 한반도 평화전략과 근본적으로 모순된다. 한국이 최소한 자기방어를 위한 국방력을 유지하고 해외에 무기수출을 기획하지 않는 평화지향국가로써 자리매김해야 ‘한반도 평화구축’이라는 언사에 진정성이라도 느껴지지 않겠는가?

끝으로 전쟁무기 판매는 장부에 실적으로 남겨놓는 예의까지 무시하고 주요 언론과 정치권에서 칭찬하는 사회 분위기는 세계 평화에 대한 한국사회의 공감능력까지 떨어뜨린다. 국방예산을 줄여 사회복지와 기후변화대응에 써야 한다는 주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무기수출 조장은 멈춰야 국제적으로 평화국가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 평화지향과 무기수출의 모순을 느낄 수 없는 나라가 되어선 곤란하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19110&path=202202

2022년이 밝았다. 올해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연속되어 행정권력을 연달아 선출하는 보기 드문 한해다. 선거에서 다뤄야 할 수많은 쟁점이 있을 것이다. 특히 2년간 지속되어온 코로나 팬데믹은 한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를 변화시켰고,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서 코로나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이 코로나 위기가 사실은 무차별 자연파괴,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란 점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하고 생태친화적인 대전환을 이뤄야 하는 과업이 이번 선거에 반영되어야 마땅하다. 특히 기후위기 문제는 인류의 생존이 걸린 만큼 무엇보다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

2021년 한해만 보더라도 미국 텍사스 지역까지 도달하는 한파와 이로 인한 정전사태가 있었고, 최근에는 역대급 토네이도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건물이 파괴되었다. 캘리포니아, 그리스, 호주권역의 이상고온은 대규모 화재를 불러일으켰고, 저지대는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기게 되었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계속 나빠질 것이라는 점이다. 기후과학자들의 분석으로는 현재의 기상이변은 1990년대 인류가 배출한 탄소로 인한 온난화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배출하고 있는 막대한 온실가스의 후폭풍은 앞으로 10여 년 이후에 닥친다고 한다.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는 문제는 차일피일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물론 한국만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이제 주요 산업국가의 하나인 한국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당장 어떤 식으로 탄소 중립에 도달할지에 대해서 치열하고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한국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서도 기후 악당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아직 미진한 전환계획만 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까지 대선을 앞둔 국면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이나 코로나 이후의 대전환에 대한 토론과 논의는 거의 없다. 여전히 경제성장률과 주가지수 등으로 대표되는 팽창지향의 경제 정책이 주된 화두이고, 에너지전환 정책 등은 주요 선진국 중 가장 후미에 있다. 앞으로 닥칠 기후변화와 또 다른 신종 감염병 대응체계 등은 지금 당장 준비해도 되돌리는 데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지만, 당장 눈앞의 이권과 이해관계가 더 강하게 반영되는 선거국면은 너무나 안타깝다.

물론 이런 데에는 우리 사회 지식인들, 그리고 이 문제를 주되게 주장해 온 환경운동가들의 한계도 한몫했다. 기후문제 해결을 개인의 실천과 친환경 소비 문제로 국한했거나, 과학적 정보전달 선전수준의 거대담론화만 한 점이 그렇다. 따라서 우리가 필요한 모든 정책에 탄소 중립의 가치와 전환적 방향성이 담겨야 한다. 예를 들면 보건의료정책에서는 과잉 의료공급과 수도권 집중화를 해결할 공공병원과 공공클리닉을 지방에 균등하게 공급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지방 공동화를 부추기고 어쩔 수 없는 의료이용을 위해 수도권으로 쏠리는 에너지를 줄이는 건 탄소 중립 과제임과 동시에 공공의료 확대라는 시대 과제와 일치한다.

또 다른 예는 대중교통과 자전거 등 친환경 연계 교통수단의 확대다. 이 역시 시민 건강과 편의성 외에 탄소 중립 과제에 부합되는 방향성으로 전 지역에 확대 도입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전기자동차 확대 등 이동수단 문제는 물론이고 교육 문제도 수도권 쏠림을 막고 지방 균형발전을 통해 탄소 중립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수많은 정책과제가 기후위기를 막는 방안과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밝히고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 탄소 중립이 우리 삶의 모든 곳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대통령 후보 토론도 최소한 한차례는 기후위기 대응만을 쟁점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올 한해 선거에 모든 정책을 기후위기 대응의 중장기적 과제와 견주어 평가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는 게 지금 지식인과 정치권의 책무다. 그리고 그런 평가 속에서 이제 말해야 한다. 탄소 중립에 투표하자.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16560&path=202201

건강보험은 한국 사회보장제도 중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흔히 말하는 ‘오바마도 부러워하는 한국의 건강보험’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물론 한국이 실제 유럽의 의료보장체계보다 나은 건 아니다. 그래도 주거, 교육, 돌봄, 연금 등등 수많은 복지체계 중에서 그나마 훌륭한 보편적 보장제도로 자리매김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보험제도는 1977년 대기업 중심으로 도입되어 점차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 범위와 혜택을 넓혔다. 이제 유럽식 의료보장을 지향해 최소한 일본이나 대만 수준의 제도로 개혁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런데 항상 여기에 걸림돌은 재정 논의다.

우선 OECD 평균 수준의 보장성에 도달하려면 보험재정이 크게 충당되어야 한다. 여기다 대부분 선진국이 시행 중인 상병수당 같은 현금 급여제도를 도입하는 데도 돈이 든다. 새로운 서비스나 보장범위를 넓히지 않더라도 한국은 노령화가 진행 중으로 의료비가 자연 증가할 공산이 크다. 보험재정이 확충되어야 주요 선진국 수준의 제대로 된 공적보험으로 개선할 수 있다.

남는 과제는 지출의 낭비를 줄이고 재정을 확충하는 부분이다. 우선 지출 부분은 지불제도 개편이나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의 과제가 제안되는데, 지난 30년간 민간의료공급이 주된 한국의 현실상 공급자 저항으로 개혁이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정치권도 동네 병ㆍ의원 눈치를 보면서 지출구조에 대해서는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부분만큼은 가끔 일부 의료공급자의 저항만 부각되고 중요성이 논의되지는 않았다. 실제 계속 논쟁이 크게 벌어진 부분은 재정충원 문제였다.

재정확충을 하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이 상식처럼 간주되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 준조세에 따르는 보험료는 국민이 선택할 수 없다. 거기다 가입자와 공급자간 계약보험이 아닌 강제가입 단일보험의 경우는 사실 국가보건의료체계로 봐야 한다. 즉 건강보험재정은 국가책임이 우선된다. 그런 점에서 보험료는 노동소득에만 대부분 연동된다는 점에서 국가의 총재정 부담과 달리 편향적이다. 때문에 프랑스나 대만은 보험료 비중에서도 기업부담을 높이거나, 여러 기여를 넣기 위해 국가가 일반회계에서 건강보험에 상당 부분을 지원한다. 프랑스 52%, 일본은 45%, 대만은 36% 수준의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 있다. 더 나아가 영국,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조세 100%로 건강보장제도를 운영한다.

반면 한국의 국고지원은 매년 떨어져 12%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과 노동자의 분담 비율도 1977년 이후로 기업형 보험구조인 1:1 구조가 유지된다.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논의는 언제나 국고지원 확대 문제와 기업부담을 늘리는 부분부터 집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걸핏하면 건보료 폭탄이나,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보험료가 올라간 지역 가입자 문제 등의 형평성 논란만 제기한다. 정작 중요한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건강보험 기여 문제나 이를 위한 국고지원 확대 문제는 외면하면서 말이다.

결국, 이런 보험료 논의는 국가와 기업책임을 보험료를 내는 국민끼리의 건강보험 불신으로 채우려는 시도다. 애초에 충분한 국고지원과 기업부담을 늘렸다면, 생기지 않을 불신의 불씨가 남긴 결과는 건강보험의 퇴행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이름이 붙은 보장성 강화안인 ‘문재인케어’ 약속도 결국 지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여전히 낮은 수준의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다. 반면 누적된 20조 원에 육박하는 건강보험재정은 재정 관리 성공으로 선전된다. 사실상 국민이 받아야 할 의료 서비스의 비용이 남은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야당 대선후보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이간질시키며 건보료 폭탄을 막겠다고 한다. 조세나 국고확대로 건강보험에 기여해야 할 대안제시도 없는 네거티브 공세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건강보험에 대해서 건보료 폭탄과 재정운용 자랑만 일삼으며 막상 해야 할 책임은 다하지 않는 정치권은 이제 대오각성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의료보장제도의 미래와 가치를 중심으로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불신이 아니라 신뢰에 바탕을 둔 국가 책임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은 민간보험이 아니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13964&path=202111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들은 주로 ‘원격’ ‘비대면’ ‘언택트’ ‘디지털’ 같은 수식어다. 이런 키워드의 공통점은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지 않고도 서비스나 인간생활의 상당 부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는 주로 편의성이라는 점이 강조됐지만, 실제 도입은 비용과 시간의 절감을 위한 것이다. 비용절감으로 산업현장의 효율성은 올라가고 유통구조가 빨라졌다. 하지만 온라인 택배거래가 늘면서 물류비용이 줄어들었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높은 소매점들이 없어지고 동네상권이 붕괴했다.

우리는 디지털기술 발전을 사회적으로 적용하면서 그 부작용에 대해 목도해 왔다. N번방 같은 디지털범죄를 떠올리지 않아도 CCTV와 블랙박스, 디지털화된 개인정보들의 유출 및 악용의 용이성도 심심찮게 겪었다. 전산화된 각종 정보는 너무나 손쉽게 유통되고 디지털화폐는 손쉬운 거래와 관리 감독이 없어 젊은이들의 투기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전대미문의 감염병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디지털화’는 경향성에서 칭송과 가속화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과학기술발전과 사회적 이익에 대한 고려는 찬성할 일지만, 부작용과 이로부터 발생할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점검은 부족하다.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강조되는 디지털화는 사람과 사람의 접촉점을 줄이는 데 내용이 집중된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이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규정하는 것인데 말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신종감염병 시기에 개개인의 접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비극이 필수적이고 향후에도 지속한다는 전제이다.

실제 코로나 팬데믹은 여러 디지털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학교 원격교육의 문제에서는 또래끼리 협동하고 다투고 어울리는 과정이 생략되고, 선생님과 직접 만나는 과정이 축소되면서 단순지식 전달과정만 남았다. 실제로 언어능력, 정서발달 등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는 연구보고가 나온다. 사회서비스영역에서도 홀몸노인 방문이나, 복지관 등의 모임이 없어지고 장애인 이동보조가 줄고 전화통화에 의존하면서 활동성 저하 및 인지능력 저하가 발견된다. 의료 부분에서도 비대면 진료 및 투약 반복으로 만성질환자들의 건강상태가 나빠진다.

그런데 이런 나빠지는 과정이 모두 비슷하지는 않다. 공교육이 원격으로 바뀌면서 사교육이 운동, 학생 분석, 심리상담, 또래 모임까지 책임진다. 또래 내 학력 격차는 유례없이 커졌을 것이다. 여유가 있는 고령층은 여전히 골프를 치거나 대면 모임, 야외운동을 한다.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환자들은 대면진료도 지속하고, 만성질환도 의사를 만나 상담받는다. 거꾸로 홀몸노인, 장애인, 저소득층은 더욱 사각지대에 몰려있다. 스스로 관리하지 않는 환자들의 만성질환도 악화된다.

최근 정부 발표를 보면 재활치료도 원격으로 하겠다는데,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원격재활은 돈 있고 시간 있는 환자들이 선호할 리 없는 건 당연해 보인다. 결국 ‘디지털화’라는 가치 중립적 기술발전이 실제로 적용되면 불평등이 가속화될 건 불 보듯 뻔하다. 디지털화가 기존 대면서비스들의 축소로 나타나면, 상당수는 어쩔 수 없이 비대면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화 논의는 이 때문인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부터 논의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한국은 가장 빠른 고령화 시기를 맞이한다. 사회적 돌봄이 더욱 강조되는 시점에 ‘스마트 말벗기계’ ‘AI 로봇’ ‘원격재활치료’ 등을 도입하겠다는 정부발표는 황당하다. 코로나19 시기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손길이고, 인간의 돌봄이다. 돌봄까지 디지털화할 수 있다는 망상부터 일단 버리는 게 옳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11186&path=202110

계속되는 코로나19 대응으로 전담병원, 선별진료소 등에서 의료진 탈진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물론 긴박한 감염 질환 대응을 위해 모두가 집중하다 보니 일부에게 부담이 가중되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하지만 코로나19 발생만 해도 벌써 1년 6개월이 넘었다. 치료현장의 아우성은 어제오늘이 아닌데 대응은 없다면 이는 방치일 뿐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병상이 인구대비 1, 2위를 다툴 정도로 많지만, 의료인력 특히 간호인력은 꼴등 수준이다. 간호인력이 많아야 오진과 부작용을 피할 수 있으며, 빠른 사회복귀도 가능하다. 한국은 극악의 인적구조다 보니 신규 간호사의 상당수는 몇 년 안에 임상현장을 등진다.

때문에 대부분 국가는 병상에 최소한의 간호인력기준이 있다. 규정이 법적이진 않더라도 공공병원이 대부분인 유럽국가에서는 병원운영위원회 등에서 간호인력이 부족하면 병동을 폐쇄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환자 30명을 간호사 1명과 지원인력이 돌봐도 제재가 없다.

정부는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인력 충원을 유도해왔지만, 그 근간이 ‘간호등급제’로 보상을 더 해주는 게 전부다. 환자대비 간호사가 비율이 높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다. 기준 외인 병상을 폐쇄하거나 등급 외 병원을 운영중단 시키는 조치는 없다. 그렇다 보니 높은 간호등급을 유지할 수 있는 대형병원은 수익을 늘리는 데까지 인력을 더 고용했지만, 지방 중소병원은 인력수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등급 외에 머물렀다.

이런 구조 속에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의 의료의 질 차이는 커지고, 국민들은 당연히 대형병원을 선호한다. 간호등급제는 당근만 제공하면서, 대형병원만을 위한 제도로 전락했다. 거기다 워낙 엉망인 중소병원이 많다 보니 대형병원들도 해외 기준만큼의 인력을 충원하지는 않고 딱 등급제로 수익이 최대화되는 지점까지만 고용을 유지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환자대비 간호인력 정책은 여전히 인센티브를 더 주니 마니에 머물러 있고, 등급 외 병원의 병상을 폐쇄하면 지역사회 중소병원이 없어져 어쩔 수 없다는 핑곗거리도 존재한다.

이런 시장중심 인력 공급과 민영의료 공급은 이제 의료진, 환자는 물론 사회적 문제다. 지방에서도 서울 대형병원을 선호해 불필요한 비용을 소모할 뿐 아니라, 의료 불평등으로 지방 공동화에도 영향을 준다. 또한, 병원의 낮은 인력 충원으로는 지역사회 경제효과도 발생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간호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와 정부 정책이 필요하다. 우선 기준 외 병상은 운영을 멈춰야 한다. 한국은 병상 포화국가지만, 공공병상과 제대로 된 인력기준을 지키는 병상은 부족하다. 중소병원이 인력기준 미달로 폐쇄위기인데도 꼭 지역사회에 필요하다면, 국가가 인력기준을 맞추도록 지원을 하거나 공공매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냥 민간공급자의 선의에 기대고 환자를 핑계로 이를 모면하도록 한다면, 앞서 살펴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코로나 국면에서도 총파업을 예고했다. 의료현장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호소다. 파업의 일성은 인력확충이다. 코로나19 시기 ‘덕분에’를 외치면서도 필수사회서비스인 의료 부분의 인력 충원을 외면한 대가다. 최근 4차 유행으로 매일 2000명 안팎의 확진자가 나와도 치료대응은 난항이다. 시급한 방역정책 전환 논의의 핵심은 충분한 치료대응능력이며 그 핵심은 의료인력 확충이다. 그리고 가장 시급한 것은 병상에 충분한 간호인력을 공급하는 것이다.

인력 기준을 지키지 못하는 병원과 병상을 놔두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방치하는 것이다. 명확한 병상대비 인력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맞추고, 기준 외 병상은 과감히 폐쇄하자. 썩은 살을 도려내야 새 살이 자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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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된 지 4년째다. 이 정책은 문재인정부의 1호 공약이기도 했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크게 강조했던 정책이기도 하다. 아마도 노령화로 인해 치매로 고통받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기초했을 것이다. 따라서 현 정부와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한 정책인 만큼, 어느 정도 정책효과가 발생했는지를 이제는 조명해 보고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그런 평가 및 조망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이 정책의 목표가 혼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치매로 인한 고통은 환자 본인보다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몫이 크다. 대부분의 인지장애 질환처럼 주변에서 일상생활을 보조해 줘야 하고, 주변인들이 망상과 공격성, 의심증 등에 시달려야 한다. 이런 문제로 돌봄이 필수적인데, 한국에서는 치매 돌봄은 큰 비용이 들거나, 마땅한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가족 중 누군가가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

즉 치매국가책임제가 생겨난 이유는 ‘치매’라는 질환을 치료하고, 의학적으로 관리하는 문제보다는 사회적 돌봄서비스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공적 돌봄서비스의 부재는 실제로 한국에서는 간병 지옥, 장애인방치, 정신장애인 시설화 등으로 드러나는 문제다. 따라서 특정 질환군에 대해서만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돌봄을 어떻게 체계화하고, 공공화할지에 대한 대안제시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치매’만을 쏙 빼서 돌봄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마땅한 해결책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우선 치매 진단 시 건강보험부담을 낮춰주는 산정특례가 확대되었다. 산정특례 확대의 혜택을 받는 것은 온전히 건강보험적용이 되는 의료서비스에 한정된다. 따라서 치매 환자의 입원과 의학적 진단이 조장되었다. 거기다 ‘치매’가 나이 듦이 아니라, 의학적 치료의 대상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일부 특발성 알츠하이머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노인성 치매인데 말이다.

거기다 노화로 인한 과정이 대부분인 ‘치매’에 대해서 근본적인 치료와 예방을 위한 연구개발에 막대한 금액을 투입했다. 치매 연구에 투여된 금액이면 의료취약지에 공공병원을 3개 이상 짓고 운영할 수 있었지만, 정부는 제약회사의 연구개발비에 이 돈을 썼다. 물론 그 결과는 매우 미약하다. 무엇보다 치매에 대한 근본적 치료는 결국 노화를 막기 위한 시도에 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노화를 막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특정질환 연구로 개척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또한, 더 크게 보면 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점이 나이 듦마저도 상품화하려는 한 측면도 보여줬다.

따라서 치매치료제 개발, 치매 진단에 신경인지검사와 자기공명영상(MRI)을 급여화 해주는 내용은 일부 젊은 환자들의 비특이적 인지장애가 아니라면, ‘의료화’의 다름이 아니다. 더구나 이런 관점 때문인지, 치매 환자에 대한 지역공동체 강화나 공적 돌봄서비스 제공 체계는 제대로 계획과 예산조차 편성되지 못하고 있다. 막상 치료대상인 치매 환자로 분류되니 치매 센터와 요양병원, 요양원의 시설관리대상으로만 인식된다. 공적공급은 없고, 여전히 민간요양시설과 돌봄 용역업체들만 성행한다.

그래서 이쯤 되면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노망’이란 불편한 단어를 ‘치매’로 바꿔 부른 이유가 돌봄을 외면하고자 한 우리 사회의 회피책이 아니었는지 말이다. ‘노망’이란 단어 속에 담긴 노인들에 대한 폄훼보다 ‘치매’라는 진단명이 가진 과학 뒤에 숨는 자기 위안이었는지도 말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노인 빈곤율이 50%에 육박하는 OECD 불명예국가에서 실제 중요한 것은 노화의 결과로 발생한 특정질환에 대한 상품화가 아니라, 공적인 돌봄서비스와 기본적인 삶이 유지될 수 있는 소득보장이 되어야 한다. 다가올 정치에서는 ‘노화’를 더는 상품화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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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수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우선 국민등록체계(주민등록번호)하에서 금융거래부터 휴대폰 개통까지 연계되어 있고, 편의성을 위해 정보제공동의서에 쉽게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다 수차례 수천만 명의 개인 로그인 정보들이 유출되었지만, 기업이 받은 처벌수준이 낮고, 가족 친지를 언급하는 보이스피싱을 경험하면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다.

편의성을 앞세워 구글 등 검색 서비스나 각종 소셜미디어 등은 가입자의 조회 정보, 위치 정보 등을 받으며 데이터채굴로 큰돈을 벌고 있다. 전방위 데이터수집이 새로운 먹거리로 각광받다 못해 이제는 이런 것들을 집적해서 연결해 더 큰 사업거리로 만들려 한다. 다름 아닌 ‘빅데이터’ 사업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정보축적은 광고시장에 내 정보가 팔려나간 수준이지만, 개인건강정보는 강도가 다르다. 검색엔진이 축적한 정보로 맞춤형 광고와 뉴스를 띄어주는 수준이라면, 건강정보는 직접적인 의료 이용, 보험가입, 개인 식별화 등에 직접 사용될 수 있다. 때문에 구글, 애플 등 IT 선도 기업들도 건강정보수집에 혈안이 되어 각종 생체정보와 건강정보를 모을 수 있는 앱 등의 플랫폼 개발에 여념이 없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우선 빅데이터 산업으로 포장된 데이터 댐 사업과 이미 통과된 데이터 3법으로 국민건강보험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들이 비식별화되면 민간기업으로 팔려나가게 허용된다. 아마도 이들 정보는 민간보험사에 제공되고, 이 정보로 보험사는 보험상품의 손해율을 줄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정보가 휴대폰 사용 내역, 위치정보, 금융정보와 결합되면 생길 부작용에 대해서는 낮은 처벌수준으로 보완하려 한다.

거기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월권으로 허용한 정책을 보면, 보험회사는 데이터사업체를 자회사로 가질 수 있고, ‘건강관리서비스’라는 포장으로 개개인의 건강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사업모델도 국회 입법이 아니라 금융위 허가사항으로 편법 허용한다. 거기다 병·의원의 개인건강정보도 실손보험 청구자료 전산전송화 법안 개정을 통해 손쉽게 수집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런 무차별적 건강정보수집 및 집적화를 산업계와 전문가, 언론은 국민 편의성 증가로 지지해왔다. 물론 실손보험 청구가 편해지고, 합병증이 없는 사람들은 민간보험료가 인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편리함에 비해 집적화된 건강정보로 생길 부작용은 매우 크다. 근거 없는 건강기능식품과 약품 구매 광고가 범람하고, 추가로 건강상품화가 가속화되는 게 시작이다. 이후로 보험 가입 거절, 보험금지급 변경이 다음 단계라면 최종 단계는 채용, 결혼, 인사제도 등 전방위에 건강정보가 적용될 것이다. 끝으로 정보량이 많아지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차별받고 배제될 것이다.

건강정보들을 축적하면 맞춤형 의료가 제공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심전도 판독 같은 수준에서도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진실은 쓰디쓰다. 이는 건강정보수집으로 인한 당장의 이익이 기업들의 돈벌이 사업에만 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대응으로 각종 개인정보가 마구잡이로 유출되어도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이 통용되는 시대다. 하지만 질환 내용, 투약내용, 가족력, 임신횟수 등이 포함된 건강정보만큼은 그렇지 않다. 부디 빅데이터, 데이터 댐, 정밀의료 같은 알아듣기 힘든 언어가 아니라 ‘개인건강정보유출’이라는 위험성이 더 강조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경고를 하면 할수록 데이터채굴산업의 일탈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의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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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엘리자베스 홈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됐다. 홈스는 피 한 방울로 200개가 넘는 각종 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는 거짓말로 한때 자신이 세운 의료기업 ‘테라노스’를 10조원이 넘는 가치를 둔 기업으로 만들었다. 진단키트 판매와 주가 상승으로 억만장자가 됐지만 기업 설립 12년 만인 2015년 탐사보도를 통해 이 진단기기가 단지 10가지 질병만 진단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듬해 테라노스는 파산했다.

테라노스의 성공은 허술한 기술검증과 첨단과 혁신으로 포장된 홈스의 언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언론과 투기세력 덕분이었다. 진단기기의 효능도 개발사의 연구발표로 대체됐다. 증권거래위원회도 진단기술평가만 보고 상장을 허가했다. 누구도 진단기기의 실체를 따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항상 나온 이야기는 검사의 안전성이었다. 하지만 사실 피 한 방울만 채혈한다는 마당에 안전성 평가는 하나 마나 한 얘기였다. 결국 안전성 평가를 통과했으니 시장 출시는 문제없다는 주장은 아무런 평가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테라노스 사건은 독특한 사기사건일까? 한국에서도 2012년쯤 삼성이 체외진단기기사업에 진출했다. 적은 피로 각종 대사검사를 하는 진단장비(PT10)의 휴대성과 편리함을 홍보했다. 문제는 정확도였다. 게다가 일회용 진단키트 가격도 기존 검사 비용에 비해 비싸 가격경쟁력도 없었다. 그런데도 임상시험을 통과해 허가를 받았다.

허가를 받게 한 임상연구자료를 보면 검사 정확도가 일부 떨어지지만 휴대성을 장점으로 지목했다. 다시 말해 휴대하기는 좋지만 효과는 떨어지는 장비를 허가한 것이다. 당연히 의료현장에서 이런 장비를 쓸 리가 없다. 중동으로 판매망을 뚫어 보려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삼성은 수천억원의 손해만 본 뒤 2018년 임상 체외진단기기 사업에서 철수했다. 만약 당시 정부에서 이 체외진단기기의 정확성을 제대로 평가했다면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손해다.

상황이 이런데도 아직도 진단기기의 정확도 평가를 규제로 생각하는 세력이 있다. 다름 아닌 보건 당국이다. 최근 정부는 진단용 의료기기는 신의료기술 평가를 유예한다고 규칙을 개정했다. 더 황당한 건 ‘포스트 코로나 의료기기 산업 육성’을 명분 삼아 ‘안정성이 수용 가능한 경우, 한 차례에 한해 시장진입 허용’이라고 한 대목이다. 이런 규제완화로 인해 해외에서 한국 의료기기에 대한 신뢰는 더 떨어질 테지만 말이다.


삼성의 체외진단기기 사업 철수건은 아직 충분한 경험이 아니었나 보다. 테라노스 같은 10조원대 사기기업이 나와야만 정신을 차리고, 의료기기평가에 대해 제고하겠다면 진정한 ‘체험 마니아’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이 체험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다. 의료장비가 돈벌이 대상이 되는 가운데 국민들의 건강 문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국가가 나서서 이런 난맥상을 부추기는 게 맞는 일인가.

2021-09-14 29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91402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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