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병동회진 때 있던 일이다. 환자 한 분이 위암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깜짝 놀라 혹시 피를 토하거나 소화불량이 심한지 물어보니 계속 기침을 한다는 것이다. 기침과 위암이 어떻게 머릿속에서 연결되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날 아침 텔레비전에 대학병원 교수가 나와 만성기침이 위암의 증상일 수 있으니 검사해 보라고 권하는 방송을 봤다고 했다.
사실 만성기침이 있을 때 의심할 수 있는 질환 중에 위암이 있기는 하다. 방송 속 소화기내과 교수의 이야기는 들을 만한 고급 건강정보였지만, 현실 속 환자는 근심에 빠지고 검사를 원하게 되었다. 나는 수개월 전 시행받은 위내시경검사 결과를 설명하면서 환자를 안심시켰다.
지난 십여년간 텔레비전 방송을 가장 많이 수놓는 주제는 건강정보다.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주제로 건강만한 게 없기 때문이겠지만, 대중이 오해하기 쉬운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면 크기가 커진 뇌동맥류가 어지러움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와 어지러움증이 있으면 뇌동맥류를 검사해야 한다는 결론은 전혀 다른 문제다. 후자를 따르게 되면 어지러운 경우에 뇌영상검사는 필수가 된다. 환자가 원한 뇌영상검사로 인한 방사능 노출 및 자원 낭비는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사실 건강정보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단편적인 정보를 구체적으로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조합능력은 임상경험, 사회적 제도에 대한 이해, 거기다 인과관계와 구체적 환경도 포함한다. 그래서 의료영역은 데이터만 가지고 운영할 수 없고, 의료인들의 중재가 필요하다. 국민들 모두가 의료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상당수 선진국은 주치의 제도를 위시한 일차 보건의료 제도를 갖추고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기사를 가장한 의료광고, 건강기능식품 홍보, 입증도 되지 않은 임상시험에 대한 확증적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건강의 핵심요소인 수면, 운동, 식이를 부차적으로 만들고 특정 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만 있으면 된다는 잘못된 확신마저 심어 준다. 운동은 하지 않고 영양제만 수십개씩 먹다가 병원을 찾는 이들까지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들을 투기꾼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어 버린다.
현명한 의료소비자를 만들려면 건강정보에 목말라하는 대중의 관심에 편승하는 행태를 중단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들도 넘치는 건강정보보다는 믿을 만한 의료인과 전문가를 만나는 걸 신뢰해야 한다.
제 구실을 하는 국가라면 믿을 만한 의료인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인과관계도 불분명한 독감예방접종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건강정보 과잉시대에 정작 중요한 건강문제인 백신은 아니면 말고 하는 아무 말 대잔치에 휩쓸리는 모순적 상황이 씁쓸하기만 하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중대본 브리핑에서 '아프면 쉬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 지침을 당장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아플 때 쉬려면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불이익이 없어야 된다. 영세자영업자는 하루 벌어 하루 생계를 유지하는데, 쉬는 게 쉽지 않다. 결국 소득결손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아프면 며칠간은 쉬면서 수동감시를 해야 하는 코로나19 방역방침을 고려하면, 아파도 쉴 수 있는 소득보장제도가 즉각 필요하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만한 내용이 아닐까?
그런데, 이번 '한국판 뉴딜종합계획' 발표내용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소득 보전을 위한 상병수당 제도에 대해선 2021년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2022년 저소득층 대상 시범사업으로 한정했다. 코로나19가 다 지나가고 나서야 그마저 저소득층에 대해 시혜적 제도로만 생색내려는 건가?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한 '유급병가'(임금이 나오는 병가)는 언급도 없다.
사실 한국은 OECD 국가에서 상병수당이 없는 4개국(미국, 한국, 스위스, 이스라엘) 중 하나다. 이 때문에 ILO(국제노동기구)는 물론이고 국가인권위원회조차 10년 전부터 상병수당의 즉각 도입을 권고한 바 있을 정도다. 법정 유급병가가 없는 국가도 한국과 미국이 유일하다. 심지어 미국도 주 정부별로 법정 유급병가 법제화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며(현재 13개 주와 콜롬비아DC, 20개 도시와 3개 카운티에서 법제화), 기존 국가들도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기존 상병급여, 유급병가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최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을 통해 493개 민간기업(상시 노동자 10명 이상)의 취업규칙(2018년 기준)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유급병가를 보장하는 기업은 7.3%에 불과하다. 참담한 수준이다.
지금 급한 대로 모든 노동자와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 영세 자영업자에게 7일 내외의 단기 '유급병가'를 도입해야 한다. 재원은 사업주가 100% 부담하되, 지불능력이 없는 경우는 '산재보험' 등의 기금의 재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진단서 없이 유급병가 이용이 가능하게 열어둬, 병원 방문 시 코로나19 전파와 병원의 폐쇄를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병수당'도 돈이 많이 든다고 경제부처에서 난색을 표현한다고 하나, 현재 건강보험재정으로 충분히 운영할 수 있고(현재 16조 원 이상의 누적흑자), 기간의 국고지원 미납금 등을 고려하면 낮은 수준에서 집행하는 데는 재정적 어려움이 전혀 없다. 사실 정부가 그간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국고지원금을 매년 1조 원~2조 원 누락해왔다는 것이 더 문제다.
'공공의료'는 단어조차 없어
여기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하루 100명 이하로 발생함에도 벌써 중환자 병상이 부족하고 잠시나마 대전, 광주 등 지자체별로 포화상태인 곳도 보고된 바 있다. '2차 유행사태'는 미국 등 전지구적 상황으로 보았을 때 매우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관된 주장이고, 이런 클러스터 발생이 현실이 될 때를 대비하는 건 상식적 문제다.
지난 2월 중순 대구, 경북지역에서 대규모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77%가량의 환자를 공공병상에서 치료했고, 경기도의 경우도 현재까지 확진자의 95%를 공공병원에서 치료했다. 코로나19 환자 진료로 인한 진료 공백으로 대구경북에서 1분기 초과 사망자가 900여 명 이상 나왔다는 역학적 보고가 있었고, 여타 질환 진료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잔여병상확보와 의료인력확대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때문에 공공병상 확대는 코로나19 시기에 1순위 사회개혁정책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황당하게 이번 뉴딜계획에서 이는 다 빠져있다. '뉴딜'이라 함은 새로운 사회적 합의와 도약을 위한 대규모 사회적 투자 등을 일컫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코로나19 시대에 화두 중 하나는 보건의료 인프라 구축과 대응 능력 강화로, 그 중심은 공공의료 강화와 공공의료컨트롤타워의 설립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 '한국형 뉴딜종합계획'에는 단 한 줄도 이런 언급이 없다.
또한 '뉴딜'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면, 더더구나 인력 중심의 공공병원확충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답안이다. 공공부문이 아닌 민간부문의 보건의료 일자리는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높은 노동강도의 병원 노동(간호 노동 등) 등을 강요해왔다. 이는 환자 안전위협으로 연결되어 국민건강의 위해요소이기도 하다.
인력확충과 환자 안전강화를 위해서 당장 요구되는 것이 공공병원 확충인 이유다. 정부가 현재 OECD 국가 평균에 못 미치는 의사인력확충을 위해 의대정원을 늘리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OECD 국가 꼴찌(한국은 인구 1000명당 1.3병상, 일본 3.6병상, 독일 3.3병상, 영국 2.5병상)인 공공병상은 외면하고 있다. 공공병상을 늘려야 의사 인력도 공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형 뉴딜에 우선 OECD 평균 수준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일본이나 민간 의료의 천국인 미국의 25% 수준으로 공공병상 규모를 상향시킬 필요가 있다. 우선 최소한 20%까지는 공공병상 비율을 늘려야 하며, 지역 사정 등 구체적 상황에 맞춰 민간병원을 매입, 수용하거나, 기존 공공병원의 병상 증설, 그리고 병상이 없는 지역의 경우 신설하는 등의 복합적 방법을 통해 당장 공공병상을 마련할 수 있다.
또한 국립중앙의료원 등을 필두로 하여 치료 대응을 할 수 있는 컨트롤센터가 필요하며, 방역 대응을 위해 '질병관리청'이 있듯이 '공공보건의료청'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국립중앙의료원의 기능을 대폭 확충하고, 교육, 응급, 외상 등의 인프라를 갖추도록 하는 로드맵에 반드시 제시되어야 한다.
대형병원 퍼주는 의료 정책, '뉴딜' 될 수 없어
▲지난 9일 남대문시장 케네디 상가에서 상인 8명이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하자 10일 오전 서울 남대문시장 입구에 차려진 선별진료소에서 상인들이 검사를 받고 있다. ⓒ 이희훈
그런데 상병수당이나 공공의료확충은 언급이 없거나 뒷전인데, 정부 발표의 한국판 뉴딜에는 '디지털 의료' 망상이 되살아나고 있다. 보건의료 부분에서 그나마 발표된 스마트병원, 원격의료, AI 진단, 디지털 돌봄은 하나 같이 효과가 입증된 바 없는 연구과제나 혁신과제들이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늘리기는커녕 인력 감축과 관련 있는 효율화 과제다.
스마트병원은 KT, 현대로보틱스, IBM, 마이크로소프트, NHN 같은 대기업들이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같은 대형병원에 투자해 벌이는 일종의 '병원 자동화' 과정의 일부다. 문제는 이런 디지털 감시로 입원환자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간호 인력이 환자 곁을 돌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환자의 안전을 위해 더 중요한 점인데, 이를 자동화로 대체하려 한다는 것이다.
또 협진이 가능한 기술 장비를 설치하기 전에 주요 거점병원에 특정 전문의가 없는 현실을 개선하는 게 우선순위에 필요하다. 인력충원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디지털 감시로 해결하겠다는 대책은 '뉴딜'이 아니라 효율화일 뿐이다.
설사 '병원 자동화'를 하더라도 효과적인 부분과 아닌 부분에 대한 평가 이후에 환자들의 편익과 의료의 질부분에 대한 과학적 근거하에서 도입하는 것이 옳다. 정부가 이번에 뉴딜에 포함시킨 내용은 아직 연구과제로 효과가 입증된 바 없다. 다름 아닌 R&D 과제로 '뉴딜'을 한다는 발상이다.
취약계층에게 IoT 센서나 말벗용 AI 스피커, 웨어러블 기기를 나눠준다는 사업도 일차보건의료체계 확립과 방문 진료 활성화, 돌봄서비스 제공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다. 충분한 사회서비스로 국민들에게 돌봄을 제공하길 외면한 건 물론이고, 기존 돌봄 노동자의 처우와 역량개선이 아닌 구조조정을 상정한 경우다. 어르신과 만성질환자들에게 효과도 불분명한 비대면 서비스 시범사업을 제공하고 이에 국민 세금을 붓는 것은 기업 돈벌이인 건 말할 필요도 없다.
AI진단도 주요 추진사업으로 발표되었는데, 간질환, 폐암, 당뇨 등 12개 질환을 AI로 정밀진단하겠다는 계획은 아직 현실 가능성이 낮고 임상적 유용성이 입증된 바 없다. 정부가 이번에 밝힌 '닥터앤서2.0' 지원 계획(1.0에 2018년~2020년 364억 원을 이미 지원한 바 있음)은 세브란스, 서울아산, 한양대 같은 대형병원과 삼성화재-강북삼성병원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만든 기업들의 건강정보 빅데이터 연구사업일 뿐이다. 기존 지원사업에 대한 평가 없이 지원을 뉴딜계획에 명시하는 것도 재고가 필요하다.
보건의료 공공성과 사회서비스 확대가 '뉴딜'이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취약계층, 만성질환자 등에 대한 일차보건의료체계 도입과 환자등록제 및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는 것이다. 말벗 기계가 아니라 방문 진료의 현실화를 위한 방안이다. 무엇보다 '한국형 뉴딜'은 바이오헬스 산업계의 이익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와 사회서비스 확대를 위한 기반이 되어야 한다. 한국은 현재 사회서비스 인력이 부족하여, 주요선진국과 비교해 아직 사회서비스와 관련된 여력이 크다. 이를 위해서 사회서비스 인력의 안정적인 고용, 공공 책임성을 위한 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즉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병원 자동화' '병원 디지털화' 같은 기술발전과 기업배불리기가 아니다. 유급병가, 상병수당의 즉각 도입, 공공병원 확충, 보건의료 인력 확대이며, 이를 통해 취약계층, 만성질환자,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에게도 웨어러블장비가 아니라 사회서비스와 돌봄서비스를 더욱 많이 제공하는 체계일 것이다. 즉 보건의료 부문의 기술과 장비 중심의 '뉴딜'이 아니라 인력 중심의 '뉴딜'이 되어야 한다. 정부의 이번 '한국판 뉴딜'은 보건의료 부분에서만은 대국민 선전용 '뉴딜'의 가치조차도 없다.
정부는 숙련간호인력, 사회서비스 인력 등 고용이 크게 유발되는 영역은 방기하고, '한국판 뉴딜' 발표 이후 나온 '의대 정원' 확대 방안조차 공공의료 인력 확대가 아니라 민간병원자본(사립대 지역의사제)과 산업자본(산업체 의사 할당) 밀어주기를 하고 있다. 정부 정책 방향의 전면재검토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형준 시민기자는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입니다. 위 기고는 코로나19 사회경제 위기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코로나19시민대책위)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시민대책위는 전세계적 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대응하기 위해 모인 약 35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 기구입니다. 코로나19시민대책위의 활동 자료는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 covid19socio.tistory.com
정부여당이 10년간 의대정원을 매년 400여명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정원확대의 명분은 ‘공공의료 확충과 환자안전 강화’다. 국민들이 공공의료강화를 크게 요청하는 시점에 적절한 명분이다. 그런데 ‘공공의료 인력 확충’과 세부내용은 모순된다. 우선 매년 50명은 화장품, 기기업체 등 산업체 종사의사로 양성하겠다고 한다. 산업체가 공공의료를 한다는 것일까? 대상 의대도 정원이 적은 사립대로 한정되었다.
정부안은 결국 민간의료 강화
병원으로 보면 아산병원 삼성의료원 등이 대상인 셈이다. 캠퍼스는 지방에 있지만, 대형병원은 수도권에 있는 의대증원이 무슨 지역의료강화일까? 여기에 지역의무 복무기간에 수련과정도 포함돼 인턴 레지던트 팰로우 7년 제외하고 3년만 전문의로서 지방에서 근무하면 될 일이다. 덧붙여 지방 사립대병원은 부족해진 인턴 레지던트를 지역의무복무로 확보할 수 있으니 ‘꿩먹고 알먹고’라 할 만하다.
결국 제목은 공공의료 강화인데 내용은 민간의료 강화가 되었다. 혹자는 사립의대와 의료산업체의 얄팍한 술수와 막강한 로비의 결과라고 비판한다. 물론 로비가 난무했겠지만 근본적으론 공공의료 강화에 대한 정부철학의 부재가 원인이다
코로나19로 대구경북 지역의 대규모 환자 77% 가량이 공공병원에 입원했다. 경기도의 경우 지금까지 코로나환자의 95.5%가 공공병원으로 향했다. 물론 중환자들은 결국 민간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는 공공병원이 너무 열악해 중증환자 진료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암튼 전체 5%에 불과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재난상황이 발생하자 정부와 지자체가 동원한 자원은 공공병원이었다. 그래서 코로나19 시기 공공의료 확충은 시대적 화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의 공공의료 확충계획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판 뉴딜’에도 빠졌고, 몇차례 발표된 코로나대응 경제계획에도 없다. 갑자기 툭 튀어 나온 게 ‘의사정원 확대’안이다. 그것도 10여년 이후 도움이 될 ‘의대정원’ 문제가 중심화두로 등장한 건 변수가 상수를 치환한 경우다. 인력강화도 당장 ‘숙련 간호사’ 충원 계획이나, 전공의들을 중환자진료나 필수의료에서 일하게 할 계획이 우선인데 말이다. 중요한 인력충원 방안은 다 빠지고 그동안 경총 산업계 사립대병원 지방토건족들이 선거 때마다 요청한 의대설립과 정원확대 계획이 ‘공공의료 강화’로 포장되었다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공공의료 확대 위한 의사충원 필요
이제라도 누더기가 된 ‘의대정원’ 확대 논의는 전면 재검토 돼야 한다. 공공의료 확대 계획과 함께 구체성을 가지고 논의돼야 한다. 애초부터 증원되는 인력을 모조리 ‘공공의대’정원으로 돌리는 게 옳았다.
지금 의사협회는 ‘의사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모두를 백지화하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공공의료 확대를 위한 ‘공공의대’ 설립안과 사립병원 살리기 ‘의사정원 확대안’이 뒤섞여 전공의, 젊은의사들까지 혼동에 휩싸이게 되었다. 결국 의사협회와 정부의 주장들은 일종의 적대적 공생관계로 나타나고 있다. 공공의료를 외면하면서 서로에게 빌미를 주는 형국이다.
그 와중에 국민 고통은 심해지고 코로나 치료대응을 위한 피같은 시간이 낭비된다. 제대로 된 공공의료 확충 계획이 없다면, 의사협회의 ‘공공의대 반대’ 주장도 이겨낼 수 없다. 공공의료 강화정책에서 더 이상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둬선 안된다.
정부가 강원도를 경제자유특구로 지정하면서 원격의료를 시행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됐다. 원격의료와 관련된 지난한 논란을 보면 챗바퀴를 도는 같은 논리의 반복에 국민들도 피로감이 심하다. 특히 문재인정부는 대통령선거공약에서 '원격의료'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밝힌바 있어 공약파기 논란도 동반됐다.
원격의료 도입을 찬성하는 쪽은 디지털헬스와의 연계, 환자편의, 효율성, 산업발전등의 논리를 든다면, 반대 논리는 불필요한 비용의 증가, 안전성과 효용성의 결핍, 대면진료의 약화, 그리고 대형병원 쏠림현상 강화 등을 주장한다.
사실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말하는 '원격의료'는 정확하게 무엇을 지칭하는 지도 애매하다. 우리가 흔한게 병의원에서 치료받는 방식의 대면진료가 아니라 환자와 의사가 전화, 컴퓨터, 화상단말기에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원격결과 전송이 되는 검사장비가 집에서 병의원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모든 것이 원격의료인데, 도대체 한국에서 도입하겠다는 원격의료는 구체적으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지가 불분병하다. 해외의 경우를 보면 '원격의료'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한국처럼 격렬한 논쟁의 대상은 아니다. 대체로 구체적인 사안 사안에 대한 논의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국의 원격의료를 둘러싼 논쟁은 일부 해외학계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한국 원격의료 범위는 불분명
그렇다면 유독 한국에서만 '원격의료'라는 구체적 실체는 없는 추상적 개념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지속될까?
우선 가까운 대만이나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의료전달체계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고, 동네의원과 병의원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어 '원격의료'가 섬이나 산간벽지에 대면진료가 불가능한 곳의 보완적 요소로만 작용된다. 때문에 큰 논란없이 일부 도입되었다. 대만의 경우는 특히 병원급은 지불제도가 총액예산제(연간 병원의 총수입을 결정해 지급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격의료도입을 불필요하게 시도하지 않으며, 병원들은 중환자진료외에는 큰 관심도 없다.
유럽국가들의 경우는 대부분 주치의제도로 상징되는 일차보건의료체계가 작동하고 있어서 이미 예전부터 전화를 해서 환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자유롭게 방문하는 체계가 정착되어 있다. 때문에 원격의료와 대면진료를 모순되는 개념으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대면진료에 원격으로 여러가지 정보를 조합하는 것에 '안전성'과 '효용성' 문제에 근거를 학문적으로 관심보일 뿐이다. 국민들도 주치의가 단순히 아플 때 진단을 해주는 사람 이상의 지역사회보건의료체계의 기반이기 때문에, 대부분 원격의료를 선호하지 않는다.
특히 주치의제도하에서 원격진료를 섞는다고 특별히 더 보상을 받거나 환자들이 비용을 부담하지도 않는다. 필요성을 중심으로 산간벽지, 북유럽국가의 섬들, 원양어선, 오스트렐리아의 서부내륙등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며, 일차보건의료체계의 핵심요소들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해외의 사례조차 우리는 해외도입의 구체적 사례를 분석하지 않고, 한국만 도입이 늦어 제도에 뒤쳐진다는 비판 근거로만 쓰고 있다. 작년 6월 경제위기를 이겨낼 규제완화책의 첫번째로 경총(경제인총연합)이 주장한 것이 '원격의료'다. 보건의료 전문가도 아니고 경제인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이들은 온전히 '돈벌이' 수단으로써의 원격의료를 주창한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해외에서 누구도 '돈벌이'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원격의료가 굳이 한국에서는 영리적인 요인이 큰 이유도 다름 아닌 한국의료의 시장중심성 때문이다. 새로운 의료장비나 건강관리서비스가 모조리 영리기업의 돈벌이로 보이는 이유가 의료전달체계가 부재하고 주치의제도를 위시한 일차보건의료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의료전달체계 바탕 위 기술 도움
애초부터 지역사회의료 연계제도가 없고, 주치의제도 등의 의료체계가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원격의료' 논란이 부추겨졌고, 돈벌이를 위해 '원격의료'를 도입하자는 불나방들이 날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이제라도 '원격의료' 도입에 진정성을 가질려면 주치의제도를 위시한 일차보건의료제도 전반을 확립하는 문제에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주치의제도가 도입된다면 '원격의료' 논의가 지금처럼 논란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국민들을 위해 꼭 필요한 곳에서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재인정부도 '원격의료'가 아니라 주치의제도 도입을 위한 노력에 경주해야 한다. 올바른 일차보건의료체계가 확립된다면 진료방식이나 첨단의료기술 도입은 필요에 따라서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원격의료를 둘러싼 불필요한 사회적 논의의 해결책은 다름아닌 '주치의제도'이다.
가짜약 인보사 사태는 한국의 의약품 관리와 허가 체계 전반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우선 이 약은 핵심 성분이 무려 17년간 달랐지만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외에서도 서류로만 심사를 한다면서 교차확인을 의뢰조차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입을 닫았다. 정부, 학계, 기업, 병원 모두 느슨한 점검 과정을 유지했다. 인보사 관련 논문, 연구용역, 정부의 각종 지원 가운데 단 한 곳이라도 제대로 점검하고 확인했다면 ‘가짜약’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가 과정도 석연치 않다. 이 약은 유전자치료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애초부터 1년간 통증 개선 효과로 허가를 받았다. 표준치료인 스테로이드, 히알루론산 치료와의 비교연구도 전혀 없었다. 유전자치료제는 기존 치료보다 현격히 나은 효과가 있어야 허가받을 수 있다는 법 규정도 모두 무력화됐다. 결국 허가 때부터 ‘비싼 진통제’라는 비판을 받아오다 사기극으로 결론이 났다.
이번 ‘가짜약’ 소동은 여러 시사점을 준다. 코오롱티슈진이라는 한 기업의 일탈로만 봐선 안 된다. 2005년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 사건 이후 우리는 최소한 연구윤리와 진실성 추구라는 큰 교훈을 얻었어야 했다. 당시 학계, 정부, 연관 기업들이 자정 노력을 했다면 이번 가짜약 사태가 재현되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는 황우석 사기 이후로도 냉정한 비판은커녕 ‘연구 애국주의’와 ‘세계 최초 타이틀’을 부추기는 일이 더 많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전 세계 허가된 줄기세포치료제 5개(현재 8개) 중 4개가 한국서 허가됐었다. 이들 치료제 가운데 지금까지 미국, 유럽, 일본서도 허가받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인보사도 세계 최초의 유전자조작 세포치료제였지만, 성분이 바뀐 사실조차 한국이 아닌 미국 FDA의 요청에 따른 확인으로 드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국제적 망신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다름 아닌 한국의 느슨한 약품 허가 과정과 연구윤리 때문이다. 이미 2012년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네이처’조차 한국의 느슨한 치료제 허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약품들이 한국에서만 허가받고 있다. 이렇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단기적인 투기 활성화뿐이다. 문제는 종국에 투기 자본의 ‘먹튀’와 비윤리적인 연구자들이 만연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건실한 바이오헬스 연구 과제와 치료제까지 도매금으로 사장될 수 있다.
규제 완화로 허가받은 약품이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규제 완화를 통해 한국에서만 허가받은 바이오 약품이 양질의 일자리를 더 늘릴 수 있을까. 결국 투기 자본의 단기 수익성 추구를 제외하면 누구나 바이오헬스 규제 완화와 느슨한 약품 관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지금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이윤에 눈먼 바이오 기업을 가려낼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 바이오헬스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춰 지속 가능할 수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유전자조작 연골세포로 허가를 받아 수천명의 환자에게 투여까지 해놓고, 미국 세포주 확인 과정에서 걸려 정체불명의 가짜약을 판매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인보사’라는 가짜약 이야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기업의 보고서만 믿고 이런 가짜약의 성분을 10여년간 한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더 황당한 일은 가짜약이 밝혀지고도 코오롱생명과학은 시판을 계속하려 했다는 점이다.
가짜약은 애초부터 가짜연구에 기반했다. 학계는 검증 없이 가짜약의 가짜연구 논문을 실어줬다. 현대과학에서 진실성은 인간의 도덕성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교차확인, 동료평가, 논리적 정합성 등의 장치를 통해서 진짜연구가 가려지는 게 상례다. 인보사 연구 과정은 20여년을 끌어온 연구와 각종 논문, 특허의 결합체였다. 이 때문에 이 과정에 참여했던 공동연구자, 논문에 이름을 올린 공동저자, 공동 특허발의자 등 모두가 지금 책임있는 해명을 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
가짜연구를 방기하는 동안 가짜약으로 인한 피해는 투여받은 수천명의 환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가짜약 회사에 속아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주식에 투자해서 지금 가산을 탕진했다. 가짜약이 성공하는 데에는 정부·언론의 기여도 컸다. 인보사는 수십년간 정부의 각종 연구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수십억원을 지원받았다. 인보사는 각종 일간지와 경제지를 통해 ‘세계 최고의 유전자 치료제’로서 환호를 받았다.
가짜약 시판을 허가한 담당 부처인 식약처조차 적법한 절차를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다행히 코오롱 쪽과 식약처는 지금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가짜의 시대’라서 그런가. 과학적이고 객관적 사실조차 아주 손쉽게 기계적 중립성 요구에 굴복해 왜곡되고 있다. 가짜약이 애초부터 정체불명의 신장세포라서 문제가 없었다거나 서류상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식의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온다. 정부는 검찰 수사 외에는 나 몰라라 하고, 한술 더 떠 바이오헬스산업 규제 완화를 들고나왔다.
인보사가 느슨한 검증 과정과 허가를 받게 된 배경에는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기반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을 한 첨단의료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지금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 단계다. 효과에 대한 과학적 검증은 헐렁하다. 가짜약에 대한 기대가 성공하는 이유는 희망과 매력적인 약속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쉽고 기대할 만한 해법을 제공하는 단순한 설명도 첨가제 역할을 한다. 정부까지 효과 검증보다 규제 완화를 들고나오는 사태는 정부까지 가짜약에 취해 있지 않은지 의심케 한다.
과연 인보사만 가짜일까? 지금 인터넷에는 온갖 효과도 불분명한 줄기세포 치료제들이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해 있다. 이의경 식약처장은 지난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며,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줄기세포 시술을 받는 만명가량을 국내에 붙잡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 부처의 수장이 가짜연구, 가짜시술일 공산이 큰 치료 방식을 국회에서 버젓이 주장하는 현실은 가짜의 시대가 제도권에도 진출하지 않았는지 혼동에 빠지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한 식약처장을 비판한 학계나 언론이 없다는 점이다. 가짜의 시대를 막을 수 있는 보루는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과 진짜과학을 구현해 진실을 밝혀야 하는 학계다. 그러지 않는다면 생명과학과 국민건강까지 가짜가 오염시켜 다른 부분의 진실은 더 미궁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검사를 희망하는 배권환 군(오른쪽), 작곡가를 희망하는 이경엽 군의 손을 잡고 격려하고 있다. 2017.8.9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이른바 '문재인케어'에 대한 비판은 다각도로 제기되어왔다. 제일 큰 쟁점은 재정관련 내용이다.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돈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보험재정을 확충할 방안이 필요하단 논리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은 국고지원을 제대로 해 우선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대형병원 쏠림현상이다. 보장성강화를 하면 할수록 대형병원의 본인부담금이 줄어들어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더 몰릴 거란 주장이다. 이 주장도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들도 의료전달체계를 갖춰 적절한 자원배분을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거기에 주치의제도 등을 도입해 1차 보건의료를 강화하자고 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문재인케어에 대해 최근 황당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다름 아닌 문재인케어로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증가해서 국민의 민간보험 부담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논리는 공적보험의 보장성을 올리니 의료 이용이 많아져서 민간보험에도 영향을 준다는 내용과, 공적보험의 보장성 강화로 수익성이 떨어진 병·의원이 비급여를 더 많이 해서 민간보험비용을 올린다는 내용이 섞여 있다.
실손보험 자체가 비급여증가의 온상
일단 공적보험의 보장성을 올리면 환자들은 그동안 부담이 무서워 하지 못했던 검사나 시술을 더 받을 수 있다. 이는 행위량의 증가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동안 실손보험이 보장하던 비급여영역을 공적영역에서 보장하게 되어 실손보험이 이익을 보는 구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MRI, 초음파 검사는 과거 대부분 실손보험이 보장하던 영역이었다. 그런데 문재인케어로 건강보험이 이를 보장한다. 이렇게 되면 실손보험은 반사이익을 보게 된다. 이 때문에 작년 건강보험공단정책연구원은 건보 보장 항목에 대한 실손보험금 지급 부담이 줄어든 만큼 "약 6.15%의 실손보험료 인하요인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즉 실손보험은 손해율이 증가하는 게 아니고 손해율이 감소한다. 따라서 손해율 때문이라면 실손보험사는 문케어를 지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증가한다면 이는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영역이 계속 늘어난다는 뜻이다. 건보보장항목을 늘리면 수익성을 위해 병·의원들이 비급여를 계속 개발하고 늘려나간다는 이른바 '비급여 풍선효과'이다.
비급여 풍선효과는 지난 10여 년간 계속 문제제기가 되어 왔는데 시장 주도 의료 구조와 비급여를 급여와 섞어서 진료할 수 있도록 한 혼합진료허용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여기에 민간보험이 확대되면서 환자들의 비급여치료에 대한 도덕적 해이가 늘어났고, 병·의원도 실손보험가입자에 대해서는 무차별 비급여 처방을 남발했다. 즉, 비급여 풍선효과의 원인이 실손보험 존재 자체에 탑재되어 있다.
그간 실손보험사는 온갖 비급여를 모두 보장할 것처럼 상품을 판매하고 난 뒤 이것저것 이유를 대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아 논란이 된 적이 많다. 여기에 비급여가 늘어서 손해율이 증가한다고 아우성을 부리며 매년 실손보험료를 올려왔다. 비급여가 늘어나면 실손보험이 손해가 나는 건 자명하다. 이런 자명한 사실을 알지만, 실손보험시장을 확대해 민간보험사가 배를 채우려 했기 때문에 비급여를 통제할 장치마련에는 둔감했다.
즉, 실손보험과 비급여시장은 서로 강화해주는 관계다. 최근 문제가 된 700만 원 상당의 무릎퇴행관절염치료제 인보사도 실손보험이 있어 3700여 명까지 시술이 가능했다. 만약 실손보험이 없었다면, 효과가 불분명하고 하나에 700만 원이나 하는 주사제가 1년 동안 그만큼 판매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비급여 증가는 애초에 실손보험이 가진 내재적 모순이다.
병·의원이 문재인케어로 수익성이 악화되어 비급여를 더 시행한다는 주장도 황당하긴 매한가지다. 수익성만 추구하는 병·의원이 문제이지 국민의료비를 절감하는 대책이 문제가 될 수 없다. 앞서 밝혔듯이 의료전달체계 확립 및 1차 보건의료제도가 확립되면 해결될 문제다. 애꿎은 보장성강화 정책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병·의원의 심기를 건들지 말라는 것인가?
실손보험 사멸 위기... 보험회사의 공포
그렇다면 이런 황당한 논리로 문재인케어가 실손보험의 손해율을 높인다고 주장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실손보험사의 보험료 인상요구의 근거를 제시해 민간보험료를 올리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문재인케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퍼뜨려 공적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막아내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케어와 같은 보장성 강화정책이 확대되어 실손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사라지는 사회에 대한 보험사의 공포가 한몫 한 듯하다. 실손보험의 도입 취지가 애초 공적보험의 낮은 보장성이었던 만큼 공적보험이 대부분의 의료를 다 보장한다면 실손보험은 사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궤변의 기저에는 민간보험에서 건강영역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만약 실손보험의 손해율을 줄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문케어의 확대와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주장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주치의제 도입 등으로 효과도 불분명한 비급여가 사라지고 대형병원의 무분별한 과잉 검사도 제한된다면 실손보험은 존재 자체를 의심받을 것이다.
끝으로 이런 황당한 주장을 보도하는 언론은 사실 가짜논리로 무장한 가짜뉴스를 보도하는 셈이다. 무분별하게 민간보험사의 이해관계만 옹호하는 기사가 일간지까지 침투한다면, 그런 언론의 다른 주장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뜩이나 가짜뉴스로 국민들이 혼란에 빠져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한 가짜논리와 가짜뉴스만이라도 제발 사라졌으면 한다.
5일 원희룡 제주지사가 ‘국제녹지병원’을 허가했다. 무려 15년간의 영리병원 허용을 둘러싼 논란 속에 첫 허가다. 원 지사는 영리병원 불허를 확정한 공론조사위 결과까지 뒤엎으며 영리병원을 허가해 민주주의를 짓밟았다는 비판도 듣고 있다. 영리병원 허가의 후폭풍을 원 지사가 몰랐을 리 없다. 숙의형 민주주의의 상징인 공론조사위 결과를 뒤엎으면 자신의 정치생명도 위험해진다는 것을 몰랐을 리도 없다. 하지만 그는 여론과 부딪치더라도 의료산업의 편을 들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원 지사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조건을 들어 허가를 했는데 사실 영리병원 허용 자체가 한국의료체계에서 보면 부작용에 해당된다. 첫 영리병원 허가는 국내 역차별 논란, 각종 규제완화 요구의 시발점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당장 영리병원 허가는 의료기기·제약·보험·병원경영지원·건강증진식품 등 의료산업의 각 부분에 상법상 회사가 아닌 비영리법인만이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조항을 와해시킨다. 현재 각각의 의료산업이 서로 연계하더라도 핵심고리인 병원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은 한국의 의료공공성을 지켜온 핵심규제였다. 특정병원과 노골적인 연계를 추진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의 지배력 밖에 있어 진료행위는 물론이고 약품·의료기기에 대한 가격도 높게 책정할 수 있고 약품과 의료기기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사용이 가능한 매력이 있다.
이 때문에 의료산업 입장에서는 당장 하나만 없앨 규제를 생각한다면 무조건 ‘영리병원 불허’를 거론한다. 여기다 건강보험의 지배력이 없기 때문에 민간보험에 또 다른 시장인 의료보험시장이 제대로 열린다. 영리병원은 환자유인·알선을 민간보험과 결합해 할 수도 있고 특정보험 가입자만 진료하는 병원모델도 설립이 가능하다. 그렇게 된다면 사실상 돈 있는 환자와 돈 없는 환자를 분리할 수 있고 환자들의 계층별 맞춤 투자로 수익성을 더욱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간단히 생각해봐도 영리병원이 확대된다면 가져올 의료산업 확대, 수익성 증가는 부수적으로 분명해진다. 따라서 영리병원 허용은 ‘의료산업’에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들 의료산업은 영리병원 허용이 다른 산업에 미칠 영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앞서 살펴본 의료기기, 약품, 민간의료보험의 확대는 동시에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에 대한 소비력 감소를 의미한다. 가뜩이나 높은 교육비·주거비로 가처분소득이 적어 내수경기가 떨어지고 있는 지금 국민들이 꼭 지출해야 하는 의료비가 증가된다면 다른 산업의 내수감소는 뻔한 일이다. 거기다 건강보험이 가지는 효율성이 무너진다면 각종 제조업은 노동력 재생산과 관련된 비용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즉 이는 불필요한 인건비 상승으로 직결된다. 물론 이렇게 상승한 인건비가 내수진작이 아니고 모조리 의료비에 쓰인다면 더욱더 재앙일 것이다.
독일·프랑스·일본 등 제조업 선진국들에서 의료공공성 확보는 정치철학의 문제일 뿐 아니라 경제적 문제다. 2008년 부동산 파생상품으로 인한 세계 경제위기 때 미국 자동차기업 GM은 자신의 순이익보다 많은 금액을 종업원들의 민간의료보험료로 납부하고 있었고 이것이 매우 심각한 비효율이었음을 경제지 포브스도 지적했다. 도요타·벤츠·BMW가 가진 경쟁력의 일부는 안정적인 의료제도에 있다. 따라서 50병상짜리 작은 영리병원 허용이 미칠 파장은 ‘의료산업’에는 축복일지 모르지만 앞으로 한국경제 전반에는 큰 균열이 될 수 있다.
원 지사에게 영리병원 허용이 의료비 증대, 공보험체계 와해에 이어 종국에는 부익부 빈익빈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윤리와 정의의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겠다. 그런 정치철학이 없다는 것을 탓하지도 않겠다. 하지만 의료관광과 의료산업이 국가주도사업도 아닌 한국에서 여타 제조업과 경제순환에 악영향을 줄 ‘영리병원 허가’를 최초로 실행했다는 점은 인식하기를 바란다.
이대목동병원에서 4명의 신생아가 사망한 사건은 4개월이 지난 현재도 책임공방 수준에서만 머물고 있다. 정작 중요한 재발방지 노력과 개선방향에 대해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는 시작조차 못한 실정이다. 책임 관계와 처벌은 평가와 재발방지를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선진국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을 시 신속하게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책임과 관련해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주체인 병원과 관리 감독을 해야 할 정부는 빠진 상태다.
대형병원 의료사고의 경우 내부에서 그 과정이 분석되고 평가되는 게 상례다. 그런데 이번 사고는 병원이 원인을 밝히지 못해 질병관리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등에 수사 및 조사 의뢰가 진행됐다. 이대목동병원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단초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문제는 이런 형편없는 병원이 보건복지부 병원인증평가를 매번 통과하고 ‘상급종합병원’의 지위를 누렸으며, 수많은 의료 인력을 교육하는 ‘교육병원’이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밝혀졌듯이 감염관리, 환자관리가 이 병원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정 인력이 없어도 병상을 운영했고, 의료진 부재 속에 아이들이 죽어갔다. 대학병원임에도 자체 조사위원회 등을 통해 사건 원인 등을 찾아내지도 못했다.
만약 선진국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대목동병원은 당장 폐쇄됐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청문회가 열리고, 병원 경영진과 책임 있는 간부들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받았을 것이다. 병원과 병원 경영진에 책임을 묻고 이후 의료진에 대한 징계를 하는 경우는 병원 내부의 관리감독과 윤리규정이 강화된다. 반면 병원이 아닌 일선의료진에 대한 책임을 중심으로 묻게 되면 의료진들은 위험부담이 적은 업무로 이동하려 하고, 의료윤리도 실용적으로 왜곡된다. 전자는 유럽에서 주로 의료사고에 대처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미국에서 대처하는 방법이다.
미국 의료비가 유례없이 높은 이유 중 하나가 의료사고에 대한 개인책임을 강화한 결과라는 건 익히 알려져 있다. 위험부담을 의료비에 계속 포함시켜 환자에게 전가했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식 공적 접근법은 위험부담은 사회보험이나 병원이 떠안고, 개인에 대해서는 내부 평가로 징계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의료비 자체에 위험부담을 전가하지 않아 적정비용을 유지할 수 있었고, 중환자진료 등에 대한 의료인력 수급에도 문제가 없었다. 이런 근본적 차이는 의료제도의 성격에 기반한다. 미국은 시장의료인 반면 유럽은 공공의료를 지향한다는 큰 차이점이 그것이다.
최근 시장의료를 강하게 지지하는 세력이 대한의사협회를 장악했다. 의료에 대한 시장의존을 방치하면 의료진 개개인의 책임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모순을 몰라서인지, 의료진 구속에는 거꾸로 강하게 반대한다. 이런 비일관성 때문에 국민적 반감도 만만치 않다. 반면 정부는 ‘문재인케어’로 불리는 공적보험강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공적보험 강화, 의료의 공익성 확대에 전제인 병원 통제는 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여러 문제를 야기한 이대목동병원에 병원인증평가를 시행한 방식과 구조에 대한 개혁 계획이 없다. 이대목동병원에 대한 징계 내용도 알려진 바 없다. 이대목동병원이 그동안 벌인 영리적 의료행태에 대한 감사도 없다.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다.
‘문재인케어’로 불리는 의료보장성 공공성 강화 추진에 상당수 의사들이 반대하고 있다. 선량한 의사들조차 정부의 정책 변화로 책임은 몽땅 개별의사들이 져야 하는 게 아닌지 두려워한 나머지 일단 ‘비급여의 급여화’에 반대한다. 때문에 정부는 지금이라도 의료인 개개인이 아니라 공적 책임이 강화된다는 신호를 의료계에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의료공공성을 지지하는 선량한 의료인의 지지라도 회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돈만 벌면 된다는 불나방 의사들이 전체 선량한 의사들을 활용하는 걸 막을 수 없다. 이대목동병원 사건 해결 방식이 그 단초가 돼야 한다.
문재인정부의 건강보험 정책이 지난주 발표되었다. '병원비 걱정없는 든든한 사회'라는 기치 하에 가계에 부담이 된 '의료적 필요성이 인정되는' 비급여를 없애는 방식을 주된 전략으로 삼았다.
사실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의료보장은 기본적인 복지서비스다. 병원에서 평균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이 20%를 절대 넘지 않고, 이 또한 연소득의 2~5%를 넘어가면 무료가 된다. 이런 방식의 의료복지는 기본적으로 치료에 대해서는 국가(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공감 때문에 이루어졌다.
일본은 물론 우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살고 있는 대만도 의료복지 수준은 한국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유독 한국과 미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건강보험 확대, 가입방식 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비급여가 계속 늘어나는 풍선효과를 차단하지 못하면
1988년 전국민건강보험이 출범했다. 당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의료보장성강화'와 '재정충원과 형평성 확대'였다. '보험적용확대'는 그 이후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를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급여로 바꾸는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방식으로 계속 추진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2000년 이후로 매년 수많은 비급여가 급여화 되었다. CT, MRI등의 고가검사가 급여화되었고 고가의 항암제 등도 속속 급여화되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비급여는 계속 급여범위로 들어왔다.
문제는 이런 급여화 과정에서 비급여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2001년 12조원이었던 건강보험 총재정은 2015년에는 53조원으로 늘어났다. 무려 급여재정이 4배 이상 늘어났지만, 건강보험 보장성은 답보상태다. 2001년 7∼8조이던 비급여가 2015년에는 30조원 이상으로 늘어난 까닭이다.
2010년 건강보험 보장성은 62.7%이고 2015년은 63.7%이다. 5년간 보장성은 그대로인 셈이다. 그동안 급여재정은 33조원에서 53조원이 되었다. '비급여의 급여화'를 제 아무리 해도 비급여가 계속 늘어나는 풍선효과를 차단하지 못하면 국민들의 체감의료비는 절감하지 못한다.
OECD 국가들은 어떻게 높은 의료보장을 유지할까? 비보험이 왜 OECD국가에서는 늘어나지 않는 것인가? 유럽국가들은 병원의 대부분이 공공병원인 점도 있지만, 입원에 대해서는 총액계약제나 포괄수가제로 추가적인 행위가 있더라도 병원이 돈을 벌지 못하게 막고 있다. 가까운 대만도 병원에 대해서 이미 총액계약제를 실시한다.
동네의원이 담당하는 1차진료도 환자등록을 중심으로 돈을 받는 인두제를 시행하거나, 한국과 같은 수가제도를 운영하더라도 일본처럼 비급여를 섞어진료할 수 없는 '혼합진료금지'제도를 이용한다. 또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불필요한 의료이용을 막고, 닥터쇼핑을 막기위해 의료전달체계를 제대로 작동시킨다. 경증환자가 대학병원급의 중환자진료를 중심으로 하는 병원에 방문하는 것은 사실상 막혀 있다.
만성질환부터라도 의원등록을 하는 '주치의제' 필요
무엇보다 동네의원과 클리닉이 외래진료를 하고, 병원은 입원진료만 전담하는 임무분담도 명확하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국처럼 의원과 병원이 무차별적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최소한 지역별로 공공병원이 거점병원으로 있어서, 돈이 없어도 진료해주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의원과 병원의 의료전달체계를 명확히 하고 서로의 임무분담을 시켜야 한다. 병원급의 지불제도라도 '포괄수가제'같은 비급여가 자리잡기 힘든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비급여를 섞어서 진료하면 의료비 총액을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일본식 '혼합진료금지'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만성질환부터라도 의원등록을 하는 '주치의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