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와 부인 박경숙 씨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발급받은 사망진단서에 외인사가 선명하게 표시되어있다.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와 부인 박경숙 씨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발급받은 사망진단서에 외인사가 선명하게 표시되어있다.ⓒ제공 : 뉴시스

최근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의 핵심적 왜곡사항인 ‘병사’가 ‘외인사’로 정정되었다. 사실 이 사망진단서는 그간 ‘병사’로 기재되어 있었지만, 이미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외인사’로 인정되어졌다. 이 사망진단서 왜곡이 얼마나 분명한 사실이었는지는, 사망진단서 작성 이후 붉어진 각종 논란에 덧붙인 사회적 현상이 보여준다.

우선 인기드라마에서 사망진단서 왜곡을 지시하는 병원측에 맞서는 양심적인 의사가 등장했다.(드라마 닥터 김사부) 법률적으로 사망진단서 등에 대한 왜곡을 심판해야 된다는 법리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끝으로 씁쓸하게도 많은 국민들이 사망진단서에서 ‘외인사’와 ‘병사’의 의미를 공부해 이제 사망진단서 작성 시에도 의사들이 신경 쓸 부분이 많아졌다.

하지만 사망진단서를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정정해 놓고도 해괴한 논리를 내세운 서울대병원의 ‘옹색한 변명’은 차치하고서라도 사망진단서 건이 가진 의미는 단순히 협소하게 ‘병사’ ‘외인사’ 논란으로만 등치할 수는 없다. 사망진단서 왜곡이 결국 백남기 농민 사망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과정만큼 중요한 한국사회의 심각한 적폐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로 인한 사망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로 인한 사망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부검과 사망진단서

우선 사망진단서 건은 의학적 논란만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사망진단서를 자신의 소신껏 ‘병사’로 주장한 백선하 교수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대중들 사이의 싸움도 사태의 핵심이 아니었다.
사망진단서를 ‘병사’로 기재한 것은 작년 9월 백남기농민이 사망한 후 벌어진 ‘부검논란’과 맞닿아있다. 당시 정권은 물대포로 인한 사망이 분명한 백남기 농민을 부검하자고 주장했다. 정권이 부검을 필요로 한 이유는 죽음의 근거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과학적으로’ 제시해, 단순히 공권력인 ‘물대포’가 아니라 다양한 의학적 문제점을 끄집어내서 정권폭력을 희석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부검주장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다름아닌 ‘병사’ 기록이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 같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내재적인 병리적 문제로 사망했다는 의학적 기록은 정권이 부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 근거가 되었다. 이는 정권, 새누리당, 검찰, 경찰 등이 모두 공유하는 근거였다. 따라서 사망진단서 조작사건은 단순히 진단서 왜곡의 진위여부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의학적 소견이 활용되는 고도의 정치적 사건이었다.

청문회에서도 대범하게 ‘병사’를 주장한 백선하 교수는 매우 객관적인 모습으로 ‘의학’의 탈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희생을 합리화해주는 데 기능했다. 이런 과정의 과정이 사망진단서 논란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망진단서 논란의 해결책에도 부당한 국가권력에 아첨한 세력에 대한 파악과 대응이 포함되어야 한다. 단순히 ‘병사’를 ‘외인사’로 바꾼 것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서창석 전 대통령 주치의(서울대병원 원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서창석 전 대통령 주치의(서울대병원 원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권력과 특권층

이런 맥락에서 이제 우리는 한국사회의 전문가들에 대해서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의사들’이 한국에서는 사회 지도층, 엘리트로 인정받고 진료실에서 ‘존경’받는 전문가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왜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는지 말이다. 우선 이는 한국사회의 승자독식, 우승열패(우수하면 승리하고 열등하면 패배한다.)가 기반일 것이다. 엘리트가 되는 과정자체가 경쟁적이고 패권적이며, 비 민주적인 과정이었다. 여기에 권력에 빌붙어서야 진정한 특권이 된다는 역사적 경험과 인식은 나름 객관적인 과학을 구현하는 ‘의사들’에게도 고스란히 들러붙어있었다. 의술보다 돈벌이가 우선인 의사들이 많이 생겨난 것은 이런 과정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작년 최순실게이트에서 국가중앙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의 병원장이 일개 비선의 시중이나 드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했다. 그리고 서울대병원과 경쟁하는 세브란스병원의 수장과 의사도 충성경쟁을 벌인 추태를 확인했다. 이들은 끝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청문회에서도 위증을 해 현재는 벌금형 이상을 구형받은 상태다. 이런 추태가 사회특권층에게서 까지 벌어진 이유도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의 학문적 이상이나, 소신보다는 권력에 아첨하는 방식이 성공을 가져온 사회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학문적인, 혹은 전문가적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였다면 이런 황당한 사건이 벌어질 리 만무했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장 선발 시 서창석 병원장은 내부의 민주적 선출과정도 아니고, 학문적 평가도 아니고, 순수히 권력인맥(최순실일당)의 입김으로 병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권력층의 입맛에 따라 국가중앙의료기관의 수장이 결정된 이유는 서울대병원의 역할이 공공성, 연구, 교육이 아니라, 의료산업화, 영리화, 돈벌이, 권력빌붙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망진단서 문제도 전문가집단인 ‘의사사회’ ’병원사회’의 문제임과 동시에 한국사회 특권이 원칙이 아니라 권력비호를 해서야 성공했던 역사적 전처를 고스란히 반영한 경우였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부검이 불필요한 이유가 확인되는 동영상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경일 전 동부시립병원장이 영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부검이 불필요한 이유가 확인되는 동영상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경일 전 동부시립병원장이 영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동료평가

그러나 권력을 둘러싼 추태와 특권에 목말라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동료들에게 제대로 된 비판을 한 전문가들이 있었다. 우선 서울대 의대생들과 서울대 의과대학 동문들이 그러했다. 이들은 자신의 모교, 스승의 문제를 좌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국의 의대생들, 양심적인 의사들도 비판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동료평가의 표본은 국회청문회에서 백선하 교수의 황당한 궤변을 비판한 김경일 전 동부병원장이었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로써, 전문가의 양심을 가지고 백선하교수를 직접 비판했다. 그가 청문회장에서 한 사망진단서 사건에 대한 평가는 “결론적으로 거짓 수술을 했고 가족의 말을 무시하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반복했으며 마지막으로 사인을 바꿨다” 는 한 문장에 요약된다.이 문장이 사실상 사망진단서 사건의 모든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며, 오염된 전문가에 대한 올바른 비판의 표본이다.

사실 이런 역할은 의사협회, 신경외과 학회, 서울대병원이 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권의 눈치를 보면 전문가로써의 비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전문가집단의 동료평가의 엄밀성보다 동료에 대한 잘못된 ‘동업자의식’ ‘동료의식’이 문제였다. 때문에 ‘사망진단서’ 건이 원상복귀될 수 있는 계기에 김경일 전 동부병원장으로 대표되는 비판적 전문가의 역할은 매우 컸다. 또한 앞서 말한 권력에 빌붙은 전문가 특권층에 대한 날선 비판을 ‘동료평가’의 예로써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지난 8개월간의 ‘사망진단서’ 논란이 얻은 교훈 중 하나로 ‘동료평가’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20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고 백남기 농민 가족이 본관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백남기투쟁본부(백남기투본)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살인사건의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20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고 백남기 농민 가족이 본관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백남기투쟁본부(백남기투본)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살인사건의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한다고 밝혔다.ⓒ김철수 기자

끝이 아니다

그러나 ‘동료평가’의 가치와 필요성이 이번 사건의 일부 교훈이었다면, 아직도 ‘사망진단서’ 왜곡 사건은 종료된 것이 아니다. 우선 앞서 밝힌 부검강행, 공권력과의 결탁문제는 아직 수사나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꼭 확인되어야 한다.

또한 ‘사망진단서’ 왜곡이 백남기 농민사망사건의 핵심과제도 아님을 재차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사망진단서 교정으로 상당부분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곡해해선 안 된다. 백남기 농민 사망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타살사건이다. 책임자가 처벌받고, 공식적으로 규명이 되어야 하는 과제는 아직 산적하다.

여기다 서울대병원이 밝힌 사망진단서 교정의 이유도 문제다. 여전히 의료전문가로써의 양심과 ‘동료평가’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백선하교수’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 서울대병원은 사망진단서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에 대해 궤변을 중단하고 내부적인 윤리위원회를 통해서 조속히 ‘백선하 교수’에 대한 징계를 실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최고’ 의료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왜곡된’ 동료비호집단으로 역사의 불명예를 계속 뒤집어 쓰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나 민중들의 촛불과 투쟁이 그나마 사망진단서 교정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지난 겨울 거리의 촛불투쟁, 정권교체가 이룬 성과다. 결국 사망진단서 왜곡을 바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민중’들이었다. 따라서 앞으로도 ‘민중’들의 의지와 요구가 백남기 농민의 억울한 죽음을 역사적으로 바로잡을 근본 동력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