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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민신뢰 저버리고, 실리도 포기한 의협 지도부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입력 2014-03-19 18:42:04l수정 2014-03-19 19:29:38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작년 11월 정부가 '원격진료' 강행을 천명하자, 대정부투쟁을 시작했다. 이 와중에 작년 12월 13일 박근혜 정부의 전면 의료민영화 계획인 '투자활성화대책'이 발표되자, 국민건강을 지킨다며 '영리자회사' 등 투자활성화 대책의 의료부분 제외를 요구했다. 이 때문에 그간 시민들의 눈에 밥그릇 싸움에만 집착하던 의협의 변화가 놀랍게 비춰졌다. 물론 의사들의 이익만을 위해 명분만을 쌓으려 한다는 의심도 있었고, 더불어 시민의 일원으로 의사들도 의료민영화에 진지하게 반대하려고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올 1월 말에는 의협이 스스로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을 비판하는 4가지 포스터를 제작하여,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까지 하였다. 또한 원격의료, 영리자법인 반대 리플릿과 홍보자료를 각급 병의원에서 배포까지 하였다.

이런 국민의 의료민영화 반대 열기에 동승했기에 의협은 정부와 협상할 테이블을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이것이 올 1월부터 시작된 의사-정부 협의(이하 의정합의)다. 박근혜 정부는 의사들까지 의료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고, 의협과 빨리 협상하여 대정부투쟁을 수그러뜨리려 했다. 의정협의는 말 그대로 정부와 의협이 하는 협의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의협의 약속대로라면 박근헤 정부가 강행하려는 원격의료와 의료민영화를 일부라도 저지하는 협상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차례의 의정합의를 발표하면서, 의협 지도부는 단 한 번도 자신들이 국민들에게 밝힌 대의인 '원격의료와 의료민영화' 문제를 의미있는 수준으로도 패퇴시키지 못했다. 도리어 매번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런 수준의 협상을 대내외적으로 많은 것을 해낸 '최선의 결과'란 식으로 선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도 아닐 뿐더러 평범한 의사들마저 농락하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정부와 합의 도출

대한의사협회가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의실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16일 열렸던 보건복지부와의 2차 의정 공식대화에서 "그간 갈등을 벌여 온 원격 의료와 관련해 도입 전 6개월간 시범 사업을 진행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다.ⓒ윤재현 인턴기자




2차 의정합의, 도대체 성과가 무엇인가

우선, 이번 3월 17일에 발표된 2차 의정합의의 가장 큰 문제는 1차 의정합의의 내용을 존중한다고 밝힌 점이다. 이미 의협은 지난 3월 10일 파업을 결정하면서 회원투표로 1차 의정합의의 판단을 회원들에게 물은 바 있다. 세상에 이전 합의에 반대해서 파업을 하고, 그 합의문을 존중하는 노동조합이나 단체가 있을까? 의협이 정부와 싸울 의지가 있었는지도 심히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원격의료 부분은 평범한 동네의원의 향후 진로와도 심대한 관련이 있어, 일찍이 의협이 반대한 부분이다. 이 부분조차 시범사업을 해서 정부 입법에 반영하겠다는 합의만 했다. 시범사업을 해서 정부입법을 원점에서 재논의하거나, 정부입법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도 아닌 것이다.

의료민영화 부분은 더 가관이다. 영리자회사, 부대사업 확대, 병원 인수합병, 신의료기술 허가 간소화 등 수많은 문제 중 유일하게 '영리자회사' 건만 문제를 삼고 있다. 그리고 이조차 문제점을 수정하는 수준에서 정부 정책에 합의를 해주었다. 마지막에 문제점을 논의할 논의기구에 '대한병원협회'을 집어넣어 의료민영화를 요구한 세력의 참여를 보장하는 '확인사살'까지 하였다. 이쯤 되면 사실 의정협의에서 원격의료나 의료민영화 반대는 허울뿐인 쟁점이었음을 보여준다.

또 의협이 따냈다는 건강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부분을 보면, 건정심 위원의 공익대표를 공급자와 가입자가 동수로 추천하는 걸 합의했다. 무엇이 올바른 건정심 개혁인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 또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건정심 위원의 비율은 사실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해진 법률에 의거한다. 그렇다면 이를 단순히 정부와 합의해서 될 문제인가? 정부와 합의했다면 정부입법 정도일 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에 각종 의료제도 개선 문제, 상담수가 신설, 상대가치 재조정 등 수많은 문제들도 정부와 합의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대부분 행정부와의 조율이 아니라 사회적 기구를 통한 합의와 입법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정합의 내용은 국민들의 기대를 완전히 내동댕이친 것은 물론, 평범한 의협 회원들 마저 기만하는 결과이다. 문제는 이런 결과에 대해 의협 지도부가 보이는 태도인데, 만약 알고도 그러는 것이라면 정말 나쁜 지도부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정말 무능한 지도부가 아닐 수 없다.

의사 이익 위해 국민을 활용한 기회주의적 태도

그러나 의협 지도부가 보인 가장 나쁜 자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활용하려 시도한 점일 것이다. 국민이 보인 의료민영화에 대한 반대를 자신들이 슬그머니 이용해서 편승한 후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고 유유히 떠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회주의적 시도가 그다지 쉽지는 않을 듯 하다. 다름 아닌 의협의 상대가 박근혜 정부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민영화의 핵심 추진과제인 영리자회사 설립도 법률 개정이 아닌 정부 가이드라인 수준에서 제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외에도 환자 편의를 벗어나는 부대사업 확대도 시행규칙 수준에서 손을 보아 진행하겠다고 했다. 이는 입법제도를 우회해서 행정부가 마음대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집행하려는 '행정독재'이다. 

이러한 '행정독재'는 KTX 철도 민영화를 기존의 철도법을 개정하지 않고, 자회사를 허가해 강행하는 과정이나, '전교조 법외노조' 선언을 하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즉, 합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행정부를 박근혜 정부는 만들려고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공약은 그냥 '선거 캠페인'으로 치부하고 모조리 폐기한 '약속 폐기의 달인들'이다.

의협 집단휴진, 의료 말살 영리병원 중단하라

대한의사협회가 원격진료와 건강보험제도 등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발해 집단 휴진에 들어간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 대한의사협회 강당에서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윤재현 인턴기자




자 그렇다면 의협 지도부가 이제 진정으로 얻은 것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오로지 철도 파업 지도부처럼 잡혀가지 않고, 박근혜 정부를 위기에서 구원하는데 일조한 역할 뿐이다. 물론 국민이 의협 지도부에 거는 기대는 정말 눈곱만큼 작았지만, 이제 이조차 구할 수 없다면 향후 의사들의 이익이 국민의 이해와 같다는 주장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정말 심각한 것은 국민의 외면은 쉽사리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민과 합의하지 않으면, 의협은 자신을 위해 얻으려고 하는 수많은 이익도 결국 못 얻는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도리어 이번 의정합의는 환자진료에만 전념하고 있는 평범한 의사들의 이미지마저 하락시키는 악행이 됐다.

의협 지도부는 여전히 박근혜 정부에 잘 보여야 한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지금 신뢰를 구축해야 할 대상은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다. 그리고 그 점을 놓친다면 간만에 얻은 국민과의 신뢰를 맺을 기회마저 날려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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