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0일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304/h20130410033048121990.htm
[이슈논쟁] 경영난 공공병원 폐업
"국내 공공병원 비중 OECD 평균 10%선 수익성에만 집착 의료공공성 외면 안돼"
●반대, 정형준 의사·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의업은 돈보다는 생명이 가치
무작정 경쟁체제만 강요하면
가난한 환자들 사각지대 내몰려
한국의 공공병원은 전체 의료기관 수의 5.3%를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회원국의 평균 공공의료기관 비중이 70% 이상인 것에 비추어볼 때 10분의 1도 안 된다. 마치 민간의료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같은 존재다.
공공의료기관의 수가 이렇게 적다 보니 한국은 적정진료 표준도 사립병원이 제시하기까지 한다. 한국은 갑상선수술이 OECD 평균보다 10배나 많다. 안정성과 효과성이 아직 확증이 안된 로봇수술 원칙에 대한 규제도 없고, 고가의 비급여 검사를 많이 하는 검진센터를 둬 불필요한 검사를 많이 해도 적정수준을 제시하는 것이 민간병원들이다 보니 '과잉진료'에 대해서 속수무책이다.
반면 지방으로 가면 필수 진료시설인 응급실이 없어 몇 시간을 헤매야 하고, 분만시설이 없어 출산 전에는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 와 있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립 민간병원이 대부분이라 돈이 안 되는 진료를 모두 외면해서 그렇다. 이른바 필수적 진료에 대한 '과소진료'의 사예들이다. 결국 공공병원이 너무 없다 보니 적절한 진료 표준이 없어 과잉진료와 과소진료가 모두 존재하는 현실이 된 것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공공병원은 적정진료 표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병원에서 떠 넘기는 돈 안 되는 환자를 주로 받는 일을 하게 된다. 지방의료원들은 민간병원들과 비교했을 때 입원환자는 71%, 외래환자는 74%의 진료비만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걸핏하면 공공병원의 문제점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진료수익이 '적자'라는 점이다. 홍준표 경남지사 역시 이번 진주의료원 폐업의 이유를 '적자' 때문이라고 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의업은 돈보다는 생명이라는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병원 수익성과 성과를 아픈 환자나 병원 인력의 인건비에서 뽑아내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하지만 공공병원이 민간병원보다 적자가 많은 것은 앞서 말했듯이 돈 되는 진료에 혈안이 되지 않아서, 그리고 가난한 환자도 차별하지 않고 진료를 해 주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공공병원에서 흑자를 내라는 것은 부자 환자들을 '유치'하라는 뜻이고, 민간병원처럼 과잉진료를 하라는 것이다. 환자들로부터 돈을 벌어 국가가 수익을 내자는 생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공공병원의 적자부분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공공병원이 제 기능을 하지 않고 경쟁체제에 몰려 민간병원을 따라 하려다 발생한 것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의사성과급'과 '연봉계약제'다. 민간병원에서 성과급제로 의사들이 더 많이 진료하게끔 하고 경영성적도 좋아 보이니 그냥 막무가내로 따라한 것이다. 그러나 공공병원에 오는 가난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그야말로 진료 수익의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았고 도리어 의사들의 전문가로서의 자긍심에 손상만 있었다. 특히 매년 실적으로 계약을 하는 경우 차라리 민간병원에 가버리겠다고 나간 의사들이 많아졌다. 이 때문에 실제로 1998년 이후 성과급제를 도입했던 공공병원 의사들의 근속년수는 점점 짧아졌다. 따라서 병원의 경영상황도 나빠졌다. 즉 공공병원에 '경젱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공공병원의 장점도 살리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일부 지방의료원장은 공공의료에 대한 신념과 철학이 있는 사람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장의 개인적 인맥으로 임명되는 경우도 있다. 공공의료를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채산성만 맞추려는 병원장 밑에서 병원은 경영상으로도 더욱 어려워졌다. 여기에 추가 투자도 인력보다는 가시적인 장비나 건물에 집중되다 보니 실제로 병원에 가장 중요한 인력충원은 늦어졌고, 병원 근무 인력은 줄어들었다.
한국의 공공의료예산은 총예산의 0.5~0.7% 수준으로 OECD 국가 최저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기업회계에서처럼 독립채산을 강요하다 보니 실질 운영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 보인다. 5년 전 신축 이전한 진주의료원의 부채와 적자가 크게 늘어난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지금 민간의료의 바다 속에 공공의료를 살리는 첫걸음은 공공병원에서 공공의료를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공공의료를 잘 하려면 무엇보다 공공의료기관이 늘어나야 한다. 최소한 미국수준인 30%이상에는 도달해야 한다. 그리고 공공의료기관의 자긍심을 살리자. 공공병원이 돈이 아니라 공공성의 가치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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