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와 부인 박경숙 씨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발급받은 사망진단서에 외인사가 선명하게 표시되어있다.
고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와 부인 박경숙 씨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발급받은 사망진단서에 외인사가 선명하게 표시되어있다.ⓒ제공 : 뉴시스

최근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의 핵심적 왜곡사항인 ‘병사’가 ‘외인사’로 정정되었다. 사실 이 사망진단서는 그간 ‘병사’로 기재되어 있었지만, 이미 의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외인사’로 인정되어졌다. 이 사망진단서 왜곡이 얼마나 분명한 사실이었는지는, 사망진단서 작성 이후 붉어진 각종 논란에 덧붙인 사회적 현상이 보여준다.

우선 인기드라마에서 사망진단서 왜곡을 지시하는 병원측에 맞서는 양심적인 의사가 등장했다.(드라마 닥터 김사부) 법률적으로 사망진단서 등에 대한 왜곡을 심판해야 된다는 법리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끝으로 씁쓸하게도 많은 국민들이 사망진단서에서 ‘외인사’와 ‘병사’의 의미를 공부해 이제 사망진단서 작성 시에도 의사들이 신경 쓸 부분이 많아졌다.

하지만 사망진단서를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정정해 놓고도 해괴한 논리를 내세운 서울대병원의 ‘옹색한 변명’은 차치하고서라도 사망진단서 건이 가진 의미는 단순히 협소하게 ‘병사’ ‘외인사’ 논란으로만 등치할 수는 없다. 사망진단서 왜곡이 결국 백남기 농민 사망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밝히는 과정만큼 중요한 한국사회의 심각한 적폐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로 인한 사망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대문 경찰청에서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고 백남기 농민 물대포로 인한 사망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부검과 사망진단서

우선 사망진단서 건은 의학적 논란만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사망진단서를 자신의 소신껏 ‘병사’로 주장한 백선하 교수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 대중들 사이의 싸움도 사태의 핵심이 아니었다.
사망진단서를 ‘병사’로 기재한 것은 작년 9월 백남기농민이 사망한 후 벌어진 ‘부검논란’과 맞닿아있다. 당시 정권은 물대포로 인한 사망이 분명한 백남기 농민을 부검하자고 주장했다. 정권이 부검을 필요로 한 이유는 죽음의 근거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과학적으로’ 제시해, 단순히 공권력인 ‘물대포’가 아니라 다양한 의학적 문제점을 끄집어내서 정권폭력을 희석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부검주장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다름아닌 ‘병사’ 기록이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 같은 외부요인이 아니라, 내재적인 병리적 문제로 사망했다는 의학적 기록은 정권이 부검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 근거가 되었다. 이는 정권, 새누리당, 검찰, 경찰 등이 모두 공유하는 근거였다. 따라서 사망진단서 조작사건은 단순히 진단서 왜곡의 진위여부 문제가 아니라,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의학적 소견이 활용되는 고도의 정치적 사건이었다.

청문회에서도 대범하게 ‘병사’를 주장한 백선하 교수는 매우 객관적인 모습으로 ‘의학’의 탈을 빌렸지만, 실제로는 국가권력에 의한 개인희생을 합리화해주는 데 기능했다. 이런 과정의 과정이 사망진단서 논란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망진단서 논란의 해결책에도 부당한 국가권력에 아첨한 세력에 대한 파악과 대응이 포함되어야 한다. 단순히 ‘병사’를 ‘외인사’로 바꾼 것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서창석 전 대통령 주치의(서울대병원 원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서창석 전 대통령 주치의(서울대병원 원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권력과 특권층

이런 맥락에서 이제 우리는 한국사회의 전문가들에 대해서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의사들’이 한국에서는 사회 지도층, 엘리트로 인정받고 진료실에서 ‘존경’받는 전문가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왜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는지 말이다. 우선 이는 한국사회의 승자독식, 우승열패(우수하면 승리하고 열등하면 패배한다.)가 기반일 것이다. 엘리트가 되는 과정자체가 경쟁적이고 패권적이며, 비 민주적인 과정이었다. 여기에 권력에 빌붙어서야 진정한 특권이 된다는 역사적 경험과 인식은 나름 객관적인 과학을 구현하는 ‘의사들’에게도 고스란히 들러붙어있었다. 의술보다 돈벌이가 우선인 의사들이 많이 생겨난 것은 이런 과정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작년 최순실게이트에서 국가중앙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의 병원장이 일개 비선의 시중이나 드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했다. 그리고 서울대병원과 경쟁하는 세브란스병원의 수장과 의사도 충성경쟁을 벌인 추태를 확인했다. 이들은 끝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청문회에서도 위증을 해 현재는 벌금형 이상을 구형받은 상태다. 이런 추태가 사회특권층에게서 까지 벌어진 이유도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의 학문적 이상이나, 소신보다는 권력에 아첨하는 방식이 성공을 가져온 사회였기 때문이다. 최소한 학문적인, 혹은 전문가적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회였다면 이런 황당한 사건이 벌어질 리 만무했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장 선발 시 서창석 병원장은 내부의 민주적 선출과정도 아니고, 학문적 평가도 아니고, 순수히 권력인맥(최순실일당)의 입김으로 병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권력층의 입맛에 따라 국가중앙의료기관의 수장이 결정된 이유는 서울대병원의 역할이 공공성, 연구, 교육이 아니라, 의료산업화, 영리화, 돈벌이, 권력빌붙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망진단서 문제도 전문가집단인 ‘의사사회’ ’병원사회’의 문제임과 동시에 한국사회 특권이 원칙이 아니라 권력비호를 해서야 성공했던 역사적 전처를 고스란히 반영한 경우였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부검이 불필요한 이유가 확인되는 동영상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경일 전 동부시립병원장이 영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부검이 불필요한 이유가 확인되는 동영상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경일 전 동부시립병원장이 영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동료평가

그러나 권력을 둘러싼 추태와 특권에 목말라하는 의사들 사이에서도 동료들에게 제대로 된 비판을 한 전문가들이 있었다. 우선 서울대 의대생들과 서울대 의과대학 동문들이 그러했다. 이들은 자신의 모교, 스승의 문제를 좌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전국의 의대생들, 양심적인 의사들도 비판을 거두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동료평가의 표본은 국회청문회에서 백선하 교수의 황당한 궤변을 비판한 김경일 전 동부병원장이었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로써, 전문가의 양심을 가지고 백선하교수를 직접 비판했다. 그가 청문회장에서 한 사망진단서 사건에 대한 평가는 “결론적으로 거짓 수술을 했고 가족의 말을 무시하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반복했으며 마지막으로 사인을 바꿨다” 는 한 문장에 요약된다.이 문장이 사실상 사망진단서 사건의 모든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며, 오염된 전문가에 대한 올바른 비판의 표본이다.

사실 이런 역할은 의사협회, 신경외과 학회, 서울대병원이 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권의 눈치를 보면 전문가로써의 비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전문가집단의 동료평가의 엄밀성보다 동료에 대한 잘못된 ‘동업자의식’ ‘동료의식’이 문제였다. 때문에 ‘사망진단서’ 건이 원상복귀될 수 있는 계기에 김경일 전 동부병원장으로 대표되는 비판적 전문가의 역할은 매우 컸다. 또한 앞서 말한 권력에 빌붙은 전문가 특권층에 대한 날선 비판을 ‘동료평가’의 예로써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지난 8개월간의 ‘사망진단서’ 논란이 얻은 교훈 중 하나로 ‘동료평가’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20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고 백남기 농민 가족이 본관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백남기투쟁본부(백남기투본)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살인사건의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20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고 백남기 농민 가족이 본관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백남기투쟁본부(백남기투본)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살인사건의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한다고 밝혔다.ⓒ김철수 기자

끝이 아니다

그러나 ‘동료평가’의 가치와 필요성이 이번 사건의 일부 교훈이었다면, 아직도 ‘사망진단서’ 왜곡 사건은 종료된 것이 아니다. 우선 앞서 밝힌 부검강행, 공권력과의 결탁문제는 아직 수사나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로 꼭 확인되어야 한다.

또한 ‘사망진단서’ 왜곡이 백남기 농민사망사건의 핵심과제도 아님을 재차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사망진단서 교정으로 상당부분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곡해해선 안 된다. 백남기 농민 사망은 국가공권력에 의한 타살사건이다. 책임자가 처벌받고, 공식적으로 규명이 되어야 하는 과제는 아직 산적하다.

여기다 서울대병원이 밝힌 사망진단서 교정의 이유도 문제다. 여전히 의료전문가로써의 양심과 ‘동료평가’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백선하교수’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려고 한다. 서울대병원은 사망진단서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에 대해 궤변을 중단하고 내부적인 윤리위원회를 통해서 조속히 ‘백선하 교수’에 대한 징계를 실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최고’ 의료전문가 집단이 아니라, ‘왜곡된’ 동료비호집단으로 역사의 불명예를 계속 뒤집어 쓰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역시나 민중들의 촛불과 투쟁이 그나마 사망진단서 교정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지난 겨울 거리의 촛불투쟁, 정권교체가 이룬 성과다. 결국 사망진단서 왜곡을 바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민중’들이었다. 따라서 앞으로도 ‘민중’들의 의지와 요구가 백남기 농민의 억울한 죽음을 역사적으로 바로잡을 근본 동력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19대 대통령선거가 불과 10일정도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은 촛불혁명으로도 불리는 거리시위와 전민중적 불만이 만든 결과다. 23회까지 지속된 주말 촛불집회는 단순히 박근혜 퇴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박근혜정권이 상징하는 1% 특권층독재, 부패, 부조리를 일소하는 게 국민들의 요구였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 제일 중요한 화두는 단연코 ‘적폐청산’이다.

그러나 실제 촛불이 만든 장미대선의 모양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 우선 TV토론 등에서 보여주는 후보들의 공방은 ‘적폐청산’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기성언론이 조장하는 구도도 편협하기 그지없다. 적폐를 어떻게 청산할지를 논의하기 보다는 차기 대통령을 길들이거나, 조정하려는 언급과 질문공세가 돈과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다시 조장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실제로 지난 대선보다 정책논의 수준은 더 떨어지고 있다. 사드배치와 같은 중요한 사안도 고작 색깔론 논쟁 속에 묻혀버렸다. 이런 수준이다 보니 보건의료공약의 경우는 거의 논외로 넘어간 상황이다. 지난 대선과 비교해봐도 박근혜의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100%’와 문재인의 ‘100만원 상한제’의 대결 같은 핵심 보건의료 공약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보건의료공약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 다른 쟁점과 정책들이 더 중요하고, 당장 우리사회에 긴박한 과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건의료공약의 내용을 들어가 보면, 이는 단순히 우선순위가 뒤쳐진 것 때문은 아닌걸 알 수 있다.

보건의료 공약의 퇴행

먼저 이번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의 공약들이 이상하리 만큼 비슷한 점이 있다. 우선 보장성강화 공약을 보면 ‘비급여의 급여화’를 모두 주장하고 있는데, 그 방식이 예비급여(일정기간 급여화를 하고 이후에 비용효과가 입증되지 않으면 퇴출하는 방식) 혹은 선별급여(본인부담율을 기존 급여영역과는 달리 50~80%까지 차등적용)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조금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인데, 기존의 의학적 효용성이 있는 비급여를 전면급여화 하는 방식과 다른 점만 간단히 보면 이렇다. 우선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더라도 우리가 내는 본인부담율이 높아서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될 수 있는 게 선별급여다. 또한 예비급여는 효과가 떨어져도 일단 한동안 국민들이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국가책임방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예비급여나 선별급여 모두 지금보다 낫다고 볼 수는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2000년부터 시작된 무상의료요구, 그리고 2011년 민주당이 당시 주장했던 ‘무상의료’에 비하면 너무나 큰 후퇴이다. 또한 이런 방식을 여야 할 것 없이 차용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어린이병원비 절감책은 3당이 복사판이다. 18세미만 어린이의 입원시 건강보험적용부분에서만 현재 본인부담20%를 5%로 낮춘다는 계획이 그것이다.

이도 보장성을 일부라도 올린다는 점에서는 개혁정책이다. 하지만 기존의 어린이무상의료에 비하면 수준이 너무 낮다. 거기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이 20%에서 5%로 인하를 여야 할 것 없이 주장하는지는 더욱 이상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후퇴는 한국의 보건의료개혁과제의 핵심인 공공병원설립이 모호하거나 사라졌다는 점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바른정당 유승민,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생방송 토론을 시작하기 앞서 손을 잡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바른정당 유승민, 국민의당 안철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28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생방송 토론을 시작하기 앞서 손을 잡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공공의료포기?

원래 공공의료는 2003년 노무현정부가 공공병원을 30%까지 확충한다는 공약을 발표했을 정도로 중요한 정책이었다. 다들 이제는 알다시피 한국의 공공병원의 비율은 계속 줄어들어 이제는 5%에 지나지 않는다. 민간의료의 천국 미국의 27%에 비해도 너무 작고, OECD 국가 평균인 70%선에 비추면 한국의 상황은 심각하다.

공공의료가 부족하면 드러나는 문제는 수치만이 아니다. 대표적은 2년전 우리는 메르스사태를 겪으면서 공공의료부족의 피해를 직접 경험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음압병실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 주요환자를 공공병원으로 넘겨야 했다.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자 감염병 전문 공공병원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공공의료기관이 부족하니 어떤 치료가 적정진료인지 판단도 어렵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많이 하는 수술이 왜 그런지 분석도 되지 못한다. 왜냐면 민간병원들의 경쟁구도 속에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추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의 결정판이 박근혜 본인이 빠져든 줄기세포치료, 근거 없는 주사치료, 약물치료 등이다. 지역에 거점 공공의료기관이 적정진료의 표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민간기관이 이를 선도하다보니 무엇이 근거가 있고, 무엇이 과소진료인지 파악조차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첫 번째 단추는 공공병원의 설립이다. 기존병상과 병원이 과포화인 지역이라면, 민간병원을 공공이 인수하는 방법도 좋다. 병원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여기저기에 공공의료인프라는 깔려있어야 재난적 상황에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전쟁이라도 난다면 우리는 필요한 의료자원을 가동이나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선거의 선거공약에 공공의료는 레토릭으로 일부 단어만 들어간 수준이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공공의료를 도달시키겠다는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김선동 후보만이 공공의료 30%를 핵심보건의료공약에 내걸었다. 도리어 주요 대선후보들은 공공의료에 대한 낮은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홍준표 후보는 알다시피 역사상 최초로 지방의료원을 폐원시킨 당사자이므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시장론자인 유승민 후보도 당연히 공공의료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문재인 후보는 공공의료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물론 민간의료가 아니라 공공의료로 창출하는 일자리가 더 양질의 일자리일 것이다. 하지만 공공의료에 대해 얼마나 투자할 것인지, 어느 수준까지 늘릴 것인지가 전혀 약속되지 않는 공약은 심히 우려스럽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5년 6월 23일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다목적홀에서 삼성병원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머리숙여 사과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5년 6월 23일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다목적홀에서 삼성병원발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머리숙여 사과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한국사회 보건의료 적폐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해방 직후 남한의 의료기관은 병원은 일제가 지은 공공병원, 의원은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의원이었다. 따라서 병상은 대부분이 공공병상이었다. 홍준표가 폐원한 진주의료원도 일제가 1910년 만든 지방의원이 효시다. 그런데 1948년 이승만 정권이 집권하면서 병원도 미국식 민간종합병원을 지어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거꾸로 국가는 추가적인 병원건립을 중단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지어진 국립중앙의료원도 노르웨이 스웨덴의 후원을 받아 지어졌다. 그 이후 사립대학병원, 중소병원들이 늘어날 때도 국가는 공공병원을 짓지 않았다. 그래서 1968년이 되어서는 이미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병상수가 비슷한 수준으로 민간병원이 많아졌다. 하지만 결정타는 1977년부터 발생했다. 박정희는 직장건강보험을 도입하면서도 국고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을 알면서도 병원공급을 전적으로 민간에 맡겼다. 그 결과 1977년부터 민간의료기관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88년 전국민건강보험으로 미충족의료가 또 한번 해소되는 시점에 와서도 국가는 의료공급을 방조했다. 그래서 이 자리를 삼성과 현대가 재벌병원으로 채웠다.

즉 해방 이후 한국의 의료는 의료공급에서만큼은 점점 더 시장화의 길로 걸어왔다. 건강보험은 공적보험으로 도입이 되었지만, 그 열매는 민간의료기관이 거의 독식했다. 병원을 경영하면서 대학을 경영하고, 보수정당의 정치인이 되고, 지역의 유지가 되는 것이 가능한 나라였다. 그리고 지금은 재벌이 직접 병원을 소유하고 경영하는 나라다.

이것이 한국의 보건의료제도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런 민간주도의 의료인프라가 논란이 되고 있는 영리병원 도입, 서비스산업 발전, 병원 인수합병, 원격의료 도입의 토대가 되고 있고 이를 추동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근원은 민간의료인프라의 과도함, 그리고 보건의료인프라에 대한 국가책임방기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의료인프라에 대한 대안이 없는 정책은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붙는 방안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후보들의 공공의료방조가 국가책임방조뿐 아니라, 의료부분에 대한 또 다른 시장화로 나아갈 여지를 남기려는 게 아닌지도 의심스럽다. 때문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보건의료적폐해소의 과제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 공공보건의료인프라 확충에 집중하고 동의하는 세력의 규합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은 정말 지저분하다. 연일 계속 나오는 언론의 탐사보도 그리고 폭로, 여기에 각종 사실들이 추가적으로 발표되면서 누가봐도 막장드라마를 방불케하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과 연결된 의료관련 사항들도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 폭로 중이다. 이 것을 모두 합치면 ‘의료게이트’로 부를 만한 것이고, 여기에 각종 의료관련 산업체들의 민원처리를 해 준 정황을 보면 특검에서도 면밀히 조사하고 규명해야 되는 사항이 많다.

26일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청와대가 구입한 비아그라를 풍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6일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청와대가 구입한 비아그라를 풍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이런 것들 중에 국민들의 관심을 뜨겁게 달궜던 사안이 청와대가 구매했다는 약품들이 아닌가 한다. 우선 지난주 국회의원실을 통해 보도된 내용이 계속 확대 재생산되었는데, 가장 뜨거운 관심은 ‘비아그라’로 대표되는 발기부전치료제의 구매내역이었다. 그 외에도, 엠라크림이나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에토미데이트’도 세월호 7시간의 행적과 함께 구설수에 올랐다.

사실, ‘비아그라’로 대표되는 발기부전 치료제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 우선 청와대의 해명처럼 이 약들은 고산병 예방 및 치료제로 사용된 적이 있고, 지금도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아그라’가 원래 심혈관질환과 관련돼서 개발된 약이고, 발기부전 치료도 이 약의 부수적인 효과로 밝혀진 효능이다. 네팔, 부탄등의 히말라야 고산지대를 등산하는 산악인들은 4,000m 이상으로 올라가는 일이 많아 폐수부종이 발생하는데, 이때 효과가 있다는 점은 학계에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설사 ‘발기부전’ 치료를 위해서 사용했더라도, ‘비아그라’에 무슨 죄가 있겠는가? ‘발기부전’도 치료해야 하는 질병의 범주에 들어간다. 혹시 ‘발기부전’에 사용했다면,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약품에 국민들이 낸 세금이 유용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에토미데이트’도 최근 수면유도에 사용하면서 논란이 되지만, 응급시술시 안전한 진정제로 사용한다. 즉 응급약품으로 구비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사용내역을 최근 확인한 바로는 비아그라,팔팔정 등의 발기부전제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고산병연구회’ 깃발이 촛불집회에서 펄럭이는 현실은 국민들의 극도의 불신이 바탕에 깔려있다. 거꾸로 말하면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 설명도 이제는 국민들을 납득시킬 수 없는 정부이며, 즉각 퇴진만이 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많은 집회 참가자들이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수많은 집회 참가자들이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주관적 결정

그렇다면, ‘비아그라’, ‘에토미데이트’의 나름 적절하고, 의학적인 처방 이외의 문제는 없었을까? 사실 실제 중요한 지점은 청와대 의무실과 대변인이 해명하지 않은 약품들에 있다. 여기에는 라이넥주(태반주사)를 기점으로 하는 각종 기능주사제들이 포함된다. 청와대는 ‘비아그라’, ’에토미데이트’, ‘엠라크림’등에 대해서는 나름 의학적 근거를 두고 해명했지만, 이런 기능주사류에 대해서는 의학적, 논리적 해명을 전혀 하지 못했다.

실제로 태반주사, 감초주사, 백옥주사 등으로 불리는 이런 기능주사류등은 의학적 효능을 입증받지 못했다. 태반주사의 경우는 만성간질환 치료제로 그나마 허가를 받았고, 백옥주사도 피부를 하얗게 해주는 효과가 아니라 피로개선등의 효과로 허가받은 제품이다. 즉 안정성은 그나마 식약처에서 평가를 했지만, 효과와 관련해서는 애매하고, 대체재가 더 낫기 때문에 의료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현대의학은 주관적인 효과에 대한 입증보다 객관적이고 광범위한 추적관찰에 따른 효능을 중시한다. 이는 몇몇 사람이 효과가 있다고 하는 ‘비방류’의 처방이나, ‘비법’에 해당되는 약제가 아니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으로 결정된 약물과 시술을 우선시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런 기능주사류를 피로회복, 피부미용, 건강증진에 사용하는 의료인들조차 그 효과를 확신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구나 청와대 주치의와 자문의를 할 정도의 권위 있는 의료인들이라면, 이런 근거없는 약제들에 대해 누구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것이다.

청와대의 '비아그라' 구매 의혹을 보도하고 있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청와대의 '비아그라' 구매 의혹을 보도하고 있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해당 매체 캡처

그럼에도 무려 20명가량의 의료진의 자문을 무시하고, 이런 기능주사류를 대량 구비하고 소비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결국 합리적인 과정, 과학적 판단, 논리적 절차보다는 개인적 경험과 같은 주관적 요소에 심취한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주사류에 대한 신봉 수준이 주변의 권위있는 조언자들을 무시할 수준이라면, 어떠한 정책이나 의사결정도 자신의 주관적 결정에 부차적이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이 바로 ‘비선’으로 불리는 자신이 아는 사람(최순실), 자신이 믿는 것(수첩), 자신의 협소한 경험(자신과 비선이 경험한 것)을 우선시하는 정책과 아집, 부패를 만들어낸 것이다. 때문에 진정 문제는 이런 기능주사류를 국민들의 세금으로 낭비한 것 뿐 아니라, 비과학과 비논리에 심취한 박근혜 대통령 자체의 아집과 성격이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의 관저에서 비선의사인 차움병원출신의 김상만원장을 불러 정맥기능주사를 맞았고, 주말에는 강남센터에까지 가서 이러한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김상만 원장의 타 언론 인터뷰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주치의 및 자문의 진료에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의료진 20명의 진료 보다 입증되지 않은 김상만원장의 기능주사가 더 효과적이었다. 입증되지 않은 NK셀(자연살해세포) 활성도 검사를 위해 자신의 혈액을 행정관을 통해 외부에 유출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건강정보 같은 2급 비밀을 단지 입증되지 않은 줄기세포류의 치료를 위해 말이다.

끝으로 우리는 왜 이런 자기의 경험에 갇혀사는 괴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걸러내지 못했을까? 그 답은 지난번 대선 TV토론에서 야당후보의 질문에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 박 대통령의 답변에 들어있다. 질문에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의지만 강조하는 전형적인 뭉개기 방식 말이다. 좀 더 보면 결과와 과정, 논리적, 합리적, 과학적 결정보다는 자신이 결정하면 해낸다는 자아도취, 그리고 감정에 호소, 추진력을 지도력으로 포장하면 대중적으로 이익을 보는 그간의 사회시스템도 한몫했다. 일단 지르고, 이후에는 거짓 발 뼘과 뭉개기를 시도하는 조폭식 방식 말이다. 이런 조폭식 방식이 그동안 재벌, 검찰, 국정원, 새누리당, 대통령이 해 온 방식이고, 그들이 권력을 유지한 방식이기도 하다.

뭐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청와대 약품구매 리스트만 보더라도, 이제 한국은 완전히 바꿔야 한다. 최소한 다수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는 지도자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기본적인 전제는 절대적 다수인 민중의 의지와 의견을 청취하는 지도자일 것이다. 암튼 그 시작이 범죄자 박근혜의 즉각 퇴진과 구속임은 분명하다. 질병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제대로 된 진단이고, 그다음 치료이다. 곪은 곳을 드러내야 새 살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4년간 지속적인 민영화 전략을 추진해왔다. 철도, 전기, 수도, 가스 등등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공적 영역을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민간영역으로 이동시켰다. 민영화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동원되었는데, 철도의 경우는 민간자본이 투여된 다른 철도구간(수서발 구간)을 만들었다. 가스, 전기는 배급방식 등을 통해 ‘민영화’를 추진한다.

이러한 ‘민영화’ 시도 중에서 의료부문은 직접적인 ‘영리병원’ 설립시도가 있었다. 더불어 기존의 비영리법인의 사적자본 영역을 더욱 확장시키는 부대사업확대, 영리자회사설립, 병원인수합병 허용 시도등이 나타났다. 물론 민영화에 대한 대중적 반감과 노동조합의 투쟁등으로 이러한 과정은 박근혜 정부의 의도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영리병원은 박근혜 정부가 역사상 최초로 허가했지만, 제주도에 40병상수준의 피부미용병원으로 한정되어 허가되었다. 병원인수합병허용은 지난 국회 말 통과를 앞두고,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민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현 정부가 항상 하는 이야기는 ‘민영화’가 아니라는 항변이다. 수서발 KTX도 민영화는 아니고, 효율화이며, 전기, 가스의 민간기업 분배하청도 효율화일 뿐이다. 무엇보다 의료민영화와 관련해서는 항상 하는 이야기가 ‘국민건강보험을 지키므로 민영화가 아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박근혜정부는 지난 4년간 국민건강보험을 지켰을까? 지키는 건 기대하지 않지만, 약속을 했으니 많이 망가뜨리지는 않지 않았을까?

공기업 경영평가의 그늘

우선 지난 4년간 박근혜 정부 들어 누적된 건강보험 흑자는 이제 무려 20조가 넘는다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집권 첫해부터 누적흑자를 역대 최고로 갈아치우더니 매년 12조(2014), 16조(2015), 이제는 20조를 넘긴 것이다. 건강보험이 매년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구조라는 점에서 흑자는 그 자체로 현 정부의 의료정책 실패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년 남는 흑자를 누구보다 안타까워해야 할 건강보험공단조차 이를 자랑해왔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상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상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매년 건강보험 흑자를 경영공시로 자랑한 이유는 공기업 경영평가에 흑자경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를 통해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임원들은 막대한 소득을 챙겼다. 성상철 건보공단 이사장은 작년 말 취임하고도 무려 지난해만 4천348만원의 성과급을 받았고 상임이사진과 상임감사진은 각각 평균 3천478만원, 3천188만원씩을 수령했다. 국민들이 낸 건강보험료를 제대로 쓰지 않았는데, 도리어 임원들은 배를 불리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민간보험회사의 임원들이 받는 성과급과 다르지 않았다.

여기다 건강보험 흑자로 각종 펀드투자 및 국공채채권투자를 하는 것도 모자라, 2017년에는 흑자가 있다고 법에 명시된 국고지원금액도 축소한 상황이다. (건강보험재정 순증상황에서 무려 2000억 축소발표) 이는 건강보험제도를 전적으로 국민들의 호주머니로 유지하겠다는 전략이고, 건강보험 재정도 민간보험처럼 금융자산으로 관리하겠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이를 위한 큰 틀 중 하나가 공기업 경영평가에서의 수익성 중심 기준이었다. 암튼 이런 정도니 박근혜정부는 건강보험을 지키기는커녕 망가뜨렸다고 보는 게 맞다.

이런 상황은 여타 공기업도 비슷하다. 공기업이 가지고 있는 공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그냥 서비스 쥐어짜기, 노동강도강화, 비정규직 고용 등을 통해 흑자경영만 하면 도리어 평가점수가 올라갔다. 그리고 이런 경영평가 지표는 실제로 민간기업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에만 맞춰져 비정규직고용을 늘리고, 서비스질이 하락하면 점점 더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공기업경영지표가 수익성 중심이 되면서, 사실상 공기업은 민간기업과 비슷하게 기능하도록 강요받았다.

의료영역에서는 건강보험뿐 아니라, 공공병원에도 이런 지표가 적용되었다. 때문에, 공공병원들도 돈 안되는 공공의료 서비스나, 적정진료보다는 비보험진료나 부대사업에 더 집중했다. 최근 들어 공공병원에 저소득층이 더 입원하기 힘들게 되고, 보라매병원등은 로봇수술 같은 고가의 비보험 수술을 할 경우 성과급을 적용하려는 문서까지 공개된 상황 모두가 이런 경영평가의 여파다. 국립대병원들도 경영평가를 받으면서, 채산성과 수익성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최근에 서울대병원은 지하 1층에 대대적인 쇼핑몰을 열려고 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따라서 공기업 경영평가는 직접적인 ‘민영화’ 조치는 아니지만, 공적 역할을 훨씬 더 영리적으로 바꾼다는 점에서 외재적 ‘민영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내재적 민영화

이런 경영평가를 통한 전체적 ‘민영화’압력을 박근혜 정부는 행사하면서, 이번에는 또 다른 방법을 강구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성과연봉제’ 도입이다. 현 정부는 성과급을 통해 경영효율화, 일하는 공기업을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사실 공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 사회근간을 유지하는 서비스를 제공했느냐 인데 말이다.

29일 공공부문 노동자 총파업 총력투쟁 집회에 앞서 국민건강보험공단노조 조합원들이 성과연봉제·퇴출제 저지를 위한 총파업 총력투쟁 사전집회를 여의도 KBS 앞에서 진행 구호를 외치고 있다.
29일 공공부문 노동자 총파업 총력투쟁 집회에 앞서 국민건강보험공단노조 조합원들이 성과연봉제·퇴출제 저지를 위한 총파업 총력투쟁 사전집회를 여의도 KBS 앞에서 진행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암튼 정부 주장은 공공부문 노동자들까지 성과에 따라 임금을 구분해서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기업의 상당수가 이렇게 하여 매우 효율적으로 경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앞서 보았듯이 공기업의 임원들에게 도입된 성과급을 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일단 임원들의 성과급은 앞서 말한 공기업 경영성과와 연동되어 있었다. 때문에, 건강보험공단의 임원 중 누구도 건강보험 흑자를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을 위해 사용하자고 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를 못 쓰게 쥐어짜고, 생계형 체납자들의 체납율을 낮출수록 성과급을 더 받았다. 이는 건강보험공단을 민간보험회사와 비슷하게 만드는 효과였다.

이런 탈공공적 경영을 진두지휘하는 낙하산 임명된 건강보험의 이사장과 임원들이 모두 성과급의 노예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그동안 저항하며,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과 건강보험 강화를 위해 싸워온 것은 다름 아닌 건강보험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이었다. 건강보험 노동자들의 주된 역할은 건강보험을 잘 관리해서 국민들을 위해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공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사장이 아니라, 주로 조직된 노동조합을 통해서 구현되었다. 건강보험 노동조합은 흑자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써야한다고 누구보다 앞장서 투쟁해 왔다.

또한 건강보험 노동자들은 소득이나 상황에 맞추어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경감방안등을 제안하고, 눈감아준 경우가 없지 않았다. 일선에서 가난한 체납자들의 형편을 조정하는 것이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에게 성과급이 적용되면 어떻게 될까? 우선 기존의 진급심사정도에 적용되던 징수실적이 연봉에 반영되면서, 생계형 체납자를 비롯한 빈곤층의 보험료 징수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는 민간보험회사의 ‘보험왕’ 경쟁과 비슷한 구조를 불러올 것이다.

또한 건강보험의 올바른 사용을 주장해온 노동조합도 내부의 성과급 경쟁과 분열로 전 국민의 건강권 확보에 취약해 질 수 있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건강보험의 성격이 공적보험으로 공공서비스의 보루가 아니라, 민간보험사처럼 성과에 따른 연봉을 받고, 경영실적으로 평가받게 됨으로써, 사실상 의료비 절감이 아니라, 의료비 긴축에 동참하게 되는 효과다.

앞서 말한 공기업 경영평가와 성과급이 모두 도입되면 건강보험공단의 메커니즘은 보장성 강화가 아니라, 보장성 답보 혹은 축소를 통한 공단의 실적 강화(흑자 유지)에 완전히 맞춰진다. 내부의 동학도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적 성과급 경쟁만이 남는다. 이는 가뜩이나 의료비 부담으로 어려운 국민들에게는 재앙이고, 건강보험공단이 민간보험과 마찬가지의 수익자부담 구조로 바뀌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민영화’와 다름없다.

이런 과정 때문에 공기업의 성과연봉제 도입은 사실상 내재적 ‘민영화’ 조치이고, 직접적으로 ‘민영화’를 주장하지 않지만, ‘민영화’로 가는 꼼수다.

12일 오전 공공운수노조 공공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노조원들이 서울대병원 본관 로비에서 '성과급제 반대, 최업규칙 개악 저지' 의료공공성 확충을 위한 임단협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12일 오전 공공운수노조 공공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노조원들이 서울대병원 본관 로비에서 '성과급제 반대, 최업규칙 개악 저지' 의료공공성 확충을 위한 임단협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공기업 성과연봉제 저지 투쟁에 연대하자

지금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과 서울대병원을 위시한 병원이 파업 중이다. 주된 쟁점은 공기업 성과연봉제 저지이다. 국민건강보험은 1987년 민주화 투쟁으로 시작된 전국민건강보험의 산물이고, 이후 10여년간 지속된 건강보험 통합운동의 성과이다. 이를 민간보험회사처럼 바꾸려는 시도 중 하나가 성과연봉제 도입이란 것을 건강보험 노동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병원노동자들도 이미 의사성과급제로 수많은 ‘과잉진료’와 ‘인력쥐어짜기’를 경험했다. 만약 공공병원에 노동자들에게도 성과급이 도입된다면 병원에서 돈벌이경쟁이 극한에 도달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매우 더딘 과정이지만 IMF이후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서 공공서비스가 날로 영리화 되는 과정의 완결판이고,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근간인 노동자들의 ‘공공의식’을 말살한다는 점이다.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정신, 공공성은 물론이고, 사회전반의 공공성이 말살되게 된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를 별다른 설명도 없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이간질하던 수법처럼, 공기업 노동자들과 국민들을 이간질해서 마치 ‘철밥통’이 고임금을 유지하려 파업을 한다고 선동적으로 비난하는 보수언론과 정부야 말로 자신의 기득권과 뻔뻔스러움을 드려다 봐야 한다. 지금 성과연봉제저지를 위해 거리로 나선 파업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보내자. 지금 남의 일처럼 무시하고 지나간다면, 앞으로 우리가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받을 때 나와 우리 아이들이 피눈물을 흘릴 수 있다.


http://www.peoplepower21.org/Welfare/1349614


영리병원의 민낯

 

정형준 l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

 

4월 2일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이하 녹지병원) 사업계획서를 최종승인 기관인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복지부가 이 요청을 승인하면 국내 첫 영리병원이 설립되게 된다.

 

영리병원과 관련된 지리한 지난 15년간의 논쟁이 실체를 보게 될 시점이다. 이미 각종 의료민영화반대투쟁의 학습효과로 대다수 국민들은 영리병원 하나만 설립되어도 의료영리화를 가속화하고, 의료이용의 부익부빈익빈을 부추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추진하는 세력도 ‘영리병원’을 ‘투자개방형 병원’으로 바꿔서 부르고, ‘영리병원’에 초점이 가지 않도록, ‘외국인병원’, ‘국제병원’등을 부각시키려 한다. 그러나 이런 언어조작의 물타기에도 매번 그 본질이 드러나는 과정은 놀랍다.

 

우선 작년 결국 불승인된 제주도 ‘싼얼병원’의 경우를 다시 보자. 싼얼병원은 48병상의 피부성형중심병원으로 중국 CSC그룹이 주투자자로 허가를 요청했다. 그런데 CSC그룹은 이름 자체가 '중국 줄기세포 기업'(China Stemcell Company)일 정도로 사실 줄기세포 불법시술이 예상되었다. 이런 문제제기가 불거져도 복지부는 싼얼병원이 '줄기세포 포기각서'를 써서 문제가 없다는 황당한 옹호 발언을 하며 승인을 강행하려 했다. 또한 응급의료체계의 미비도 문제가 되었다. 응급상황에 대한 대비를 무려 40km나 떨어진 제주시의 S병원과 업무협약으로 해결한다고 한 점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인터넷만 조금 뒤져서도 알만한 몇 가지 사실이 줄줄이 사탕처럼 밝혀졌다. 싼얼병원을 설립하려는 중국 CSC그룹 자이자화 회장이 이미 전년도에 사기 대출혐의로 중국에서 구속되었고, CSC그룹의 핵심기업들은 이미 부도처리 되었다는 것이다. CSC 그룹은 'CSC 산니의원'을 운영하였으나 이는 베이징 내 한국인이 설립한 '왕징신청병원'이라는 2층 규모의 작은 병원과 협약을 맺어 이름만 빌려 쓴 병원으로도 밝혀졌다. CSC그룹이 대부분 페이퍼컴퍼니로 사실상 사기기업임도 밝혀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인데도, 당시 복지부가 ‘한국법인은 불법이 아니지 않냐?’는 황당한 반응을 보인 점이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한국법인조차도 싼얼병원의 부지로 광고한 부동산을 매각하고 있는 중임이 밝혀졌다. 한국법인조차 엉터리임이 드러나자 복지부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싼얼병원을 불허했다. 초등학생이 딱 봐도 말도 안 되는 병원을 무려 2년간 끌면서 불승인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승인요청을 한 녹지병원도 싼얼병원의 전례를 밟고 있다. 우선 녹지병원도 싼얼병원과 비슷한 규모(48병상)의 성형병원을 표방했다. 응급의료지원이 안돼서 제주시의 병원과 협약을 맺어야 한다. 인력구조 등을 보면 거의 똑같은 병원이고, 동일 컨설팅업체가 사업계획서를 만들지 않았나 의심되는 수준이다.

 

투자자인 녹지그룹은 중국국영기업으로 사기기업까지는 아니지만, 부동산투자전문기업으로 병원을 설립한 적도, 병원운영경험도 전무하다. 그래서 제주도는 중국과 일본의 병원운영경험이 있는 제2,3의 투자자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2 투자자는 ‘북경연합리거의료투자유한공사’(이하 북경연합리거)다.

 

북경연합리거 최대 규모의 병원은 바로 국내 성형외과병원 중 최대 규모인 B성형외과 원장 H씨가 설립 운영하는 ‘서울리거’ 성형병원이었다. H씨가 2004년부터 제주도에 영리 성형타운을 만들고자 여러 차례 시도한 바 있으며, 언론을 통해 수차례 제주도 내 영리 성형 센타 설립의 꿈을 강조한 점이 밝혀졌다.

 

게다가, 작년 이 ‘서울리거’ 병원 개원식에는 복지부 지원과장, 국회의원, 제주도 관광본부장 등이 대거 참여했고, 당시 한국 녹지그룹사장은 “병원 10개를 건립할 수 있는 부지와 기금 등을 (서울리거에) 지원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즉 ‘녹지병원’은 사실 녹지그룹의 투자만 받았을 뿐 운영과 경영은 한국의 병원자본이 한다. 또한 복지부와 국회의원 그리고 제주도청이 나서서 국내 성형외과가 중국에 설립한 영리병원에 중국 땅투기 기업의 날개를 덧붙이고 포장을 해서 다시 국내 영리병원으로 역수입하는 계획을 한 셈이다.

 

그런데 역시나 화룡점정으로는 B성형외과 원장들은 지난 2012년 세금 탈루 혐의가 유죄로 판결되어 H씨를 비롯한 3명이 16억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영리병원 설립시도도 조세포탈 범법자들에게 우회적인 병원운영의 기회를 제공하는 수단이었다.

 

이번 녹지병원 건을 보면 ‘싼얼병원’은 불승인되었지만, 만약 승인되었더라도 누가 운영을 했을지를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말로는 중국인 관광객 등의 외국인진료를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 한국인이 운영하고 투자하면서 내국인을 주로 진료할 병원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셈이다. 다른 측면으로는 국내병원의 영리병원 설립 우회로로 기능하면서 사실상 내국인이 합법적으로 투자이익을 분배받는 경로가 된다.

 

무엇보다 ‘싼얼병원’과 이번 ‘녹지병원’건을 보면 영리병원의 본질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엉터리 병원일 뿐 아니라, 사기꾼과 범법자들이 투자하는 병원이고, 불법 줄기세포 치료 등 비윤리적 진료가 예상되는 곳이다. 또한 국내의 돈벌이 의료를 우회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그간 도입 이유로 거론된 해외의 선진의료 기술도입이니, 외국인 정주시설이니 하는 핑계가 무색하다.

 

아무튼 이런 영리병원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는 현재도 정부는 법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으면 승인하겠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고 한다. 현 정부의 민낯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형국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7782.html

 

[왜냐면] 신의료기술평가 무력화의 피해자는 국민이다 / 정형준

‘신의료기술평가제도’는 그동안 안정성,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채 의료현장에 들어와 문제를 일으킨 ‘의료기기, 의료재료, 의료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장치로 2007년 도입되었다. 2007년까지 한국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안정성 평가가 통과되면 효과성 여부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의료기술들이 도입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로봇 시술이다. 로봇 수술은 지금도 효용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높은 수술비를 받으면서 확대되고 있다. 2007년 이전 도입된 의료기술이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예 중 하나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도입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신청된 총 1349건의 의료기술 중 694건(51.4%)은 기존 기술과 유사하거나 연구 결과가 부족하여 아예 평가 대상이 아니라고 판정받았다. 나머지 평가를 받은 620건도 471건(전체 중 34.9%)만 인정을 받았다. 늦게나마 평가가 이루어져 수많은 불필요한 의료기술에 국민들이 노출될 일이 줄었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 때문에 평가제도는 의료시장에 제멋대로 진입해 돈을 벌려 한 의료기기, 의료재료 업체들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의료기기 업체들은 수많은 심포지엄들을 통해 평가제도 때문에 의료기기의 국제적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신의료기술평가제도 무력화 요구와 맞아떨어진 게 바로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규제 완화는 하나의 도그마가 되었는데, 신의료기술평가제도와 관련해서도 2013년 10월부터 2015년 7월까지 무려 6번 이상에 걸쳐 무력화 시도가 있었다. 주된 내용은 ‘유망의료기술’ 도입 기간을 단축하고, 대체치료기술이 없는 질환이나 희귀질환의 치료기술에 대하여 예외를 적용하며, 체외진단검사기기의 평가를 제외한다는 내용이다. 최근에는 임상시험을 거쳐 식약처 허가를 받은 의료기기는 신의료기술평가를 유예해서 즉시 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평가제도와 관련된 규제 완화는 내용이 복잡하고 전문적이라서 수많은 의료민영화 쟁점 중에서도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못했으며 별다른 저항 없이 추진되고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는 평가제도가 가진 전문성과 복잡성이란 약점을 이용해 한가지씩 규제완화책을 공개하며 추진하고 있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 완화의 실제 쟁점은 의료기기의 빠른 시장 도입에 맞춰져 있었다. 원격의료 기반장치 중 하나인 ‘체외진단기기’에 대한 시행규칙이 별도로 마련된 것을 보면 이는 삼성, 에스케이 같은 굴지의 재벌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원격의료와 신의료기술평가 완화는 재벌들의 돈벌이 시장 확대가 주된 목표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렇게 확대된 의료재료와 의료기기 시장의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들이 보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각종 수술비가 3배 가까이 오른 이유가 의료재료의 특허권과 가격 상승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조금씩 진행된 의료기기 규제 완화가 불러올 것은 의료비의 폭발적 상승이다. 그래서 신의료기술평가제도 규제 완화는 가장 강력한 의료민영화 정책이라 부를 만하다.

황당한 건 정부는 이런 규제 완화를 행정적으로 도입할 권한이 없다는 점이다. 의료법 제53조에 의하면 정부는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수행할 시행 당사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법도 개정하지 않은 채 정부가 수개월마다 제도의 한 부분씩 망가뜨리려는 시도는 월권행위이자 불법이다. 조금씩 망가뜨려서 결국 신의료기술평가를 와해하려는 계획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월권과 국회 무시에 제대로 대응 한번 못하는 야당의 무능함도 참 슬픈 일이다.

정형준 의사·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http://www.hani.co.kr/arti/society/health/700926.html

 

“외국 신종 감염병 정보 수집·정리체계부터 갖추자”

등록 :2015-07-19 22:37수정 :2015-07-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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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식 인하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왼쪽부터), 임승관 아주대의대 감염내과 교수,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메르스 유행 원인을 짚고 감염병의 추가 확산을 막을 길을 논의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황승식 인하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왼쪽부터), 임승관 아주대의대 감염내과 교수,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이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메르스 유행 원인을 짚고 감염병의 추가 확산을 막을 길을 논의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메르스의 경고 ⑤ 전문가 좌담회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환자가 5월20일 진단된 뒤 두달이 다 되어가며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그동안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 가운데 36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직도 14명이 격리돼 치료를 받고 있다. 초일류병원이라 불리던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에 초토화돼 부분폐쇄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번 메르스 유행으로 한국의 병원들이 그동안 병원 감염에 얼마나 소홀했는지를 낱낱이 보여줬다는 지적도 많다. <한겨레>는 메르스 유행의 원인을 짚고 감염병의 추가 확산을 막을 길을 찾으려고, 임승관 아주대의대 감염내과 교수, 황승식 인하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등 전문가 3인의 의견을 들었다. 좌담회는 지난 13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사회는 김양중 의료전문기자가 맡았다.

 

임승관 아주대의대 감염내과 교수
‘실질적 권한’ 가질 주체가 중요
시·도는 끼어들 공간 없었고
보건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황승식 인하대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감염병 의심환자 증상 등 정보
중앙 전산망서 실시간 공유해야
응급실엔 별도의 이동경로 필요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 정책국장
한국 감염병엔 후진국 양상
공공인프라 제대로 안 갖춰진 탓
다인실·가족간병 환경도 개선을

 

사회 5월20일 첫 환자가 확진됐을 때 처음엔 대부분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186명의 환자가 생겼다. 왜 이렇게 확산됐나?

 

왼쪽부터 황승식 교수, 정형준 국장, 임승관 교수
왼쪽부터 황승식 교수, 정형준 국장, 임승관 교수
임승관(이하 임) 초기에 격리의 범위를 잘못 설정한 것이 이후의 모든 사태를 낳았다. ‘비말(침방울) 전파’나 ‘2m 이상 퍼지지 않는다’는 모두 맞는 말이고 지침대로 한 것이다. 문제는 첫 환자가 해당 병실 바깥으로 사흘 동안 나가지 않았으리라는 전혀 있을 수 없는 잘못된 가정이 그 뒤 여드레 동안 통했다는 점이다. 첫 메르스 환자가 확진됐을 때 질병관리본부장이나 역학조사과장 등이 평택성모병원에 갔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전문가들을 만나러 서울역으로 갔다. 질병관리본부가 전문가한테 의존하고 수동적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정형준(이하 정) 임 교수의 지적에 동감한다. 정부가 병원의 경영 문제에 초점을 맞춰 5월20일부터 6월7일까지 19일간 비밀주의를 고수했다. 바로 이 점이 메르스 확산을 증폭시켰다. 병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아 일선 의료진이나 환자가 감염됐을 가능성을 의심하지 못하게 됐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머물다 대규모 감염원이 된 14번째 환자도 메르스가 완치된 뒤에야 자기가 14번째 환자인 줄 알게 됐지 않느냐. 첫 환자를 진단한 삼성서울병원에서도 해당 의료진이 아닌 다른 의료진은 메르스 관련 정보를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

 

황승식(이하 황) 국외 유행 감염병 정보가 제대로 취합돼 있지 않았다. 메르스 매뉴얼은 있었다. 하지만 그 매뉴얼에 병원 감염이 실제 어떻게 나타나고 유행하는지는 담겨 있지 않았다. 중동에서 메르스가 발생했을 때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중동에 인력을 파견해서 직접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모았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평택성모병원에서 격리 범위를 너무 좁게 잡은 실수를 삼성서울병원에서 되풀이한 것도 문제다. 대책본부를 질병관리본부에서 보건복지부로 격상하며 오히려 평택성모병원에서 대처하던 경험을 활용하지 못했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는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사회 보건복지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메르스 지침대로 대응했다고 한다. 한국의 특수한 상황이 메르스 확산을 부추긴 건 아닌가?

 

 메르스 대응 지침(매뉴얼) 자체보다 매뉴얼 지상주의가 더 문제다. 매뉴얼이 ‘있다는 사실’에 집착해 실제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적용하지 않았다. 대비 훈련을 통해서 매뉴얼을 계속 수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해설서처럼 매뉴얼을 갖춰놓고만 있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감염병 위기 대응이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여러 상황을 가정해 대비 훈련을 하며 매뉴얼 내용을 개선하고 있다.

 

 훈련이 부족하다는 황 교수의 지적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병원 의료진이나 보건소 공무원이 훈련을 한다고 실제로 잘할지는 의문이다. 현실에서는 요식적인 훈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메르스 유행 사태로 감염병 확산 방지 시설·장비 강화, 보건부의 독립부처 신설 등 얘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위 주체의 권한이다. 평택성모병원을 보자. 질병관리본부와 평택시보건소만 움직였다.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움직여야 할 허리가 없다. 시·도는 끼어들 공간이 없었고, 끼어들었다면 오히려 간섭이나 경쟁으로 비칠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는 보건소에 책자를 주고 실행하라고 하는데 보건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한국은 결핵 발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7배 수준이다. 보건소를 기반으로 한 공공방역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사정이 이러니 감염병에 대해선 후진국 양상을 보인다. 관련 전문가를 만들어내는 체계도 없다. 감염내과 전문의 부족만이 문제가 아니다. 방역 체계에서 감염병 예방을 맡은 공무원은 한직이다. 현장에서 훈련받은 사람조차도 그 위치를 벗어나고 싶게끔 만든다. 이런 현실에서는 매뉴얼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현장에서 구동이 되지 않는다.

 

사회 병원 정보 공개는 국민들이 원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정부는 늦어도 너무 늦게 공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메르스 사태를 비밀에 부치고 좌충우돌하며 메르스를 확산시킨 것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 정부는 시민들을 과도하게 불안하게 만든 책임이 있다. 병원을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했다. 세계보건기구는 위험대응전략에서 시민의 신뢰 확보를 강조하며, 모든 정보를 조기에 발표하도록 한다. 시민들이 투명하다고 믿게끔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보를 구하고 다닌 것이다. 정부가 민주적으로 결정하거나 시민과 소통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자문한 전문가도 비밀주의에 빠졌다. 이런 게 계속 불신을 낳았다.

 

 우리 사회가 감염병 유행 등에 쉽게 들끓고 차분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건 인정해야 하는 사실일 것 같다. 정부나 전문가도 메르스 유행 병원 이름 등 정보를 공개하는 게 좋다는 걸 몰랐겠나. 투명한 공개는 ‘절대선’이고 미공개는 민주주의 훼손으로 여기는 건 적절하지 않다. 의료진한테만 정보를 공개하는 등 정보 공개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잘 정하고 집행하는 게 바로 행정력이다. 대한감염학회에서 정보 공개에 반대했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이 아니다. 감염학회는 의료기관과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미국의 사례는 정보의 공개·공유가 강조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연방정부-주정부 체제라,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연방 전체가 알 수 없다. 위험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려면 정보 공개·공유가 필수다. 모든 정보의 공개·공유가 절대선은 아니더라도, 어느 단계에서 어찌할지 논의가 필요하다. 정보 공개·공유가 더 이득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아직 시민, 심지어 전문가들도 공중보건 위험에 대한 독해력이 떨어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이분법으로만 배워 확률적으로 해석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 공개가 오히려 과도한 불안을 낳을 위험도 있다.

 

사회 초일류병원이라던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유행지가 된 사실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음압병실이나 방호복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점은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찌 된 일인가?

 

 의료진의 잇단 감염 등 메르스 유행이 나타난 삼성서울병원은 우리가 아는 그 삼성서울병원이 아니었다. 메르스 유행에 따른 대응인력 부족으로 의료진들이 과도하게 근무하게 됐다. 감염 예방 지침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방호복을 입고 벗을 때 지침대로 하지 못하는 등 실수도 하게 돼 감염됐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이 병원에 메르스 진료를 계속 맡기기보다는 다른 병원에 이송하는 게 바람직했다. 문제는 그 이송 시기가 늦었다는 점이다.

 

황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환자가 잇따라 나와도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메르스 환자 진료를 계속한 것도 이 병원의 자존심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아마 다른 대형병원들이 삼성서울병원과 같은 처지였더라도 문제를 자체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이 일부러 정보를 감추려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병원 내 감염을 차단해본 경험이 없어 실패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째 환자는 응급실의 모든 구역을 돌아다녔지만, 병원 쪽은 이 환자가 있었던 구획만 소독할 정도였다.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대처 과정에서 초기에 질병관리본부가 배제됐는데, 어떤 이유로 그리됐는지 밝혀져야 한다.

 

 보건의료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사장이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해 내부적으로 의료진이 경직돼 메르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 같다. 이 병원 의료진의 메르스 감염 경로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데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응급실에서 메르스 환자가 양산될 때 역학조사관들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 삼성서울병원 또는 삼성 쪽이 어떻게 관여했는지 꼭 밝혀져야 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137번째 환자인 이송요원 문제다. 그 환자는 비정규직인데, 메르스 증상이 드러나면 해고될까봐 (이를 숨기고) 계속 일을 했다고 한다. 병원이 수익 중심으로 운영돼 벌어진 일이다. 개선책이 꼭 필요하다.

 

사회 메르스처럼 국외에서 유입되는 감염병의 유행이 또 올 수 있다. 시급하게 대비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신종 감염병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해야 한다. 다른 나라가 정보를 정리해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발병 현장 방문 조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자체 수집·정리해야 한다. 문제가 터졌을 때 지휘할 사령관도 필요하지만 정보를 수집·취합할 정찰병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선 응급실이 감염병 대응의 전초기지 구실을 하고 있다. 밤이 되면 작은 병원이든 대학병원 응급실이든 모든 환자가 응급실에 오게 돼 있어서다. 감염을 확산시킬 위험이 큰 호흡기 질환자는 다른 응급 환자들과 별도 경로로 응급실을 이용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감염병을 의심할 만한 환자 증상 등의 정보는 실시간으로 중앙응급의료전산망에 입력해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감염병 통계 발표만으로는 정보 공유가 효과적이지 않고 실시간 대응이 어렵다.

 

 메르스 유행이 주로 병원 감염으로 촉발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 병실에 여러 환자가 모여 있고, 환자 보호자들도 함께 있어 북새통을 이루는 현실이 문제라는 뜻이다.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 4월까지 건강보험 누적 재정흑자가 17조원이라는 정보가 있다. 다인실을 당장 없애거나 대폭 줄이기 어려울 테니, 우선 1~2인실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해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환자 간병을 가족 등 보호자가 아니라 간호사 등 의료진이 하도록 포괄간호서비스를 모든 병원에서 해야 한다. 그래야 병원 감염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

 

 기본기가 너무 없었다. 감염병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공공의료 확충이 필요했는데, 그동안 현란한 치료 기술을 키우는 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첫 환자가 나온 경기도가 메르스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는 지적이 많은데, 경기도에 수원의료원이나 분당서울대병원 등 공공의료기관이 없었다면 그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한다. 공중보건 위기에 대응할 지역 거점이란 관점을 잃지 않으면 어떤 의료 인력을 키워 배치할지 길이 보일 것이다. <끝>

 

정리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http://omn.kr/k1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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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5년 6월 16일 오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산에 휴업했다 최근 수업을 재개한 서울시 강남구 일원본동 대모초등학교를 방문, 손씻기 실습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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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9일 무려 10여 년간 저지된 '의료법인 인수합병허용(아래 인수합병법)'이 여야합의로 보건복지상임위를 통과했다. 대부분 법안이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하면 본회의는 그냥 통과하는 게 관례인 만큼, 더불어민주당(아래 더민주)이 의료민영화에 합의해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의료민영화를 지지한 정부와 새누리당, 병원협회가 쾌재를 부를 동안에도, 더민주는 어떠한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다. 왜 이 법안을 합의했는지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여론의 뭇매가 무서워 그런 것이라면 기회주의적인 것이고, 몰라서 그랬다면 무능력의 소치이다. 어쨌든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 지금이라도 공당의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때문에 보건의료시민단체들은 지난 11일부터 더민주 당사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더민주는 병원인수합병법이 통과될 시 벌어질 재앙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 이 법안의 목표는 합병 옹호 세력들이 말하는 것처럼 '부실 중소병원 퇴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지난 2006년 첫 논의된 이후 이 법안의 핵심 목표는 언제나 '병원의 직접적인 매매를 통한 병원 산업화'였다. 당시 재경부의 도입 취지를 보면 "시장 메커니즘 강화를 통한 의료서비스 효율화·다양화"였고, 그 중 하나로 병원 구조조정을 위해 인수합병이 필요하다고 돼 있다.

특히 재경부는 '인수합병 전 병원경영지주회사(MSO) 도입'을 허용해 '의료기관 네트워크화'를 촉진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언급된 MSO가 2014년 전 국민의 의료민영화 반대 여론의 핵심이던 '영리자회사'의 다른 버전이다. 그런데 이미 박근혜 정부 하에서 정부의 가이드라인 재정으로 영리자회사가 허용돼 버렸다. 따라서 현재의 인수합병은 사뭇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또 우리는 2006년보다 수많은 네트워크 병원이 있는, 더욱 영리화된 의료현실에 노출되어 있다.

네트워크 병의원의 습격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수술 전문병원으로 시작된 '네트워크 병원'은 2012년까지 쾌속 질주했다. 

이 와중에 불법 네트워크 치과 의원들은 한 명의 치과의사가 무려 130개의 의원 체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불법 네트워크는 멀쩡한 치아를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과잉진료해 공중파 언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경영하는 치기공업체를 통해 임플란트를 공급받아 엄청난 치료대수익도 챙겼다.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헌법소원, '어버이연합' 동원, 공정거래위원회 동원 등으로 대응했다.

수술 전문병원들도 지분투자와 명의대여 등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했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몇몇 병원은 건강보험공단의 과징금 처분으로 부도 처리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 시내버스를 수놓던 수많은 의료광고의 병원 이름이 지분정리와 함께 한 글자가 지워지거나 추가된 형태의 병원으로 바뀌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전국 웬만한 대도시에서 네트워크 병원을 만나기는 너무나 쉽다. 네트워크병원의 인지도와 광고 용이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들병원은 대전우리들병원과의 로열티 분쟁 당시, '우리들병원' 상표권에 무려 매출의 5%를 부과하려 했다는 사실도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이처럼 네트워크 병의원은 지난 십여 년간 확장해 왔고, 지금도 확장 추세다. 문제는 이러한 네트워크화가 혹자가 말하듯 양질의 의료 제공, 저렴한 의료 제공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불법과 편법뿐만 아니라 과잉진료를 많이 한다. 또 의료사고 비중도 높았으며, 비보험 시술을 통해 돈벌이에만 앞장섰다. 높은 광고비와 상표권 비용을 환자 주머니에서 채워야 하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거기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이 의료인 명의를 대여해 '사무장 병원'까지 내고 경쟁에 합류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일시적으로 큰 돈을 벌기 위해 병원을 매매해 수익만 남기려는 의료기관들도 늘어났다. 때문에 병의원의 부도율은 올라가지만, 병의원 숫자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빠른 병원 매매를 위해서 대부분 영리적 의료기관은 '개인병의원'을 선호한다. 이는 법인 형태로 바꿀 경우 매매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돈벌이에 광분한 자들이 의료로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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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민영화 바이러스' 감염된 정부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원들이 지난 2015년 6월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진과 병원노동자 안전 보장' '병원인력 확중, 비정규직 정규직화' '병원을 돈벌이 경쟁으로 내모는 의료민영화·영리화정책 및 무분별한 규제완화정책 폐기' 등을 요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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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법상 의료법인은 비영리법인으로 자산이 사회에 기부채납된 형태다. 이는 공공사업을 하기 위해 사회에 기부되어 있는 형태로, 공익고유사업(의업)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본은 개인이 유용하기 못하게 해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대부분의 세금을 면제하며, 대출을 받을 때도 저리융자 등을 해주었다. 한편 의료법인은 꼭 의료인이 아니어도 가능하도록 문호가 열려 있다. 때문에 의료법인 이사장의 절반 정도는 의료인이 아니다.

그런데 만약 이 의료법인이 서로 사고 팔면서, 정부가 말하는 대로 네트워크화를 하면 어떻게 될까? 첫째로 돈을 벌고 싶은 수많은 사람들이 의료업에 진출하게 된다. 정부 스스로 색출하러 다니는 '사무장병원'은 아마도 모조리 의료법인으로 전환할 것이다. 이들이 그간 의료인의 명의를 대여해 불법 사무장병원을 운영한 이유는 자산정리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수합병이 허용된다면 이들은 병원을 시장 가격에 내다 팔 수 있다. 불법인 명의대여를 할 이유가 없다. 돈을 버는 것이 주목적인 자들이 의료업에 대거 진출했을 때의 부작용은 어떠할까? 지금보다 한층 더 영리화되고 돈벌이에 최적화된 의료현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양심적인 의료인들은 이런 풍토에서 더욱 소외 당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는 사회적으로 의료업이 완전히 영리화되는 것이고, '의료민영화'와 마찬가지 상황이 된다.

두번째는 재벌의 네트워크 병의원 진출이다. 지금 혹자는 의료법인만이 인수합병 허용되므로 재벌의 네트워크 병의원 진출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지금 제과업계 및 요식업계는 과연 처음부터 재벌들이 진출했는가? 재벌이 진출하는 시기는 요식업의 수익성이 보장되고, 독과점법이 붕괴했을 때였다. 인수합병이 허용되면, 의료법인의 크기는 무한확장도 가능하다. 재벌병원을 통하지 않더라도 박근혜 정부에서 허용한 영리자회사 및 부대사업체 등을 통해 병원을 지배하는 것도 가능하다. 처음에는 자회사에 투자자로 참여할 수도 있다. 아니면 직접 별도의 의료법인을 만들거나 기존 병원을 전환하고, 다른 네트워크 병원과 합병할 수도 있다.

향후 인수합병으로 네트워크형 병원의 규모가 커지면 이를 재벌이 직접 인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병원인수합병으로 동네마다 들어설 재벌 병의원, 이것이 과연 기우일까? 20여 년 전엔 그 누가 전국을 재벌마트와 재벌제과점, 재벌요식업체가 뒤엎으리라고 생각했나? 여기에 원격의료, 민영 건강관리서비스, 약품 택배거래 등등 거대자본의 네트워크화를 위한법안들을 박근혜 정부가 줄줄이 추진하고 있음은 의미심장하다.

따라서 병원 인수합병이 가져올 충격은 진정 '의료영리화 쓰나미'라고 불릴 만한 것들이다. 때문에, 향후 의료영리화 쓰나미를 용인한 역사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더민주는 의료민영화를 반대한다는 자신의 당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법안을 법사위에서 꼭 저지해야 할 것이다. 총선 공약집에 잉크가 마른 지 한 달도 안 돼서 병원협회와 재벌 로비에 야당이 넘어가는 것을 국민들은 좌시하지않을 것이다. 병원인수합병 법안은 기필코 저지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정형준님은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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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인수합병 법안’(이하 인수합병법)이 4월 29일 국회 보건복지위(이하 복지위)를 통과했다.

인수합병법안은 지난 2010년 이명박 정부당시 복지부가 병원경영지원사업 허용, 원격의료 허용과 함께 의료법 개정사안으로 18대 국회에 상정했으나, 핵심 의료민영화 법안으로 분류되어 폐기 처분된 바 있다.

또한 2014년 12월에는 부대사업확대, 영리자회사 허용을 골자로 하는 박근혜 정부의 4차 투자활성화 대책에 포함됐다. 4차 투자활성화 계획 중 대부분을 가이드라인이나 시행령, 시행규칙 등의 행정독재로 통과시켰으나, 인수합병법은 의료법을 개정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새누리당 이명수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이 이 법이다.

무려 2년전 발의된 이 법은 비영리법인인 병원을 사고 팔 수 있게 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의료민영화법안으로 분류되어 20대 총선 전까지는 누구도 통과를 예상하지 못했다.

의료연대 조합원들이 의료영리화 반대 피켓을 들고 청계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의료연대 조합원들이 의료영리화 반대 피켓을 들고 청계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 법안의 심각한 문제점 때문에, 보건의료시민노동단체의 연대체인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이하 무상의료운동본부)’의 20대 총선거 의료민영화 추진 낙선자 명단에도 이 법안을 발의한 10명의 19대 국회의원들 모두를 낙선대상자로 발표한 바도 있다.

즉 이 법안은 그 동안 누가 봐도 병원영리화를 불러일으킬 ‘의료민영화 법안’으로 판단되어 왔다. 이 때문에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와 정부여당을 제외하고는, 야당은 물론, 의사협회 같은 직능단체까지 이 법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해왔으며, 누구도 이 법안이 통과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 법안이 야당의 방조 혹은 찬동 속에 통과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을 우리는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구조조정에 동의한 더불어민주당

우선 인수합병 법안이 복지위를 통과하기 전에 주로 논의되던 의료민영화법안은 기재부가 의료서비스를 쥐락펴락 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그 다른 버전인 지자체가 임의로 ‘의료민영화 특구’를 만들 수 있는 ‘규제프리존법’ 등이었다.

이런 핵심 의료영리화 법안들이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국민들의 초미에 관심사였던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걸핏하면 경제활성화법이라고 이야기하면서 통과시키려는 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법안에 ‘보건의료’ 부분만이라도 빼자고 하면 ‘앙코 빠진 팥빵’이니 ‘김치 빠진 김치찌개’니 하면서 보건의료 부분을 꼭 집어넣겠다고 새누리당이 밝히고, 직권상정 등의 강행추진 가능성도 매번 내비쳤었다. 그 만큼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추진의지는 높았다.

그런데 4월 13일이 지나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여당의 선거 참패로 정부의 강행 동력이 떨어졌다. 국민들이 박근혜정부를 심판한 것이다. 반면 야당은 총선 전 국민들의 표를 구걸하던 때와는 달리 기고만장해졌다. 국민들이 정권을 심판한 것이지, 야당에 대한 지지를 보인 것이 아닌데 말이다.

정부가 지지세를 잃고, 야당이 국회 제1당이 되는 상황이 되자 총선 후 며칠만에 ‘구조조정’에 야당이 손을 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선, 해운 등이 거론되었는데,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인 ‘창조경제’를 ‘구조조정’이 대체하는 국면까지 가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이 총선 이후에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유는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구조조정 건은 선거 뒤로 미뤄두었기 때문이고, 한편으로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민들의 구조조정에 대한 동의를 야당을 통해 쉽게 얻으려는 술수가 복합되었기 때문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선거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선거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여기서 말하는 구조조정은 선거때 이야기하던 최저임금 인상, 재벌들이 사내유보금을 정리, 복지서비스 확대 같은 친서민 구조조정이 아니라 철저하게 재벌과 자본 입장에서 시작될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에 차마 선거 전에는 누구도 꺼내기 힘든 과제였다. 즉 사실상 정리해고와 노동자서민 쥐어짜기일 수 밖에 없는 ‘구조조정’인데, 이를 선뜻 함께하겠다고 야당이 나서니, 박근혜 정부도 정말 고마워했다.

병원산업도 최근 병상포화와 경기둔화로 구조조정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이를 박근혜 정부는 부대사업 확대, 영리자회사 설립, 메디텔 허용, 원격의료 허용 등으로 해결하려 하였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병원자본의 목소리는 날로 커져왔다. 구조조정을 위해서 인수합병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병협의 주된 요구였다

병원인수합병법인 가져올 구조조정 방향

병협은 이 법안이 의료법인 사이의 인수합병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학교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이 대부분인 대형병원의 수직계열화와는 관계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언뜻 보면 맞는 이야기 같지만, 지금까지 상급종합병원들의 대부분이 의료법인이 아닌 이유는 ‘의과대학-병원 연계체계’가 의료인력 수급과 이데올로기적 경쟁력에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을 국민들이 선호했고, 재벌도 그런 형태를 추구한 것에 기인하는 것이지, 의료법인이 대형병원화 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단적으로 인천의 길병원은 2000병상이 넘는 대형병원인데, 의료법인이다. 삼성병원체인 중 강북삼성병원은 의료법인이다. 이처럼 의료법인이 아예 대형화를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삼성병원이 인수합병으로 맘만 먹으면 수많은 중소 의료법인을 아래 줄세울 수 있다. 여기에 수많은 전문병원이 의료법인이다. 요양병원도 의료법인이 늘어가고 있다. 즉 한국의 대부분의 병원이 개인병원 아니면 의료법인인 상황에서 인수합병법은 전국적인 ‘삼성병원 네트워크’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수직 계열화(대형병원-중소형병원)만큼 무서운 것이 중소형병원끼리의 수평계열화이다. 네트워크 병원의 탄생은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는 수술전문병원의 확장을 가져온다. 우리는 척추관절 과잉수술 논란의 중심인 전문병원과 임플란트 전문 불법 치과네트워크 등의 문제점을 익히 알고 있다. 지금도 버스광고판을 수놓는 OO병원들의 과잉경쟁도 체인화에서 시작했다. ‘우리들병원’ 같은 경우는 이미 우리들병원의 상표권 등을 소유한 지주회사까지 존재할 정도로 체인화가 확장되어 있다.

따라서 의료법인에 한정하더라도 수직·수평 네트워크를 가속화하고 그나마 개인병원으로 유지하면서 편법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던 병원들이 급속히 합법적 네트워크의 세계로 들어올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네트워크의 부작용은 영리적 경영의 확대만이 아니다. 수많은 병원 노동자의 근무행태와 조건을 변화시키는 방향을 의미한다.

병원 노동의 변화

병원은 다른 곳보다 노동집약적 사업장이다. 병원경영의 핵심을 인건비 절약이라고 병원장들은 쉽게 이야기 한다. 때문에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정규직 병원노동자의 임금을 깎고, 이들을 해고하는 것이 병원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은 계속 커져왔다. 병원이 핵심 인력인 의사를 인턴이나 레지던트 같이 초기 저임금으로 일정 기간만 근무하도록 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일부 기인한다.

우선 인수합병을 통해 만들어진 체인병원들은 순환근무와 같은 것이 가능하다. 지금도 전산화되면서 과거 의무기록사들은 병원 물류팀으로 쫒겨나고, 없어진 병동 간호사들은 행정업무를 보도록 보직변경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병원 인수합병이 되면 이런 일은 더욱 심해진다.

최근 정부 양대지침인 ‘저성과자 해고’는 당연히 더욱 확대된다. 이는 그나마 정규직만을 고용해야 하는 간호사 등 핵심 의료직종에서도 순환근무, 보직변경 등이 강화됨을 의미한다. 즉 노동강도는 더욱 강화되고, 네트워크의 경쟁과 병원 인수합병 후 병동 폐쇄, 조정 등으로 노동불안정성은 증가된다. 새누리당이 이미 이번 총선공약에서 간호간병서비스의 확대를 빌미로 간호직의 야간 시간고정 파트타임 등을 거론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은 걸핏하면 청년일자리를 이야기하면서 보건의료 파트타임 등을 거론했다. 이는 병원노동자의 문제임과 동시에 환자들에게는 의료 질의 문제이다. 노동강도 강화와 불안정 노동조건이 가져올 의료사고의 위험성이 계속 증가할 것이다. 정부는 간병서비스를 확대한다고 하지만, 인력이 파트타임이고 숙련도가 떨어진다면, 사실 경증 일부 환자를 위한 생색내기 서비스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현재도 한국의 병상당 의료인력은 OECD 최저 수준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분석이 필요하지만, 이런 형편없는 인력구조를 가지게 된 결정된 계기는 민간주도의 의료공급구조 때문이다. 이는 현재 한국에서 공공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을 단순 비교만 해봐도 노동강도, 인력고용연차 등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공공병원을 늘려서 해결하기는커녕, 민간병원의 인수합병을 통해서 더 악화시킬 법안이 인수합병법이다.

경영학적 인수합병 = 정리해고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인수합병은 정리해고를 불러 온다. 경영학적으로 인수합병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인력 퇴출이었다. 이는 불과 10여년전 쌍용차를 위시한 자동차, 금융, 철강, 건설업 구조조정 시기마다 역사적으로 확인된 내용인 만큼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다. 인수합병법안에 대해서 병원협회도 의료법 개정 의견을 내면서 “의료기관 직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 등을 위해 인수합병이 필요하다고 대놓고 주장했다.

인수합병 과정에서 지역 의료기관을 사실상 폐쇄하고 규모를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병원협회는 “법인이 퇴출될 뿐, 의료기관은 존속”한다거나 의료기관이 강화되고 국민이 양질의 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합병으로 합병 이전에 운영되던 의료기관이 폐쇄되거나 규모가 축소되는” 경우를 이미 명시하고 있다. 즉 인수합병법의 본질은 돈벌이를 위한 구조조정이고, 영리적 경영을 하는 네트워크 병의원의 사례처럼 필수의료시설(응급실, 중환자실 등)을 줄이거나 없애고 상업적 의료시설만을 남겨놓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이 와중에 당연히 해고는 따라 붙는다.

지금 병원 구조조정의 한가지 과정으로 공공병원에 대한 ‘성과급 연봉 적용’이 강요되고 있다. 이미 국립대병원은 물론이고, 국가유공자들을 주로 진료하는 보훈병원에도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다. 왜 병원에 성과급을 적용하면 안될까? 성과급 적용은 의사들의 과잉진료, 서로 연계해야 하는 직능별·과별 경쟁 격화를 가져오고 종국에서는 중장기 근무 노동자에 대한 해고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즉 저임금을 감내할 신규 병원 노동자들을 계속 돌리면서 병원이 돈벌이에 나서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것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피해로 돌아온다.

이런 병원영리화 과정을 합법적으로 큰 규모에서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 인수합병의 허용 여부이고, 법안이 가진 효과다. 병원 인수합병 허용은 병원을 하나의 상품으로 가격을 매기는 행위만으로도 문제이고, 비영리법인이 그동안 받은 각종 세제 혜택과 사회적 지원을 사익을 위해 활용했다는 점에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정말 문제는 병원 구조조정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문제다.

그리고 병원 구조조정으로 발생할 부서 통폐합, 인력 감축, 비정규직 양산은 결국 환자들의 피해일 수 밖에 없다. 명확한 의료민영화 법안인 인수합병 법안을 모른 척 통과시킨 더불어민주당은 이런점에서 지탄받아 마땅하다. 이제 본회의 상정을 저지할 수단이 몇 가지 안 남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스스로 병원 인수합병 법안의 상임위 통과를 되돌리려면, 본의회에 법안이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 하다면, 병원 영리화와 구조조정의 쓰나미를 불러온 책임을 야당도 면치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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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월 10일부로 제 1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2016-2020)(이하 공공의료계획)을 발표했다. 알다시피 박근혜정부는 역사상 최초로 지방의료원 폐원을 승인한 정부였고, 각종 부대사업확대, 병원호텔허용, 영리자회사 허용, 신의료기술평가 간소화, 원격의료 추진, 건강관리서비스 도입시도 등등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힘든 의료민영화 정책을 행정독재로 강행해 왔다. 여기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을 통해 보건의료부분을 이윤중심의 산업으로 전면 재편하려는 계획까지 강행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들은 그나마 공공의료계획 발표에는 일말의 기대를 할 수 있다. 특히 정부가 각종 언론보도자료를 통해서 ‘분만취약지를 없애겠다. 응급의료체계를 갖추겠다’고 광고를 하며, 기대감을 한껏 올려두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내용과 절차 모두에서 정부는 이번에도 또 한번 뒷통수를 쳤다.

의료민영화ㆍ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제주영리병원 정보비공개 규탄 및 정보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의료민영화ㆍ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제주영리병원 정보비공개 규탄 및 정보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우선 이번에 발표된 기본계획은 사실 2013년 시행된 공공보건의료법에 의해 보건복지부장관이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공공의료를 강화하겠다는 연구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밀리고 밀려서 내야 하는 계획을 그나마 발표한 것이다. 의료영리화를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규제완화를 하고 있었던 것에 비추어 볼때 공공의료계획이 무려 3년이 지나서 발표된 것은 박근혜 정부의 공공의료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한다. 특히 19대국회가 끝나가는 지금에도 서비스법에 ‘보건의료’를 포함하는데 집착해 보건복지부 장관과 차관이 직접 나서고 있는 기민함과도 비교되며, 금년 보건복지부 첫 연례보고가 의료기기 및 제약산업육성안이었던 것과도 대비된다.

암튼 그래도 공공의료계획을 늦게라도 발표라도 했으니 고맙게 생각해야 될까?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내용은 한술 더 떠 의료영리화를 부추기는 내용과 공공의료를 포기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차라리 발표하지 않는게 나은 수준이다.

공공의료계획의 핵심 조차 만들지 않은 정부

첫번째로 이번 계획에는 공공의료계획의 핵심인 공공병원 확충계획이 없다. 한국의 현재 공공병상이 전체의 10%(OECD 평균 75%)로 너무 낮다는 점은 인정하면서 결론은 엉뚱하게도, 공공병원이 너무 없으니까, 민간병원에 공공병원 역할을 맡기자는 내용을 제시한다.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소유주체 중심(공공vs민간)에서 ‘공공의 이익 실현’이라는 기능중심으로 공공보건의료의 개념 전환”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다 보니 분만취약지 해결, 응급의료기관 확충을 위한 계획을 거의 전적으로 민간의료기관에 위탁하려 하고 있고, 지역거점 병원도 공공병원을 증설하거나, 민간병원을 인수하는 게 아니라, 민간병원에 위임하는 계획이다.

우리가 작년 메르스 사태때 이미 경험했듯이 민간의료기관의 역할과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은 명확하게 다르다. 시설과 인력 장비에서 최고수준인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수많은 메르스환자를 실제로 치료한 곳이 공공병원들이었음을 잊어버렸단 말인가? 더구나 경남도 홍준표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원하면서 근거로 삼은 것이 민간병원이 공공의료를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따라서 지금 정부의 공공의료계획에 따르면, 사실 공공의료기관의 기능축소와 폐원까지도 막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공공의료를 빌미로 원격의료 도입까지 통과시켜

공공의료 확충은 과거부터 30%이상으로 확충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공감대가 있었다. 이 때문에 2005년 노무현정부때 「공공보건의료 확충 종합대책」에는 공공의료기관 30% 확충목표가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의료취약지에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시민운동과 지역운동도 존재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 성남시에서 건립하고 있는 ‘성남시민병원’으로 지난 15년간 지역시민운동의 결과가 공공병원 건립이다. 이 밖에 대전, 인천, 울산에서도 시민들과 지역단체들이 공공병원을 건립하자는 운동을 하거나 준비중이다.

그런데 이번 안에는 이런 국민들의 요구는 물론, 이전 정권에서 가장 기본적이라고 제시한 30%는커녕, 아예 공공의료기관 확충의 목표와 계획이 전무하다.

거기다 공공의료를 빌미로 원격의료 도입을 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1차의료 취약지에 원격의료 활성화를 거론하고, 원격협진 네트워크 등의 IT-의료 융합을 명문화 했다. 그러나 이미 알고 있다시피 원격의료는 안정성과 효용성이 입증된 바 없고, 의료취약지에 실제로 필요한 것은 의사와 의료기관이다. 더구나 그래도 명색이 5년계획의 한나라의 공공의료계획인데, 아직 사회적 합의도 의학적 입증도 안된 의료민영화 사안인 ‘원격의료’를 버젓이 집어넣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공공의료기관의 개선
공공의료기관의 개선ⓒ제공: 정형준

물론 이보다 너무한 짓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냥 넘기려 해도 ‘공공의료’의 이념마저 의료영리화에 활용하는 이 정부를 어떻해야 하나?

거기다 공공의료전달체계를 거론하면서 국립중앙의료원, 국립대병원, 지방의료원의 연결체계를 상정했는데, 사실 이들 병원의 연계가 되지 않은 것은 국립대병원은 교육부 소관, 국립중앙의료원은 복지부 소관, 지방의료원은 지자체 소관으로 주무부처와 책임라인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국립대병원과 국립중앙의료원을 비교해 볼 때, 누가 봐도 국립대병원의 의료시설과 의료진이 우수한 상황에서 국립중앙의료원의 위상과 기능확대를 위한 획기적 투자와 위상정립 없이 공공의료전달체계를 말하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다. 이번 계획을 보면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예산을 공공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추상적이기 그지없다. 그냥 기존의 체계에 이름표만 붙여서 써먹으면서, 공공의료계획은 제출했다고 행정적인 처리만 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국립대병원의 비효율적 운영과 방만경영을 바로 잡겠다고 하면서, 대안으로는 성과계약 등을 천명하고 있다. 성과관리에 공공의료평가를 일부 반영한다고 하지만, 성과계약은 근본적으로 진료량과 병원수익에 의존하는 과정을 갖게 된다. 지금도 성과평가가 지방의료원등을 왜곡시키고 있고, 국립대병원의 정상적인 연구, 진료활동을 저해하는 큰 요소이다.

무엇보다 공공병원마저 수익성을 따져서야 제대로된 한국 의료시스템이 가능하지 않다. 여기에 방만한 경영의 예로 ‘노조의 경영권 개입’까지 언급한 부분을 보면 이번계획에 포함된 공공의료기관 경영체계 개선이 뜻하는 바는 ‘신경영체계’를 공공병원에 적용하려는 시도임을 알 수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공공의료계획에 성과계약, 컨설팅 등의 신경영체계를 거론하는 것은 그나마 남아있는 공공병원마저 민간병원처럼 만들겠다는 흡혈귀 전략이다.

공공의료개념의 개념
공공의료개념의 개념ⓒ제공: 정형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공공의료기관의 확충계획은 전무한데다가, 각종 의료영리화 사안들을 집어넣고, 기존에 발표된 누더기 보장성 강화안과 각종 정책을 짜짓기 해놓은 데에다가 정부의 공공기관정상화 방안인 ‘신경영전략’까지 포함시켜, 기존의 공공병원마저 망가뜨리겠다는 계획이 이번에 발표한 무려 ‘1차’ ‘5개년’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이다.

서비스법이 ‘기재부독재 민영화법’이고, 테러방지법이 ‘국민사찰 국정원독재법’이었듯이 이번에 발표한 공공의료계획도 ‘공공의료 포기계획’이 정확한 명칭이다. 한 나라의 보건복지부라면 국민의 건강권을 옹호하고 의료산업화를 견제하는 것이 책무다. 그런데, 일개 기재부의 하위부서마냥 행동하는 것에도 모자라, 공공의료를 망가뜨리고 포기하는 기본계획을 5년짜리 중장기 계획으로 발표하는 행위는 기가 막힐 상황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를 통해 무엇보다 공공의료의 중요성, 그 중에도 공공의료기관의 확충이 절실한 문제임이 제기되었음에도, 고작 기관수로는 5%에 지나지 않는 공공병원확충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 ‘기본계획’을 몇 가지 사안으로 광고선전하는 데에만 급급한 것도 ‘혼용무도’한 현 정권의 본질을 다시금 보여준다. 이제 그나마 시민들이 요구해 성남에서 건립중인 ‘성남시민병원’과 같은 공공병원 건립을 훼방 놓거나, 진주의료원의 경우처럼 더 이상의 공공병원 폐원만은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무엇이든 정상적인 것을 기대해선 안된다는게 교훈이라면 교훈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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