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준비금의 성격과 대안

 

정형준 l 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국민건강보험은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준비금) 제1항을 통해 “공단은 회계연도마다 결산상의 잉여금 중에서 그 연도의 보험급여에 든 비용의 100분의 5 이상에 상당하는 금액을 그 연도에 든 비용의 100분의 50에 이를 때까지 준비금으로 적립하여야 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현재 매년 누적되고 있는 건강보험 흑자의 다른 말이기도 하고, 건강보험 흑자가 ‘준비금’으로 적립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건강보험 준비금의 내용과 이를 둘러싼 각종 정책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살펴보고 현재시점에서의 대안들도 제시하려 한다.

 

건강보험 준비금의 역사

1988년 전국민 건강보험을 시행하면서 시작된 「의료보험법」시행령에서는 제46조(준비금)에서 지불준비금으로 당해 연도 보험급여비의 100%를 적립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험급여 관련 업무가 점차 자동화되고 체계화 되면서, 보험료징수 및 급여청구와 지급의 구조가 빨라졌고, 준비금규정이 과도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에 1994년 의료보장개혁위원회는 법정준비금을 1년 치 보험급여비의 50%로 낮추기로 결정하였다.

 

1998년부터 진행된 의료보험(이하 의보) 통합으로 2000년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족하였으나, 당시 의약분업을 둘러싼 갈등으로 의사폐업이 있었다. 이를 통한 3차례의 수가 인상여파 등이 겹쳐 2001년에는 무려 1조 8109억 원의 법정준비금이 부족하게 되었다. 당시 이런 적자의 원인은 의료수가인상 뿐만 아니라, 2008년 IMF구제금융이 맞물려 직장의보조합이 통합 전 자신의 적립흑자를 유용하면서 보험료를 거의 올리지 않은 영향과 기존 약국을 이용하던 환자들의 병의원이용 증가까지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2002년 7월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하 재정건전화법)」을 제정하여 국가는 매년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급여비용과 건강보험사업운영비의 100분의 40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하도록 하였다(제15조제1항). 또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급여비용과 건강보험사업운영비의 100분의 10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민건강진흥기금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하도록(법 제15조 제2항 및 제3항) 하였다. 이 재정건전화법은 2006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게 되어 이후 5년마다 건강보험 국고지원논란을 불러일으킨 원인을 불러왔다. 또한 재정위원회의 보험요율 결정권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신설하여, 의료공급자와도 논의하는 전 세계에 유래 없는 기구를 탄생시켰다.

 

건강보험은 이후 단기적자와 흑자를 거듭하다가 2010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면서 현재 법정준비금이 무려 20조 원이 넘는 5년간의 흑자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건강보험 준비금 기준에서 본다면 보험급여비용(2014년 44조7500억)에 비춰 봐도 50%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때문에 건강보험 흑자를 보장성강화 및 의료제도개편에 사용하려면 준비금 조항의 변경이 요구된다.

 

이는 그간 흑자분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보장성강화 요구에 보건복지부가 난색을 표명할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준비금 50% 적립 조항 때문에 보장성강화에 흑자분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시작되고 있는 준비금을 둘러싼 논의들을 단순히 보장성 강화만을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건강보험 준비금을 둘러싼 최근 추이

정부는 2016년 3월 29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주재로 7대 사회보험(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이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기재부가 각종 연금, 기금, 공보험을 관할하려는 시도인데, 중요하게도 국민건강보험도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당시 기술된 내용을 살펴보면, 건강보험에 대해서는 자산운용 결과를 설명하며, ‘단기간에 적립금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기관’으로 묘사했다. 또한 건강보험을 포함해서 ‘해외, 대체 투자’등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즉 건강보험 흑자의 투자유용을 열어달라고 한 것이다. 이를 기화로 확인된 건강보험 준비금의 유용범위도 기존의 상식인 단기 투자상품이나 즉각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부가 정보공개청구에서 밝힌 MMDA, MMF는 현금성 자금성격이 강하지만 정기예금, 금전신탁, CD, 금융채권은 모두 1년~3년의 장기투자항목들이다. 거기다 이러한 투자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의 실주체인 가입자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모두 입찰 컨설팅회사의 자문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이 수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건강보험의 보험료율, 수가결정을 위한 환산지수, 급여범위 등등의 중요한 사안을 건정심이라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결정하는 것에 비추어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관리하고 투자하는 일은 컨설팅회사의 자문에만 의존하는 것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또한 이런 투자의 목적이 건강보험재정확보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라기보다 단순 수익성 증가를 통한 재정건전화와 종국에는 이를 통한 국고지원 축소 시도임도 드러났다. 정부는 2017년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지원을 법에 명시된 기대수익의 14%가 아니라 11%로 한정해서 제시했다. 때문에, 황당하게도 국고지원금 예산액이 현재 지급된 2016년도 7조 975억 원 보다 2천 211억 원 감축된 6조 8천 764억 원이 되었다. 이러한 국고지원 감축은 건강보험 도입 후 초유의 사태이다. 이에 대해 정부관계자가 언론에 밝힌 내용은 14% ‘상당’ 이므로 꼭 14%를 지원할 필요가 없으며, 현재 흑자국면에서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전국민 건강보험 출범시 지역가입자 부담의 50%를 국가가 지원하면서 출발했던 근본정신과 앞서 본 재정건전화법의 취지 등에 비추어 매우 우려스러운 태도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의 재정안정성을 순수하게 가입자들이 낸 보험금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에서 건강보험의 공적기능의 약화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현재 건강보험 준비금을 둘러싼 논의들은 건강보험의 남은 재정을 금융학적 수익관리를 통해 조금이라도 불려서, 국고지원 축소와 연계시키려는 시도와 맞물려 있다.

 

준비금 운용 규칙 도입 과 준비금 비율 조정 시도

여기에 정부의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시도와 맞춰서 건강보험에서는 두 가지 시도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직접적인 준비금 비율 축소를 위한 논의이다. 이는 작년 10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정책국 국장(강도태)이 언론사와의 간담회에서 제기한 바 있고, 올해 8월에는 민주당 전혜숙 국회의원이 50%를 15%로 축소하는 법안을 입안하였다. 다른 하나는 같은 시기인 올해 8월 그간 규정이 없던 ‘준비금 관리 및 운영 고시(안)’을 보건복지부가 제시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초안으로 제시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준비금의 관리·운용 방법 등에 관한 고시안’은 고시안의 내용보다도 그 시점이 주목할 만하다.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준비금) 제 3항에는 “준비금의 관리 및 운영 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다.” 고 명시되어 있었으나 무려 10여 년간 운영에 관한 보건복지부장관의 훈령·예규·고시 등의 행정규칙이 제정되지 않은 바 있다. 때문에 20조나 흑자가 쌓이고 나서야 고시안을 제시한 것 자체가, 향후 준비금운용을 적극적인 금융투자쪽으로 확대하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도록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볼 때 준비금을 둘러싼 이해관계들은, 준비금 자체의 투자가능성, 준비금 비율을 낮추고 남은 자산의 운용가능성 등이 얽혀 있다. 때문에 단순히 준비금 비율을 낮춘다고 하더라도, 여타 투자운영으로 전용될 가능성 등도 열려 있는 셈이다. 때문에 준비금을 둘러싼 논의에서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을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준비금 비율 축소의 전제조건과 대안

준비금 적립은 원칙적으로 불가피하다. 가장 중요하게는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후불대금과 건강보험료 징수 사이의 시간차에 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비금의 존재 이유는 건강보험의 효율적인 운영과 파산을 막는 것이지, 적립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최근 들어서는 과거보다 직장가입자비율이 증가하여 건강보험의 수익이 더욱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고, 의료기관 정산 등 재정 지출과정도 시간차가 줄어들고 정확해지고 있다. 현행 준비금 50%는 이런 점에서 너무나 과도하다. 해외의 경우도 대만, 일본은 1개월-3개월분, 독일, 벨기에는 25% 정도로 규정되어 있다. 한국의 과도한 준비금 조항은 보장성 강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건강보험 흑자의 명분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준비금을 유용하려는 시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단순히 준비금 축소만으로는 보장성 강화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높은 본인부담금과 재난적 의료비가 존재하는 현재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대안을 축소되고 남은 준비금으로 즉시 사용하려는 계획이 필요하다.  현재 이미 누적 20조 원을 돌파한 건강보험 준비금은 정부가 국민 의료비 절감에 해당되는 보장성 확대에는 소극적이면서 보험료는 지속적으로 인상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20조 원 이상의 준비금을 두고, 여전히 수많은 국민들은 병원비 때문에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법률에서 5% 이상에 해당되는 금액을 50% 이내에서 준비금을 적립하라는 조항의 취지가 반드시 50%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 아님에도 재정 운영의 주체인 정부는 이를 빌미로 보장성 확대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은, 준비금 비율 축소만으로는 자동적으로 보장성강화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의지와 대안이 없다면, 단순히 준비금 비율을 축소하는 것은 거꾸로 금융투자 등의 활용되는 상황까지 닥칠 수 있는 바, 적극적 보장성 강화에 대한 안이 우선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제시되어야 준비금 비율축소의 명분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준비금 비율 축소가 실행되면, 누적준비금 조건이 충족될 것이다. 정부의 최근 추이로 보아 이를 빌미로 국고지원축소의 명분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어 보인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공적보험임에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가입자의존성(수익자부담원칙)을 고수한다. 2014년 기준으로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 비율은 87%이고, 정부는 국고에서 고작 13%만을 부담했다. 그나마 정부가 법에 명시된 국고지원금을 제대로 지원한다면 정확하게 16.6%가 되어야 하지만, 예상금액을 낮게 산출하여 막대한 금액을 매년 누락해왔다. 그 결과 한국은 OECD 국가에서 국고지원을 가장 낮게 하는 공보험 보유 국가이다.

 

이처럼 낮은 수준의 국고지원이 지속되는 가운데 준비금비율을 낮춰, 준비금총액이 충족되면, 현재의 5년마다 국고지원특별법을 만드는 상황에서는 국고지원 축소의 가능성도 높다. 사실 일반회계에서 매년 결산해서만 지원한다면, 복지긴축을 주된 목표로 상정하는 정부 하에는 보장성 강화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따라서 국고지원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국고지원액 명문화)이 준비금 비율 축소의 기본 전제라 하겠다. 그리고 이미 박근혜정부가 작년에 제시한 암울한 장기재정전망에 비추어서도 국고지원 명문화는 건강보험 재정지속성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준비금 비율 축소여부와 상관없이 금융투자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규제강화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 제 38조 2항에서는 “준비금은 부족한 보험급여 비용에 충당하거나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때 외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현금 지출에 준비금을 사용한 경우에는 해당 회계연도 중에 이를 보전(補塡)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지금 건강보험 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장기금융상품 운용을 금지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

 

현재의 준비금 내에서도 장기금융상품 운용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준비금 축소는 더 광범한 투자활용에 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건강보험 흑자가 준비금 기준을 넘어가더라도 금융상품등에 투자될 수 없다는 규제조항 등이 준비금 축소와 함께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매년 국민들이 준비금 이상 남는 재정여력을 놔두고도 보험료를 낼 이유가 하등 없다. 독일 같은 경우 준비금이 남아있을 경우, 보험료 인상을 방지하는 장치가 있는데, 이를 참고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사실 이런 준비금 축소 및 건강보험의 준비금 운영 관련한 논의 및 과정에서 건강보험의 실제 주인인 가입자(국민)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여론수렴 과정과 전문가 및 시민사회단체와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건정심과 재정운영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언론과 연구결과로 우선 소개되는 것이 합리적인 거버넌스 과정으로 보인다.

소결

현재의 준비금과 관련된 논의는 일방적인 정부 주도의 과정으로, 준비금 비율축소의 목표와 전망에 대한 논의는 부재하다. 이는 최근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보험의 금융투자, 건강보험 국고지원 축소시도와 맞닿아있다. 따라서 정부는 건강보험 가입자 의견을 반영하여 누적흑자 20조 원의 재원으로 빠른 시일 내에 구현가능한 보장성 강화안을 우선 제시해야 한다. 또한 건강보험 국고지원 확립(상시명문화)을 통한 재정확충 방안을 제시하고, 향후 준비금 상향부분의 재정여력에 대한 금융투자 등의 운용지침까지 우선 밝힐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단체 등도 기존의 보장성 강화 및 국고지원 확충의 원칙을 지키면서, 향후 건강보험 흑자분에 대한 금융투자 등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요구되는 시점이며, 이를 통해 명확한 준비금 비율 축소 논의를 더욱 공론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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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지 구조조정의 시대

 

정형준ㅣ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20대 총선이 끝났다. 결과는 누가 봐도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임이 분명하다. 집권보수당(새누리당)이 제2당이 되었고, 전체의석의 고작 40%수준만을 확보했다. 이는 지난 3년간 박근혜정부의 독선과 실정에 대한 민의의 심판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수많은 잘못이 있지만, 가장 국민들이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살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전월세 값 상승으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는 등 몸이 아파도 병원 가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일자리는 구하기 어렵고,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비정규직이거나 파트타임인 경우가 많고 정규직을 구하기 어려워 소득확보는 어렵다. 나쁜 일자리까지 합쳐 통계를 내보았더니 2016년 4월 실업률이 IMF 이후 최고점이라 한다. 특히 청년실업은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적으로 노인빈곤율, 자살률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들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프레임과 낙수효과 같은 논리가 이젠 문제해결이 될 수 없고 ‘복지’확충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확산되고 있었다. 이미 지난번 총선과 대선 때 박근혜대통령과 새누리당조차 ‘복지’를 선거전면에 내걸 정도로 사회적 안전망, 복지제도의 확충은 시대적 요구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약속은 거짓이었다. ‘복지’와 관련해서 역행을 반복하고 있다. 노인기초연금 20만원은 사실상 ‘개악안’이 되었다. 4대중증질환 국가보장 100%는 거짓말이었고 무상보육, 무상급식은 공공연히 공격을 받았다. 지방교육 교부금을 축소해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불상사도 연출했다. 공공의료기본계획은 ‘공공의료말살계획’ 이었고, 역사상 최초로 공공병원(진주의료원)이 폐원되기도 했다. 국민들은 공적연금의 강화를 원했지만, 정부는 거꾸로 공무원연금개악을 통해 전체 공적연금의 지분만을 축소했다. 정말 박근혜정부야말로 ‘복지’로 당선이 되었지만, 복지축소, 복지훼방 정부였다.

 

총선에서의 정권심판여론은 ‘반복지’ 방향을 ‘친복지 방향으로 전환하라는 민의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복지확충보다 먼저 정부여당과 야당이 공감대를 표시한 부분은 전혀 다른 부분이다. 다름아닌 ‘구조조정’이 첫번째 합의점이 된 형국인데, 처음에는 조선, 해운 등이 거론되다 이제는 그 범위가 점차 확대되었다. 병원구조조정를 빌미로 2006년부터 약 10년간 의료민영화법으로 불리며 통과되지 못한 병원인수합병(의료법 일부개정안)을 야당이 상임위에서 합의해주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인 ‘창조경제’를 ‘구조조정’이 대체하는 국면까지 가는 느낌이다. 야당이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협력하겠다고 하자 정부여당은 역할까지 주문하고 있다.

 

여기서 또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의 방향성이다. 조선과 해운의 경우 인수합병을 정부가 주도하고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공적자금을 투여하겠다는 그림이다. 반면 인력부분에 대해서는 정리해고, 직무전환 등의 사실상 노동자 및 서민 쥐어짜기가 교묘히 제시되고 있다. 물론 총선 전에도 박근혜 정부는 노동법개악과 성과급, 저성과자해고로 대표되는 양대지침을 제시하여 노동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려 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방향을 ‘구조조정’이라는 틀거리속에 집어넣어, 명분을 제시하려는 것이고, 이를 야당이 같이 동조하는 것이다. 최근모 경제지에서 2011년 한진중공업파업을 예로 들며, 정리해고를 선제적으로 시행하지 못해서 조선업의 위기가 왔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번에는 확실한 정리해고를 주문한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IMF이후 한국에서 해고는 ‘살인’이다. 고도 실업의 시기에 해고된 노동자가 일자리를 다시 찾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초임이 낮은 청년들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가?

 

여기에 복지후진국인 한국에서 실업수당, 연금도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적다. 의료비도 본인부담금이 높고, 주거비용도 상승해서 해고되면 몇 달 만에 통장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일쑤다. 높은 노인빈곤율은 피부양세대의 실업이 모든 세대를 빈곤하게 만드는 축으로도 작용한다. 2007년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수많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자살을 했다. 도저히 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재취업을 할 때까지 이들은 택배기사, 대리운전 등을 전전해왔다. 그나마 쌍용차는 거대사업장이고, 파업투쟁을 하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은 경우다. 

 

즉 지금까지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의 엉망진창 복지하에서 ‘정리해고’는 ‘살인’이 되었다. 때문에 구조조정이란 단어는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은 엄혹하다. 특히 국가와 사회가 자본의 손해에만 책임을 지는 지금까지의 ‘구조조정’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 가뜩이나 복지재정도 없어서 그나마 최근에 시작한 무상급식, 무상보육도 못한다면서 재벌의 사내보유금이나 재벌오너의 자산이 아닌 공적자금지원이 납득이 될 리 만무하다. 더구나 구조조정이 진행되면 될수록, 재정이 부족하다며 ‘복지’는 더욱 뒷전으로 돌려질 것이 아닌가?

 

즉 구조조정이란 그냥 서민들 쥐어짜기일 뿐,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논의하는 논리가 될 수 없다. 거꾸로 복지확대에 재원을 투자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엄청난 사회적 비용논의를 줄이고, 노동자서민들의 생존이 보호되면서 지속가능성도 밝아지지 않겠는가? 때문에 한국에서 구조조정은 반복지이다. 따라서 선거 때 최저임금 인상, 재벌들의 사내유보금 사용, 각종 복지서비스의 증대를 주장했던 정치권이 복지확대보다 먼저 ‘구조조정’에 동의한 것은 또 다른 ‘반복지선언’이다. 못내 아쉬운점은 공약집에 잉크도 마르기전에 벌이는 이런 행각으론 앞으로 ‘복지’가 구호에만 머물지 않을까 하는 답답함이다. 그리고 총선결과가 반복지에 대한 심판이었던 만큼 야당의 ‘배신’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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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공약과 복지

정형준 l 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이하 총선)에서는 복지공약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이전과 비교되는 특징이 나타났다. 우선 2010년 무상보육, 무상급식을 기점으로 한 지방선거 이후, 복지공약이 6여년 만에 주요정책의 중심부에서 줄어들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제1야당(당시 민주통합당)의 핵심공약이 보편복지 확대였고, 그 내용에도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보육”의 무상 3종 세트가 있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핵심공약에 ‘맞춤형복지’가 있었고, 이것이 생애주기별이란 선별적 단어가 붙긴 했었지만, 무려 0세부터 60세 이상까지 나이별로 순서대로 빼곡히 들어있었다. 특히 양육수당과 보육비를 완전히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같은 해 치러진 대통령선거를 봐도, 여당인 박근혜 당시 후보도 노인기초연금 20만원,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100% 같은 복지공약을 전면에 내세웠었다. 야당은 말할 필요도 없이 복지공약이 선거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여당의 복지공약은 구색 맞추기에 지나지 않고 전면은커녕 내용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제 1야당의 핵심 공약에도 복지공약이 들어있긴 했지만, 내용을 보면 기초연금 30만원 지급, 국민연금 공공투자, 부과체계 개편 등으로, ‘무상 3종세트’와는 비교할 수준이 아예 안 되었다. 3당이 된 국민의당의 경우는 복지공약이 새누리당과 비슷한 구색맞추기 수준이었고, 의료복지정책의 경우 ‘실손보험료 인하’ 같은 위험한 공약까지 포함됐다. 실손보험은 보충형보험으로 건강보험이 강화되면 사멸될 것이고, 실손보험료 인하는 민간보험의 심사평가기능 인정과 연결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놓친 결과였다. 이외에도 주류정당들의 공약에서 고전적으로 중요했던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공약이 빠지고, 건강보험 재정형평성(부과체계 개편)이 우선순위를 차지한 점도 특징이었다. 또한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 강화계획도 언급이 없었다.

 

키워드로 살펴봐도 여러 정당의 공약집에서 ‘복지국가‘란 단어를 사용한 곳은 더불어민주당, 노동당, 녹색당뿐이었는데, 그나마 노동당은 일부에서 그 의미조차 부정적으로 사용했다. ‘무상의료’란 단어도 정의당, 녹색당, 민중연합당만이 사용해서, 다시금 진보정당의 소유물로 축소되었다. 단순히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에서도 OECD 평균수준의 보장성강화조차 포함되지 못했다.

 

복지공약이 이처럼 과거보다 힘을 잃은 근본 원인은 사실 경제위기가 계속되었기 때문인 것이 사실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2,3년간 반짝 반등하던 시기에 복지확대여력이 최근 4년간의 연속된 경기후퇴로 ‘경제성장’ 담론에 잠식된 경향이 크다. 익히 알다시피 2009년에는 박근혜 대통령조차 ‘아버지(박정희)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고 밝히면서 ‘복지국가’를 거론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가속화는 복지보다는 ‘최저임금, 기본소득’ 등의 직접 분배문제에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외에도 대다수 국민들의 가처분소득 자체가 줄어드는 경제적 여력의 협소화도 ‘무상’복지란 용어의 실효성에 대한 현실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간 확대되었던 복지영역도 공공성보다는 영리성이 강조되어 복지서비스에 대한 신뢰도 금이 가고 있다. 무엇보다 복지서비스를 대부분 민간에 위임해서 제공하다 보니, 무상보육을 도입해도 어린이집은 엉망이고, 장기요양보험에도 불구하고, 요양원의 관리 실태는 국민들이 보기에 실망스럽다.

 

이런 상황 때문에, 대중적으로 복지요구가 가진 효용성이 많이 반감된 측면이 없잖아 있다. 이는 물론 복지운동진영이 그간 복지서비스의 공적공급의 중요성을 일부 간과한 책임도 반영한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복지영역축소의 우려점은 복지쟁점 자체의 비중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작 축소된 복지쟁점의 영역을 차지하는 가치들이 ‘경제민주화’나 ‘기본소득’’최저임금인상’ 같은 긍정적인 부분의 경제적 가치만이 아닌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복지서비스까지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전면적인 ‘복지산업화’ 요구가 가치 측면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버젓이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대표적으로 19대 국회 막바지까지 정부가 강행통과를 주문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하 서비스법)의 경우가 그렇다. 보건복지, 교육 같은 얼마 남지 않은 복지영역들과 전력, 수도, 가스 같은 공공서비스 부분을 돈벌이로 전락시키려는 ‘기재부독재법’인 서비스법이 경제활성화법으로 바뀌어 선전되고 있다. 고전적으로 복지서비스는 공공적이어야 하는데, 이제는 복지가 자본축적과 시장경쟁의 한 축이 되어야 한다는 뒤틀림이 강조되는 국면인 셈이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집권여당 공약은 이런 부분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회복지영역을 차세대 산업동력으로 거론하고, 보건의료산업화를 촉발하고, 교육, 법률부분 시장화를 대놓고 주장한다.

 

국민의당은 아예 서비스법에 대한 언급도 없고, 더불어민주당조차 보건의료등 공공부분만 제외되면 된다는 불철저함이 공약집에 버젓이 올라있다. 서비스법이 가진 반복지 이데올로기효과를 우습게 보는 상황이다.

 

여기에 총선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정부는 한술 더 떠서 7대연금과 사회보험의 잉여자금을 더 공격적으로 금융시장에 투자하겠다고 한다.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고수익 금융상품에 이를 투자하는 것은 사회보험의 자금을 재벌들의 안정적인 자금줄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다. 복지서비스의 자산이 완전히 사적자본과 마찬가지 취급을 받는 것이고,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 제약회사나 의료기기회사의 상품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에도 적용하려는 입법예고도 총선기간에 벌어졌다. 신약을 공익적으로 국민들에게 제공할 것도 아닌데, 제약회사의 이윤창출에 국민들의 보험료를 사용한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산업발전명목으로 쉽게 거론되고 있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복지공약의 축소는 복지서비스 및 복지국가로의 길만 멀어지는 효과가 아니라, 공공서비스의 영리화를 부추기는 경향을 방조․강화한 경향이 있다. 누구나 알다시피 복지가 단순히 시혜가 아닌 점은 복지의 확대가 ‘경제민주화’요, 최저임금상승과 기본소득 도입 같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주택, 실업, 건강, 연금 등의 기본적 복지가 충실하다면 우리에게는 소득증대와 마찬가지 효과가 오는 것이다. 더 나아서 소득증대는 높은 가격, 낮은 품질의 서비스들이 존재한다면, 실제 가처분소득증대에 도움이 안 되지만, 복지확대, 특히나 공적확대는 가격과 질을 정치적으로도 우리가 통제할 수 있어 더 효과적이다. 복지확대는 각종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및 영리화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때문에 ‘복지’ 가 단순히 복지만의 문제는 전혀 아니다. 총선에서 복지쟁점의 실종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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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재정과 건강보험흑자 17조 원

 

정형준ㅣ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정부는 작년 말 무려 40여년 뒤의 재정전망을 발표했다. 이른바 2060장기재정전망이다. 최근 1, 2년 사이의 재정전망도 틀리기 일쑤인 정부가 장기재정전망을 제대로 내놓았을리가 만무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용의 방향성이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연금, 건강보험 등 모든 사회복지재정은 심각한 적자 혹은 재정파탄으로 예상된다. 결국 정부의 장기재정전망은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사회복지재정을 줄이거나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긴축재정의 근거를 위한 ‘맞춤형 전망’ 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반복지적 흉측한 사고는 돈문제로 환원되는 순간, 이상하게도 복지의 원칙과 당위성 그리고 그에 따른 전망이 아니라, 반복되는 재정논리로만 귀착되곤 한다. 재정프레임의 최대 단점은 재정전망의 옳고 그름보다는 누군가 돈을 더 내야 한다는 ‘비용전가’의 프레임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는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 서비스를 받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일반을 사회복지에 그대로 대입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사실 사회복지는 지불능력에 따른 서비스제공이 아니라, 보편적 서비스제공을 통한 재분배를 목적으로 한다. 시장경제가 부익부 빈익빈의 소득불균형뿐 아니라, 기본소득, 교육, 연금, 의료, 주거 등의 기본적인 사회서비스까지 불균등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복지가 요구되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는 시장이 못하는 것을 정부가 행하는 재분배정책이 복지다. 따라서 복지란 비용지불능력에 상관없는 서비스를 공공이, 그 주체는 정부가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근본적인 원칙을 무너뜨리려 반복지세력은 ‘재정프레임’ 을 주구장창 들이댄다. ‘돈도 없는데 복지를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반복지우파들의 공세에 복지세력들의 대응은 공격적이지 않고 다분히 수세적인 것이 현실이다. 

 

우선 근본적으로 흑자재정은 아니더라도, 균형재정은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있다. 현실에서 경제상황이 좋고, 흑자재정이 가능한 국면이라면, 균형재정론을 지지하는 사람도 복지확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지만,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는 균형재정론을 주장하는 경우에, 추가적인 비용마련을 위한 대안, 즉 돈 마련까지 본인의 머리로 생각하려 한다. 물론 간단하게 생각해서 이것은 일단 복지를 확대하고 발생한 적자분은 재분배적 차원으로 누진적으로 부담한다는 큰 그림만 그리는 분들도 있겠지만, ‘균형재정’의 굴레는 점점 더 많은 변수들과 숫자들을 고려할 필요를 요구한다.

 

특히 ‘인구절벽론’의 경우 노인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한국에서는 향후 재정프레임에 미칠 영향이 엄청날 듯하다. 노동인구는 줄고, 부양해야 하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는 누가 봐도 밝은 전망을 제시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한국이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다는 전망이 가중되면서 ‘균형재정’의 시각은 ‘복지확대 = 재정확보’ 로 나아갈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특히 반복지세력의 세대갈등론(젊은 세대의 희생으로 연금, 복지 등 노인세대를 부양하게 된다는 논리)에 공감하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

 

건강보험은 2009년까지 근근이 재정수지를 맞추고 있었다. 2005년 일시적으로 1조 5천 억정도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이후 흑자는 지속되지 못했다. 보험요율이 10여 년 간 2배가 인상되었으나 보장성강화도 미미했다. 이 때문에 보장성강화 같은 핵심 의료복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재원마련이 절실했다. 일부에서는 국민들의 보험료를 인상해 보장성을 높이자는 운동이 제기되었다. 기존 사회운동이 주장한 ‘국고지원확대, 기업부담확대’ 주장으론 부족하다는 근거였다. 그러나 내부논리를 더 살펴보면 이는 건강보험 재정내의 ‘균형재정’ 뿐 아니라 국가복지재정 전반의 ‘균형재정’을 상정한 경우였다. 국가 일반회계에서의 지원확대는 타 복지영역의 축소, 혹은 확대를 막는다는 논리가 뒷받침 된 것이다.

 

그런데 2011년부터 건강보험은 흑자가 되었고 그 흑자는 매년 늘어갔다. 처음에는 1조 원 규모였으나 2013년 3조 원, 2014년 4조 6천억 원, 2015년에도 4조 원이 넘는 무려 6년간 흑자국면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누적흑자는 자그마치 17조 원에 이른다. 1년에 2조 원이면 15세미만 아동의 모든 의료비를 면제할 수 있으며 1년에 3조이면 입원비 본인부담금을 모두 없앨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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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돈이 남았으나, 막상 이 돈을 보장성확대에는 단 한푼도 쓰지 못하고 있다. ‘돈이 있으면 복지확대가 된다’는 막연한 생각은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술 더 떠 정부는 건강보험의 흑자를 빌미로 2016년 만료인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예상금액의 20%)를 매년 평가해서 지원하는 일반회계지원으로 바꾸려 시도 중이다. 일반회계 지원이 되면 건강보험재정은 더욱 취약해지는데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보면, 장기적자전망 때문에 흑자를 쓰지 말고 적립해두어야 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적자나 균형재정일 때는 ‘돈이 없어서 복지확대는 불가능’하고, 재정여력이 있을 때는 ‘미래에 돈이 고갈될 테니 복지확대는 불가능’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결국 이런 논리라면 재정학적인 측면에서는 복지확대가 영원히 불가능하다. 만약 건강보험이 적자라도 일단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의 획기적 축소, 비보험의 급여화, 어린이, 노인 무상의료는 시행하자고 복지운동이 단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성공여부는 알 수 없지만, 좀 더 분명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복지는 이미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사회정의이며 당위라는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건강보험의 흑자를 둘러싼 논의와 싸움들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복지는 ‘균형재정’의 덫을 과감하게 극복해야만 이룰 수 있다.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인구구조 및 소득구조까지 악화되는 상황에서 복지세력이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전략을 세우지 않고선 모두가 바라는 복지를 그 모두의 것으로 돌리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균형재정’을 이야기 하면서 국민개개인의 부채는 끝도 없이 늘리고 있다. 포대 하나에 2조 원 가량 하는 사드배치까지 거론하고 있다. 개인은 빚져서 살라고 하면서, 나라는 돈이 남아도 안하는 복지, 결국 복지는 ‘균형재정’ 에 따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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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의 숨겨진 진실 토크쇼_국민이 마루타인가?

 

서성민ㅣ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정책연구원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세상네트워크,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는 11월 16일(월) 임상시험의 숨겨진 진실: 국민이 마루타인가? 토크쇼를 진행하였다. 의료전문가, 임상시험 경험자, 시민이 함께 모여 임상시험의 충격적인 실상을 나누고, 해외의 임상시험 관련 정책에 대해 알아본 후 현 정부의 임상시험 관련 방침의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다음 글은 참석자들의 발언을 정리한 것이다.

 

-사회: 안진걸(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전문가: 정형준(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의사)
-경험자: 채○○, 김○○

 

안진걸: 최근 3년간 49명이 임상시험에 참여했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정도의 숫자는 엄청난 것인데, 어떻게 숨길 수 있었을까? 도대체 임상 시험은 무엇이고, 생동성(생물학적동등성)실험이 무엇인지 정형준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겠다.

 

정형준: 임상시험은 약물 개발을 위해서 거치게 되는 과정 중 하나로, 사람에게 약물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약물 개발을 위해서는 이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많은 환자 보호를 위해서는 사전에 약을 개발하든지 주사제를 개발하든지, 치료방법을 개발할 때 희생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가 문제인데 의약 관련 교과서에는 환자에게 투약할 시에는 최소 약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의 임상시험은 너무나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이루어지는 임상시험은 생동성실험에 해당하는 임상시험이다. 임상시험의 종류 중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성실험)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제약회사가 해외에서 사용하고 있는 약을 국내에서 판매하기 위해 복제약을 만들면서, 기존 약과 똑같은 흡수율과 배출률을 보이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약을 먹고 혈액 중에 약의 농도가 어떠한지를 보기 위해 주기적으로 계속 피를 뽑는다. 일종의 매혈과 마찬가지다. 안전성에 대하여는 밝혀진 바가 없다.

 

생동성실험에 대해 얘기하자면, 제일 처음 하는 생동성실험을 제1상 임상시험이라고 하는데, 약물의 안전성을 시험하는 것이다. 항암제는 암환자를 대상으로 하지만, 혈압약 같은 것들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제2상 임상시험은 직접 환자한테 시험하는 것이다. 제3상 임상시험은 안전성과 효과가 인정됐다 하더라도 기존 약보다 나은지, 먹지 않은 사람하고 효과가 있는지 보는 것이다. 제3상 시험은 약 투여하는 사람과 투여하지 않는 사람을 섞어서 2중맹검법이라고 하는 위약효과까지 테스트한다. 제4상은 투여한 약물을 추적관찰을 하는 것이다. 1상과 2상은 위험해서 거의 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생동성실험은 3상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앞으로 1상과 2상도 허용하려 하고 있다.

 

현 정부가 2014년 8월 발표한 투자활성화안 중에 연구자임상을 상업임상에 준용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돈을 벌기 위해 시험하는 것과, 연구를 위해 시험하는 것은 참가하는 사람들의 태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큰 차이가 있는데, 정부는 상업적 시험을 허용하려는 안을 발표했다.

 

 

안진걸: 임상시험의 실상을 보면 아프지 않은 대학생, 저소득층이 아프지도 않는데 (생동성실험을 위해서)약을 먹는 것 아닌가?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가?

 

정형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항정신성 의약품은 의존성이 발생할 수 있고. 그것이 그 이후에 알콜 등 다른 중독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안진걸: 서울이 임상시험 1위 도시이고, 우리나라는 임상시험 7위 국가다. 그런데 정부는 임상시험을 더 활성화시키려 하고 있다. 현황이 어떠한가?

 

정형준: 전 세계적으로는 임상시험이 감소되는 추세다. 연평균 11.8%나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98년부터 2014년까지 임상시험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서울대병원, 아산병원 등 주요 병원들이 모두 암센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곳들에서는 표적 항암제를 임상시험하는 연구 중심 병원으로 나아가려는 방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늘어나고 있는 임상시험 약물의 종류도 큰 문제다. 해외에서 임상시험하기 어려운 위험한 약들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 당장의 생활비가 급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어서 대학생, 저소득층들이 고위험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고 있다. 임상시험은 어떻게 보면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하는 고귀한 행위인데, 이를 돈 때문에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임상시험은 애초에 금전적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안진걸: 고위험 아르바이트 참여 이유를 보면 1~5위가 모두 같다. 교육비, 생활비, 주거비 등 절박한 이유들인데, 청년대책이나 복지가 잘 안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덴마크는 대학까지 생활비와 대학 등록금을 주니까 이런 아르바이트들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쯤에서 임상시험 경험자분들을 모시겠다. 김○○님과 채○○님은 임상시험을 얼마나 해보았고,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

 

김○○: 5년 전에, 대구에서 대학원 진학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당시 다녔던 대학원이 야간에 수업이 있었다. 그래서 낮에 아르바이트를 뛰곤 했는데, 아르바이트를 풀로 뛰면 수업 듣는 것 외에는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가장 시간을 절약하고, 많이 벌 수 있는 게 뭘까 찾다 하게 된 것이 생동성실험 아르바이트였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당장 생활비 때문에 생동성실험에 지원했다. 그 당시 고혈압 약에 지원했었다. 부작용이 있어봤자 혈압이 낮아지는 것일 것 같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한 번 했었는데, 문제의식이 있어서 한 번만 했던 건 아니고, 시간이 안 맞아서 한 번 했다.

 

채○○: 세 번 정도 참여를 했다. 2012년부터 1년에 한 번 정도 참가를 했다. 약대 입학 후에 처음 시험에 참여했다. 학교 입학 후에 동아리와 학생회 활동 때문에 주말에 비는 시간이 불규칙했다. 어쩔 수 없이 하루 이틀 정도 들여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교복 전단지 돌리는 걸 하게 되었고, 우연히 생동성 아르바이트를 알게 된 후 시작하게 됐다. 고혈압,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 약을 했었는데, 특히 전립선 비대증 약은 돈을 많이 줬다.

 

안진걸: 문제는 없었나?

 

채○○: 문제는 없었다. 최근에도 지원했다가 다른 아르바이트와 겹쳐서 못하게 됐다. 큰 문제가 없어 다시 신청을 했었다.

 

안진걸: 위험성에 대한 안내라든지, 충분한 정보나 안내가 있었나? 형태는 그냥 하루 종일 있으면 되는 건가?

 

채○○: 시험을 하기 1~2주 전에 신체검사를 해서 이상이 없는지 파악을 하고, 통과하면 2박 3일씩 두 번에 걸쳐서 진행된다. 시험약과 비교하기 위해 밀가루를 뭉친 위약 실험도 하기 때문에 2번에 걸쳐서 진행이 된다. 부작용이나 위험에 대해서 들은 것은 없고, 제약회사에서 시험을 맡길 때 승인을 받기 위해 작성하는 보고서를 피시험자들에게 나눠준다.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개인적으로 알아봐야 했다.

 

김○○: 채○○씨와 진행과정은 비슷했던 것 같고, 임상시험이 아니다, 완료된 약을 시판 직전에 시험하는 것이라서 안전성이 담보된 약이기 때문에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 안내지를 받았던 것 같고, 문제가 생기면 얘기해달라고 했다.

 

안진걸: 이야기를 들으니 시험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의사로서 시험약이 어느 정도의 부작용이 있는지를 설명해줬으면 한다.

 

정형준: 생동성실험 부작용은 보고되기 쉽지 않다. 의약품의 부작용은 사실상 생동성실험에 참여하는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부작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임상시험 경험자분들이 경험한 혈압이나 전립선 약은 양호한 편이다. 시험약에는 항정신성 약물도 있다. 항정신성 약물은 돈을 많이 준다. 돈을 많이 주니까 부작용이 있어도 이야기가 안 나올 수도 있다.

 

시험을 관리하는 시스템 자체가 공익적인 프로그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제약회사, 중개 회사, 아르바이트 공고 회사가 돈을 벌기위해 하는 것이다. 언젠가 임상시험이 마루타라는 편견을 버리라는 광고가 나온 적이 있었다. 임상시험을 하면 좋은 점을 광고하는 내용이었다. 임상시험의 원칙으로 중요한 게 피험자에 대한 존경인데, 여기에는 그런 얘기는 없다. 적절한 피험자인지 검사하는 과정을 건강검진으로 둔갑시키고, 의약연구에 기여함으로써 자신 외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수준으로 홍보한다.

 

임상시험 협회 들어가면 임상시험의 위험성의 예가 나와 있다.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다. 치료법의 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다. 필요 시 입원해야 할 수도 있다고 나와있다. 그런데 위험성의 예를 얘기하면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주겠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안진걸: 임상시험 도중에 중단할 수는 없는 것인가?

 

정형준: 임상시험은 그만두고 싶으면 도중에 반드시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돈 때문에 아르바이트 하러 간 사람이 부작용이 웬만큼 심하기 전에 중단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피험자가 중간에 중단해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해야 한다. 지금은 두 번의 시험 중에 첫 번째 시험을 하다 중단하면 돈을 반 밖에 안주는 식이다. 이것은 비윤리적이다. 경제적 피해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줘야 한다. 안 그러면 누가 임상시험을 중단할 수 있겠나.

 

현재와 같이 시험의 위험도에 대한 것을 가지고 보상을 책정하는 것, 존중받아야 하는 피험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덧붙여 임상시험 정보는 피험자에게 보상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약품에 대한 특허권은 제약회사가 가질 수 있지만 의학적 근거, 자료, 생동성 실험에 대한 것은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안진걸: 경험자 분들은 시험을 하면서 부작용 걱정은 안했는가? 중간에 그만둔 사례가 있는지. 그만두면 돈을 조금 준 사례가 있는지?

 

김○○: 신체 부작용은 없었다. 신체 부작용도 중요한 문제긴 한데, 존엄성에 대한 문제가 더 컸다. 시험을 하게 되면 시작부터 기분이 좋진 않다.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은 '아는 사람 만나면 안 되는데'였다. 아는 사람 마주칠까봐. 그게 머리에 떠올랐다. 부작용은 몰랐지만 시험을 하면서 항상 불안하다. A조는 기존 약품이고 B조는 시험 약품일 텐데, 내가 먹은 약이 기존약품일까 아닐까. 마음속으로 기존 약이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가장 기분 나빴던 순간이 약을 먹고 난 후에 약을 삼켰는지를 확인하는 입 안 검사이다. 그 때 느낌이 진짜 마루타가 되어 버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잘 때 주사바늘을 꽂아두는데, 혹시 제 시간에 주사바늘을 안 빼줘서 잘못되는 것이 아닌지 불안했다.

 

안진걸: 하루에 시험이 끝나는 게 아니고 숙박까지 해야 하는가?

 

김○○: 당일에 끝나는 시험도 있고. 일박 하고 최종으로 한 번 더 채혈하는 경우도 있고. 다음날 채혈하는 경우도 있고. 모두 다르다.

 

안진걸: 시험이 진행되는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정형준: 현재 생동성실험은 3개월이나 6개월마다 할 수 있게끔 허용되어 있는데, CRO(국내 임상시험수탁기관)가 다른 업체를 이용하면 2개월 만에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임상시험 전체를 포괄적으로 통제하는 공적 기관이 필요하다.

 

또한 시험하기 전에 피험자들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충분한 설명 문제는 의료 윤리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것을 지키지 않고 온갖 실험을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많은 제약회사들이 아프리카에 가서 위험한 약물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척 하면서 임상시험을 했다. 이건 아주 비윤리적인 것이다. 정보를 정확히 모르니 중단할 수가 없다. 자발적 중단도 보장되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이 금전적 이유 때문에 자발적 중단이 안 되어서는 안 된다. 황우석 사건 때 발생한 금전이나 직급 등의 이해관계도 배제되어야 한다.

 

 

안진걸: 질문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 분 발언해 달라.

 

김남희: 행사 준비하는 과정에서 구글에 Clinical Trial(임상시험) South Korea로 검색을 해봤다. 흥미로운 글들이 떴다. 한국이 임상시험하기 좋은 나라라는 정보를 외국계 제약회사들이 모여 있는 포럼이나 잡지, 사이트에 공유한다. 이유는 정부가 임상시험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신청하면 신속하게 답변을 해준다는 것이다. 또 의사들이 자기 환자들을 이용해서 피험자 모집을 잘 해주기 때문에 사람을 모집하기 쉽고, 다른 나라에 비해 중도탈락률이 적고 꾸준히 한다는 거다. 자료를 읽으면서 이런 사실이 제약회사에선 좋은 정보지만, 시민에게는 좋은 현상인가 의문이 들었다. 약물 부작용에 대한 책임 추궁에 있어서 한국에서 사용하는 보험 상품은 미국에 비해 포괄하는 범위가 훨씬 낮기 때문에 보험비용이 적게 들어가고, 나중에 적은 돈이라도 받기 위해서는 소송 포기 각서 같은 것을 받는 내용이 들어있다. 사실상 시민의 위험도가 관리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안진걸: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의 마무리 발언을 듣겠다.

 

김○○: 최근에도 임상시험 관련 문자를 받고 있다. 메디슨00에서 문자가 왔었다. 다음 주 월요일 12일에 진행 예정인 40만 원짜리 임상시험이 있는데, 지원자가 많지 않아 취소 위기에 있다며 참여를 독려 문자가 왔다. 지인을 데리고 오면 1인당 2만원씩 추가 지급을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임상시험은 내 몸에 가격을 붙이고 인간이라는 존재를 수량화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임상시험을 할 수 밖에 없도록 현실 상황이 젊은 대학생들을 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험에 참가를 하는 내내 기분이 안 좋았던 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타율로 선택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윤을 위해서 정부정책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무섭다. 위험은 누구에게 전가되는가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채○○: 대학생이다 보니까 대학생들이 왜 임상시험에 많이 참가를 하게 되는지 공감이 많이 됐다. 앞으로 여러 단체에서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다루어 줬으면 한다.

 

정형준: 인간이 존엄성을 갖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안진걸: 소중한 말씀 해주신 경험자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편집자말]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100%'는 박근혜를 당선시킨 보건의료 핵심 공약이었다. 이 공약의 의미는 다층적인데, 우선 국가가 의료를 책임진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즉 기존의 한국 의료체계에 국가 책임이 결여되어 있다는 스스로의 반성이 들어있었다. 

다른 하나는 100%라는 지점인데, 이 부분은 공적 보험이 있지만, 높은 본인부담금, 비급여의 존재로 국민 부담이 높다는 것을 반증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의료의 보편적 국가보장 100%'가 아니라 '4대 중증질환'만 언급한 것은 우선순위에 따라 중증, 돈이 많이 들어가는 진단에 대해서 우선 적용하겠다는 의미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일 오전 강원도 강릉 택시부광장 유세에서 권성동 의원과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와 함께 유권자들에게 손을 들어보이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날 박 후보는 "녹색 시범 도시로 추진중인 강릉을 지능형 전력망 거점으로 지정하고 동해, 삼척 지역과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원주-강릉간 복선철도 건설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약을 제시했다.
▲  지난 2012년 12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강원도 강릉 택시부광장에서 유세하는 모습. 선거운동원이 '암 진료비 국가부담 100!'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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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공약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집권 1년 차에 이미 완전 누더기가 되었다. 간병비는 일찌감치 비용에서 제외되었고, 비급여도 차등 병실료와 선택진료비는 일부만 절감되었다. 공적 보험의 보장 범위도 국가 보장 100%가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로드맵을 따라가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4대 중증질환' 단어에 집중해서 기존 로드맵에 따르면 혜택을 보는 여타 질환자들의 초음파 급여화는 축소되기까지 했다.

공약 폐기도 심각한 문제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박근혜 정부는 이런 공약 일부도 지킬 수가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기반 자체가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의료산업화'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의료산업화는 박정희의 유산

혹자는 '박정희가 건강보험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는 박정희 정부 시절(1977년) 건강보험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만 사실이다. 실제로 건강보험은 당시 국민의 요구와 기업의 요구가 결합된 산물이었다. 

도리어 박정희도 자신의 공약사항이었던 건강보험 도입을 무려 10여 년간 미뤘다. 거기다 박정희는 건강보험에 단 한 푼의 국고 지원도 할 생각이 없었다. 왜냐면 그에게서 건강이란 개개인의 국민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소양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국가주의'는 국가가 책임지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의 헌신하는 개인들의 집합을 뜻했다.

암튼 국고 지원이 없었던 관계로 박정희 표 건강보험은 500인 이상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에게만 가입이 허용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상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진료의 범위도 의료보험 적용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거의 반반 수준이었다. 정말 꼭 필요한 절실한 진료의 일부만 의료보험이 적용되었다. 이것이 현재도 지속되는 급여와 비급여 구분의 시작이다.

또한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어서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할 공급은 철저하게 시장원리를 따랐다. 때문에 직장건강보험이 도입되고 난 다음해(1978년)에는 대규모 민간병원의 개원 러시가 불붙었다. 일부 논문은 1961부터 1977년까지의 병원투자 규모를 이때 단 1년 만에 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암튼 건강보험을 만들면 의료서비스를 공급할 병원은 최소한 공공에서 책임져야 했는데, 박정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미 1970년 삼성이 만든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등이 들어서 있었고, 민간 대학병원과 곳곳의 민간 중소병원이 성행하고 있었다. 병원은 박정희에겐 애초부터 돈이 되는 사업에 지나지 않아보였다.

그런데 유신 시절에 엉망으로 만든 건강보험, 의료공급체계가 아직까지 한국의 의료체계의 근간이 되고 있다. 물론 1987년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건강보험의 대상을 임금노동자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1990년대의 시민, 노동단체의 요구로 건강보험도 단일보험자로서 통합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도 경험하듯이 급여와 비급여가 혼용되고, 민간병원들이 확장되며, 의료가 돈벌이인 상황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

그 아버지에 그 딸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통과를 치르겠다는 얘기인지 이것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며 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비판했다.
▲  지난해 2월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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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서비스 산업'으로 한국의 성장을 바꿔야 한다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이론이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신지식인'이니 IT-소프트웨어 발전 등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확고한 수익성이 발생하는 공공 부분을 민영화하는 요구로 나아갔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요구를 제대로 구현하여, 민간이 도로, 철도, 수도, 가스 등에 진출할 수 있는 틈을 열어주었다. 박근혜 정부는 아예 철도, 수도, 가스를 상당 부분 민영화해냈다. 이런 과정에서 병원으로 돈을 벌겠다는 부자들의 욕심도 덩달아 커졌다. 그래서 투자이윤을 배당받을 수 있는 '영리병원'을 전면 허용하자는 주장이 진행되었다.

이는 국민 반발로 경제자유구역에 한정된 외국인 영리병원 허용으로 축소되었다. 이런 '외국인 영리병원'조차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도 진료할 수 있게 규제 완화되고, 의사들도 내국인이 하게끔 끊임없이 규제 완화 되었다. 이런 '영리병원'을 국내에서 최초로 허용(제주도 녹지병원)한 것이 박근혜 정부다.

이외에도 시종일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의료를 집어넣어 기획재정부 마음대로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청년 일자리 확대를 운운하면서 '원격의료', '의료기기 규제 완화', '국제의료' 등을 부르짖었다. 국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효과인 '영리자회사', '부대사업확대'도 밀어붙였다. '병원인수합병 허용'을 통해 국가에 기부채납된 비영리병원의 자산을 사적재산으로 전락시키려고도 했다.

문제는 이 모든 의료영리화, 산업화의 대가는 국민이 지불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의료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비율(재난적의료비)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독보적 1위였다. OECD 국가 중에 본인부담금이 높은 1, 2위 국가였고, 공적보험이 있는데도 별도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세대가 80%를 돌파하는 후진국형 보험제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공공의료기관이 전체의 5% 밑으로 추락했고, 때문에 2015년 메르스 사태일 때 제대로 대응할 자원이 없어 고통받았다.

여기에 국민은 과잉진료 논란으로 병의원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고, 여전히 고가진료(비급여)의 유용성을 스스로 인터넷이나 주변 사람들의 정보로 확인해야 한다. 아마도 공적보험이 있는 나라 중에 이렇게 '건강정보'가 TV와 인터넷에 범람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 특이한 현상은 건강보험의 급여범위를 늘릴 재정은 충분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의 흑자는 놔두고 국고지원 축소

박근혜 정부 기간 건강보험은 매년 4~5조의 흑자를 기록해 현재 20조 원 이상의 막대한 건강보험 흑자가 남아있다. 상식적인 정부라면 이 흑자를 모조리 국민의 의료비 절감에 썼어야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2023년이면 재정 재앙이 닥친다는 공포 마케팅으로 남아도는 재원조차 적립해서 쌓아둬야 한다고 겁박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건강보험이 흑자이니 국고지원금은 축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물론 박근혜 자신이 1% 부자들이 이용하는 '차움' 의원을 이용하고, 비선 의료진의 별도 진료를 받으며, 무엇보다 효과도 불분명한 각종 주사치료 및 미용시술에 빠져있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의료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천박하고 비합리적인 사고는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만든 엉망인 민간중심의 한국 의료체계를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건 나만의 과도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왜냐면 대부분 국민이 현재 의료제도의 근본적인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1977년의 의료체계의 특징(민간중심 의료공급, 선별적 건강보험, 공적책임이 없는 수익자 중심 재정부담)이 계속 확대 재생산된 것이 현재의 의료산업화 과정이고, 의료영리화과정이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그 막장의 끝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제 박근혜를 끌어내린 시점에서 보건의료 적폐의 제1 과제는 보건의료의 유신잔재(1977년 체제)를 일소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의료의 공공성 회복, 건강보험 재정의 공적  책임 강화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4대 중증질환 국가 보장 100%'같은 공약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제로 국가가 재정과 의료 공급에 책임있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 모여 '보건의료인력 확충, 최저임금 1만원인상,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결의대회'를 마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광장까지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지난해 6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보건의료인력 확충, 최저임금 1만원인상,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결의대회'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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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이 물론 한 번에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우선 당장 남아도는 건강보험 흑자 20조로 비급여를 없애고, 민간 병원을 공공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의료비가 없어서 진료받지 못하거나, 의료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비급여가 포함된 건강보험 상한제, 그리고 비급여 없는 제대로 된 건강보험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사실 이 정도는 누구든 집권하는 세력이 의지만 있다면 당장 가능하다. 왜냐면 당장 영국이나 스웨덴처럼 병의원을 공공화하자는 주장이 아니고 있는 재원을 재배치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박근혜 정부 집권 다음 날 한국 최초로 공공병원(진주의료원)을 폐원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당시 "공공의료는 박정희 때 시작된 좌파정책"이라는, 기가 막히는 '박정희 색깔론'까지 들먹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박근혜를 계승하는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가 될 듯하다. 이런 과정을 보고 있자니, 과거 홍준표가 막말을 하다 보니 실수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라고 느껴진다.

아마도 한국의 강성우파들은 애초에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박정희가 공공의료를 완전히 잘라버리고, 건강보험이 아니라 미국 같은 민간보험 천국을 만들지 않은 것이 불만인 건 아닐까? 그리고 우익들은 박근혜가 그런 역할을 해낼 줄 알고 지지했던 것이 아닐까? 이것이 박근혜를 끌어내린 만큼 유신체제와 유신 망상도 걷어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병원에 게시된 입원료 본인부담 인상 공지문
▲  병원에 게시된 입원료 본인부담 인상 공지문
ⓒ 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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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결국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입원료를 인상했다. 정부는 2016년 7월 1일을 기해서 입원료 본인부담률을 현행 20%에서 30%까지 인상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장기입원 유인요소를 줄이겠다는 빌미로 15일 이상 입원하면 본인부담금을 25%로, 30일 이상 입원하면 30%까지 인상하는 안을 강행했다. 

이 안은 원래 최초로는 2015년 2월에 입법예고된 바 있다. 당시 초안은 무려 40%까지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고, 이에 대해 수많은 국민과 노동시민단체들이 반대한 바 있다. 메르스 감염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2015년 5월 중순 보건복지부는 이 시행령 관련 공청회를 했는데, 당시 시민단체, 의사협회, 병원협회 등 모두가 입원료 인상에 반대할 정도로 이 시행령을 동의한 전문가, 시민, 단체는 없다. 입원료 인상을 고수한 것은 오로지 국민들을 쥐어짜려는 박근혜 정부뿐이었다.

때문에 정부는 애초 계획인 2015년 하반기에 입원료 인상 계획을 시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많은 의료민영화를 포함한 규제완화와 노동법개악시도, 국정교과서 강행 등을 하면서, 결국 소리 소문 없이 2015년 12월 국무회의에서 입원료 인상안을 슬그머니 통과시켰다. 

당시 한국 최초의 영리병원인 '녹지병원'을 허가한 상황이라서, 입원료 인상은 보건의료시민단체들 사이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수많은 폭탄들을 터뜨리는 와중에 이제 국민들이 입원시 내야 할 부담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나마 막무가내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의 저항과 반대로 40%까지가 아니라 30%까지만 인상하기로 한 것에 고마워 해야 할까? 사실 입원료 부담금을 인상하여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 정부의 반서민, 반복지 노선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반복지, 반서민 정책

우선 입원료 부담이 무서워 퇴원할 환자들은 단순히 떠올려봐도 가난한 환자들이다. 하루 몇 천 원의 본인부담금이 증가해도 부담이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가난한 환자들은 간병해 줄 사람도 마땅치 않고, 소득이나, 연금 등이 없어서 밥 해 먹기도 빠듯한 현실에 놓여 있다. 또한 사회에 돌아갈 곳도 없어 병원에 울며 겨자먹기로 입원해 있는 경우도 많다.

물론 한국의 의료제도는 OECD국가 대부분처럼 본인부담금이 없거나 낮은 구조가 아니라, 미국, 멕시코와 견줄 정도로 의료보장도 형편 없어 입원해 있더라도 부담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나마 빈약한 여타 사회복지와 견주어 건강보험이 나은 제도이기 때문에, 빈곤층이 의존하게 된다. 

이를 다른 사회복지제도의 제반 조건은 외면하고 단순화시켜, 장기입원자를 쫓아내야 할 사람들로 보는 것은 정부가 해야 될 일이 아닐 것이다. 작은 돈에 민감한 빈곤층의 의료이용만 자제시키면 이는 의료 이용의 명백한 '부익부 빈익빈'만 부추기는 것이고, 돈이 없으면 아프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여기다, 병원공급 측면에서 봐도, 가난한 환자들의 빠른 퇴원은 입원초기에 검사 및 수술로 높은 이익을 챙기는 대형병원들의 수익률만 극대화 시킬 조치이다. 병상 회전율을 높이면 입원하려는 대기환자가 있는 대형병원들만 행복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초기 수술이나 검사보다는 수술 후 입원치료가 중심인 중소병원들의 경우는 입원 본인부담 인상으로 병실가동률이 떨어지게 된다. 사실상 단기간 입원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대형병원이 유리한 조치이며, 대형병원의 수익률이 올라갈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입원료 인상은 건강보험의 보편적인 보장성을 악화시키는 조치라는 점이다. 현재 무려 30조(누적흑자 17조, 정부 사후정산 미납금 12조 3천억)가 넘는 건강보험 흑자 국면에서 입원비 본인부담금을 낮추지는 못할 망정, 올리는 것은 다름 아닌 돈이 남아 돌아도 환자들은 쥐어짜겠다는 일관된 긴축정책의 반영이다. 또한 이런 긴축을 통해서 국고지원 미납금은 물론이요,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책임을 면하려는 시도이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복지 확충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겠다며, 4대 중증질환의 경우 국가보장을 100%까지 하겠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공약은 누더기가 되었지만, 거꾸로 역행하면서, 국민들의 여론까지 무시하는 행위는 기가막힐 따름이다.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이야기하면서 민간보험은 방치

정부정책의 모순은 또 있다. 정부는 본인부담금을 올려서 장기입원은 막겠다면서, 민간의료보험은 그대로 놔두고 있다. 15일 이상 입원한 환자의본인부담금을 올린다 해도, 현행 법정본인부담금까지 보장하는 민간실손보험이 있다면, 효과는 거의 없다. 

실손민간보험에 가입한 환자라면 법정본인부담금인상 만큼의 부담을 민간보험이 지면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본인부담금을 인상하면 할수록 민간보험이 보장할 시장이 확대된다는 뜻이다. 또한 민간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장기입원으로 인한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이 정책이 정말 장기입원을 막기위한 것이었는지도 되돌아보게 된다.

거꾸로 이 같은 보장성 악화안들은 가뜩이나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으로 민간보험에 가입한 국민들에게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부추기게 된다. 또한 환자들에게는 민간보험 가입을 종용하는 셈도 된다.

만약 정말 환자들의 부담률을 올려 불필요한 장기 입원을 막을 요량이라면, 실손민간보험이 건강보험의 법정본인부담금을 보장해 주는 것은 최소한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민간보험의 시장만 넓혀주는 셈이 되는데 말이다.

때문에, 이번 입원료 인상강행은 몇 번을 생각해도 국민들과는 하등 상관 없는 부자들을 위한 반서민정책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정말 끝까지 대형병원과 재벌보험사를 위한 나쁜 정부로 남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이런 나쁜 정책들을 지속하지는 못할 것이다. 수많은 국민들, 특히 환자들의 분노가 쌓여갈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성심병원에서 체육대회 장기 자랑에 병원간호사들을 동원하여 선정적인 춤을 추게 한 일이 보도됐다. 이 병원은 장기자랑 준비를 하는 시간 및 추가 근무에 대해서 수당도 지급하지 않았다. 신입간호사들에게 밤낮없이 춤연습을 시켰으며, 짧은 치마, 민소매 등의 복장을 강요했다는 진술도 잇달았다. 여기에 차출된 간호사들은 무려 행사 2주전부터는 춤연습만 했다고 한다.

사실 평범한 시민들이 보기에 아픈 사람을 돌보고 치료하는 병원에서 감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경우들을 많이 보아왔다. 즉 이번 사태로 밝혀진 내용은 정도가 심하지만 성심병원만의 독특한 병원문화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한국의 여러 병원에서 송년회에서 장기자랑을 시키고, 시간수당을 지급하지 않았으며, 각종 폭언과 ‘태움’문화에서 간호사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이런 비정상적인 문화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도, 개선되기는커녕 병원내에서 암묵적으로 유지되는 현실에 정상적인 사람들은 납득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병원 내 극단적 권위주의와 간호사에 대한 부당한 강요 등은 세습된 ‘문화’만은 아니다. 그 근본에는 한국의료체계가 성장,축적한 본원적 방식이 놓여 있다.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본관 모습
한림대학교 성심병원 본관 모습ⓒ민중의소리

한국의 병원

한국의 병원은 기관수로 95% 가량이 민간병원이다. 즉 대부분이 개인이나 민간비영리법인이 운영한다. 이는 OECD 국가 대부분 민간병원이 20-30% 선인 것과 비교해서 너무 높은 수치이며, 의료민영화의 천국인 미국의 70%선과 비교해도 높다. 사실 한국의 민간병원 비율은 OECD 국가 최고수준이다.

그런데 원래 한국이 애초부터 민간병원 천국인 것은 아니었다. 해방 당시를 보면 당시는 민간병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병원이 몇 개 없었고, 대부분이 공공병원이었다. 일본제국주의는 한일합방이후로 일본군 주둔지에 병원을 지었다. 이것이 지금 대부분의 지방의료원의 효시다. 또한 1930년대 만주사변이후로는 한반도를 후방 병참기지화 하면서 공공병원을 좀더 확충했다.

문제는 해방 이후로 공공의료기관이 거의 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부 국립대병원을 제외하면 공공병원은 일제가 만든 유산들이 고작이다. 그렇다면 왜 공공병원을 늘리지 않았을까? 우선 해방이후 미국식 종합병원, 전문의제도등이 이식되면서 의료부분에 대해서는 시장지향점이 분명해졌다. 또한 한국전쟁이후 폐허속에서 의료공급은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다.

1960년대 말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필수의료의 요구가 늘어갈때도 박정희 정권은 의료공급만은 철저히 민간에 의존했다. 건강보험이 도입되는 과정에서도 의료수요는 모조리 민간병원이 독식했다. 이런 과정에서 초기에 작은 의원에서 시작한 개인의사들이 유명해지고 병상이 커지면서 병원을 짓게되고 이를 확대축적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번 갑질사태가 밝혀진 성심병원도 1960년대말 의료수요를 기반으로 확대해서 대학교까지 만든 민간병원자본(인제대 백병원, 순천향병원, 김안과 건양대병원, 을지병원, 차병원, 길병원 등)의 표본 중 하나다.

이들 민간병원들은 병상을 확충하면 할수록 돈을 벌었기 때문에, 계속 병원을 늘려가거나 병상을 늘리는 방식의 축적을 계속했다. 성심병원의 경우만 보더라도 한강성심, 강남성심, 강동성심, 춘천성심, 평촌성심, 동탄성심 등 계속 병원을 늘린 대표적 사례다. 이런 축적은 빠른 병상확충을 우선하면서 병원설립자가족의 막강한 권력과 기형적인 권위주의, 높은 수익성을 기반으로한 병원 확대를 특징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모형이 이후 국공립병원은 물론 재벌들이 만든 병원에도 이식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공공병원이 의료체계의 모델이 되는데 비해, 한국에서는 빠른 증식형 민간병원이 공공병원의 모델이 되었다. 이 과정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상례라고 볼 수 있어 씁쓸할 따름이다.

없음
ⓒpixabay

높은 노동강도와 위계질서

이들 민간병원은 병원수익성과 팽창을 기반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승진등을 미끼로 강력한 위계질서를 양산했다. 살아남아 위로 진급한 의료인들에게는 높은 권한이 부여되고, 일부는 병원관리에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우선 애초부터 한국은 의사,간호사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들 병원은 의사는 물론이고 간호사 한명이 수십명의 환자를 돌보는 체계에서 발전해왔다. 정상적인 병상관리에서 수십명의 환자를 한명의 간호사가 돌볼 수 없기 때문에, 간병은 가족에게 맡겨졌다. 또한 간호조무사와 잡무를 담당하는 하위파트너가 확충되어 이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런 일부업무(간병 및 이송 등의 업무)가 가족과 하위파트너로 빠졌다고 해도, 의사인력도 적었기 때문에, 간호사들이 해야 할 의료업무가 늘어갔다. 간호사들은 간호기록, 활력징후측정, 투약 같은 기본적인 환자 돌보기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는 의사들이 주로 하는 근육주사, 혈관주사, 정맥 주사 수액공급에 튜브교체 등의 업무까지 해야했다. 여기에 간병을 가족들에게 맡기고, 문병객을 제한하지 않는 민간병원의 영리추구 때문에 환자보호자 응대까지 해왔다.

이런 높은 노동강도는 수간호사-주임간호사-평간호사-간호조무사-보조인력으로 이어지는 위계질서 속에서 유지되었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일을 놓치거나 실수를 하면 서로 힘들어졌기 때문에, 항상 고도의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특히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시간은 서로의 책임소재문제가 겹쳐져 간호사들의 태움문화가 만들어졌고, 신경질적인 분위기가 정착되었다.

사실 외국은 한국처럼 많은 환자를 한 간호사들이 절대 돌보지 않는다. 병상의 특징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체로 4명 안팎의 환자를 한 간호사가 돌본다. 한국은 간호인력에서 여유가 있는 병원조차도 15명에서 20명정도의 환자를 일반적으로 한 간호사가 돌본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 환자치료수준이 올라간 것은 모두 병원노동자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어서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노동강도를 기반으로 민간병원은 팽창하고 경영진들은 돈을 벌었지만, 계속된 경쟁과 축적압력으로 병원노동자들은 더욱 쥐어짜져왔다. 인력확충이나 노동자들의 처우가 일부라도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이후 노동조합등이 만들어지면서부터다. 하지만, 이런 위계질서는 노동조합설립과 가입에 대한 불이익, 특히 병상내 진급누락 등의 불이익을 발생시켜 간호사들의 정상적인 노조활동조차 가로막힌 상태다.

제46회 국제간호사의날인 5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계단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보건의료분야 50만개 일자리 창출 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인력법 제정, 50만 일자리 창출을 촉구하고 있다.
제46회 국제간호사의날인 5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계단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보건의료분야 50만개 일자리 창출 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보건인력법 제정, 50만 일자리 창출을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공공성이 관건

이런 병원내 위계문화와 오너일가의 갑질, 부당노동, 살인적 노동강도 해결은 우선 적절한 인력 충원과 노동강도 조정이 해결책이다. 하지만 정상적인 병상관리가 정착하는데 과연 민간병원들이 인력충원을 통해서 이를 제대로 구현할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병원의 수익성을 우선으로 하고 있고, 2000년대 이후로 이제는 주요도시에서는 병상과잉으로 민간병원들 사이의 경쟁도 격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력을 늘려도 병동관리가 아니라 QI, 교육, 잡무 등으로 말짱 도로묵이 되기 일쑤다.

결국 적절한 인력확충과 병상관리는 적정모델 설립이 필요하다. 개인이 설립한 혹은 이사회를 오너일가가 좌지우지 하는 병원이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이 정책적으로 이런 모델병상을 개발하여 긍정적인 모델을 양산하는게 가장 현실적 대안이다. 당장 병상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적정인력과 적정노동강도의 병상을 시범운영하고 여기에 자원배치를 해야 한다.

물론 병상대비 한국의 간호사수는 절대수치에서도 매우 낮다. 인구 1000명당 6명으로 독일(13.1명)이나 일본(11명)에 반도 안된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높은 노동강도와 태움문화는 그 조차 활동간호사의 수마저 줄어버렸다. 간호사면허 보유자중 약 13만명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단순히 간호사를 더 배출하는 것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들 간호사들이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조건 역시 적절한 노동강도와 일하는 보람일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가지 사회적 방안이 마련되고 있지만, 민간의료기관의 선의를 기대하는 것은 이번성심병원 경우를 보듯이 순진한 생각이다. 인력을 늘리면 병상경쟁을 위해 시간외 병원홍보등에 간호사등을 배치하는 병원들까지 새롭게 생겨나는 상황에서 적정진료는 모델이 필요하고 공적인 책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역할을 외국에서는 대부분 공공병원이 하고 있다. 이미 민간병원이 공공의료마저 망가뜨리고 있는 한국의료체계라고 공공병원을 포기해선 안된다. 현재 한국의 공공병원이 가진 위계적 병원문화와 높은 간호사 노동강도 역시 개선의 대상이다.

결국 어디선가 적정진료모델을 시범적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간호대학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결코 인력문제가 해결 될 수 없다. 공공병원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간호사들이 인간적인 노동을 통해 환자치료의 질을 향상할 수 있기 위해서도 절실하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민간병원을 매입하여 적절한 노동강도의 병원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위계질서속에서 개개인의 윤리회복이나 병원경영진의 개과천선만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문제는 관념이 아니라 체제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정부가 지난 9월 5일 ‘정밀의료 사업단’을 발족했다. 이 사업단은 ‘4차 산업혁명의 신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5년간(17-21) 631억원이 투입되는 ‘정밀의료’ 사업을 총괄한다. 동시에 2가지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첫번째는‘암 정밀 진단치료법 개발 사업단’(430억원)이고, 두번째는‘정밀의료 병원정보시스템 개발 사업단’(201억원) 이다.

정밀의료는 최근 도입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개인의 유전정보, 진료정보, 생체정보 등을 빅데이터화 하여 분석해서 개개인에게 맞춤형 진료를 제공한다는 시도다. 표적항암제 등이 이미 유전자정보를 바탕으로 효과를 보이고 있지만, 개인 유전자정보를 통해 맞춤형 의료를 제공한다는 것은 해외에서도 입증된 바 없다. 때문에 한국이 선점해 4차 산업혁명의 표본이 되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입증된 맞춤형진료라면 유방암 같은 경우 특정 발암유전자를 발견해 아예 유방제거술 등으로 암 발생을 예방하는 경우 정도이다. 앞서 밝힌 표적항암제는 치료과정의 검사일 뿐이다. 즉 현재의 생물학수준은 특정 암에 대해서 표적항암제의 효용성을 평가할 때 유전자형을 파악하는 것이 효용성이 입증된 부분이다.

환자를 수술하는 의료진
환자를 수술하는 의료진ⓒ뉴시스/자료사진

그렇다면 갑작스러운 정밀의료는 어떻게 맞춤형 의료를 제공한다는 것일까? 그 비밀은 엄청난 양의 개인건강정보를 통합,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획기적인 해법이 제공된다는 ‘가정’에 있다. 이는 뒤에 더 밝히겠지만 정말 ‘가정’이다.

대표적으로 알파고에 바둑대국의 빅데이터를 제공하고 학습시켜 인간기사(이세돌)를 이긴 바로 그 방법을 적용한다는 ‘가정’이다. 따라서 정밀의료가 성공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엄청난 양의 개인건강정보, 그것도 유전자정보를 포함한 엄청난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를 의료산업화론자들은 ‘보건의료 빅데이터’라고 부른다. 때문에 정밀의료는 ‘보건의료 빅데이터’에 다른 이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 다른 하나는 빅데이터를 통한 인공지능(딥러닝, 머신러닝등)이 올바른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이것은 ‘확신’인데, 아직 입증된 바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내린 진단과 처치가 어느 정도까지 정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컴퓨터가 조언자가 아니라, 그 과정조차 신뢰할 수준에 도달하려면 이는 바둑을 이기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인공지능(AI)의 완성단계일 것이다. 아쉽게도 의료부분에서 효용성이 입증된 인공지능은 최근 빅데이터의 초기단계를 통한 ‘왓슨’정도가 항암치료에 대해서 조언을 하는 수준이다.

대부분 질병의 원인은 사회적, 환경적 요인

다시 돌아가서 정밀의료의 전제가 곧 시작점인데, 이는 엄청난 양의 개인건강정보(빅데이터)를 요구한다. 또한 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도 요구한다. 이 두 가지가 모두 성립해야 하는데, 우선 개인건강정보 중 절대 바뀌지 않는 나이, 성별, 유전자, 출신지역등은 그래도 수집이 가능하고 한번 수집하면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생활습관, 작업노동환경, 스트레스, 식이습관은 어떨까? 이런 개인건강정보는 정확한 수집이 어렵다. 대략의 경향성만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

그 조차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규칙한 생활과 식이습관을 파악한다는 게 가능할 리 없듯이, 현대사회의 불규칙성, 환경문제 등으로 건강문제에 취약한 저소득층으로 갈수록 데이터는 빈곤해진다. 정말 필요한 건강결정요인을 알고 싶다면 24시간 통제되고 기록된 정보가 축적되어야 한다.

여기다 건강결정요인에서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은 매우 낮다. 2003년에 사실상 종료된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최초에는 인간 질환의 상당부분을 밝힐 수 있다는 장미빛 환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종료시점에 전체 질환의 0.1%도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이후 인간의 유전자를 밝히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도리어 현재 질환의 대부분은 후천적인 사회적, 물리적 환경 때문에 발생한다고 결론이 난 상태다.

건강결정요인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무시하고 다시 유전자환원론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의 빅데이터 이론의 한계다. 따라서 올바른 전제에 올바른 답이 나오듯이 단순한 개인 유전자정보와 생체정보에서건강관리나 질병치료방법이 나올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정밀의료’는 제2의 인체 게놈프로젝트와 비슷한 유전자환원론의 과학적 신기루 현상일 가능성도 크다.

개인건강정보 유출은 없을까?

여기다 유전자정보, 생체정보, 진료정보 등을 모으는 과정은 어떠한가? 한국에서는 이들 개인건강정보가 아직 표준화되어 있지도 않고, 개별 병원에 남아있어 취득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일단 개인건강정보를 많이 그것도 표준화된 형태로 모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게 된다.

그런데 한국은 95% 의료기관은 민간기관이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다보니 각 병원의 개인건강정보도 상이한 프로그램과 규격으로 저장되고 관리된다. 민간중심의 시장화된 의료가 빅데이터를 모으려는 산업화세력에는 독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셈이다. 특히 대형병원들은 자신의 전산정보프로그램들을 개발하는 자회사를 차리고 경쟁하는 관계로 상호이익이 없다면 이들 데이터를 쉽게 공유하지 않을 공산도 크다.

이러다보니 표준화되어 있는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이 중소병원들의 개인건강정보를 표준화해서 모아보겠다는 시도였다. 손쉽게 통합시키기 위해서 클라우드 서비스(외부 서버에 통합저장하는 방식) 등이 고안되었다. 개인건강정보의 외부기록을 금지한 의료법이 걸림돌이었고, 이를 규제완화로 없애려 한 것이 바로 박근혜 정부(2015년부터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추진하였음)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밀의료 병원정보시스템 개발 사업단’을 보면 박근혜 정부 시절 추진되었던 개인건강정보 클라우드서비스 제공 계획과 놀랄 만큼 동일하다. 이름에 국민들이 아직 이해하기 힘든 ‘정밀의료’라는 단어를 넣었을 뿐이다. 거기다 이 병원정보시스템 개발 사업단은 노골적으로 ‘재정여건이 열악한 지방, 중소병원의 낙후된 병원정보시스템을 대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도 병원 외에 집적화해서 보관하는 ‘클라우드 방식’으로 말이다. 즉 이 사업은 정밀의료는 포장이고 개인건강정보를 직접화해서 데이터셋으로 상품화하는 것이 목표로 보인다.

구멍투성이 개인건강정보 관리

그렇다면 이렇게 모인 개인건강정보는 제대로 관리라도 될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국감에서는 이미 2014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민 6400만명의 건강정보를 민간보험사에 넘겼다는 자료(민주당 정춘숙 의원실 자료)가 나오고 있다.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니고 민간보험회사에 말이다. 거기다 한국의 개인건강정보는 이름하고 지역 몇 개 삭제한다고 개개인이 식별되지 않는 정보로 남아있을 수가 없다. 바로 주민등록번호가 존재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정춘숙 의원
정춘숙 의원ⓒ뉴시스

정밀의료는 아직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았지만, 발전시킬 필요가 있는 의료기술일 수는 있다. 또한 맞춤형 의료는 우리 모두가 바라는 의료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과학에는 기본전제와 발전단계가 필요하다. 앞서 주장했듯이 정밀의료를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전제조건들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제를 만족할 것은 직접 상품화 가능한 데이터셋 창출, 클라우드 서비스가 아니라 정작 중요한 인공지능기술, 데이터 보안관리 기술 등의 기본 기술들이다.

특히 현대사회는 만성질환과 같은 비감염 질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런 만성질환의 치료는 환경적 요인의 수정이 필수적이다. 적절한 노동시간, 유해물질 없는 환경, 충분한 휴식, 제대로 된 먹거리 등등 건강을 위해 우리사회가 바꿔야 할 것들은 개인건강정보 수집보다 훨씬 더 많다. 건강을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둔갑된 특정 기술이 아니라, 사회가 바꿔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부분에서 계속된 비과학과 미신적 행태를 걷어내고 올바른 방향을 전문가, 시민들과 함께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에 개인건강정보의 잘못된 유출과 영리적사용이 예상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업’ '정밀의료 사업’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8월 9일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언론들은 ‘문재인케어’라는 말을 붙여 ‘보장성강화안’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보장성강화안을 발표한 점은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간 보장성 강화는 매우 중요한 의료복지과제였음에도 대통령선거가 지나고 집권하게 되면 후순위로 밀리거나, 실제 이행되지 않는 공약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박근혜정부는‘4대중증질환 국가책임 100%’를 핵심공약으로 당선되었으나, 집권 1년도 안되어 본인의 약속을 누더기로 만든 바 있다.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의료복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정책안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집권말인 2022년까지 목표보장율을 70%로 정했는데, 이는 OECD 국가평균인 80%보다도 한창 떨어지지만, 더 안타까운 점은 이명박정부가 제시한 75%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도 2022년이 되면 현재 63.7% 수준의 보장성이 70%가 된다는 것인데, 이는 쉽게 설명하면 평균적으로 그동안 자신이 부담하던 36%의 본인부담율이 30%가 된다는 것으로 실제 평균경감율은1/6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즉 평균적인 의료비 부담의 경감율 18%에 지나지 않는 계획에 너무나 큰 광고를 하고 있다는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건강보험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병원 내 어린이학교에서 어린이 환우와 색칠공부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건강보험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병원 내 어린이학교에서 어린이 환우와 색칠공부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뉴시스

보수언론과 정당의 재정고갈론은 허구

물론 이를 위해서도 무려 31조의 재원이 투자되는데, 현재의 재정상황에 비추어 이 정도 목표가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등의 보수정당은 연일 ‘문재인케어’의 재정문제를 거론하며 꺼꾸로 이정도 보장성강화안에 대해서도 재 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실제 31조의 재원투자는 매년 31조를 투자하는 확대안이 아니라 무려 6여년간의 누적투입금액일 뿐이다. 가장 많은 투입을 하는 것인 2018년인데, 추가투입은 고작 3조2천억수준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실제로 임금인상 및 보험료 사각지대해소로 인해 매년 자연증가분이 수조원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국고지원비율을 줄여왔지만, 자연증가분으로 인해 2013년에서 2014년으로 갈 때 3조3천억, 2015년은 전년대비 3조원가량이 증가했다. 당시에는 흑자로 인해 보험요율인상이 거의 없었는데도 말이다. 사실 2010년 건강보험 총재정은 34조원가량이었지만, 2015년에는 53조원을 넘어섰다. 만약 문재인정부가 최저임금을 약속한대로 1만원까지 올린다면 자연증가분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가장 많은 추가지출을 고작 3조2천억정도만 계산한 ‘문재인케어’의 재정추계는 사실상 매우 째째한 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단순계산도 못하는 바보처럼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과 보수정당이 재원마련에 대해서 주된 비판지점을 삼는 이유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에도 여타 복지담론에 대한 공격처럼 ‘세금폭탄론’을 들이대려는 심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보수우익의 공격이 ‘문재인케어’의 째째한 재정계획까지 합리화 해줄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정부의 적폐 중 하나인 건강보험이 무려 21조이상의 누적흑자상황이라는 점이다.

박근혜의 건강보험 적폐

박근혜정부가 남긴 21조 흑자는 건강보험 경영을 잘한 결과가 아니라, 국민들이 낸 보험료만큼 의료비 절감을 받지 못한 결과다. 즉 서비스에 비해 비용을 많이 지불한 셈이다. 특히 한국의 건강보험은 철저하게 의료서비스 중심이기 때문에 현금을 적립할 이유가 전혀없는데도, 박근혜정부는 준비금명목으로 국민들을 쥐어짜서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결국 집권말에 본색을 드러냈는데, 박근혜정부 기획재정부는 사회보험 재정건전화라는 논리로 건강보험 흑자분도 국민연금처럼 돈놀이에 이용하려 했다.

따라서 박근혜 적폐를 청산하려는 문재인정부는 최소한 건강보험누적흑자 21조원을 수년내에 사용하는 보장성강화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또한 박근혜정부는 건강보험 국고지원을 축소해왔는데, 이를 정상적으로 모두 사후정산해도 10조가량을 더 내야 한다. 즉 박근혜적폐로 인한 가용금액만 31조원가량이 있다. 여기에 앞서 말한 자연증가분이 매년 3-4조, 그리고 앞으로 제대로 낼 국고지원금 추가금이 매년 2-3조, 또한 마지막으로 문재인정부가 주장한 소득주도성장론에 따라 순증할 보험금이 매년 1-2조가량 될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31조의 흑자분에 매년 6-9조가 자연증가되는 상황이므로, ‘문재인케어’의 계산법에 따르면 총 투입재정을 누적 100조 넘게 잡을 수 있다. 그런데 고작 70% 목표치에 한해 순증분 3조수준으로 누적 31조 투입만 광고한 것은여러가지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 사실 현재의 지출규모를 유지한다면 노령화를 고려하더라도 막대한 흑자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의료산업화의 밑밥

우선 제일 큰 우려는 남은 재정의 상당부분이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이 아니라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 등의 자본으로 빨려들어가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문재인케어’의 발표에 주식시장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는데, 보험사의 주가가 떨어진 반면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 주가가 올라간 것이다. 보험사 주가가 떨어지는 건 보장성강화로 인해 보험가입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 그런데 왜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의 주가로 올라갔을까?

우선 문재인케어의 보장성강화안은 예비급여라는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약제도 급여범위에 넣는다. 문제는 예비급여는 일반 건강보험 급여처럼 입원 20% 수준의 보장율이 아니라 50,70,90%의 높은 본인부담을 가지게 되고, 본인부담상한제에서도 제외된다. 사실상 가격을 결정하는 것외에는 별로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에 도움이 되는 제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예비급여가 된다는 것은 사실 국가로부터 일부 효과라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즉 예비급여의 포함된 기존 비급여 검사, 약제, 치료재료 등은 안정적인 시장이 열리게 된다. 여기다가 예비급여는 높은 본인부담율과상한제 제외로 인해서 건강보험총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하다. 따라서 책정된 가격도 높을 가능성이 크다. 보통 건강보험 급여를 정할 때 기존 가격보다 낮은 가격이 결정되는 이유는 공익적 고려와 사용빈도 증가를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비급여는 그런 과정이 기존의 건강보험 급여만큼 강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낮다.

사실 로봇수술 같은 고가장비가 이용되는 수술이 예비급여가 된다면, 로봇수술 기계가 더 팔릴 것은 자명하다. 고가의 면역항암제등도마찬가지다. 때문에 의료기기 및 제약회사들은 ‘문재인케어’에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의료복지선진국들OECD 국가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문제인 케어에 비판적인 보수 언론
문제인 케어에 비판적인 보수 언론ⓒ조선일보 인터넷 캡처

의료공급의 공공화

우선 유럽국가들은 병원의 대부분이 공공병원인 점도 있지만, 입원에 대해서는 총액계약제나 포괄수가제로 추가적인 행위가 있더라도 병원이 돈을 벌지 못하게 막고 있다. 가까운 대만도 병원에 대해서 이미 총액계약제를 실시한다. 동네의원이 담당하는 1차 진료도 환자등록을 중심으로 돈을 받는 인두제를 시행하거나, 한국과 같은 수가제도를 운영하더라도 일본처럼 비급여를 섞어 진료할 수 없는 ‘혼합진료금지’제도를 이용한다. 여기에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전국민주치의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네의원과 클리닉이 외래진료를 하고, 병원은 입원진료만 전담하는 임무분담도 명확하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국처럼 의원과 병원이 무차별적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최소한 지역별로 공공병원이 거점병원으로 있어서, 돈이 없어도 진료해주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문재인케어’에는 이런 의료공급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방향성은 전혀 제시되고 있지 않다. 지불제도 개편과 관련해서 ‘신포괄수가제’의 확대 정도만 언급했다. 노무현정부가 제시했던 공공의료 30% 확충이나 지역거점 공공병원 설립, 공약사항이었던 건강보험공단 산하 병원 설립도 제안하고 있지 않다.

사실 앞서 이야기한 재정계산, 목표 보장율 같은 것들은 틀릴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공공성을 확보하는 비전과 전략은 이제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과제다. OECD 최저수준의 공공병상 수준, 미국보다 더 시장화된 의료공급 등은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름을 붙일 정책이라면 의료공공성을 확보할 비전과 전망을 보여줘야 했다. 끝으로 공공의료를 중심에 둔 주치의제, 지역공공병상 확충이 빠진 이유가 혹시나 제약산업, 의료기기산업, 의료산업체의 확장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지도 걱정스럽다. 여전히 의료부분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추진하면서 주장하는 보장성강화안이 제대로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케어’라는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정책이라면 ‘의료산업화’가 아닌 ‘의료공공화’라는 명확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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