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보장성 강화가 포퓰리즘이면 선진국들 왜 안 망했나"
"지금도 OECD 국가 중 보장성 최하위 수준"
"체류 6개월 이상 외국인 피부양자만 건보 적용...국익 해칠 것"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정상화가 시급하다"며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장 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 폐기 방침을 시사한 데 대해 보건의료단체가 "환자 의료비를 높여서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겠다고 발표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은 여전히 낮은 편인데, 이를 윤 대통령이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한 것도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이날 저녁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케어 폐기는) 건강보험 지속성을 늘리자는 게 방점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며 대대적인 건보 개편을 지시했다. 문재인 케어를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건연합 "윤석열표 건보 개편 핵심은 개인 부담 증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9년 7월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2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 위원장은 이날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개편 방향을 "국민 개개인의 본인부담을 늘리는 게 본질"이라고 총평했다. 문재인 정부가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을 투입했다는 현 정부 지적에 대해서는 "이 금액을 침소봉대하고 있다. 연 4조 원 정도 더 투입해 보장성을 강화해도 주요 선진국처럼 되지 못했다"고 맞받았다. 윤 대통령이 문재인 케어를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포퓰리즘이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주요 선진국가들이 다 포퓰리즘이냐, 다른 주요 국가들이 다 망했느냐"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지금까지 보수정부들도 다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겠다고 했다"며 "낭비 없는 의료를 위해서 의료체계를 개편한다든지 아니면 1차 의료를 강화한다든지 아니면 공공병원을 늘린다든지 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다짜고짜 보장성 강화를 철회하겠다고 주장한 최초의 정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여전히 대한민국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건강보험 보장비율은 66~67% 수준으로 유럽 주요국(80% 이상), 일본과 대만(90% 이상)보다 한참 모자라다는 주장이다. 그는 "(주요 선진국보다) 15% 정도 뒤처져 있는데, 마치 재정 파탄이 날 것처럼 건강보험 불신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상당히 부적절한 발언이고 부적절한 정책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건보 재정 효율화를 통해 의료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도 의료 분야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질타했다. "보건의료 부분은 정보 불균등성이 심하기 때문에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이라는 말이다. 그는 "시장실패가 예상돼 있어서 사각지대를 지원하려면 무조건 보장성을 많이 올려야 된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일부 혜택을 줄일지 말지 논의할 수 있겠지만 한국은 거의 지금 꼴등인데 지금 뭐를 어떻게 더 깎자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외국인‧해외 장기체류 피부양자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6개월 체류 이상'으로 강화한 데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위원장은 "(외국인 건강보험 적용은) 한국 이미지나 국익을 위해 아주 중요한 것인데 차별적으로 지원한다면 한국의 국제 경쟁력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이분들이 내는 돈에 비해서 진료를 많이 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보장성 확대는 포퓰리즘 아닌 사회적 책무

지난 화요일 오전 진료 중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밝히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겠다며 사실상 보험 범위 축소를 언명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보장성을 유지하면 재정 파탄이 온다는 것이다.

사실 낭비 없고 효율적인 건강보험 재정 운영은 당연한 국가의 책무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료행위를 평가하고 재정 관리를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재정 누수 원인은 다양하다. 주요 선진국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안을 시행 중이다. 우선 과잉 진료 문제는 심사평가뿐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확립, 일차의료 강화, 주치의제와 같은 환자등록제 등으로 해결하거나 지불제도를 개편해 대응한다. 정의로운 재정 확보 방안은 소득이 높고 여력이 되는 계층이 보험료를 더 내도록 하고, 국고 지원을 늘려 해결하는 것이다. 환자들의 과잉 의료행위를 부추기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민영보험도 규제해야 한다.

낭비와 무임승차가 있다면 이런 정책들을 조속히 시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정책 대안 없이 대통령이 나서 다짜고짜 재정 파탄이 올 테니 보장성을 낮추겠다고 주장하는 건 처음 봤다. 역대 대통령들은 누구나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해 왔다. 무엇보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저 수준이다. 한국이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보장률을 지금보다 15% 이상 올려야 한다.

특히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첨단 의료기술과 고가의 신약들이 도입되는 상황에서는 보장성을 높이지 않는 한 건강보험 혜택 범위가 축소될 가능성이 더 크다.

보장성 확대로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상처럼 보장성은 쉽게 오르지 않는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선별적인 보장성 강화안을 추진했지만 되레 보장성이 떨어진 경험도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나서 건강보험 재정 파탄과 같은 공포를 조장하고, 정치적 이유 혹은 재정 문제로 공적보험의 가치를 포기하는 방향성을 제시한 건 책임 위반이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보장 범위를 줄이면 건강보험 재정이 건실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절약한 금액만큼 국민들은 의료비를 더 내야 한다. 의료비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어쩔 수 없이 집행되는 것이다. 과거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중병에 걸리면 집을 팔아야 했기 때문에 만든 게 건강보험이다.

얼마 전 무릎 관절염이 심해 관절 수술을 권유한 어르신이 다시 돌아왔다. 수술을 하지 못한 이유를 물어보니 수술비가 너무 부담이 된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수술비를 달라는 얘기를 차마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는 인공관절 치환 수술의 본인부담금도 부담이 되는 퇴행관절염 환자가 한국에는 아직 너무 많다.

특히 노인들은 소득보장제도가 미비해 꼭 해야 하는 수술 부담액도 크게 다가온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미국보다 낫다는 게 유일한 위안인 수준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보다도 못하다. 취약계층, 노인, 장애인의 의료비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도 건강보험의 보편적 보장 범위 확대다.

민영보험이 있고 일정 소득이 있는 국민이 아니라 바로 지금도 돈 때문에 받아야 하는 수술을 못 받는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알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보장성 강화가 포퓰리즘이라면 주요 선진국은 공적보험제도로 다 망했을 것이다. 보험 확대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다. 국민 건강 보장을 정치화해선 안 된다.
2022-12-16 25면

https://soundcloud.com/sisatong/0126pm


국민건강보험은 한국의 사회복지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제도이지만, 제도의 보장성은 반쪽에 불과하다. 완전체를 이루지 못하는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에는 외국과 달리 무엇이 없는 것일까?

우선, 건강보험제도와 관련된 내용은 용어도 전문적이고, 국내에 없는 제도에는 접근도 어렵다. 하지만 이 시간을 통해 차근차근 살펴보면 그 필요성에 대해 지각할 수 있다. 한국 건강보험에만 없는 대표적인 네 가지는 상병수당, 진료비상한제, 공적부조(의료급여), 의료전달체계이다. 왜 이런 제도가 없는 것인지, 이것들의 부재로 발생하는 문제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 더불어 국가 의료체계와 지불제도에 대해서도 알아보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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