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를 하다 보면 가끔 더 비싼 치료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가 있다. 지난 10여년간 외래 진료현장에서는 선택적 진료가 눈에 띄게 늘었다. 실손보험 영향이 제일 크지 않을까 싶다. 이 민간보험이 가진 문제는 의료공급자와 의료수요자에게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실손보험은 초기에 많은 가입자를 만들기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병의원에서 본인이 부담한 금액을 돌려주는 걸로 판매했다. 물론 그 뒤로는 조금씩 묻고 따지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공적보험조차 가입자의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막기 위해 일정 수준(외래진료의 경우 30%)의 본인부담금이 있다는 걸 고려하면 애초부터 과도한 의료행위를 부추기는 상품이다. 거기다 국민건강보험이 보장해 주는 영역이 날로 늘어나면서 실손보험은 자양강장 수액치료나 차등병실료처럼 실제로는 효과나 가격효용성이 떨어지는 선택적인 진료행위(주로 비급여)가 주된 보상 내용이 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10년간 실손보험 도입으로 보험가입자는 소위 ‘보험금 타먹기’를 하려고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쉽게 받아들이게 됐다. 병의원들도 이를 적극 활용한다. 아예 수액치료나 도수치료 같은 비급여치료만 전담으로 하는 의원이 생길 정도다.

이렇게 실손보험 가입자의 의료 이용이 늘어나고 청구액이 늘어나자 보험회사가 보인 태도는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초기에는 모든 것을 다 보장해 줄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가입자가 늘어나고 상품이 일정 궤도에 오르자 보험금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니 올해도 엄청난 인상 폭이 예상된다고 한다. 즉 엉망진창 상품을 판매하고 뒷감당은 모조리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꼴이다.

물론 진짜 문제는 이런 황당한 불량품을 ‘제2의 건강보험’이니 의료비 절감에 도움이 될 거라는 헛소리로 허가한 정부에 있다. 이 불량제품은 이제 우리 의료체계를 망가뜨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건강보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고 하지만 비슷한 수준으로 늘어나는 비급여진료비로 목표 달성은 이미 물건너갔다.

과잉의료를 부추기는 상품을 출시해 많은 사람들을 중독시킨 보험사들이 최근에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니, 가입자 개인건강관리 서비스니 하면서 보험가입자의 개인건강정보를 축적하려 한다. 데이터채굴사업과 영리적인 헬스케어서비스 사업에 진출하려는 게 목적이다. 여기에 앞장서는 게 금융감독원이다. 금융감독원인지 금융민원원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실손보험이란 독극물에 정부기관, 의료기관, 의료소비자 모두 중독되고 망가지고 있다. 오로지 보험사만 20조원 넘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냈다. 간혹 나는 친한 지인들에게 당부한다. 실손보험을 해지하라고. 실손보험은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파우스트의 영혼이 조금씩 잠식되듯이.

 

2021-03-02 29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302029011

문재인케어에 대한 '속 보이는' 가짜뉴스

늘어나는 비급여 항목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때문? 번지수 잘못 짚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검사를 희망하는 배권환 군(오른쪽), 작곡가를 희망하는 이경엽 군의 손을 잡고 격려하고 있다. 2017.8.9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이른바 '문재인케어'에 대한 비판은 다각도로 제기되어왔다. 제일 큰 쟁점은 재정관련 내용이다.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돈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보험재정을 확충할 방안이 필요하단 논리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은 국고지원을 제대로 해 우선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대형병원 쏠림현상이다. 보장성강화를 하면 할수록 대형병원의 본인부담금이 줄어들어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더 몰릴 거란 주장이다. 이 주장도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들도 의료전달체계를 갖춰 적절한 자원배분을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거기에 주치의제도 등을 도입해 1차 보건의료를 강화하자고 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문재인케어에 대해 최근 황당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다름 아닌 문재인케어로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증가해서 국민의 민간보험 부담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논리는 공적보험의 보장성을 올리니 의료 이용이 많아져서 민간보험에도 영향을 준다는 내용과, 공적보험의 보장성 강화로 수익성이 떨어진 병·의원이 비급여를 더 많이 해서 민간보험비용을 올린다는 내용이 섞여 있다.

실손보험 자체가 비급여증가의 온상

 

일단 공적보험의 보장성을 올리면 환자들은 그동안 부담이 무서워 하지 못했던 검사나 시술을 더 받을 수 있다. 이는 행위량의 증가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동안 실손보험이 보장하던 비급여영역을 공적영역에서 보장하게 되어 실손보험이 이익을 보는 구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MRI, 초음파 검사는 과거 대부분 실손보험이 보장하던 영역이었다. 그런데 문재인케어로 건강보험이 이를 보장한다. 이렇게 되면 실손보험은 반사이익을 보게 된다. 이 때문에 작년 건강보험공단정책연구원은 건보 보장 항목에 대한 실손보험금 지급 부담이 줄어든 만큼 "약 6.15%의 실손보험료 인하요인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즉 실손보험은 손해율이 증가하는 게 아니고 손해율이 감소한다. 따라서 손해율 때문이라면 실손보험사는 문케어를 지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증가한다면 이는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영역이 계속 늘어난다는 뜻이다. 건보보장항목을 늘리면 수익성을 위해 병·의원들이 비급여를 계속 개발하고 늘려나간다는 이른바 '비급여 풍선효과'이다.

비급여 풍선효과는 지난 10여 년간 계속 문제제기가 되어 왔는데 시장 주도 의료 구조와 비급여를 급여와 섞어서 진료할 수 있도록 한 혼합진료허용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여기에 민간보험이 확대되면서 환자들의 비급여치료에 대한 도덕적 해이가 늘어났고, 병·의원도 실손보험가입자에 대해서는 무차별 비급여 처방을 남발했다. 즉, 비급여 풍선효과의 원인이 실손보험 존재 자체에 탑재되어 있다.

그간 실손보험사는 온갖 비급여를 모두 보장할 것처럼 상품을 판매하고 난 뒤 이것저것 이유를 대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아 논란이 된 적이 많다. 여기에 비급여가 늘어서 손해율이 증가한다고 아우성을 부리며 매년 실손보험료를 올려왔다. 비급여가 늘어나면 실손보험이 손해가 나는 건 자명하다. 이런 자명한 사실을 알지만, 실손보험시장을 확대해 민간보험사가 배를 채우려 했기 때문에 비급여를 통제할 장치마련에는 둔감했다.

즉, 실손보험과 비급여시장은 서로 강화해주는 관계다. 최근 문제가 된 700만 원 상당의 무릎퇴행관절염치료제 인보사도 실손보험이 있어 3700여 명까지 시술이 가능했다. 만약 실손보험이 없었다면, 효과가 불분명하고 하나에 700만 원이나 하는 주사제가 1년 동안 그만큼 판매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비급여 증가는 애초에 실손보험이 가진 내재적 모순이다.

병·의원이 문재인케어로 수익성이 악화되어 비급여를 더 시행한다는 주장도 황당하긴 매한가지다. 수익성만 추구하는 병·의원이 문제이지 국민의료비를 절감하는 대책이 문제가 될 수 없다. 앞서 밝혔듯이 의료전달체계 확립 및 1차 보건의료제도가 확립되면 해결될 문제다. 애꿎은 보장성강화 정책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병·의원의 심기를 건들지 말라는 것인가?

실손보험 사멸 위기... 보험회사의 공포

그렇다면 이런 황당한 논리로 문재인케어가 실손보험의 손해율을 높인다고 주장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실손보험사의 보험료 인상요구의 근거를 제시해 민간보험료를 올리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문재인케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퍼뜨려 공적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막아내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케어와 같은 보장성 강화정책이 확대되어 실손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사라지는 사회에 대한 보험사의 공포가 한몫 한 듯하다. 실손보험의 도입 취지가 애초 공적보험의 낮은 보장성이었던 만큼 공적보험이 대부분의 의료를 다 보장한다면 실손보험은 사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궤변의 기저에는 민간보험에서 건강영역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만약 실손보험의 손해율을 줄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문케어의 확대와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주장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주치의제 도입 등으로 효과도 불분명한 비급여가 사라지고 대형병원의 무분별한 과잉 검사도 제한된다면 실손보험은 존재 자체를 의심받을 것이다.

끝으로 이런 황당한 주장을 보도하는 언론은 사실 가짜논리로 무장한 가짜뉴스를 보도하는 셈이다. 무분별하게 민간보험사의 이해관계만 옹호하는 기사가 일간지까지 침투한다면, 그런 언론의 다른 주장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뜩이나 가짜뉴스로 국민들이 혼란에 빠져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한 가짜논리와 가짜뉴스만이라도 제발 사라졌으면 한다.

omn.kr/1ki65

https://soundcloud.com/sisatong/0223pm


한국의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거의 모든 세대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고 국민이 내는 민간보험 납부액은 OECD 회원국 중 2위를 기록한다. 결국, 대다수 국민이 민간보험에 열과 성을 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뜻인데, 한국은 어쩌다 ‘보험천국’이 된 것일까?

원인으로 국가의 사회안전망이 충분하지 못해 국민의 불안 심리가 민간보험에 집중된 것으로 본다. 그 점을 간파한 보험사는 경기가 불황일 때도 매년 흑자를 기록하며 자신의 덩치를 부풀렸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탕 물린 듯한 높은 보장성이 유지되는 보험은 자선단체가 아닌 보험사에서 실재할 수 없다. 갱신시 높은 보험료 인상률과 막무가내인 보험료 산출법, 암보험과 실손 의료보험, 만기환급형·저축성 보험 등 여러 종류의 보험을 살피며 국민을 ‘호갱’으로 만드는 민간보험의 실상을 들여다보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