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성 확대는 포퓰리즘 아닌 사회적 책무

지난 화요일 오전 진료 중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밝히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겠다며 사실상 보험 범위 축소를 언명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보장성을 유지하면 재정 파탄이 온다는 것이다.

사실 낭비 없고 효율적인 건강보험 재정 운영은 당연한 국가의 책무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료행위를 평가하고 재정 관리를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재정 누수 원인은 다양하다. 주요 선진국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안을 시행 중이다. 우선 과잉 진료 문제는 심사평가뿐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확립, 일차의료 강화, 주치의제와 같은 환자등록제 등으로 해결하거나 지불제도를 개편해 대응한다. 정의로운 재정 확보 방안은 소득이 높고 여력이 되는 계층이 보험료를 더 내도록 하고, 국고 지원을 늘려 해결하는 것이다. 환자들의 과잉 의료행위를 부추기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민영보험도 규제해야 한다.

낭비와 무임승차가 있다면 이런 정책들을 조속히 시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정책 대안 없이 대통령이 나서 다짜고짜 재정 파탄이 올 테니 보장성을 낮추겠다고 주장하는 건 처음 봤다. 역대 대통령들은 누구나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해 왔다. 무엇보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저 수준이다. 한국이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보장률을 지금보다 15% 이상 올려야 한다.

특히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첨단 의료기술과 고가의 신약들이 도입되는 상황에서는 보장성을 높이지 않는 한 건강보험 혜택 범위가 축소될 가능성이 더 크다.

보장성 확대로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상처럼 보장성은 쉽게 오르지 않는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선별적인 보장성 강화안을 추진했지만 되레 보장성이 떨어진 경험도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나서 건강보험 재정 파탄과 같은 공포를 조장하고, 정치적 이유 혹은 재정 문제로 공적보험의 가치를 포기하는 방향성을 제시한 건 책임 위반이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보장 범위를 줄이면 건강보험 재정이 건실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절약한 금액만큼 국민들은 의료비를 더 내야 한다. 의료비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어쩔 수 없이 집행되는 것이다. 과거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중병에 걸리면 집을 팔아야 했기 때문에 만든 게 건강보험이다.

얼마 전 무릎 관절염이 심해 관절 수술을 권유한 어르신이 다시 돌아왔다. 수술을 하지 못한 이유를 물어보니 수술비가 너무 부담이 된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수술비를 달라는 얘기를 차마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는 인공관절 치환 수술의 본인부담금도 부담이 되는 퇴행관절염 환자가 한국에는 아직 너무 많다.

특히 노인들은 소득보장제도가 미비해 꼭 해야 하는 수술 부담액도 크게 다가온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미국보다 낫다는 게 유일한 위안인 수준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보다도 못하다. 취약계층, 노인, 장애인의 의료비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도 건강보험의 보편적 보장 범위 확대다.

민영보험이 있고 일정 소득이 있는 국민이 아니라 바로 지금도 돈 때문에 받아야 하는 수술을 못 받는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알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보장성 강화가 포퓰리즘이라면 주요 선진국은 공적보험제도로 다 망했을 것이다. 보험 확대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다. 국민 건강 보장을 정치화해선 안 된다.
2022-12-16 25면

이태원 참사의 반성문

믿지 못할 참사가 발생했다. 다른 곳도 아닌 서울 도심에서 사람들이 깔려 수백명이 숨지고 다친 끔찍한 인재다. 현장은 영상을 통해 날것 그대로 공개됐다. 이를 보고 현장으로 달려간 봉사자들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자극적이고 근거 없는 각종 소식의 유통을 부추겼다.

모두가 경황없고 정신없는 틈에 파편화되고 부수적인 정보의 확산은 언론에서도 고스란히 재생산됐다. 대표적으로 ‘어디에서 넘어졌는가, 누가 밀었는가’라는 부차적인 문제의 확산부터 ‘밀어’라고 외친 사람의 고의성, 개인방송을 위해 참사를 조장했다는 풍문 등이 그랬다. 의학적으로는 어떤 병리기전으로 사망했는지를 비롯해 복부 팽창의 원인, 심폐소생술과 골든타임 등의 보도가 쏟아졌다. 압사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기사도 있었다. 나도 여러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주로 깔림은 어떤 기전으로 질식을 일으키는지, 심폐소생술 회생 이후 합병증, 여러 임상 증상에 대한 해석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답을 했다.

나 또한 이런 질문에 대응하고자 생리학적·병리학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논문을 찾아봤다. 실제로 몇 명 정도의 하중이 어느 정도 압력(뉴턴)으로 발생하면 흉곽의 팽창을 막는 질식이 되는지, 앞뒤뿐 아니라 측면 압력은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다룬 내용들이다. 이 밖에도 다발성 골절이 일으킬 수 있는 지방색전증, 다발성 장기 부전, 복막 출혈, 갈비뼈 골절로 일어날 기흉과 혈흉 등 수십 가지의 중요한 합병증과 중증 유발 질환을 찾아봤다. 이런 의사로서의 관심사 중 일부는 다시 여러 사람에게 전파돼 가십처럼 처리됐다.

이런 가운데 평소 존경하던 예방의학과 교수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온 희생자 및 환자들의 국제질병사인코드명은 병리적으로 이 참사를 탐구하던 내게 경종을 울렸다. 흔히 상병명으로 불리는 이 코드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진단서의 진단명에 해당한다. 이 분류법은 임상병리학적인 목적으로 세계보건기구 참여 국가들의 의학 연구에도 사용된다. 이번 참사 환자들의 진단명은 ‘W52.5 군중 또는 사람의 쇄도에 의한 으깨짐, 밀림 또는 밟힘, 상업 및 서비스 구역’으로 명료하다.

즉 참사로 인한 사망과 질병 발생의 본질은 사람들의 쇄도로 인한 외상이며, 이는 일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의학적 원인이다. 으깨짐, 밀림, 밟힘 등으로 인한 병리적 문제는 다음 순위인 것이다. 사전 예방의 원칙과 분절적 의료 상업화를 반대했던 내 주장과 모순되는 지적 탐구를 하고 이를 언론을 통해 확산시킨 스스로가 부끄러워진 순간이었다.

사실 한국은 보건의료 영역에서도 예방 부분이 매우 취약하다. 우선 일차의료체계가 없어 국민이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스스로 아픈 곳을 확인하고 의사를 골라 만나야 한다. 국가가 제공하는 예방 서비스는 사실상 건강검진이 전부다. 주치의나 환자등록제처럼 선진국에서 제공하는 예방적 처치가 없다 보니 만성질환 유병률도 높다.

그런데 이번 참사에서 드러난 ‘예방 무시’는 이보다 더했다. 대응 부재, 경고 무시 등이 날마다 폭로되며 참사의 본질로 드러나고 있다. 보건의료적으로도 응급체계, 심폐소생술 같은 부분적 문제가 아닌, 군중 집합에 대응하는 예방의학적 접근의 부재가 드러났다. 이태원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모이는 상황에 대응하고자 보건당국은 어떤 준비를 했을지 궁금하다. 압사가 아니더라도 생길 수 있는 수많은 공중보건 위기에 대해 예방 조치는 충분했을까. 벌어진 참사를 병리적으로 해부해 환원하기보다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책임과 의무, 대안과 예방을 이야기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은 잠시나마 공중보건 원칙에서 예방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료인의 기본을 망각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문이다.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2022-11-04 25면

건강보험 재정적자? 정부가 법 지키면 된다

건강보험료를 미납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고지서가 날아들 것이다. 현재 규정상 6개월 이상 미납하면 자동으로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회사가 내야 하는 건보료가 미납되면 해당 노동자들의 건강보험(건보) 자격은 문제 삼지 않지만, 결국 공단이 사업장 압류 등 법적 방법으로 이를 대부분 다 받아낸다. 회사가 파산한 경우도 재산정리를 해서 미납분을 회수한다.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위해 운영하는 공적건강보험제도에서 미납을 방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미납은 국민건강권을 훼손할 수 있는 해당 행위이고 탈법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거의 15년간 건강보험료를 미납하고도 이를 채우지 않는 곳이 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다.

건보를 최초 설계할 때부터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중 직장가입자의 회사납입분만큼을 정부가 부담하도록 돼 있었다. 1988년부터 건보가 통합되는 2000년까지도 정부가 이 부담분을 제대로 납입한 적은 없다고 한다. 통합 이후로는 연간 건강보험 예산의 14% 상당은 일반회계에서, 6% 상당은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하도록 법에 명시했다. 2007년 제정된 법률은 5년 한시법안이지만, 그나마 5년마다 갱신되며 유지됐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15년간 단 한 번도 이 법이 정한 대로 국고 지원을 한 적이 없다. 미납금 총액은 32조원에 육박한다.

이 정도 금액이 제대로 충당됐다면, 국민 개개인이 부담하는 건보료가 낮아졌거나 보장성을 높여 환자 부담이 많이 줄었을 테다. 특히 지난 15년간 국민들의 보험료는 비율적으로도 많이 올랐다. 우리 국민들이 낸 건보료 부과비율은 2007년에는 회사분 포함해서 소득의 4.8%였다. 현재는 7.1%다.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이 거의 2배가량 올라갔다. 반면 정부는 지원 비중을 늘리기는커녕 미납만 했다.

고령층이 많아지고 노동인구가 감소하면 소득에 보험료만 부과하는 구조로는 건강보험재정구조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조세에서 부담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건 국제적 상례다. 가까운 일본은 전체 건보재정의 40%가량을, 대만도 26%가량을 국가가 부담한다. 그만큼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줄이고 보장성을 높여 가계의료비를 줄이는 데 일조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방향에 완전히 역행해 왔다. 그 결과 전체 건보 재정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1% 남짓이다. 혹자는 조세나 건보료나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오는데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조세와 보험료는 그 구성이 다르다. 조세는 소득, 재산, 기업이익, 소비 등 전 부문에서 확보되고 기본적으로 누진적이다. 부담 능력에 따라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한다. 조세정의 차원에서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보험료는 정률로 상한과 하한이 있어 역진성까지 나타난다. 보험료에 의존하는 방식은 결국 지속 가능성도 떨어진다.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은 조세로만 건강보장을 운영하는 나라도 매우 많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가 수행한 MRI, CT 등의 검사 급여를 되돌려 건보 재정 누수를 막겠다고 했다. 보장성을 축소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비난에 열을 올리며 건보 재정이 머지않아 파탄이라도 날 것처럼 불안감만 자극했다.

기획재정부는 재정 파탄에 대비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올리지 않고 개개인이 의료비를 더 부담토록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상습적으로 마땅히 내야 할 돈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숨기고 있다. 설령 건보 재정이 파탄나더라도 국민건강권을 위해서는 국가 예산을 최우선으로 배정하는 게 국가의 의무라는 인식조차 없다.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재부 출신으로 지명된 현실이 씁쓸하다. 정부는 건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법을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길 바란다.
2022-09-23 25면

자율이 아니라 생명

정권이 바뀌면서 코로나 대유행 대응기조가 ‘과학방역’으로 선전됐다. 어떤 ‘과학’을 말하는 것인지 궁금하던 찰나 또 다른 방역기조가 나왔는데 바로 ‘자율방역’이다. 과학과 자율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모르겠으나 자율방역은 그 이름에 걸맞게 정부와 사회의 역할을 줄이는 방향성이 분명했다. 우선 코로나 검사 비용이 부활하거나 늘었다. 코로나 확진자 치료 비용도 늘고 무상 치료 날짜도 줄었다. ‘자율’은 개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공적 지원은 축소한다는 논리다.

문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난맥상이다. 우선 숨은 확진자가 늘고 있다. 과거 밀접접촉자 및 무증상자에게 무상으로 제공된 선별검사를 유료화하면서 증상이 없는 접촉자들은 검사를 꺼리고 있다. 확진자 생활지원금이 거의 없어져 자가키트에서 양성이 나와도 일을 하는 확진자도 늘었다. 자영업자, 플랫폼노동자 등 유급병가를 쓸 수 없는 사람들은 지원금도 없으니 확진을 숨기고 일하기를 선호한다. 아프면 쉴 수 있는 상병수당제도는 아직도 몇몇 지역에서만 소규모 시범사업뿐이고, 유급휴가는 정규직 일부만 기능한다.

이렇다 보니 유행 규모가 실제 어느 정도인지도 명확지 않다. 숨은 확진자는 계속 연쇄감염을 일으키고, 집단면역수준에 도달하는 순간까지 줄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행규모를 통제한다는 측면에서 ‘자율’방역은 방역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증상이 없거나 경증인 확진자들에게 검사비나 생활지원금을 주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라면 소탐대실이다. 코로나가 감기 수준의 질환이 아닌 이상 국민의 의료비 등 부담은 크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정부의 재정긴축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가계로 부담을 전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치료 부분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확진자 진료를 하는 임상현장이 양극화된다. 치료비도 제대로 지원되지 않고, 지원금도 없는데 굳이 경증으로 병원을 찾을 리 없다. 생활치료센터도 거의 없어져 고위험군을 모니터링하는 체계도 붕괴했다. 이 때문에 전달체계가 작동하지 않아 위중증환자 병실은 여유가 생기는 착시효과가 발생한다.

하지만 경증에서 시작해서 증상이 악화하는 환자들이 날로 늘고 있다. 이들은 제때 치료를 시작하지 못해서 갑자기 악화된다. 대부분 노인, 기저질환자들이다. 애초에 확진이 되자마자 치료제를 투약했다면 악화되지 않을 환자들이 포함된 셈이다. 통계상 드러나는 환자보다 숨은 중증환자가 늘어나는데, 중등도환자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환자가 더 늘어도 아마 중환자병상은 이전처럼 포화상태는 아닐 것이다. 자율방역 속에서는 요양원, 요양병원에서 확진돼 격리되다가 악화된 환자들은 치료비용이 무서워서라도 기꺼이 죽음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노동 능력이 없고 힘을 잃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해 입소한 시설과 병원에서도 비용 때문에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다.

이쯤 되면 이 방역정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방임이라고 불러야 한다. 방임의 여파는 당장 드러나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4월 코로나 유행으로 65세 이상 초과사망율이 전년 대비 31.4% 늘었다. 아마 이번 유행이 끝나면 65세 이상 초과사망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이야기했다. 방역체계에서 이 자유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바로 국가와 사회의 책임방기다. 방임이 자율로 포장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제대로 된 방역체계, 치료체계를 갖췄다면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치명률이 낮고, 위중증병상이 충분하다는 데이터가 아니라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살리는 길은 자율과 방임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
2022-08-12 25면

보건의료 후진국 미국을 추앙하는 나라

 

정부가 7월부터 ‘건강관리서비스 인증제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건강관리서비스라고 하니 언뜻 들어서는 건강을 관리하는 좋은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게 과연 순수하기만 한 것일까. 건강관리를 기업이 사업으로 확장한다는 개념인데, 건강관리의 범주가 사실 무한대에 가까워 개인 헬스케어 전체를 사업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건강관리를 기업서비스로 제공하는 나라는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에서 건강관리서비스가 성행하는 이유는 딱 하나, 의료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미국은 의사진찰료가 기본 400달러가 넘는다. 검사하고 치료받으면 1만 달러, 우리 돈으로 1000만원 정도는 손쉽게 넘긴다. 생존을 위해서는 의사를 만날 일을 줄여야만 한다. 비용절감에 혈안이 된 민간보험회사 역시 보험료 지급액을 줄이기 위해 건강관리를 잘하면 보험료를 깎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과 달리 공공의료 체계를 갖춘 나라들에서는 건강관리는 당연히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건강관리는 사업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모든 건강관리 서비스는 건강보험이 책임진다. 유럽도 주치의가 건강관리를 담당한다.

건강증진으로 돈벌이를 하려고 덤비는 대한민국조차 건강관리서비스는 입법 사안이었다. 예방과 건강증진을 목적에 명시한 국민건강보험법과 상충될 뿐만 아니라 의료법이 규정하는 의료행위 제한 조건과도 부딪친다. 때문에 2009년과 2010년 이미 두 차례 입법 논의 결과 의료민영화 사안으로 분류돼 폐기된 바 있다. 보건 당국이 이를 다시 되살려 인증제를 실시하겠다고 하는 건 입법부 결정을 무시하고 행정독재를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물론 절차 자체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애초에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제도에서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공백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만성질환을 관리할 일차의료체계를 갖추거나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는 건 관심도 없고 지역사회 건강증진이나 사회체육과 체육시설 확충은 나몰라라 했다. 결국 국민들은 그 빈자리를 노리는 보험사와 정보기술 기업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그동안 보건 당국은 일차의료체계를 도입하지 못하는 걸 민간 병의원 의사들 반대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사실 개인사업자인 의원급 의사들이 주치의 제도에 호의적일 리 없다. 한국에서 상당수 의원은 돈벌이 의료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환자등록제도인 주치의 제도가 도입되면 과잉진료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찾으라고 정부가 존재한다. 명백한 문제를 방치하는 건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사회체육시설이나 건강증진사업도 비슷하다. 정부는 사회체육시설 확충에 민간헬스업체가 반대한다고 둘러댄다. 지역사회 건강증진사업은 민간주간보호센터와 민간요양시설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시작도 못 한다. 여기에다 예산도 문제다. 예방과 건강증진 사업에 배정되는 예산은 거의 없다. 어린이들이 운동을 하기 위해 체육학원에 등록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 미국조차 생활체육은 공공 영역이 담당한다.

동네의원과 민간헬스장, 민간요양시설 때문에 하지 못한다던 건강관리를 이제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민간기업을 인증해 주겠다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사업가들 눈치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면서도 꾸준히 건강 영역을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민간에 개방하는 시도는 이율배반 아닌가. 이럴 거라면 차라리 복지부를 해체하고 민간사업자들의 로비스트 단체로 재등록하는 게 어떠냐고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대통령이 말한 ‘공정’과 ‘상식’이 미국식 의료모델 도입이라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2022-07-01 25면

쉬는 게 중요하다

 
내가 진료하는 대다수 환자들의 경우 가장 중요한 치료는 ‘휴식’이다. 오랜 기간 반복된 동작, 부하, 잘못된 자세에서 비롯된 질환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도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대체로 휴식을 통해 치료가 됐다. 사실 의학의 역사를 봐도 병원이 생긴 결정적 이유는 휴식의 중요성 때문에 입원을 시키면서 시작됐다. 이 때문에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도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자마자 ‘아프면 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현실은 어떤가. 한국에선 아플 때 쉬는 게 가장 어렵다. 우선 아플 때 쉬면 소득이 보장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유급병가는 대기업, 공무원, 교사 같은 직종에서만 보장된다. 근로기준법에 유급병가가 명시되지 않은 탓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시행하는 질병소득보장제도인 상병수당도 없다. 상병수당이 없는 주요 국가는 미국, 이스라엘, 한국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 비정규 노동자는 아파도 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다 노동시간이 길고, 대체인력은 적어 아파도 웬만하면 일을 하는 문화가 있다. 직장에선 아파서 쉬겠다는 이야기를 하기엔 눈치가 보인다. 제도적 장치가 없으니, 아플 때 쉬는 부담은 대부분 개인 책임이다. 직장에서는 본인의 연차를 써야 하고, 자영업자는 다른 사람을 고용하거나 문을 닫아야 한다.
 
정책이 없어서 쉴 수가 없으니 진료현장도 온통 빠른 치료에 집중한다. 해외에서는 2주 정도 쉬면서 관찰하는 통증질환도 당장 수술이나 주사치료를 하기 일쑤다. 약물사용의 강도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약을 먹어가면서 당장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쉬지 못하니 수술을 하고 나서도 별도의 전문적인 재활치료로 빠른 복귀를 종용받는다. 물을 많이 마시면 되는 상황인데도 수액치료를 하는 직장인들이 넘친다.

빠른 치료는 결국 과잉진료와 검사 남발로 이어진다. 의료기관도 교과서에 실린 정식 진료보다는 빨리 낫게 하는 방식에 집중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여기에 1차 의료체계도 없고, 쉽게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의료체계까지 덧붙여지다 보니 한국 의료체계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원스톱’ 진료 홍보까지 나오는 상태다. 가만히 휴식하면서 관찰해야 하는 상당수 질환을 이런 속도전의 대상으로 만든 건 사회적 손실이다. 애초에 유급병가, 상병수당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면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을 우리 사회는 지불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정치권도 잘 알고 있기에,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에도 상병수당을 즉시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국정과제에서는 후순위로 미뤄지면서 현재는 하루 4만원 수준의 수당을 받는 1만명 대상 시범사업이 예정돼 있다. 하루 최저임금도 안 되는 수당으로 아프면 쉬라는 시범사업은 황당하기만 하다. 거기다 코로나19 2년을 거치면서 이제서야 1만명 수준의 시범사업 시행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주요 선진국처럼 이전소득의 80%까진 안 되더라도 하루 최저임금 수준의 병가수당은 공약대로 즉시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조속히 국제노동기구(ILO) 권고수준인 이전소득의 최소 60% 이상을 26주까지는 보장하는 상병수당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추가로 근로기준법에 최소 유급병가를 명시해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질병으로 인한 무급휴가권과 휴직권이 사회적 상식이 되고, 아픈데 계속 일해야 하는 인권유린 상황에 놓이지 않을 수 있다.

흔히 의료기관에서 발급받는 진단서 말미에 쓰여 있는 ‘안정가료’의 의미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한다’는 뜻이다. 진단서에 쓰인 대로 할 수 없는 나라가 ‘이제 선진국’이라고 주장하는 건 창피한 일이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520025010

코로나19 초기도 아니고 2년이 다 되어가는데 병상이 부족하다니, 모두 황당한 심정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그간 충분한 의료대응 역량을 확보하지 않았다. 이른바 케이(K)-방역 성공에 기대어 땜질식 의료대응을 해왔을 뿐이다. 병상 동원을 위한 컨트롤타워가 없어, 확진자 수가 증가해 병상이 간당간당하면 그때마다 공공병원을 더 동원했다. 그조차 한계에 부딪히면 민간병원을 대상으로 행정명령을 발동해 1%, 1.5%, 3% 이런 식의 ‘찔끔 (치료병상) 동원’만 거듭해왔다. 그 결과 빠른 속도로 확진자가 늘자 이제 병상이 부족하고 사망률이 치솟게 된 것이다.

이제라도 파국을 막으려면, 사람들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총체적인 의료체계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병상과 인력 등 의료 자원이 많은 곳은 코로나19 치료에 집중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형병원들이 중환자 병상만 제한적으로 내놓는 게 아니라 일반 치료병상의 15~20% 정도를 코로나 환자에게 배정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동원이 이뤄져야 한다. 그 대신 미룰 수 있는 관절수술이나 각종 검사 등 대형병원의 비응급, 비중증 치료는 지역사회 의료기관으로 넘겨주고 상당수 외래환자도 1차 의료기관에서 관리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돈벌이 목적의 의료는 당분간 멈추고, 후순위로 미룰 수 있는 의료서비스는 최소 자원 투입으로 이뤄지도록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정부가 하는 것처럼 대형병원 눈치보기식 1~3% 수준의 병상 동원 명령으로는 코로나 중환자 치료도 불가능할뿐더러, 정부가 호언한 ‘일일 확진자 만명 수준에서 관리’가 가능할 수 없다. 지역 전담병원도 중등도 환자 치료만 대체로 가능하므로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코로나는 잠시 지나가는 메르스가 아니라, 변이를 거듭하는 팬데믹으로 어떤 양상을 보일지 알 수 없고 언제 종료될지도 미지수다.

분절적인 의료대응으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 위중증 치료가 끝나면 코로나19 환자를 공공의료원으로 옮기는 방식도 중단해야 한다. 대학병원급 의사들이 더 많이 코로나 중환자 진료에 참여하고, 비응급질환 전문의들이 가능한 범위까지 진료를 넓혀 이를 메꿔야 한다. 코로나 환자 진료와 여타 진료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을 상정해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미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은 모든 의료진이 코로나 환자만 치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공공의료원들은 애초에 중환자 진료를 할 충분한 장비도 인력도 자원도 없었는데 말이다.

아울러 정부는 이러한 긴급 의료대응 체계를 집행하기에 앞서 비응급 수술이나 검사 등의 연기를 감내해야 하는 국민들에게 현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정치’에 나서야 한다. 실제 대형병원들에 대한 치료병상 동원 행정명령이 내려진 지 한달이 지났지만 동원된 병상은 목표치의 50%도 되지 않는다. 정부는 명령서에 서명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의료 현장을 방문하고 병상 동원을 위한 의료인력 직접 고용과 재정 지원 약속을 해야 한다. 병원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병상 인력기준을 코로나 진료부터 즉각 적용하고, 충분한 인력을 교육·양성해 현장에 파견해야 한다.

지금은 병원을 지켜야 할 상황이 아니고 병원이 사회를 지키기 위해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시민들이 병상을 기다리다 죽고 있고, 제때 인공호흡기를 달지 못해 죽고 있다. 이게 전쟁 상황과 무엇이 다른가. 스페인은 팬데믹 초기부터 민간 병상을 한시적으로 국유화해 운용했다. 그간 정부가 공공병원을 확충하지 못했으면, 민간병원이라도 사력으로 동원해야 하지 않는가? ‘사람이 먼저’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호는 사람부터 살리고서야 가능한 말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23106.html

이제 방역이 완화되는 시점이지만, 우리 국민들은 지난 2년간 '한국 의료의 민낯'을 체감했다.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은 확진자에도 병상이 부족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환자 진료 의료인과 방역 인력은 돌려막기로 충원됐다. 수적으로 매우 적었던 공공병원이 전담병원으로 전환돼 거의 총동원됐다. 그 결과 그간 진료받던 환자들, 특히 취약 계층들은 갈 곳이 없어졌다. 이들 상태에 대해선 아직 제대로 된 평가조차 없다.

대형병원 중환자 병상을 1%, 2% 이런 식으로 조금씩 코로나 환자 대응에 내놓으라고 명령했지만 대형병원들은 코로나 일반 병상을 거의 내놓지 않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호전된 환자는 다른 전담병원으로 이송돼야 했다. 거꾸로 전담병원은 중환자를 진료할 능력이 없어 대형병원으로 이송하면서 장거리 환자 이송이 다수 발생했다. 이는 전담병원 역할을 한 대다수 공공병원의 중환자 진료 역량이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작년부터는 이런 공공병원마저 부족해지자 민간 중소병원도 일부 전담병원에 지원했다. 이들 중소병원도 주요 공공병원과 마찬가지로 사실 중등도 코로나 환자만 주력으로 진료했다. 중환자 진료 역량이 있는 병원은 전담병원에 지원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전담병원의 기존 의료진들은 상당수가 이직하고 새로 충원됐다. 코로나 환자 진료를 하지 않는 진료과나 의료 인력이 필요 없어졌고 코로나 진료와 관련된 부분만 특화하면서 대부분을 감염병상처럼 이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야전 병상 체계와 유사하게 운영됐다.

문제는 이제 코로나 환자가 줄어들고, 코로나19를 독감처럼 외래치료로 관리하는 시점이 도래한다. 야전 병상은 전쟁이 끝나면 철거된다. 즉 전담병원의 기능과 재건에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도 공공병원 중 상당수는 기존 지역사회 진료체계를 복원하는 데 수년이 걸릴 듯하다. 전담병원을 신청한 민간 병원도 다시금 경영상 위기를 겪을 것이다. 코로나 진료를 위해 충원했던 의료진이 일반 종합진료로 이행하려면 인력 구조조정은 기본이 된다.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는 애초부터 예상 가능했다. 병원을 몇 개씩 비워가며 전담병원을 만드는 과정은 가장 손쉬운 결정이지만 외국에서 이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극단적인 단일 진료체계를 상정해서는 지속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환자의 치료 성과에서도 여러 합병증과 다른 질병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에 종합병원 기능이 있어야 유리했는데 한국은 진료의 질은 일찍이 포기했다. 무엇보다 적은 수의 확진자를 두고도 전담병원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민간 병원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한국 공공병원은 OECD 평균인 71.6%에 비춰 말도 안 되는 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민간 병원들이 수익성도 없고 병원 전체 비용만 상승시킬 코로나 환자 진료에 미온적인 건 당연한 결과다. 민간 병원을 코로나 진료에 참여시키는 데에는 막대한 추가 예산이 필요하고 행정적 절차와 설득이 요구된다. 국가가 소유한 공공병원을 명령으로 비워서 전담병원화하는 것과는 비용과 절차 측면에서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손쉬운 결정은 이제 앞으로 들이닥칠 청구서까지 계산하면 많은 과제를 남긴다. 가뜩이나 부족한 공공병원을 신종 감염병이나 재난 상황을 고려해 방치할 수도 없는데, 향후 정상화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은 막대할 것이다. 기존 의료인력을 충원하는 것에만 최소 4년 이상 걸린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공공병원 시설을 확충해 중환자 진료가 가능하도록 하고, 병원을 새로 짓는 문제도 큰 과제다. 

그런데 새 정부가 발표하는 정책 방향에는 제대로 된 공공의료 대응 계획이 전무하다. 도리어 윤석열 당선인은 공약에서 민간 의료기관에 정책수가라는 이름의 자본비용을 지불해 의료체계를 강화하겠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된 이유는 다름 아닌 자본 조달 능력이 의료 공급의 '부익부 빈익빈'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공공의료를 선호하는 이유는 이런 비효율적인 쏠림을 막고 의료자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데는 민간 병원에 자본비용을 투입하는 것보다 공공 인프라 확대가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코로나19 시기에도 자신의 병원을 보호하는 데 앞장선 대형병원에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할 게 아니라 고사 직전인 공공의료에 더 큰 투자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팬데믹에는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20417131218000

바이오헬스산업에 대한 기대는 이미 10년 이상 지속되어 왔다. 아마도 주요 선진국들이 보유한 제약산업과 의료기기산업의 높은 부가가치를 실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백신을 우선 개발·공급한 다국적 제약회사와 개발사는 천문학적인 돈을 거머쥐었다.

여기에 팬데믹의 특성인 총력전 측면에서 앞으로 닥칠 또 다른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바이오산업 생태계는 국가의 준기간산업이 되어야 할 당위성까지 생겼다. 그런데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실질적이고 실력을 갖춘 바이오산업 체계 논의는 뒷전이고, 당장 규제 완화를 통해 빠른 시장 진입만 노리는 한심한 주장만 반복되고 있다.

우선 정부부터 이에 부화뇌동했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는 '포스트 코로나 의료기기 산업 육성'을 명분 삼아 체외진단기기에 대해서는 '안정성이 수용 가능한 경우 한 차례에 한해 시장 진입 허용'이라는 황당한 제안을 내놓았다.

체외진단기기는 대체로 안전하지만 정확도와 비용효과성 때문에 시장 진입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말이다. 정확도가 부족한 제품이 1년간 진입한다고 경쟁력이 생길 리도 만무하다. 아마 그 기간 동안 사기 제품을 팔아먹거나, 임상시험조의 데이터를 무상으로 확보하거나, 극단적인 경우는 주가 조작 대상이 되다가 상장폐지될 공산이 더 크다.

이런 시류에 야당 대선 후보도 비슷한 인식을 보여줬는데, 그는 '원격의료를 허용'하고 '네거티브 규제'를 하겠다고 주장한다. 우선 원격의료는 이미 사용 중이다. 마치 원격의료가 규제 때문에 안 된다는 주장은 의료법상의 규정으로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장비·네트워크 업체들의 입장일 뿐이다. 설사 의료법상 할 수 없더라도 임상시험 등으로 비용효과성이나 정확성을 입증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단 한 번도 비용효과성이나 효용성을 입증한 바 없다.

애초부터 원격의료는 기술 발전 단계의 문제지 법률적 문제가 아니었는데도, 이를 계속 정치적 문제로 다룬 세력들은 규제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무가치 기업들이었다. 이미 원격 모니터링기기 및 원격 진료장비는 초음파진단기, 방사선장비 사용처럼 효과가 있는 경우 진료에도 도입되어 있다. 따라서 의료법 개정부터 하자는 주장은 효과와 안정성이 불분명한 의료기술의 막무가내 도입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즉 보건의료체계 내 안정성과 효용성을 평가하는 제도들은 단순 산업 규제가 아니다. 의료법, 약사법 등이 규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이다. 한국의 규제가 미국이나 유럽, 일본보다 강하지도 않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도 한국 임상시험보다 미국 임상시험을 더 신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은 의료기술과 약품 등을 국내에 규제 완화해 도입한다고 해외에서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국가산업에 이바지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의료기기, 약품에 대한 네거티브 규제 주장은 내국인을 수익 수단으로 볼 뿐 아니라 임상시험 대상으로 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는 주식시장 상장 및 투자 유치 등의 과정에서 먹튀만 조장하는 것일 수 있다. 주요 선진국의 의료산업의 고부가가치는 그 나라가 가진 강력한 규제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기본적인 가치조차 무시하며 보건의료 규제 완화, 네거티브 규제 등을 투기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일에 국가기관, 대선 후보들이 부화뇌동해선 곤란하다. 한국 바이오헬스산업의 미래는 올바른 가치관에 달려 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11208111517484

윤석열 정부가 의료민영화를 추진한다는 건 괴담이라고 원희룡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이 밝혔다. 윤석열 당선인은 의료민영화를 언급한 적도 없고 ‘필수의료 국가책임’, ‘공공정책수가’ 같은 정책을 주장해서 억울하다고 한다.

‘괴담’이라고 주장했던 원희룡 본인은 제주도지사로 일하던 2018년 국내 첫 영리병원을 허용한 원죄가 있다. 당시 내국인 진료를 금지한 조건부 허가는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전으로 이어져 위법 판결이 나왔다. 며칠 전인 4월 5일에도 허가취소에 대해서 위법 판정이 나왔다. 원희룡의 영리병원 허가는 4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법적 소송으로 한번 허가가 난 영리병원이 내국인 진료까지 하는 것을 막는 방법이 없어지는 판례가 남게 됐다.

당시 원희룡은 제주도 공론조사위원회 권고까지 어기면서 중앙정치 진출을 위해 영리병원을 허가했다. 최소한 의료민영화 괴담 운운하려면 당시 영리병원을 허가했던 일을 사과하고 반성부터 할 일이다. 하지만 그는 여지껏 이 문제를 사과한 적이 없다.

여기에다 올 2월 제주MBC의 영리병원 허가 관련 대선후보 질의에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는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원장, 기회위원장 조합에 국민들이 의료민영화를 의심하는 건 지극히 타당한 일이다. 이를 괴담이라고 하려면 인수위에서 영리병원을 반대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필수의료 국가책임’, ‘공공정책수가’ 역시 이름처럼 국가책임에 걸맞거나 공공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공약은 민간의료기관이 수행하는 분만, 감염, 응급 질환 등 필수의료에 대한 시설 및 자본비용을 ‘수가’로 제공한다는 게 핵심이다. 민간의료기관이라도 공익적인 역할을 한다면 건강보험이 돈을 투입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면 이는 최소한 그 병원의 지배구조가 공공적이어야 한다. 하다못해 이사회 구성이라도 공익적이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민간소유 병원에 진료비용이 아닌 자본비용을 지불한다면 그냥 공공병원을 더 만드는 게 낫다. 굳이 공공병원을 만들면 되는 비용을 민간의료기관에 ‘정책수가’로 제공할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필수의료를 국가가 책임진다면 당연히 공공의료에서 해야 할 것들을 민간의료기관에 자본비용으로 투입한다는 발상은 명백하게 ‘의료민영화’나 다름없다.

윤 당선인은 대선 유세에서도 공공병원 확충이 필요 없으며 민간의료기관만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환자의 80%가량을 진료한 것이 공공병원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하는 왜곡된 시각이었고, 의료공급은 민간이 해야 한다는 시장주의 발상이었다.

한국은 공공병상 비중이 10%도 안 된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열악하다. 때문에 공공병원을 늘리지 않겠다는 공약도 사실 민간의료기관 활성화 공약으로 ‘민영화’라 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건강보험제도 신뢰를 떨어뜨리는 ‘건강보험료 폭탄’, ‘중국인이 건강보험 30억 혜택’ 같은 근거 없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민들이 ‘의료민영화’를 걱정하는 걸 근거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의료민영화가 괴담이라고 생각한다면, 영리병원을 금지하겠다고 밝히고 공공병원을 늘리면서 건강보험을 강화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면 된다. 본인들이 주장해서 촉발된 논란을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국민들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곤란하다. 의료민영화란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의료민영화가 아닌 건 아니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408025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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