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필수의료 살리기” 실체는 건강보험 민영화 [왜냐면]

‘의료개혁’으로 포장된 의료 민영화 ①

전진한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정부가 ‘의료대란’ 수습에 다음달 초까지 건강보험 재정 2조3448억원을 지출할 전망이다. 환자 불편과 고통을 해소하거나 의료비 부담 절감에 쓰는 게 아니다. 대부분 민간 대형병원들의 매출 손실을 메워주기 위해서다. 재난 상황에도 정부 관심사는 오로지 병원 자본의 이윤이다. 이를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멋대로 쓰는 것이 이 정부 들어 예삿일이 됐다.

이른바 ‘필수의료’ 개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으로 병원 보상을 늘린다는 ‘수가 인상’을 남발한다. 무려 연 5조원 넘게 쓴다고 한다. 대체 그 돈은 어디서 난단 말인가? 정부는 이미 2월에 답을 내놓았다. ‘의료개혁’ 핵심인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다. 정부는 건강보험 패러다임을 ‘의료비 부담 완화’에서 ‘필수의료 살리기’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우선 기존 패러다임을 “급격한 보장성 확대”로 환자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해 “불필요한 의료쇼핑 증가”를 일으킨 구태로 규정했다. 보장성 강화 정책이 “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치고 “필수의료에 대한 미흡한 투자로 중증·응급의료 등 공백(을) 초래”했단다. 엉터리 분석이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오이시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입원보장률은 오이시디 평균은 90%지만, 한국은 68%에 그친다. 그래서 의료비 본인 부담이 주요 국가들과 견줘 과중하다. 무엇보다 보장범위가 좁아 비급여가 범람해 과잉진료가 만연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애꿎게 환자들을 비난하며 건강보험 보장을 축소하고 본인 부담을 인상할 계획이다.

한술 더 떠 건강보험에 미국 민영보험 같은 최소부담금 제도도 검토 중이다. 일정액 이하는 환자 본인에게 100% 부담을 지우는 제도다. 또 보험료 일부를 자신이 노후에 쓸 의료비로 스스로 적립해두는 ‘저축계좌’도 고려한다고 한다. 의료를 많이 이용하면 페널티를 주고, 적게 이용하면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한다. 사회보험을 해체하고, 각자도생 시대를 예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 패러다임으로 ‘필수의료 살리기’를 앞세운다. 대체 ‘필수의료’란 무엇인가? 정부는 중증, 응급, 소아, 분만 등을 꼽는다. 그런데 심근경색·뇌졸중 치료가 필수면,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만성질환 관리는 왜 필수가 아닌가? 소아 진료는 필수고, 중장년·노인 진료는 필수가 아닌가? 피부과, 성형외과가 필수가 아니라면 화상 환자 피부 치료와 유방절제술을 받은 환자의 재건 성형도 비필수인가?

결국 의료행위를 ‘필수’와 ‘비필수’로 구분하는 건 사회적 합의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뜻하는 대로 필수의료를 협소하게 쓴다면 예방, 재활은 물론 대부분의 필수적 의료서비스가 제외된다. 의료는 사회보편적 필수서비스고 국가는 그것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 국제기구에서는 ‘보편적 건강보장’ 맥락으로 이 말을 쓴다. 공중보건과 의료보장에 누구나 접근할 권리를 추구한다는 개념에 가깝다. 의료정책연구소의 2022년 10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필수의료’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연상한 단어는 ‘건강보험’(18.8%)이었다. ‘응급 및 중증’(6.5%)을 떠올린 사람은 많지 않았다. 즉 국민도 보편적 건강보장 영역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의 보건의료정책 키워드가 그간 ‘건강보험 보장성’이었다면, 윤석열 정부는 이를 ‘필수의료’로 대체하는 프레임 전환을 시작했다. 그 목적은 의료가 다 ‘필수’는 아니니 국가 책임을 묻지 말라는 이데올로기 전쟁이다. 이런 식이니 중증이 아닌 경증환자 응급진료를 보장하는 것은 ‘필수’도 ‘의무’도 아니다.

공적 영역에서 쫓겨난 의료 분야는 자연히 기업들의 시장이 된다. 만성질환 관리와 치료는 윤석열 정부 들어 ‘비필수’로 격하됐고 행정적으로 ‘비의료’가 됐다. 민영보험사, 테크기업 등이 이 틈에 ‘건강관리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른바 경증 의료행위는 기업이 할 수 있는 사업영역이 된다. 사실상 영리병원 허용이고 건강보험 민영화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말하는 ‘필수의료’마저 살릴 수 없다. 응급, 중증, 소아, 분만이 외면받는 이유는 의료 시장화와 건강보험의 취약성 때문이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는 부르는 게 값이고, 그 돈벌이 기회를 좇아 의사들은 큰 병원을 떠난다. 그래서 해법은 건강보험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다수 서민에게 건강보험이 ‘필수’다. 윤석열 정부는 그 필수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기업과 부자들을 위해 우리에게 필수인 건강보험을 민영화하는 것, 그게 바로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의 실체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163657.html

한국에서 공적의료보험이 시작된 지 45년이 됐다. 전국민건강보험이 시작된 지도 35년이고,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으로 나아간 지도 24년차다. 단연코 건강보험은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사회복지제도다. 때문에 2008년 이명박 정부 인수위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및 축소 방침 보도는 '의료민영화 반대' 물결이 됐고, 당시 광우병 촛불시위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영리자회사 도입 등 연성 의료민영화를 시작했을 때도 정부는 '건강보험을 지키겠다'는 홍보물을 만들어 의료민영화는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건강보험 사랑'이 있어 시장만능주의 정치인이라도 건강보험을 감히 건들겠다는 정책을 자신 있게 펴지 못한다. 약한 수준의 의료민영화 발언도 정치인에겐 치명적이다. 건강보험을 강화하겠다는 주장은 많지만 건강보험을 축소하거나 건강보험영역을 민영화하겠다고는 쉽게 말하지 못 한다. 하지만 한국의 건강보험이 마냥 안전한 것은 아니다. 드러내놓고 건강보험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잠식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을 훼손하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의 발전과 성장을 바라지 않는 적들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건강보험 잠식하는 민영보험

우선 건강보험의 축소를 원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은 민영보험사(금융자본)들이다. 민간 금융자본은 미국식 의료제도인 민영의료보험 중심의 의료보장제도를 바란다. 물론 당장 이런 제도로의 전환은 의료민영화 자체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민영보험사는 조금씩 건강보험을 잠식하는 방식을 택했다.

첫째로 보충형 보험인 실손의료보험을 확대해 왔다. 현재 한국의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는 4000만 명을 넘었다. 재정 규모도 정액보험을 제외하고도 연간 25조 원에 육박한다. 건강보험의 1/4 수준으로 성장하는 데 고작 10여 년 정도가 걸린 셈이다. 건강보험을 방치한다면 현재의 성장 속도로 건강보험 총재정의 1/2까지 나아갈 수도 있다.

둘째는 민영보험 시장 확대를 위해 건강보험의 보장영역을 축소하려 한다. 윤석열정부가 지난해 인증한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를 보면 고혈압, 당뇨 등의 만성질환관리는 민영보험사와 연계된 사기업이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다 국민건강보험법상 건강보험이 해야 하는 건강증진, 예방 등의 사업도 사기업이 하도록 전환하려고 하는데, 애초에 '건강관리서비스'업 자체가 미국에서 보험사들이 운영하는 사업이란 점을 본다면 그 본질은 더 명확하다.

셋째는 의료기관과 민영보험의 직불제 추진이다. 미국처럼 의료기관과 민영보험사가 직접 의료비를 전달받는 체계는 민영보험확대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1단계인 '실손보험 청구간소화'라는 진료기록의 보험사전송의무 법안은 얼마 전 국회를 통과했다. 보험회사와 금융 관료들은 이를 국민 편의를 위한 것으로 포장했지만, 그 본질은 보험회사와 의료기관의 직접 연계를 통해 직불제로 나아가려는 시도다.

이처럼 민영보험은 지난 30여 년간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를 제한하고, 건강보험의 관리 영역을 침범하고, 의료기관과 직접 진료 정보를 교류하려 했다. 끝으로 미국식으로 의료기관에 직접 의료비를 제공해 직계약을 맺고자 야금야금 건강보험을 잠식하고 있다. 문제는 애초에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높다면 이런 시도는 어려웠을 것인데, 한국의 보장율은 OECD 꼴등 수준으로 답보상태다. 보장률이 낮아 국민도 울며 겨자먹기로 실손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윤 대통령, 건강보험 재정 공포 조장
건강보험을 공격하는 민영보험사와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정부도 한몫한다. 윤석열정부는 OECD 꼴등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기는커녕, 이전 정권 공격을 위해 보장범위를 줄이려는 최초의 정부다1). 여기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건강보험 재정파탄 공포를 퍼뜨리고 있다2). 실제 한국의 건강보험 총재정은 국민총의료비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현재 총의료비가 연간 220조 원가량인데, 건강보험 총재정은 고작 90조 원 정도다. 낭비 없는 건강보험 재정관리가 중요하다고 국민 직접의료비를 줄일 수 있는 건강보험 재정확대를 방기하는 건 앞서 밝힌 민영보험사만 좋은 정치다.

여기에 '약자복지'를 말하면서 병·의원 이용이 과다한 극소수 환자들이나 외국인 가입자들에 대한 보장 수준을 축소하려 한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문제해결을 위해 시범 사업 중인 '한국형 상병수당제도' 예산도 삭감했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의료공급 부분에 대한 개혁이나 지불제도개편 등은 방기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쥐어짜겠다는 시도만 하고 있는 셈이다. 건강보험재정 파탄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기에 앞서 법에 약속된 건강보험 국고 지원이라도 제대로 한다면 일말의 일관성이라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윤석열 정부도 여전히 국고 지원을 기대수익의 14%에 훨씬 못 미치는 11% 수준으로 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 건강보험 재정 공포를 조장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포퓰리즘'으로 몬다는 건 사실상 민영보험 활성화란 점에서 나쁜 정치다. 아마도 스스로 사회서비스의 시장화3)를 주장했던 수준으로 노골적인 민영보험 활성화를 외치기에는 국민 정서와 여론을 살핀 듯하다. 하지만 그 본질이 진정한 건강보험 재정 건정화가 아니라 민영보험 살찌우기라는 건 건강보험 국고 지원액 축소, 보장 범위와 대상 축소, 공공의료 방기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재정 관료들의 악행 

끝으로 민영보험사와 윤석열 정부의 나쁜 정치를 연결시키는 고리는 재정 관료들이다. 이들 재정 관료들은 민영보험사와 카르텔을 이뤄 건강보험의 성장을 막고, 민영보험 활성화를 위해 지난 30여 년간 노력해왔다.

우선 앞서 이야기한 건강보험 국고 지원을 누락해 건강보험 재정 확대를 막고 재정 위기를 초래했다. 사회보험시절(2000년까지) 지역가입자의 보험재정 국가납입분도 한 번도 제대로 납부한 바 없었고, 이를 승계한 국민건강보험의 국고 지원액도 매년 누락했다. 이 누락분만 가입자들의 보험료 징수처럼 소급해서 제대로 했다면 건강보험 보장성이 5포인트 수준은 상향됐을 것이다.

재정 관료들이 그간 건강보험 국고지원을 계속 누락한 이유는 건강보험 재정 위기를 초래해 보장률을 답보 상태로 만들고, 전반적인 공보험 비중을 축소하기 위해서였다. 실손보험의 시장 장악력이 올라가자 정부부처인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실손보험은 제2의 건강보험, 건강지킴이' 광고를 한 것은 이런 속내를 그대로 드러낸 일례다. 여기에 최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로 진료 정보를 수집하는 곳으로 민영보험사들의 손해율을 계산하는 '보험개발원'을 상정한 것도 금융위원회와 재정 관료들이다.

재정 관료들은 정권이 바꿔도 용어를 바꿔가면서 건강보험 재정 긴축을 획책하고, 건강 영역의 민간금융시장의 확대를 위해 노력한다. 문재인 정부가 문재인 케어라는 보장성 강화안을 내는 상황에서도 금융위원회는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등의 건강 상품화에 앞장섰다. 2014년에는 '2060재정전망'이라는 공포 마케팅을 하면서 건강보험 누적 적자가 2040년에는 600조 원이 넘는다는 보고서를 낸 것도 재정 관료들이다.

최근에 KDI를 통해 지방의료원 신축 경제성 평가를 통해 대통령 공약인 공공의료기관 설립을 무산시킨 것도 역시 재정 관료다. 재정 관료들이 재정공포와 긴축재정을 추구하는 체계는 모든 사회보험에 미치는 영향이 비슷한데, 그 결과는 결국 민영의료보험과 사적연금 시장의 확대로 나타났다.

일본에서 배울 것

이처럼 건강보험을 야금야금 공격하고 소극적인 건강보험 정책을 통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한국에서 30여 년간 해온 일은 건강보험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민영보험사, 윤석열 정부, 재정관료 같은 강력한 자본과 정치 집단이 한국에만 있지는 않다.

가까운 일본을 보면 아베를 위시한 일본 신우파정부(자민당 신우파)와 일본민간보험사도 비슷한 정책을 추구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처럼 심각한 문제가 벌어지지는 않았는데, 이는 일본의 건강보험이 매우 높은 보장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실손보험이 팔리지 않는다. 또한 일본은 의료공급자들이 건강보험진료와 비급여진료를 섞어서 하지 못하도록 '혼합진료금지'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민간의료 공급자들인 의사들조차 아베 정부의 민영보험활성화, 신의료기술활성화 정책에 강력히 반대했다. 결국 건강보험의 약한 고리인 낮은 보장성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건강보험의 적들이 암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건강보험 제도는 1980년대 노동자대투쟁으로 전 국민으로 확대됐고, 의료보험 확대를 위한 투쟁의 성과로 2000년 국민건강보험의 단일보험자로 성장해왔다. 아직도 한국의 건강보험은 갈 길이 멀다. 가까운 일본의 입원 보장률 92%에 비해 한국은 67%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의 부가 늘어나도 답보 상태인 건강보험 보장성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건강보험의 적들 때문이기도 하다.

다행히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를 기치로 투쟁에 나서고 있다. 노동자 투쟁으로 건강보험의 적들을 조속히 패퇴시켜주길 바란다. 그 혜택은 극소수 부자들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와 서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주석] 
1) '보장성 강화정책은….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 2022년 12월 13일 대통령 국무회의 모두발언 중
2) 2040년 재정적자가 678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2022년 12월 14일 대통령실 설명(건강보험보장성 축소를 대통령이 밝힌 데 따른 답변)
3) "이 사회보장 서비스 자체가 하나의 경쟁이 되고, 시장화되면서 이것이 산업화된다고 하면, 이거 자체도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또 팩터(factor)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좀 많은 재정을 풀어서 사회보장을 부담을 해 주려고 하면, 그러면 사회보장 서비스 자체도 시장화가 되고, 산업화가 되고, 경쟁 체제가 되고 이렇게 가야 됩니다. 그냥 뭐 사회적 기업이다, 난 사회보장 서비스로 한다, 그래서 일률적으로 거기에다가 돈 나눠주고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는 그거는 그냥 돈을 그냥 지출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이 시장화되지 않으면, 그것이 성장에 기여하는, 그런 성장 동력이 되지 않습니다."(사회보장 전략회의 모두 발언 2023.5.31)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형준씨는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입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보장성 강화가 포퓰리즘이면 선진국들 왜 안 망했나"
"지금도 OECD 국가 중 보장성 최하위 수준"
"체류 6개월 이상 외국인 피부양자만 건보 적용...국익 해칠 것"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정상화가 시급하다"며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확장 정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 폐기 방침을 시사한 데 대해 보건의료단체가 "환자 의료비를 높여서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겠다고 발표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 중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은 여전히 낮은 편인데, 이를 윤 대통령이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한 것도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이날 저녁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케어 폐기는) 건강보험 지속성을 늘리자는 게 방점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하면서 대다수 국민에게 그 부담이 전가됐다"며 대대적인 건보 개편을 지시했다. 문재인 케어를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재정을 파탄시켜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해치고 결국 국민에게 커다란 희생을 강요하게 돼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보건연합 "윤석열표 건보 개편 핵심은 개인 부담 증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9년 7월 2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열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2주년 성과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 위원장은 이날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개편 방향을 "국민 개개인의 본인부담을 늘리는 게 본질"이라고 총평했다. 문재인 정부가 보장성 강화에 20조 원을 투입했다는 현 정부 지적에 대해서는 "이 금액을 침소봉대하고 있다. 연 4조 원 정도 더 투입해 보장성을 강화해도 주요 선진국처럼 되지 못했다"고 맞받았다. 윤 대통령이 문재인 케어를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서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가 포퓰리즘이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주요 선진국가들이 다 포퓰리즘이냐, 다른 주요 국가들이 다 망했느냐"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지금까지 보수정부들도 다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겠다고 했다"며 "낭비 없는 의료를 위해서 의료체계를 개편한다든지 아니면 1차 의료를 강화한다든지 아니면 공공병원을 늘린다든지 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다짜고짜 보장성 강화를 철회하겠다고 주장한 최초의 정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 위원장은 여전히 대한민국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 건강보험 보장비율은 66~67% 수준으로 유럽 주요국(80% 이상), 일본과 대만(90% 이상)보다 한참 모자라다는 주장이다. 그는 "(주요 선진국보다) 15% 정도 뒤처져 있는데, 마치 재정 파탄이 날 것처럼 건강보험 불신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상당히 부적절한 발언이고 부적절한 정책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건보 재정 효율화를 통해 의료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주장도 의료 분야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질타했다. "보건의료 부분은 정보 불균등성이 심하기 때문에 공급자가 주도"하는 시장이라는 말이다. 그는 "시장실패가 예상돼 있어서 사각지대를 지원하려면 무조건 보장성을 많이 올려야 된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일부 혜택을 줄일지 말지 논의할 수 있겠지만 한국은 거의 지금 꼴등인데 지금 뭐를 어떻게 더 깎자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외국인‧해외 장기체류 피부양자의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6개월 체류 이상'으로 강화한 데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위원장은 "(외국인 건강보험 적용은) 한국 이미지나 국익을 위해 아주 중요한 것인데 차별적으로 지원한다면 한국의 국제 경쟁력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이분들이 내는 돈에 비해서 진료를 많이 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보장성 확대는 포퓰리즘 아닌 사회적 책무

지난 화요일 오전 진료 중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대통령이 올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밝히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겠다며 사실상 보험 범위 축소를 언명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보장성을 유지하면 재정 파탄이 온다는 것이다.

사실 낭비 없고 효율적인 건강보험 재정 운영은 당연한 국가의 책무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진료행위를 평가하고 재정 관리를 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재정 누수 원인은 다양하다. 주요 선진국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안을 시행 중이다. 우선 과잉 진료 문제는 심사평가뿐 아니라 의료전달체계 확립, 일차의료 강화, 주치의제와 같은 환자등록제 등으로 해결하거나 지불제도를 개편해 대응한다. 정의로운 재정 확보 방안은 소득이 높고 여력이 되는 계층이 보험료를 더 내도록 하고, 국고 지원을 늘려 해결하는 것이다. 환자들의 과잉 의료행위를 부추기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는 민영보험도 규제해야 한다.

낭비와 무임승차가 있다면 이런 정책들을 조속히 시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부적인 정책 대안 없이 대통령이 나서 다짜고짜 재정 파탄이 올 테니 보장성을 낮추겠다고 주장하는 건 처음 봤다. 역대 대통령들은 누구나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선언해 왔다. 무엇보다 한국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저 수준이다. 한국이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보장률을 지금보다 15% 이상 올려야 한다.

특히 고령화로 의료비 지출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첨단 의료기술과 고가의 신약들이 도입되는 상황에서는 보장성을 높이지 않는 한 건강보험 혜택 범위가 축소될 가능성이 더 크다.

보장성 확대로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상처럼 보장성은 쉽게 오르지 않는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에서 선별적인 보장성 강화안을 추진했지만 되레 보장성이 떨어진 경험도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나서 건강보험 재정 파탄과 같은 공포를 조장하고, 정치적 이유 혹은 재정 문제로 공적보험의 가치를 포기하는 방향성을 제시한 건 책임 위반이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보장 범위를 줄이면 건강보험 재정이 건실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절약한 금액만큼 국민들은 의료비를 더 내야 한다. 의료비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어쩔 수 없이 집행되는 것이다. 과거 의료보험이 없던 시절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중병에 걸리면 집을 팔아야 했기 때문에 만든 게 건강보험이다.

얼마 전 무릎 관절염이 심해 관절 수술을 권유한 어르신이 다시 돌아왔다. 수술을 하지 못한 이유를 물어보니 수술비가 너무 부담이 된다고 했다. 자녀들에게 수술비를 달라는 얘기를 차마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는 인공관절 치환 수술의 본인부담금도 부담이 되는 퇴행관절염 환자가 한국에는 아직 너무 많다.

특히 노인들은 소득보장제도가 미비해 꼭 해야 하는 수술 부담액도 크게 다가온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가 미국보다 낫다는 게 유일한 위안인 수준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대만보다도 못하다. 취약계층, 노인, 장애인의 의료비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도 건강보험의 보편적 보장 범위 확대다.

민영보험이 있고 일정 소득이 있는 국민이 아니라 바로 지금도 돈 때문에 받아야 하는 수술을 못 받는 국민이 많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알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보장성 강화가 포퓰리즘이라면 주요 선진국은 공적보험제도로 다 망했을 것이다. 보험 확대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다. 국민 건강 보장을 정치화해선 안 된다.
2022-12-16 25면

건강보험 재정적자? 정부가 법 지키면 된다

건강보험료를 미납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고지서가 날아들 것이다. 현재 규정상 6개월 이상 미납하면 자동으로 건강보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회사가 내야 하는 건보료가 미납되면 해당 노동자들의 건강보험(건보) 자격은 문제 삼지 않지만, 결국 공단이 사업장 압류 등 법적 방법으로 이를 대부분 다 받아낸다. 회사가 파산한 경우도 재산정리를 해서 미납분을 회수한다.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위해 운영하는 공적건강보험제도에서 미납을 방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미납은 국민건강권을 훼손할 수 있는 해당 행위이고 탈법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거의 15년간 건강보험료를 미납하고도 이를 채우지 않는 곳이 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대한민국 정부다.

건보를 최초 설계할 때부터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중 직장가입자의 회사납입분만큼을 정부가 부담하도록 돼 있었다. 1988년부터 건보가 통합되는 2000년까지도 정부가 이 부담분을 제대로 납입한 적은 없다고 한다. 통합 이후로는 연간 건강보험 예산의 14% 상당은 일반회계에서, 6% 상당은 건강증진기금에서 지원하도록 법에 명시했다. 2007년 제정된 법률은 5년 한시법안이지만, 그나마 5년마다 갱신되며 유지됐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15년간 단 한 번도 이 법이 정한 대로 국고 지원을 한 적이 없다. 미납금 총액은 32조원에 육박한다.

이 정도 금액이 제대로 충당됐다면, 국민 개개인이 부담하는 건보료가 낮아졌거나 보장성을 높여 환자 부담이 많이 줄었을 테다. 특히 지난 15년간 국민들의 보험료는 비율적으로도 많이 올랐다. 우리 국민들이 낸 건보료 부과비율은 2007년에는 회사분 포함해서 소득의 4.8%였다. 현재는 7.1%다.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이 거의 2배가량 올라갔다. 반면 정부는 지원 비중을 늘리기는커녕 미납만 했다.

고령층이 많아지고 노동인구가 감소하면 소득에 보험료만 부과하는 구조로는 건강보험재정구조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조세에서 부담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건 국제적 상례다. 가까운 일본은 전체 건보재정의 40%가량을, 대만도 26%가량을 국가가 부담한다. 그만큼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줄이고 보장성을 높여 가계의료비를 줄이는 데 일조한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방향에 완전히 역행해 왔다. 그 결과 전체 건보 재정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1% 남짓이다. 혹자는 조세나 건보료나 결국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오는데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조세와 보험료는 그 구성이 다르다. 조세는 소득, 재산, 기업이익, 소비 등 전 부문에서 확보되고 기본적으로 누진적이다. 부담 능력에 따라 더 많은 기여를 요구한다. 조세정의 차원에서 당연한 조치다. 하지만 보험료는 정률로 상한과 하한이 있어 역진성까지 나타난다. 보험료에 의존하는 방식은 결국 지속 가능성도 떨어진다. 때문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은 조세로만 건강보장을 운영하는 나라도 매우 많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가 수행한 MRI, CT 등의 검사 급여를 되돌려 건보 재정 누수를 막겠다고 했다. 보장성을 축소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비난에 열을 올리며 건보 재정이 머지않아 파탄이라도 날 것처럼 불안감만 자극했다.

기획재정부는 재정 파탄에 대비해 건강보험 보장성을 올리지 않고 개개인이 의료비를 더 부담토록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상습적으로 마땅히 내야 할 돈을 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숨기고 있다. 설령 건보 재정이 파탄나더라도 국민건강권을 위해서는 국가 예산을 최우선으로 배정하는 게 국가의 의무라는 인식조차 없다.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재부 출신으로 지명된 현실이 씁쓸하다. 정부는 건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법을 지키는 시늉이라도 하길 바란다.
2022-09-23 25면

건강보험은 한국 사회보장제도 중 가장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 흔히 말하는 ‘오바마도 부러워하는 한국의 건강보험’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물론 한국이 실제 유럽의 의료보장체계보다 나은 건 아니다. 그래도 주거, 교육, 돌봄, 연금 등등 수많은 복지체계 중에서 그나마 훌륭한 보편적 보장제도로 자리매김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보험제도는 1977년 대기업 중심으로 도입되어 점차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원 범위와 혜택을 넓혔다. 이제 유럽식 의료보장을 지향해 최소한 일본이나 대만 수준의 제도로 개혁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 그런데 항상 여기에 걸림돌은 재정 논의다.

우선 OECD 평균 수준의 보장성에 도달하려면 보험재정이 크게 충당되어야 한다. 여기다 대부분 선진국이 시행 중인 상병수당 같은 현금 급여제도를 도입하는 데도 돈이 든다. 새로운 서비스나 보장범위를 넓히지 않더라도 한국은 노령화가 진행 중으로 의료비가 자연 증가할 공산이 크다. 보험재정이 확충되어야 주요 선진국 수준의 제대로 된 공적보험으로 개선할 수 있다.

남는 과제는 지출의 낭비를 줄이고 재정을 확충하는 부분이다. 우선 지출 부분은 지불제도 개편이나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의 과제가 제안되는데, 지난 30년간 민간의료공급이 주된 한국의 현실상 공급자 저항으로 개혁이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정치권도 동네 병ㆍ의원 눈치를 보면서 지출구조에 대해서는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부분만큼은 가끔 일부 의료공급자의 저항만 부각되고 중요성이 논의되지는 않았다. 실제 계속 논쟁이 크게 벌어진 부분은 재정충원 문제였다.

재정확충을 하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단순한 주장이 상식처럼 간주되었다. 단순히 생각하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 준조세에 따르는 보험료는 국민이 선택할 수 없다. 거기다 가입자와 공급자간 계약보험이 아닌 강제가입 단일보험의 경우는 사실 국가보건의료체계로 봐야 한다. 즉 건강보험재정은 국가책임이 우선된다. 그런 점에서 보험료는 노동소득에만 대부분 연동된다는 점에서 국가의 총재정 부담과 달리 편향적이다. 때문에 프랑스나 대만은 보험료 비중에서도 기업부담을 높이거나, 여러 기여를 넣기 위해 국가가 일반회계에서 건강보험에 상당 부분을 지원한다. 프랑스 52%, 일본은 45%, 대만은 36% 수준의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 있다. 더 나아가 영국,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조세 100%로 건강보장제도를 운영한다.

반면 한국의 국고지원은 매년 떨어져 12%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과 노동자의 분담 비율도 1977년 이후로 기업형 보험구조인 1:1 구조가 유지된다.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논의는 언제나 국고지원 확대 문제와 기업부담을 늘리는 부분부터 집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걸핏하면 건보료 폭탄이나,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보험료가 올라간 지역 가입자 문제 등의 형평성 논란만 제기한다. 정작 중요한 자산가격 상승에 따른 건강보험 기여 문제나 이를 위한 국고지원 확대 문제는 외면하면서 말이다.

결국, 이런 보험료 논의는 국가와 기업책임을 보험료를 내는 국민끼리의 건강보험 불신으로 채우려는 시도다. 애초에 충분한 국고지원과 기업부담을 늘렸다면, 생기지 않을 불신의 불씨가 남긴 결과는 건강보험의 퇴행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의 이름이 붙은 보장성 강화안인 ‘문재인케어’ 약속도 결국 지키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여전히 낮은 수준의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이다. 반면 누적된 20조 원에 육박하는 건강보험재정은 재정 관리 성공으로 선전된다. 사실상 국민이 받아야 할 의료 서비스의 비용이 남은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야당 대선후보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를 이간질시키며 건보료 폭탄을 막겠다고 한다. 조세나 국고확대로 건강보험에 기여해야 할 대안제시도 없는 네거티브 공세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건강보험에 대해서 건보료 폭탄과 재정운용 자랑만 일삼으며 막상 해야 할 책임은 다하지 않는 정치권은 이제 대오각성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의료보장제도의 미래와 가치를 중심으로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불신이 아니라 신뢰에 바탕을 둔 국가 책임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은 민간보험이 아니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13964&path=202111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대략 100만명 가운데 5명 안팎이다. 희귀하지만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교통사고나 장거리 비행에 나타날 수 있는 혈전증 빈도와 비교하면 너무나 낮은 확률이다. 심지어 아스피린으로 인한 출혈 사망이나 경구피임약으로 인한 혈전증 비율보다도 훨씬 낮다. 보건통계는 언제나 숫자보다 해석이 중요하다. 코로나19 백신 역시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면 백신 공포의 밑밥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통계 해석을 아전인수격으로 하는 경우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건강데이터에서도 나타난 의료진 부족 문제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높은 의료접근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백내장 수술 대기일이 0일(OECD 평균 129일)이라는 사실은 높은 의료접근성이란 사실 비응급수술에 대한 과도한 경쟁의 다른 모습이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대기기간이 비응급질환에서는 신중함을 뜻하는 지표란 점도 간과한다.

오히려 한국은 OECD에서 가장 병의원을 많이 찾지만 정작 자신이 건강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가장 적다. 의료상품화가 높은 수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4년 보장성 보고회’는 기괴한 해석의 결정판이었다. 건강보험료 인상이 집권 전 10년과 비교해 낮다고 발표했는데 사실 이명박 정부 시절 가파르게 올랐다가 박근혜 정부에선 거의 동결이었다. 즉 이전 5년과 비교하지 않고 10년 평균을 비교해 통계적 착시효과를 노렸다.

애초 정부가 약속했던 보장성 70%에 턱없이 못 미치니(64.5%)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의 보장성 상승폭을 중심으로 보고했다. 애초 문재인케어 약속 달성이 안 돼 송구스럽다고 사과하는 게 맞는 일이었다. 비급여를 없애기 위해 도입하겠다는 예비급여는 박근혜 정부의 선별급여와 차이가 없어 보고 내용에서 빠졌다. 결국 2017년 대통령이 약속했던 문재인케어의 핵심은 모두 지키지 못하거나 시도조차 못했다. 그런데도 일부 지표를 중심으로 자화자찬하기 바빴다.

백미는 건강보험 누적 흑자가 약 17조 4000억원(2020년 말 기준) 발생한 것을 ‘안정적 운영’의 결과라고 밝힌 점이다. 건강보험은 1년을 주기로 하는 단기보험이기 때문에 당해 연도 수입만큼 지출로 사용하는 게 맞다. 그래서 매년 지출예상을 맞춰 보험료를 거둔다.

건강보험은 연금처럼 현금 지급이 아니라 의료서비스만 제공하기 때문에 누적 흑자는 정부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신 보험 재정 지출을 억제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19 치료 대응에 난항을 거듭하는 현실을 자화자찬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국민건강을 제대로 챙기려면 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건강보험 보장성과 OECD 꼴등인 공공병상이라는 우리의 냉정한 현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1-08-17 29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817029011

문재인케어에 대한 '속 보이는' 가짜뉴스

늘어나는 비급여 항목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때문? 번지수 잘못 짚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건강보험 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검사를 희망하는 배권환 군(오른쪽), 작곡가를 희망하는 이경엽 군의 손을 잡고 격려하고 있다. 2017.8.9 ⓒ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 이른바 '문재인케어'에 대한 비판은 다각도로 제기되어왔다. 제일 큰 쟁점은 재정관련 내용이다.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돈이 더 들어가기 때문에, 보험재정을 확충할 방안이 필요하단 논리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은 국고지원을 제대로 해 우선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는 대형병원 쏠림현상이다. 보장성강화를 하면 할수록 대형병원의 본인부담금이 줄어들어 환자들이 대형병원으로 더 몰릴 거란 주장이다. 이 주장도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그래서 시민사회단체들도 의료전달체계를 갖춰 적절한 자원배분을 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거기에 주치의제도 등을 도입해 1차 보건의료를 강화하자고 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문재인케어에 대해 최근 황당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다름 아닌 문재인케어로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증가해서 국민의 민간보험 부담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논리는 공적보험의 보장성을 올리니 의료 이용이 많아져서 민간보험에도 영향을 준다는 내용과, 공적보험의 보장성 강화로 수익성이 떨어진 병·의원이 비급여를 더 많이 해서 민간보험비용을 올린다는 내용이 섞여 있다.

실손보험 자체가 비급여증가의 온상

 

일단 공적보험의 보장성을 올리면 환자들은 그동안 부담이 무서워 하지 못했던 검사나 시술을 더 받을 수 있다. 이는 행위량의 증가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동안 실손보험이 보장하던 비급여영역을 공적영역에서 보장하게 되어 실손보험이 이익을 보는 구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MRI, 초음파 검사는 과거 대부분 실손보험이 보장하던 영역이었다. 그런데 문재인케어로 건강보험이 이를 보장한다. 이렇게 되면 실손보험은 반사이익을 보게 된다. 이 때문에 작년 건강보험공단정책연구원은 건보 보장 항목에 대한 실손보험금 지급 부담이 줄어든 만큼 "약 6.15%의 실손보험료 인하요인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즉 실손보험은 손해율이 증가하는 게 아니고 손해율이 감소한다. 따라서 손해율 때문이라면 실손보험사는 문케어를 지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증가한다면 이는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영역이 계속 늘어난다는 뜻이다. 건보보장항목을 늘리면 수익성을 위해 병·의원들이 비급여를 계속 개발하고 늘려나간다는 이른바 '비급여 풍선효과'이다.

비급여 풍선효과는 지난 10여 년간 계속 문제제기가 되어 왔는데 시장 주도 의료 구조와 비급여를 급여와 섞어서 진료할 수 있도록 한 혼합진료허용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여기에 민간보험이 확대되면서 환자들의 비급여치료에 대한 도덕적 해이가 늘어났고, 병·의원도 실손보험가입자에 대해서는 무차별 비급여 처방을 남발했다. 즉, 비급여 풍선효과의 원인이 실손보험 존재 자체에 탑재되어 있다.

그간 실손보험사는 온갖 비급여를 모두 보장할 것처럼 상품을 판매하고 난 뒤 이것저것 이유를 대 보험금을 지불하지 않아 논란이 된 적이 많다. 여기에 비급여가 늘어서 손해율이 증가한다고 아우성을 부리며 매년 실손보험료를 올려왔다. 비급여가 늘어나면 실손보험이 손해가 나는 건 자명하다. 이런 자명한 사실을 알지만, 실손보험시장을 확대해 민간보험사가 배를 채우려 했기 때문에 비급여를 통제할 장치마련에는 둔감했다.

즉, 실손보험과 비급여시장은 서로 강화해주는 관계다. 최근 문제가 된 700만 원 상당의 무릎퇴행관절염치료제 인보사도 실손보험이 있어 3700여 명까지 시술이 가능했다. 만약 실손보험이 없었다면, 효과가 불분명하고 하나에 700만 원이나 하는 주사제가 1년 동안 그만큼 판매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비급여 증가는 애초에 실손보험이 가진 내재적 모순이다.

병·의원이 문재인케어로 수익성이 악화되어 비급여를 더 시행한다는 주장도 황당하긴 매한가지다. 수익성만 추구하는 병·의원이 문제이지 국민의료비를 절감하는 대책이 문제가 될 수 없다. 앞서 밝혔듯이 의료전달체계 확립 및 1차 보건의료제도가 확립되면 해결될 문제다. 애꿎은 보장성강화 정책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병·의원의 심기를 건들지 말라는 것인가?

실손보험 사멸 위기... 보험회사의 공포

그렇다면 이런 황당한 논리로 문재인케어가 실손보험의 손해율을 높인다고 주장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우선 실손보험사의 보험료 인상요구의 근거를 제시해 민간보험료를 올리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문재인케어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퍼뜨려 공적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막아내려는 것이다.

무엇보다 문케어와 같은 보장성 강화정책이 확대되어 실손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사라지는 사회에 대한 보험사의 공포가 한몫 한 듯하다. 실손보험의 도입 취지가 애초 공적보험의 낮은 보장성이었던 만큼 공적보험이 대부분의 의료를 다 보장한다면 실손보험은 사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궤변의 기저에는 민간보험에서 건강영역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만약 실손보험의 손해율을 줄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문케어의 확대와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주장하는 게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주치의제 도입 등으로 효과도 불분명한 비급여가 사라지고 대형병원의 무분별한 과잉 검사도 제한된다면 실손보험은 존재 자체를 의심받을 것이다.

끝으로 이런 황당한 주장을 보도하는 언론은 사실 가짜논리로 무장한 가짜뉴스를 보도하는 셈이다. 무분별하게 민간보험사의 이해관계만 옹호하는 기사가 일간지까지 침투한다면, 그런 언론의 다른 주장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뜩이나 가짜뉴스로 국민들이 혼란에 빠져 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한 가짜논리와 가짜뉴스만이라도 제발 사라졌으면 한다.

omn.kr/1ki65

건강보험 준비금의 성격과 대안

 

정형준 l 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국민건강보험은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준비금) 제1항을 통해 “공단은 회계연도마다 결산상의 잉여금 중에서 그 연도의 보험급여에 든 비용의 100분의 5 이상에 상당하는 금액을 그 연도에 든 비용의 100분의 50에 이를 때까지 준비금으로 적립하여야 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현재 매년 누적되고 있는 건강보험 흑자의 다른 말이기도 하고, 건강보험 흑자가 ‘준비금’으로 적립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건강보험 준비금의 내용과 이를 둘러싼 각종 정책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살펴보고 현재시점에서의 대안들도 제시하려 한다.

 

건강보험 준비금의 역사

1988년 전국민 건강보험을 시행하면서 시작된 「의료보험법」시행령에서는 제46조(준비금)에서 지불준비금으로 당해 연도 보험급여비의 100%를 적립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험급여 관련 업무가 점차 자동화되고 체계화 되면서, 보험료징수 및 급여청구와 지급의 구조가 빨라졌고, 준비금규정이 과도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에 1994년 의료보장개혁위원회는 법정준비금을 1년 치 보험급여비의 50%로 낮추기로 결정하였다.

 

1998년부터 진행된 의료보험(이하 의보) 통합으로 2000년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족하였으나, 당시 의약분업을 둘러싼 갈등으로 의사폐업이 있었다. 이를 통한 3차례의 수가 인상여파 등이 겹쳐 2001년에는 무려 1조 8109억 원의 법정준비금이 부족하게 되었다. 당시 이런 적자의 원인은 의료수가인상 뿐만 아니라, 2008년 IMF구제금융이 맞물려 직장의보조합이 통합 전 자신의 적립흑자를 유용하면서 보험료를 거의 올리지 않은 영향과 기존 약국을 이용하던 환자들의 병의원이용 증가까지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2002년 7월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하 재정건전화법)」을 제정하여 국가는 매년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급여비용과 건강보험사업운영비의 100분의 40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하도록 하였다(제15조제1항). 또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급여비용과 건강보험사업운영비의 100분의 10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민건강진흥기금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하도록(법 제15조 제2항 및 제3항) 하였다. 이 재정건전화법은 2006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게 되어 이후 5년마다 건강보험 국고지원논란을 불러일으킨 원인을 불러왔다. 또한 재정위원회의 보험요율 결정권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신설하여, 의료공급자와도 논의하는 전 세계에 유래 없는 기구를 탄생시켰다.

 

건강보험은 이후 단기적자와 흑자를 거듭하다가 2010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면서 현재 법정준비금이 무려 20조 원이 넘는 5년간의 흑자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건강보험 준비금 기준에서 본다면 보험급여비용(2014년 44조7500억)에 비춰 봐도 50%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때문에 건강보험 흑자를 보장성강화 및 의료제도개편에 사용하려면 준비금 조항의 변경이 요구된다.

 

이는 그간 흑자분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보장성강화 요구에 보건복지부가 난색을 표명할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준비금 50% 적립 조항 때문에 보장성강화에 흑자분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시작되고 있는 준비금을 둘러싼 논의들을 단순히 보장성 강화만을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건강보험 준비금을 둘러싼 최근 추이

정부는 2016년 3월 29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주재로 7대 사회보험(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이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기재부가 각종 연금, 기금, 공보험을 관할하려는 시도인데, 중요하게도 국민건강보험도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당시 기술된 내용을 살펴보면, 건강보험에 대해서는 자산운용 결과를 설명하며, ‘단기간에 적립금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기관’으로 묘사했다. 또한 건강보험을 포함해서 ‘해외, 대체 투자’등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즉 건강보험 흑자의 투자유용을 열어달라고 한 것이다. 이를 기화로 확인된 건강보험 준비금의 유용범위도 기존의 상식인 단기 투자상품이나 즉각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부가 정보공개청구에서 밝힌 MMDA, MMF는 현금성 자금성격이 강하지만 정기예금, 금전신탁, CD, 금융채권은 모두 1년~3년의 장기투자항목들이다. 거기다 이러한 투자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의 실주체인 가입자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모두 입찰 컨설팅회사의 자문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이 수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건강보험의 보험료율, 수가결정을 위한 환산지수, 급여범위 등등의 중요한 사안을 건정심이라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결정하는 것에 비추어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관리하고 투자하는 일은 컨설팅회사의 자문에만 의존하는 것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또한 이런 투자의 목적이 건강보험재정확보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라기보다 단순 수익성 증가를 통한 재정건전화와 종국에는 이를 통한 국고지원 축소 시도임도 드러났다. 정부는 2017년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지원을 법에 명시된 기대수익의 14%가 아니라 11%로 한정해서 제시했다. 때문에, 황당하게도 국고지원금 예산액이 현재 지급된 2016년도 7조 975억 원 보다 2천 211억 원 감축된 6조 8천 764억 원이 되었다. 이러한 국고지원 감축은 건강보험 도입 후 초유의 사태이다. 이에 대해 정부관계자가 언론에 밝힌 내용은 14% ‘상당’ 이므로 꼭 14%를 지원할 필요가 없으며, 현재 흑자국면에서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전국민 건강보험 출범시 지역가입자 부담의 50%를 국가가 지원하면서 출발했던 근본정신과 앞서 본 재정건전화법의 취지 등에 비추어 매우 우려스러운 태도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의 재정안정성을 순수하게 가입자들이 낸 보험금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에서 건강보험의 공적기능의 약화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현재 건강보험 준비금을 둘러싼 논의들은 건강보험의 남은 재정을 금융학적 수익관리를 통해 조금이라도 불려서, 국고지원 축소와 연계시키려는 시도와 맞물려 있다.

 

준비금 운용 규칙 도입 과 준비금 비율 조정 시도

여기에 정부의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시도와 맞춰서 건강보험에서는 두 가지 시도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직접적인 준비금 비율 축소를 위한 논의이다. 이는 작년 10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정책국 국장(강도태)이 언론사와의 간담회에서 제기한 바 있고, 올해 8월에는 민주당 전혜숙 국회의원이 50%를 15%로 축소하는 법안을 입안하였다. 다른 하나는 같은 시기인 올해 8월 그간 규정이 없던 ‘준비금 관리 및 운영 고시(안)’을 보건복지부가 제시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초안으로 제시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준비금의 관리·운용 방법 등에 관한 고시안’은 고시안의 내용보다도 그 시점이 주목할 만하다.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준비금) 제 3항에는 “준비금의 관리 및 운영 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다.” 고 명시되어 있었으나 무려 10여 년간 운영에 관한 보건복지부장관의 훈령·예규·고시 등의 행정규칙이 제정되지 않은 바 있다. 때문에 20조나 흑자가 쌓이고 나서야 고시안을 제시한 것 자체가, 향후 준비금운용을 적극적인 금융투자쪽으로 확대하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도록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볼 때 준비금을 둘러싼 이해관계들은, 준비금 자체의 투자가능성, 준비금 비율을 낮추고 남은 자산의 운용가능성 등이 얽혀 있다. 때문에 단순히 준비금 비율을 낮춘다고 하더라도, 여타 투자운영으로 전용될 가능성 등도 열려 있는 셈이다. 때문에 준비금을 둘러싼 논의에서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을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준비금 비율 축소의 전제조건과 대안

준비금 적립은 원칙적으로 불가피하다. 가장 중요하게는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후불대금과 건강보험료 징수 사이의 시간차에 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비금의 존재 이유는 건강보험의 효율적인 운영과 파산을 막는 것이지, 적립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최근 들어서는 과거보다 직장가입자비율이 증가하여 건강보험의 수익이 더욱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고, 의료기관 정산 등 재정 지출과정도 시간차가 줄어들고 정확해지고 있다. 현행 준비금 50%는 이런 점에서 너무나 과도하다. 해외의 경우도 대만, 일본은 1개월-3개월분, 독일, 벨기에는 25% 정도로 규정되어 있다. 한국의 과도한 준비금 조항은 보장성 강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건강보험 흑자의 명분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준비금을 유용하려는 시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단순히 준비금 축소만으로는 보장성 강화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높은 본인부담금과 재난적 의료비가 존재하는 현재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대안을 축소되고 남은 준비금으로 즉시 사용하려는 계획이 필요하다.  현재 이미 누적 20조 원을 돌파한 건강보험 준비금은 정부가 국민 의료비 절감에 해당되는 보장성 확대에는 소극적이면서 보험료는 지속적으로 인상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20조 원 이상의 준비금을 두고, 여전히 수많은 국민들은 병원비 때문에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법률에서 5% 이상에 해당되는 금액을 50% 이내에서 준비금을 적립하라는 조항의 취지가 반드시 50%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 아님에도 재정 운영의 주체인 정부는 이를 빌미로 보장성 확대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은, 준비금 비율 축소만으로는 자동적으로 보장성강화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의지와 대안이 없다면, 단순히 준비금 비율을 축소하는 것은 거꾸로 금융투자 등의 활용되는 상황까지 닥칠 수 있는 바, 적극적 보장성 강화에 대한 안이 우선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제시되어야 준비금 비율축소의 명분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준비금 비율 축소가 실행되면, 누적준비금 조건이 충족될 것이다. 정부의 최근 추이로 보아 이를 빌미로 국고지원축소의 명분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어 보인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공적보험임에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가입자의존성(수익자부담원칙)을 고수한다. 2014년 기준으로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 비율은 87%이고, 정부는 국고에서 고작 13%만을 부담했다. 그나마 정부가 법에 명시된 국고지원금을 제대로 지원한다면 정확하게 16.6%가 되어야 하지만, 예상금액을 낮게 산출하여 막대한 금액을 매년 누락해왔다. 그 결과 한국은 OECD 국가에서 국고지원을 가장 낮게 하는 공보험 보유 국가이다.

 

이처럼 낮은 수준의 국고지원이 지속되는 가운데 준비금비율을 낮춰, 준비금총액이 충족되면, 현재의 5년마다 국고지원특별법을 만드는 상황에서는 국고지원 축소의 가능성도 높다. 사실 일반회계에서 매년 결산해서만 지원한다면, 복지긴축을 주된 목표로 상정하는 정부 하에는 보장성 강화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따라서 국고지원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국고지원액 명문화)이 준비금 비율 축소의 기본 전제라 하겠다. 그리고 이미 박근혜정부가 작년에 제시한 암울한 장기재정전망에 비추어서도 국고지원 명문화는 건강보험 재정지속성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준비금 비율 축소여부와 상관없이 금융투자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규제강화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 제 38조 2항에서는 “준비금은 부족한 보험급여 비용에 충당하거나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때 외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현금 지출에 준비금을 사용한 경우에는 해당 회계연도 중에 이를 보전(補塡)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지금 건강보험 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장기금융상품 운용을 금지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

 

현재의 준비금 내에서도 장기금융상품 운용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준비금 축소는 더 광범한 투자활용에 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건강보험 흑자가 준비금 기준을 넘어가더라도 금융상품등에 투자될 수 없다는 규제조항 등이 준비금 축소와 함께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매년 국민들이 준비금 이상 남는 재정여력을 놔두고도 보험료를 낼 이유가 하등 없다. 독일 같은 경우 준비금이 남아있을 경우, 보험료 인상을 방지하는 장치가 있는데, 이를 참고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사실 이런 준비금 축소 및 건강보험의 준비금 운영 관련한 논의 및 과정에서 건강보험의 실제 주인인 가입자(국민)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여론수렴 과정과 전문가 및 시민사회단체와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건정심과 재정운영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언론과 연구결과로 우선 소개되는 것이 합리적인 거버넌스 과정으로 보인다.

소결

현재의 준비금과 관련된 논의는 일방적인 정부 주도의 과정으로, 준비금 비율축소의 목표와 전망에 대한 논의는 부재하다. 이는 최근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보험의 금융투자, 건강보험 국고지원 축소시도와 맞닿아있다. 따라서 정부는 건강보험 가입자 의견을 반영하여 누적흑자 20조 원의 재원으로 빠른 시일 내에 구현가능한 보장성 강화안을 우선 제시해야 한다. 또한 건강보험 국고지원 확립(상시명문화)을 통한 재정확충 방안을 제시하고, 향후 준비금 상향부분의 재정여력에 대한 금융투자 등의 운용지침까지 우선 밝힐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단체 등도 기존의 보장성 강화 및 국고지원 확충의 원칙을 지키면서, 향후 건강보험 흑자분에 대한 금융투자 등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요구되는 시점이며, 이를 통해 명확한 준비금 비율 축소 논의를 더욱 공론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http://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Welfare&page=34&document_srl=1466005&listStyle=list

http://www.gunch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89


건강보험 흑자와 복지축소[논설] 정형준 논설위원
정형준  |  akai07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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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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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 흑자가 2014년 말까지 12조원을 넘었다. 작년 한해에만 4조원의 흑자가 또 발생했다. 흑자의 원인을 다층적으로 분석하면 여러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있겠지만, 간단히 보면 경제위기로 인해 국민들의 의료이용이 줄거나 비용지출이 적은 쪽으로 이동한 것이 크다. 즉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남겨진 흑자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쉬쉬하거나, 대안논의가 거의 없다.

우선 정부가 2월 3일 발표한 중장기 보장성 강화안을 보면, 대략적인 건강보험예산 사용내역이 나온다. 연평균 1.3조(공약이행사항 제외 시 연 3500억 원 수준) 정도의 예산만 건강보험 재정에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 해에만 4조 원의 흑자가 났고, 만약 이런 의료이용행태가 유지되면 올해도 4조 가량의 흑자가 발생할 것인데 말이다. 즉 계속 엄청난 흑자를 내겠다는 이야기다.

원래 건강보험재정계획은 지출과 수입이 일치하게 세워야 한다. 건강보험은 매년 전년상황을 고려해 보험요율 및 수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부의 이번 계획은 이해할 수 없다. 근데 여기서 잘 봐야 할 지점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2일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건강보험 재정지원 만기도래('16년 말)에 대비하여 재정지원 방식 등을 재점검"을 언급했다.

실제로 2016년까지 국민건강보험재정 지원이 명시되어 있을 뿐, 지난 법안 도입 때(2010년)도 국고지원을 줄이려 한 세력이 많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국고지원을 축소할 것을 시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계속 저축하면 국고지원금 축소의 명분이 커지므로, 정부는 남는 건강보험 흑자를 쓰지 않을수록 이득일 것이다.

건강보험통계연보를 보면 건강보험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73.6%에서 2005년 이후 80%를 넘어섰고, 2012년에는 85.7%로 증가했다. 즉 국고 지원 비율은 계속 줄어들었고, 노동자•서민의 부담으로 보험 재정이 메워졌다. 사실상 복지긴축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병원들은 이런 흑자 국면에서 최대한 자신의 몫을 늘리려 한다. 대표적으로 3대비급여 해결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기준병실확대와 선택진료비 축소건은 조정되는 만큼 이상을 보상받았다. 보상액이 과다하다는 비판이 있는 정도다. 여기에 상대가치점수 조정을 앞두고, 전반적인 재정순증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수가인상협상과는 별개로 병원이 수가항목조정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국면이다.

그리고 그간 비용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각종 항목 등도 급여범위로 이참에 집어넣으려 한다. 물론 정부는 저축을 하고, 정부지원을 줄일 궁리중이라서, 의료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주려 하지는 않는다. 의료계가 원하더라도, 의료이용이 증가하거나, 비용이 급증할 사업은 제외한다. 대표적으로 노인본인부담금 정액 상한선은 올리지 않는다. 여기에 입원일수와 법정본인부담금 비율을 연동하는 개악안까지 입법예고했다. 모두 국민들의 병원이용을 어렵게 하고, 치료비의 국민부담을 증대시키는 조치들이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가고 있다. 건강보험재정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국민들의 입장은 반영될 경로도 없다. 부자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병원을 이용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병원 이용을 점점 더 자제하게 되는 구조다. 사실상 부자들에게 유리한 의료제도인 셈이다.

따라서 의료복지와 관련해서는 재정흑자에도 현재 긴축이 추진되는 형국이다. 그리고 긴축의 칼날은 서민과 빈곤층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진보’세력의 대응은 변변치 않다. 건강보험 흑자에도 강하게 복지확대를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복지를 재정 탓으로 돌리는 정부여당의 주장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증세운동까지 전개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건보재정이 많이 남아도, 왜 쓸 곳을 정하지 못할까? 재정확충을 해도 어떻게 사용할지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을까?

현재 흑자하의 의료긴축상황이 보여주는 지점은 복지는 결국 돈 문제가 아니고, 세력문제(‘정치’문제)라는 점이다. 돈이 없어서 복지를 못한다는 주장에 진보는 동의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보험흑자를 보장성 확대로 이끌 운동이다.<끝>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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