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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선 복지ㆍ노동 공약 평가

– 보건의료 분야

 

정형준 | 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보건의료 분야 후보별 공약

후보별 보건의료분야 공약 표

 

 

세부공약 비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지난 30여 년간 보건의료정책 핵심이었으며 매번 대통령선거 시 핵심 보건의료공약으로 제안되었다. OECD 국가 중 여전히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과 이로 인한 가계의 의료비 부담이 가중되어, 국민들이 항상 새로운 대통령이 의료비 절감을 위한 획기적 정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중요정책별로 살펴보면 5명 후보 모두 본인부담상한제를 강화할 것을 공약했고 일부, 혹은 부분적인 보장성 강화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면 보장성 강화안은 2012년 대통령선거 때 야권단일후보였던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약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이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결국 시대적 흐름을 따르지 않고 뒤처지고 있다는 증거다. 

 

문재인 후보는 2012년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상한제 100만 원을 주장한다. 그러나 2012년에는 비급여를 대부분 급여화하면서 연간 8.5조 원 가량의 재원을 투자1)하는 비급여를 포함하는 획기적 보장성 강화안이었다면 지금은 소극적인 건강보험범위내의 상한제를 주장하는 늬앙스다. 또한 문재인 후보의 주요 보장성 강화안이 ‘치매국가책임’으로 먼저 나타난 점도 보편성에서 선별성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후퇴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치매’라는 질환의 중증도나 사회적 의존도가 낮고 높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타질환과의 연관관계, 지역사회구조의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특정 질환중심의 우선적 보장성 강화 혹은 공적지원이 중심이 될 경우 부작용을 발생하게 된다. 특히 치매에 대해 강화된 ‘본인부담상한제’를 도입한다면 치매와 연관되는 상병 문제부터 재활 치료, 돌봄서비스 등에 대한 연계여부까지 논란이 계속 확산된다. 따라서 문재인 후보의 보장성 강화안은 2012년 대선공약에서 후퇴하였다고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문재인 후보는 목표 보장률도 제시하지 않았다. 아동진료비 국가책임제를 주장했지만 그 보장성 강화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목표보장률 80%로 비급여 포함 상한제에 대해 주장했다. 상한제 금액은 소득 수준으로 100-500만 원을 상정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7개 구간의 50만 원에서 500 만 원까지의 법정본인부담금 상한제와 유사하지만, 비급여를 포함하는 계획이 추진된다면 훨씬 나은 보장성 강화안이라고 볼 수 있다. 유승민 후보도 비슷한 80%대 보장률을 목표로 비급여의 급여화 등을 주장하고 본인부담상한제를 확대 적용안에 대해 동의하여 현재 전체 가입자의 1% 정도만 상한제로 보는 혜택을 대상 수준 10%로 확대하는 안을 제시하였지만 구체적이지 않아 평가를 내리기 어렵다. 홍준표 후보는 예비급여 포함 본인부담상한제를 200-300만 원으로 주장하였다. 예비급여는 문재인, 안철수 후보도 주장한 것으로 비급여에 대한 급여화 전략의 한 부분으로 대부분의 후보들이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심상정 후보는 ‘모든 의료비를 건강보험 급여로 전환, 미용, 성형 등에 대해서만 의료비 지원을 제외하는 네거티브 방식 도입’을 통해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를 주장해서 차별성을 보였다. 사실 비급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제대로 된 보장성 강화가 가능하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선별급여의 경우 높은 본인부담금뿐 아니라 여전히 의심되는 효용성 등이 문제이다. 따라서 비급여와 급여 진료의 구분을 이제는 명확히 하여 일본식의 ‘혼합진료금지’를 한국적으로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점에서 심상정 후보의 네거티브 방식 도입이 가장 구체적이다. 또한 심상정 후보만 ‘입원진료비부터 보장성 90%로 상향’ 및 ‘0-15 세 입원진료비 100% 보장’의 획기적 보장성 강화 안과 목표수치를 분명히 제시했다. 앞서 밝힌 네거티브 방식의 비급여 통제를 통해 건강보험 상한제 100만 원도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리하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안은 심상정 후보의 차별적이고 현실적인 보장성 강화안에 비추어 다른 후보들의 관습적인 방안들이 제시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문재인 후보는 2012년보다 후퇴한 안을 제시하고 있어 재고가 요구된다. ‘예비급여’에 대해서도 네거티브 방식의 명확한 혼합금지 등의 조항을 반영할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대선이 20여일 남짓 다가온 현재도 보장성 강화 공약을 명확히 제시한 것은 심상정 후보와 홍준표 후보뿐이다. 이는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요구에 대한 주요 후보들의 책임방기로 볼 수밖에 없다.

 

상병수당 도입

상병수당은 이번 대선에서 ‘기본소득’ 및 청년수당, 아동수당 등의 복지수당과 연계되면서 재조명을 받고 있다. 문재인 후보는 ‘논의 후 결정’이라고 밝혔고 안철수 후보는 ‘유보’를, 홍준표 후보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반면 유승민, 심상정 후보는 찬성입장을 보였는데, 유승민 후보는 산재보험과의 통합 등을 논의하며 명실상부한 상병수당 논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후보는 상병수당에 대한 입장은 보류하면서 저소득층에 대한 ‘재난적 의료비’ 대응 대책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원래 ‘재난적 의료비’를 보편적으로 막는 방법이 앞서 본 건강보험 보장성의 강화와 상병수당의 도입이다. 다시 말해 직접의료비(본인 부담금)를 낮추고, 아파서 줄어든 소득을 보전(상병수당)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병수당 도입은 유보적이면서 재난적 의료비에 대한 공약을 제시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현재 건강보험 누적 흑자가 20조 원이다. 이는 상병수당을 즉시 도입하여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따라서 각 후보들은 건강보험 흑자에 대한 보장성 계획안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공공의료 인프라 강화

공공병원 확충방안 공약은 후퇴했다. 과거 최소 30%까지 공공병상을 늘리겠다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선거 공약이었다. 그러나 공공병원 확충에 대해 대선 후보들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나마 문재인 후보만 보험자병원(요양병원) 확충을 제시하였고, 심상정 후보는 공공병상 필요도에 따라 지역거점 지방의료원을 단계적으로 확충하겠다는 공약이다. 현재 공공병원 병상 수 대비 10% 정도 밖에 되지 않고 2015년에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민간의료기관(삼성의료원)이 못하는 치료를 국공립의료기관에서 충분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병원 확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이런점에서 공공보건의료 인프라와 관련해서는 문재인, 심상정 후보가 그나마 낙제는 면했고, 나머지 후보들은 낙제로 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 및 시설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인력부족이다. 또한 현재의 공공의료기관과 인프라가 교육부(국립대병원), 지방의료원(지자체), 보건소(보건복지부, 지자체), 중앙의료원(복지부) 등으로 나누어져 있어 제대로 된 인력관리가 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일소하고자 최근 논의되는 것이 통합적인 공공의료인프라를 총괄하는 ‘공공 보건의료공단’이다. 공공보건의료공단과 관련하여 문재인 후보 측은 답변하지 않았고, 안철수, 심상정 후보 측은 찬성입장을 보였다. 유승민 후보 측은 장기과제로 밝혔다. ‘공공보건의료공단’은 장기적으로 통합적인 의료기관체계와 공공보건의료인력 관리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각 후보들은 현재 의료취약지 및 격오지에 부족한 공공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문재인 후보는 공공보건 장학특례를 제시하고, 안철수 후보는 공공인력센터, 홍준표 후보는 분만취약지 장학특례를 거론했다. 유승민, 심상정 후보도 이에 공감하고 있다. 모두 인력수급이 어렵다는 것에 대한 대응방안이나 장기적으로 장학 제도나 공공의료인력 교육기관만으로는 부족하며 장기적으로 공공의료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의료민영화/영리화 정책

대선 후보들의 보건의료 분야 공약에 대한 답변이 분명하지 않았다. 반면 의료민영화 사안은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분명한 반대 입장이 아니면 수동적인 긍정의 표현으로 응답하였다. 문재인 후보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대한 명확한 답변2)을 보내오지 않았다. 다만 의료민영화 부분을 제외하겠다는 입장은 분명히 했다. 규제프리존법에 대한 반대는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을 통해 분명히 하였다. 이외에도 박근혜 정부에서 시행된 각종 영리화 정책들(부대사업 확대, 임상시험규제 완화, 병원인수합병 추진)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반대)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문재인 후보의 4차산업 혁명 일자리 확충계획에 여전히 보건의료 부분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고, 이는 대체로 IT-의료연계 산업이거나, 바이오산업들이다. 산업발전의 측면 자체를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국민들의 건강과 안녕, 안전을 우선시하는 방향이 명확히 제시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의료민영화’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재차 요구된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규제프리존법을 찬성하며 보건의료산업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를 답습하겠다는 의지를 제시했다. 이 법은 의료 부분뿐만 아니라 환경, 교육, 개인정보 등 공공의 영역을 무분별하게 규제완화하는 것이다. 아직 공약집에는 규제프리존법에 대한 입장이 불분명하지만, 안철수 후보의 의료민영화/영리화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다.

 

심상정 후보는 유일하게 박근혜 정부의 의료민영화 사안에 대한 명확한 전면반대를 선언했다. 박근혜 정부가 허용한 국내 최초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허가취소 의사까지 밝혔다. 또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및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유승민 후보는 질의서에 답변을 하지 않아 확인이 불가능하다.

 

재정전략

지난 박근혜 정부 4년은 유래 없는 건강보험 흑자를 통해 무려 20조 원 이상의 준비금이 남았지만, 이를 전혀 의료비 절감에 쓰지 못했다. 특히 정부는 예산증대를 목적으로 가장 세수수입이 높은 수준으로 담뱃값을 올려 무려 4조 원 가량의 추가재원을 마련했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은 건강증진기금의 비율을 높임으로써 건강보험재정에 혹은 국 민건강에 기여하는 것이 옳았음에도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건강보험 부과체계 논의가 계속되었는데,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고지원이나 기업부담은 논외로 하고 가입자 간의 형평성 논의 조차 4년을 끌어서 최근에 복지부 안이 통과된 상태다.

 

따라서 각 후보들이 향후 보장성 강화 및 상병수당 도입, 공공병원 확충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미 남아있는 재원도 있기 때문에 이를 먼저 국민들에게 서비스로 돌려주고 다양한 재원마련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다.

 

재원마련과 관련하여 문재인 후보는 민간보험의 부당이익을 환수하고, 재정효율화를 우선하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심상정 후보 측은 보험료 인상도 고려한다고 밝혔다. 국고지원 관련해서 문재인 후보는 국고지원 사후정산제로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으며, 안철수 후보 측도 국고 지원 사후정산을 하고 이후에 국고지원 확대도 논의하겠다고 했다. 심상정 후보 측은 국민건강기금을 건강보험에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어느 후보도 사후정산을 제대로 하더라도 16.6%에 불가한 국고지원을 어느 수준까지 올리겠다는 주장은 없다. 또한 부과체계 개편 방향에 기업부담 확대를 위한 노동자, 기업의 분담비율 조절이나, 프랑스식의 대기업각출금 등의 논의도 없다. 반면 보험재정의 확충을 가입자 보험료로 하려는 주장이 있다. 물론 받는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이 확보된다면 보험료 인상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20조 원이 넘는 보험재정, 그리고 국고지원의 사후정산을 하지 않아 누락되는 매년 2조 원 이상의 재원 등을 고려하면, 건강보험 재정 전략에 대한 인식은 아쉬운 수준이다.

 

 

총평

 

이번 대선은 촛불이 만들어 낸 성과로, 매우 긴박하게 치러진다는 점에서 충분한 정책적 대비가 없었음을 일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 정책 공약은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기존 전략을 답습한 정도일 뿐 선제적 공약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2012년 출마했던 문재인, 안철수 후보는 보건복지 공약이 2012년에 비해서도 많이 후퇴했다. 특히 안철수 후보의 경우는 공공병원에 대한 확충을 약속했지만, 반면 공공의료가 아니라 규제프리존법을 지지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 고 있다.

 

거기다, 기존 목표 건강보험 보장률이나 목표 공공병상률 등의 목표치가 제시되지 않고 있고, 보편적인 보장성 강화방식인 본인부담상한제, 입원, 외래 등의 목표 보장성 설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만 심상정 후보만이 공약으로 제시했을 뿐이다. 치매 국가책임제, 아동치료비 국가책임제, 노인 외래 진료비 정액제 등 선별적인 공약들이 전면에 배치되었다.

 

상병수당의 경우 필요성이 강조되고, 보험재정의 여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공공보건의료인프라 확충계획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주거, 보육 등은 국민연금의 채권발행 등으로 복지공급을 통한 선순환을 고민하고 있는데, 보건의료 부분은 여전히 민간주도의 프레임을 깨려는 노력이 경미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시민사회단체들은 보편적 보장성 강화, 상병수당 도입, 공공보건의료인프라 확충 등과 같은 핵심 요구들을 수차례 요구해 온 것을 각 후보 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진일보된 공약이 나오길 기대하며 이번 대통령선거가 마무리되길 바란다. 그것이 이번 대선을 만든 촛불민심이다.

 


1) 문재인 후보의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는 각종 비보험을 대거 건강 보험 적용대상으로 포함하면서, 연간 본인부담 상한을 100만 원으로 인하하는 것, 2013년 전체 국민의 하위 50%에 대해 본인부담 상한 을 100만 원으로 인하하고 단계적으로 2017년까지 전 소득계층을 대 상으로 100만 원으로 인하 추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각종 비보 험 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서 ‘의료비 100만 원 상한제’를 시행 하는데 필요한 재정은 연 평균 8.5조 원

(http://www.theminjoo.kr/ policyBriefingDetail.do?nt_id=17&bd_seq=34131, 2012년 12월 14일 연간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 설명자료)

 

2)“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개정에 대하여, 의료 민영화 부분을 제외하여야하고 박근혜 정부가 과대 추계한 69만개 서비스일자리 창출 등에 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국민의 대표성과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전제 하에, 저임금 서비스산업근로자의 근로여건 및 임금상향, 서비스산업 부가가치 고도화를 함께 검토해야 본 법의 처리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2017년 4월 14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대한 문재인캠프의 입장을 묻는 질의서에 대한 답변

 



 

상병수당 도입의 필요성

 

정형준 | 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한국의 건강보험이 가진 선별성

한국의 건강보험은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에 직장건강보험으로 도입되었고 1988년에 전 국민을 가입 대상으로 하는 전국민건강보험이 시행되었다. 건강보험이 가입자 측면에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1977년 당시 선별적이고, 차별적인 각종 제도들은 지금까지 그 잔재가 남아있는데,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급여의 제한적 범위이다.

 

1977년 당시 박정희 정부는 국고지원을 하지 않고, 기업과 노동자들의 부담만으로 건강보험제도를 보충적으로 실시하려는 나머지, 건강보험 내에서 보장하는 급여 항목 외에 비급여 항목을 섞어 진료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또한 급여의 범위도 현물급여(의료서비스)에 국한하여, 원래 사회보험이 가진 질병으로 인한 소득감소에 대한 보상도 보장범위에서 제외하였다. 이는 결국 건강보험이 당연지정제를 통해 모든 의료기관에 도입 되었음에도, 빈자들과 부자들이 누릴 수 있는 서비스의 내용을 다르게 만들었고, 현금급여(상병수당 등)를 도입하지 않아 질병으로 인한 소득감소로 빈곤층이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다시 말하면 박정희 체제의 건강보험은 노동력 재생산이 가능한 계층의 노동능력 회복에 주된 포커스가 맞춰졌고, 노동시장 등에 다시 참여할 수 없는 만성질환자, 장애인 등에 대해서는 의료서비스 면이나 소득 면에서는 철저하게 외면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잔재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비급여 진료의 방치로 인해 보장성이 수십 년간 답보상태에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하여 여전히 가계부양자 등이 중병에 걸리면 빈곤층으로 몰락하기 일쑤이며, 국고지원액이 충분하지 않아 재정적으로는 계속 가입자의 직접부담을 늘리거나, 의료공급자를 쥐어짤 수밖에 없다.

 

이 중에서도 재난적 의료비가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은 사회보장제도로서 건강보험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기능을 복원시키고, 이제는 박정희의 잘못된 건강보험 유산을 청산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심각한 재난적 의료비 문제

<그림2-1>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의 재난적 의료비는 OECD 국가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대체로 본인부담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재난적 의료비가 많이 발생하는데, 우리나라는 높은 수준이다. 이는 단순히 낮은 보장성에 의해서만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요인들이 이 문제에 결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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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평균 보장성의 혜택이 주로 빈곤층이 아니라 부자들에게 집중된다는 점이다. 또한 진료비 상한제 등이 총 의료비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고, 급여범위만을 대상으로 하여 유명무실한 것도 큰 영향이다. 하지만 이상의 문제들을 논외로 하더라도, 현금급여가 없어서 소득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호능력이 전혀 없는 것이야 말로 재난적 의료비를 만드는 핵심 원인이 된다.

 

가계의 주 소득자가 중병에 걸리면, 직장가입자의 경우 한 두달의 병가를 통해 일부 소득이 보전되지만, 그 이후는 소득이 전혀 없는 상태가 된다. 또한 자영업자의 경우, 아픈 순간부터 재산정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때문에 <그림2-1>에서 보듯 한국보다 훨씬 보장성이 떨어지는 멕시코보다도 의료비로 인한 빈곤층 추락을 막지 못하는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소득감소에 대한 보장은 사실 OECD 국가 중 미국, 한국, 스위스를 제외하면 모두 실시하고 있다. 이를 다른 나라들에서는 질병수당(Sickness Benefit), 상병수당 (Invalidity Allowance) 등으로 부르고 있다.

 

 

상병수당이란 무엇인가?

상병수당에 대해서 사회보험을 거의 최초로 도입한 독일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건강보험 피보험자는 질병으로 근로능력상실이 되거나 병원, 예방 또는 재활시설에 입원해서 건강보험조합의 비용으로 진료를 받을 때 현금수당으로 보전하는 제도(독일 사회법전 제5편 법정 건강보험 제44조).”

 

한국이 상당부분 사회복지제도를 차용한 일본의 경우도 일본 건강보험법 제 99조에 “건강보험 피보험자가 요양으로 인하여 근로에 종사할 수 없을 때 표준보수일액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제도로 명시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사회보장법전에 “노동불능 상태 시작일로부터 일정기간이 경과한 후에 일일수당을 지급하(프랑스 사회보장법전 제L323-1조)”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아직까지 사회보험제도로 건강보험을 운영하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서는 기본적인 서비스로서 소득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사회보험이 초기에는 현물급여가 아니라 현금급여 중심의 조합 서비스였기 때문에 애초부터 필수적인 요소였던 측면이 크다.

 

사회보험제도로 건강보험을 운영하지 않고 국가의료체계(NHS)로 운영하는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영국, 스웨덴, 스페인, 이태리 등)의 경우도 상병수당은 실업급여보다 높은 수준의 소득보장제도로 유지된다. 영국에서 국가의료체계(NHS)를 도입하게 된 1942년의 비버리지 보고서는 “실업ㆍ질병ㆍ재해로 인해 소득이 줄어들었을 때, 정년퇴직으로 소득이 중단되었을 때, 주된 소득자가 사망하여 생계를 책임질 사람이 없어졌을 때, 출생, 사망, 결혼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이 지출될 때를 대비한 소득보장정책”으로 질병수당을 명시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보건의료관리와 별개로 사회보험청, 혹은 노동연금국, 노동사회부 등의 고용, 노동, 연금과 관련된 부분에서 이를 관리한다. 하지만 ‘구직노력’ 등이 없더라도 아파서 일을 못하는 경우는 소득의 일정부분을 그냥 보장해준다는 측면에서 사회보험의 상병수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미 1952년부터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을 통해 ‘상병수당’ 규정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를 각 국가에 권고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과 그간의 논의

한국에서도 1988년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고 200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상병수당의 도입논의는 계속되어 왔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공단 일원화를 주장했던 ‘의료보험 통합 일원화와 보험급여 확대를 위한 범국민연대회의’(의료연대회의)는 1995년에 이미 상병수당 도입을 장기과제로 상정했다. 당시에 이를 통한 재정추계도 실시하여 제시했는데, 당시 실시비용은 4천7백97억 원(93년 기준)1)으로 잡았다.

 

법적으로도 국민건강보험법 제50조 (부가급여) 조항에 대통령령으로 상병수당을 부가급여로 실시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떠한 정부도 대통령령으로 상병수당 지급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때문에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사회보장권 강화 측면에서 상병수당의 의무급여화를 통한 건강보험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또한 2010년 이후로 야당 국회위원들의 발의로 상병수당 도입법안도 국회에 제시되었다.

 

그러나 상병수당과 관련된 논의는 제대로 진척이 되지 않았는데, 이는 우선 건강보험재정의 빈약성, 그리고 우선순위에서 여전히 현물급여(의료서비스) 부분의 취약함이 영향을 주었다. 때문에 상병수당의 도입논의는 비급여로 상징되는 보장성 강화의 장애물 제거와 함께, 재정적으로는 국고지원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가입자 중심성 이탈등과 연계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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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수당 즉각 도입의 필요성

첫째, 앞서 보았듯이 현재 한국의 의료비로 인한 재난적 상황을 막기 위해서 상병수당은 당장 도입되어야 한다. 질병으로 인한 소득감소가 빈곤층 추락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이는 사회적 불평등의 가속화 뿐 아니라, 아예 재기불능상태를 만들어 자포자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 2월 온가족이 자살했던 ‘세모녀 사건’의 경우에 보더라도, 이들 가족이 빈곤층으로 추락한 결정적 이유는 12년 전 방광암으로 가장이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어머니인 박씨가 60세 나이로 큰딸의 당뇨 및 고혈압으로 인한 치료비를 부담하는 또 다른 의료비 문제가 가중되었다. 결국 큰 딸의 질환이 근로가 불가능한 수준임을 인정받지 못해 기초수급자가 되지 못하였고, 재기불능의 회의를 느낀 세모녀가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소득보전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의 문제로, 사회적 양극화를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정장치이다.

 

두 번째는 소득보존이 없어 안정적인 치료와 재활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충분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자집단은 의학적 고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와병으로 인한 소득대체 가능 여부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입원치료를 해야 하는 경우라도 주 소득자들(특히 독립 자영업자)은 외래치료를 선호한다. 따라서 재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 이는 빠른 사회복귀만큼의 재발 위험성을 높이고, 노령층의 만성질환군이 확대되는 문제까지 낳고 있다.

 

의료접근성에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경제적 요인보다는 의료자원의 배분문제가 고려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상병수당의 부재로 경제적 요인이 여전히 중요한 변수이다. 즉 소득보존이 가능한 계층과 아닌 계층의 건강불평등이 상병수당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고, 이는 날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 번째는 소득보전이 안 되는 관계로 빠른 치료, 수술적 치료 등 치료의학의 발달만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보았듯이 소득보전이 안되어 재활 및 사회복귀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으며, 이는 의학의 발전과정까지 왜곡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로봇수술, 통증치료에 이용되는 각종 시술 등이다. 이들 기법들은 실제로 수익성 때문에 선호된 측면이 크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절개부위가 적어 빠른 사회복귀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크게 부각되어있다.

 

병가 사용이 가능하고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일부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하고,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일용직 등은 모두 빠른 치료결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소득보전이 안되기 때문임은 자명하다. 주사치료 및 과다 약물로 빠른 치료를 추구하는 현재의 패턴은 한국만의 기형적 의료구조까지 만들고 있다. 따라서 적정진료 및 근거중심의학이 자리 잡기 위해서라도 상병수당의 도입은 절실해 보인다.

 

끝으로 상병수당의 부재는 민간보험까지 팽창시켜 불필요한 가계부담을 이중으로 늘리고 있다. 소득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정액보험(암보험, 질병상해보험 등) 가입자의 상당수는 질병으로 인해 닥칠 재정위기를 걱정해서 가입하고 있다. 향후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로 실손민간보험 시장이 축소되더라도, 상병수당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정액보험 시장은 여전히 그 규모를 유지할 것임을 시사한다. 상병수당의 도입과 보장성강화는 같이 가야만 하는 패키지다. 어느 한쪽만 강화한다고 해서 재난적 의료비 문제는 물론 민간보험문제 역시 해결할 수 없다.

 

 

비용과 소결

상병수당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은 언제나 비용문제였다. 건강보험 재정과 관련해서는 지난 10년간 거의 3배 가량의 팽창을 하였으나, 보장성 강화도 답보상태이고, 상병수당도 도입하지 못했으며, 제대로 된 건강보험 상한제도 도입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분석은 다각도로 필요하지만, 중요한 점은 재정적인 측면에서 비급여, 치료의학, 민간보험 팽창 등의 효과와 비교해 지금이라도 상병수당을 위시한 정책들을 도입하는 것이 당장의 적자를 고려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낫다는 점이다. 여기서 낫다는 것은 상병수당 도입의 이익으로 줄어들 민간보험료, 효과가 불분명한 고가치료의 배제 등을 고려할 때 장기적인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이러한 비용의 상당부분은 국가가 제대로 건강보험에 지불하지 않고 있는 국고지원을 통해서도 해결이 가능하다. 지난 10년간 국고지원 미납액은 무려 30조 원에 육박한다. 또한 비용을 계산해도 현재의 건강보험 20조 원 누적흑자에 비추어 볼 때 실현불가능 하지 않다. 2011년 당시 경제활동인구 대비로 산출하여 평균입원 기간 1개월을 대비하여 추계한 내용이 3조 원이었던 바 있다. 이를 최근 기준으로 다시 정리하면 3.5조 원-4조 원2) 정도로 추정된다.

 

따라서 건강보험 흑자 국면은 상병수당 도입의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현재 건강보험 흑자가 전적으로 가입자 부담의 가중과 보장성 악화에 따른 결과인 만큼, 조속히 의료비 절감에 사용되어야 할 필요도 있다.

 

상병수당의 경우 기존 신고소득의 70-80%정도를 보상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소득신고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자영업 및 임대업 등의 소득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세금, 보험료 등의 가계부담에 비해 얻는 이익이 작다는 판단 때문이다. 거꾸로 막대한 민간보험가입비용을 가계는 부담하면서도, 사회보험과 국가가 보장하는 복지는 신뢰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기현상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현금급여의 도입은 건강보험의 공적기능 강화 및 여타 사회복지 서비스에서의 사회적 수용성도 높일 수 있는 선순환 구조로도 작용할 수 있다. 조속한 상병수당의 도입을 기대한다.

 

<부록> 해외의 상병수당


○ OECD 34개 국가 중 스위스, 미국, 한국만이 공적 상병수당 제도가 없음(스위스는 선택적 보험, 미국과 한국은 제도 없음).
○ 상병수당의 형식으로서 건강보험 현금급여(독일, 프랑스, 일본 등)는 NHI에서 사회복지 프로그램(영국, 스웨덴, 캐나다, 스페인 등)에서의 지급은 NHS에서 주로 이루어짐.
○ 주요국 상병수당 현황
- 독일 : 임금의 75%에 해당하는 금액을 질병금으로 지급받음.
- 프랑스 : 노동자 및 이와 동일한 소득이 있는 경우(시간당 6.41 유로 기준, 시간당 약 9,922원)일 경우 최고 36개월까지 지급받음. --> 건강보험 전체 재정에서 7.8%가 상병수당 비용임(2004년 기준).
- 일본 : 피보험자가 노동할 수 없는 경우 지급되며 최고 1년 6개월한도. --> 지급률은 60%, 장기화 경우 장애연금으로 전환됨.
- 스웨덴 : 노동자와 자영업자도 적용대상이며 상병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지급함. --> 1988년 기준으로 GDP의 2.79%가 상병급여로 지급됨.
- 영국
◦상병수당(Invalidity Allowance) : 상병으로 인하여 28주 미만 취업할 수 없는 자에게 지급, 법정 상병급여 또는 상병급여 수급 28주 이후에도 질병 및 장애가 계속, 주당 66.75파운드(약 11만 5천 원) + 가급연금액(1인당 £39.95, 약 7만 원).
◦상병연금(Invalidity Pension) : 상병으로 인하여 28주 이상 취업할 수 없는 자에게 지급, 60세(여자 55세) 미만인 상병연금 수급권자 / 상병발생 후 가입가능 기간이 6년 이상 남아 있을 경우 / 상병연금에 추가로 지급, 40세 이하 주 £14.05/50세 이하 : 주 £8.90/·51세 이상 : 주 £4.45

 

 


 

1) 당시 전체 의료보험 급여비 2조7천억 원의 17.7% 수준이었음. 상병수당 급여율은 피부양자가 2명 이상일 경우 60%, 그 미만이면 40%, 최대급여기간은 6개월 정도로 의견제시.

2) 2016년 12월 경제활동인구 2,616만 명임. 2012년 기준 총 입원기간 중 31일이상은 31만 건으로 전체의 4.4%임. 도덕적 해이로 인한 증가를 고려하더라도 나이 등에 따라 장기입원 등이 현격하게 낮은 경제활동인구의 특성을 고려하면, 경제활동인구 중 1개월 이상 입원환자는 많아도 100만 명(4.4%는 115만 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됨. 여기에 직장인 월평균소득 260만 원의 80%선인 207만 원을 지급한다고 하면 2조(1개월이상 1개월 입원시)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며, 2개월 이상 유병률 등을 고려하면 약 3-4조 원가량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사료됨. 월평균소득의 60%선으로 설계하면 비용은 더욱 줄어들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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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준비금의 성격과 대안

 

정형준 l 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국민건강보험은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준비금) 제1항을 통해 “공단은 회계연도마다 결산상의 잉여금 중에서 그 연도의 보험급여에 든 비용의 100분의 5 이상에 상당하는 금액을 그 연도에 든 비용의 100분의 50에 이를 때까지 준비금으로 적립하여야 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현재 매년 누적되고 있는 건강보험 흑자의 다른 말이기도 하고, 건강보험 흑자가 ‘준비금’으로 적립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건강보험 준비금의 내용과 이를 둘러싼 각종 정책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살펴보고 현재시점에서의 대안들도 제시하려 한다.

 

건강보험 준비금의 역사

1988년 전국민 건강보험을 시행하면서 시작된 「의료보험법」시행령에서는 제46조(준비금)에서 지불준비금으로 당해 연도 보험급여비의 100%를 적립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험급여 관련 업무가 점차 자동화되고 체계화 되면서, 보험료징수 및 급여청구와 지급의 구조가 빨라졌고, 준비금규정이 과도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에 1994년 의료보장개혁위원회는 법정준비금을 1년 치 보험급여비의 50%로 낮추기로 결정하였다.

 

1998년부터 진행된 의료보험(이하 의보) 통합으로 2000년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족하였으나, 당시 의약분업을 둘러싼 갈등으로 의사폐업이 있었다. 이를 통한 3차례의 수가 인상여파 등이 겹쳐 2001년에는 무려 1조 8109억 원의 법정준비금이 부족하게 되었다. 당시 이런 적자의 원인은 의료수가인상 뿐만 아니라, 2008년 IMF구제금융이 맞물려 직장의보조합이 통합 전 자신의 적립흑자를 유용하면서 보험료를 거의 올리지 않은 영향과 기존 약국을 이용하던 환자들의 병의원이용 증가까지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2002년 7월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하 재정건전화법)」을 제정하여 국가는 매년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급여비용과 건강보험사업운영비의 100분의 40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고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하도록 하였다(제15조제1항). 또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급여비용과 건강보험사업운영비의 100분의 10에 상당하는 금액을 국민건강진흥기금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지원하도록(법 제15조 제2항 및 제3항) 하였다. 이 재정건전화법은 2006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게 되어 이후 5년마다 건강보험 국고지원논란을 불러일으킨 원인을 불러왔다. 또한 재정위원회의 보험요율 결정권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신설하여, 의료공급자와도 논의하는 전 세계에 유래 없는 기구를 탄생시켰다.

 

건강보험은 이후 단기적자와 흑자를 거듭하다가 2010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면서 현재 법정준비금이 무려 20조 원이 넘는 5년간의 흑자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건강보험 준비금 기준에서 본다면 보험급여비용(2014년 44조7500억)에 비춰 봐도 50%가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때문에 건강보험 흑자를 보장성강화 및 의료제도개편에 사용하려면 준비금 조항의 변경이 요구된다.

 

이는 그간 흑자분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보장성강화 요구에 보건복지부가 난색을 표명할 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준비금 50% 적립 조항 때문에 보장성강화에 흑자분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시작되고 있는 준비금을 둘러싼 논의들을 단순히 보장성 강화만을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건강보험 준비금을 둘러싼 최근 추이

정부는 2016년 3월 29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주재로 7대 사회보험(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이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정책협의회’를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기재부가 각종 연금, 기금, 공보험을 관할하려는 시도인데, 중요하게도 국민건강보험도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당시 기술된 내용을 살펴보면, 건강보험에 대해서는 자산운용 결과를 설명하며, ‘단기간에 적립금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기관’으로 묘사했다. 또한 건강보험을 포함해서 ‘해외, 대체 투자’등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즉 건강보험 흑자의 투자유용을 열어달라고 한 것이다. 이를 기화로 확인된 건강보험 준비금의 유용범위도 기존의 상식인 단기 투자상품이나 즉각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부가 정보공개청구에서 밝힌 MMDA, MMF는 현금성 자금성격이 강하지만 정기예금, 금전신탁, CD, 금융채권은 모두 1년~3년의 장기투자항목들이다. 거기다 이러한 투자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의 실주체인 가입자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다. 이는 모두 입찰 컨설팅회사의 자문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이 수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건강보험의 보험료율, 수가결정을 위한 환산지수, 급여범위 등등의 중요한 사안을 건정심이라는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결정하는 것에 비추어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관리하고 투자하는 일은 컨설팅회사의 자문에만 의존하는 것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또한 이런 투자의 목적이 건강보험재정확보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라기보다 단순 수익성 증가를 통한 재정건전화와 종국에는 이를 통한 국고지원 축소 시도임도 드러났다. 정부는 2017년 건강보험에 대한 재정지원을 법에 명시된 기대수익의 14%가 아니라 11%로 한정해서 제시했다. 때문에, 황당하게도 국고지원금 예산액이 현재 지급된 2016년도 7조 975억 원 보다 2천 211억 원 감축된 6조 8천 764억 원이 되었다. 이러한 국고지원 감축은 건강보험 도입 후 초유의 사태이다. 이에 대해 정부관계자가 언론에 밝힌 내용은 14% ‘상당’ 이므로 꼭 14%를 지원할 필요가 없으며, 현재 흑자국면에서 더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이는 전국민 건강보험 출범시 지역가입자 부담의 50%를 국가가 지원하면서 출발했던 근본정신과 앞서 본 재정건전화법의 취지 등에 비추어 매우 우려스러운 태도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의 재정안정성을 순수하게 가입자들이 낸 보험금에 의존하게 된다는 점에서 건강보험의 공적기능의 약화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현재 건강보험 준비금을 둘러싼 논의들은 건강보험의 남은 재정을 금융학적 수익관리를 통해 조금이라도 불려서, 국고지원 축소와 연계시키려는 시도와 맞물려 있다.

 

준비금 운용 규칙 도입 과 준비금 비율 조정 시도

여기에 정부의 사회보험 재정건전화 시도와 맞춰서 건강보험에서는 두 가지 시도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는 직접적인 준비금 비율 축소를 위한 논의이다. 이는 작년 10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정책국 국장(강도태)이 언론사와의 간담회에서 제기한 바 있고, 올해 8월에는 민주당 전혜숙 국회의원이 50%를 15%로 축소하는 법안을 입안하였다. 다른 하나는 같은 시기인 올해 8월 그간 규정이 없던 ‘준비금 관리 및 운영 고시(안)’을 보건복지부가 제시했다는 점이다. 정부가 초안으로 제시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준비금의 관리·운용 방법 등에 관한 고시안’은 고시안의 내용보다도 그 시점이 주목할 만하다.

 

「국민건강보험법」 제38조(준비금) 제 3항에는 “준비금의 관리 및 운영 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다.” 고 명시되어 있었으나 무려 10여 년간 운영에 관한 보건복지부장관의 훈령·예규·고시 등의 행정규칙이 제정되지 않은 바 있다. 때문에 20조나 흑자가 쌓이고 나서야 고시안을 제시한 것 자체가, 향후 준비금운용을 적극적인 금융투자쪽으로 확대하려는 게 아닌지 의구심이 들도록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볼 때 준비금을 둘러싼 이해관계들은, 준비금 자체의 투자가능성, 준비금 비율을 낮추고 남은 자산의 운용가능성 등이 얽혀 있다. 때문에 단순히 준비금 비율을 낮춘다고 하더라도, 여타 투자운영으로 전용될 가능성 등도 열려 있는 셈이다. 때문에 준비금을 둘러싼 논의에서 몇 가지 중요한 지점을 우선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준비금 비율 축소의 전제조건과 대안

준비금 적립은 원칙적으로 불가피하다. 가장 중요하게는 의료기관에 지불하는 후불대금과 건강보험료 징수 사이의 시간차에 대비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비금의 존재 이유는 건강보험의 효율적인 운영과 파산을 막는 것이지, 적립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최근 들어서는 과거보다 직장가입자비율이 증가하여 건강보험의 수익이 더욱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고, 의료기관 정산 등 재정 지출과정도 시간차가 줄어들고 정확해지고 있다. 현행 준비금 50%는 이런 점에서 너무나 과도하다. 해외의 경우도 대만, 일본은 1개월-3개월분, 독일, 벨기에는 25% 정도로 규정되어 있다. 한국의 과도한 준비금 조항은 보장성 강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건강보험 흑자의 명분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준비금을 유용하려는 시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단순히 준비금 축소만으로는 보장성 강화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높은 본인부담금과 재난적 의료비가 존재하는 현재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대안을 축소되고 남은 준비금으로 즉시 사용하려는 계획이 필요하다.  현재 이미 누적 20조 원을 돌파한 건강보험 준비금은 정부가 국민 의료비 절감에 해당되는 보장성 확대에는 소극적이면서 보험료는 지속적으로 인상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20조 원 이상의 준비금을 두고, 여전히 수많은 국민들은 병원비 때문에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법률에서 5% 이상에 해당되는 금액을 50% 이내에서 준비금을 적립하라는 조항의 취지가 반드시 50%를 채워야 한다는 것이 아님에도 재정 운영의 주체인 정부는 이를 빌미로 보장성 확대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은, 준비금 비율 축소만으로는 자동적으로 보장성강화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의지와 대안이 없다면, 단순히 준비금 비율을 축소하는 것은 거꾸로 금융투자 등의 활용되는 상황까지 닥칠 수 있는 바, 적극적 보장성 강화에 대한 안이 우선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제시되어야 준비금 비율축소의 명분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준비금 비율 축소가 실행되면, 누적준비금 조건이 충족될 것이다. 정부의 최근 추이로 보아 이를 빌미로 국고지원축소의 명분을 더욱 강화할 수도 있어 보인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공적보험임에도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가입자의존성(수익자부담원칙)을 고수한다. 2014년 기준으로 가입자가 부담하는 보험료 비율은 87%이고, 정부는 국고에서 고작 13%만을 부담했다. 그나마 정부가 법에 명시된 국고지원금을 제대로 지원한다면 정확하게 16.6%가 되어야 하지만, 예상금액을 낮게 산출하여 막대한 금액을 매년 누락해왔다. 그 결과 한국은 OECD 국가에서 국고지원을 가장 낮게 하는 공보험 보유 국가이다.

 

이처럼 낮은 수준의 국고지원이 지속되는 가운데 준비금비율을 낮춰, 준비금총액이 충족되면, 현재의 5년마다 국고지원특별법을 만드는 상황에서는 국고지원 축소의 가능성도 높다. 사실 일반회계에서 매년 결산해서만 지원한다면, 복지긴축을 주된 목표로 상정하는 정부 하에는 보장성 강화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따라서 국고지원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국고지원액 명문화)이 준비금 비율 축소의 기본 전제라 하겠다. 그리고 이미 박근혜정부가 작년에 제시한 암울한 장기재정전망에 비추어서도 국고지원 명문화는 건강보험 재정지속성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준비금 비율 축소여부와 상관없이 금융투자 등에 대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규제강화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 제 38조 2항에서는 “준비금은 부족한 보험급여 비용에 충당하거나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때 외에는 사용할 수 없으며, 현금 지출에 준비금을 사용한 경우에는 해당 회계연도 중에 이를 보전(補塡)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즉 지금 건강보험 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장기금융상품 운용을 금지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

 

현재의 준비금 내에서도 장기금융상품 운용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준비금 축소는 더 광범한 투자활용에 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건강보험 흑자가 준비금 기준을 넘어가더라도 금융상품등에 투자될 수 없다는 규제조항 등이 준비금 축소와 함께 같이 논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매년 국민들이 준비금 이상 남는 재정여력을 놔두고도 보험료를 낼 이유가 하등 없다. 독일 같은 경우 준비금이 남아있을 경우, 보험료 인상을 방지하는 장치가 있는데, 이를 참고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사실 이런 준비금 축소 및 건강보험의 준비금 운영 관련한 논의 및 과정에서 건강보험의 실제 주인인 가입자(국민)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여론수렴 과정과 전문가 및 시민사회단체와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건정심과 재정운영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들이 언론과 연구결과로 우선 소개되는 것이 합리적인 거버넌스 과정으로 보인다.

소결

현재의 준비금과 관련된 논의는 일방적인 정부 주도의 과정으로, 준비금 비율축소의 목표와 전망에 대한 논의는 부재하다. 이는 최근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보험의 금융투자, 건강보험 국고지원 축소시도와 맞닿아있다. 따라서 정부는 건강보험 가입자 의견을 반영하여 누적흑자 20조 원의 재원으로 빠른 시일 내에 구현가능한 보장성 강화안을 우선 제시해야 한다. 또한 건강보험 국고지원 확립(상시명문화)을 통한 재정확충 방안을 제시하고, 향후 준비금 상향부분의 재정여력에 대한 금융투자 등의 운용지침까지 우선 밝힐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단체 등도 기존의 보장성 강화 및 국고지원 확충의 원칙을 지키면서, 향후 건강보험 흑자분에 대한 금융투자 등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요구되는 시점이며, 이를 통해 명확한 준비금 비율 축소 논의를 더욱 공론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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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재정과 건강보험흑자 17조 원

 

정형준ㅣ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정부는 작년 말 무려 40여년 뒤의 재정전망을 발표했다. 이른바 2060장기재정전망이다. 최근 1, 2년 사이의 재정전망도 틀리기 일쑤인 정부가 장기재정전망을 제대로 내놓았을리가 만무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내용의 방향성이다. 정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연금, 건강보험 등 모든 사회복지재정은 심각한 적자 혹은 재정파탄으로 예상된다. 결국 정부의 장기재정전망은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사회복지재정을 줄이거나 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긴축재정의 근거를 위한 ‘맞춤형 전망’ 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반복지적 흉측한 사고는 돈문제로 환원되는 순간, 이상하게도 복지의 원칙과 당위성 그리고 그에 따른 전망이 아니라, 반복되는 재정논리로만 귀착되곤 한다. 재정프레임의 최대 단점은 재정전망의 옳고 그름보다는 누군가 돈을 더 내야 한다는 ‘비용전가’의 프레임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는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 서비스를 받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일반을 사회복지에 그대로 대입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사실 사회복지는 지불능력에 따른 서비스제공이 아니라, 보편적 서비스제공을 통한 재분배를 목적으로 한다. 시장경제가 부익부 빈익빈의 소득불균형뿐 아니라, 기본소득, 교육, 연금, 의료, 주거 등의 기본적인 사회서비스까지 불균등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복지가 요구되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는 시장이 못하는 것을 정부가 행하는 재분배정책이 복지다. 따라서 복지란 비용지불능력에 상관없는 서비스를 공공이, 그 주체는 정부가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런 근본적인 원칙을 무너뜨리려 반복지세력은 ‘재정프레임’ 을 주구장창 들이댄다. ‘돈도 없는데 복지를 어떻게 하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반복지우파들의 공세에 복지세력들의 대응은 공격적이지 않고 다분히 수세적인 것이 현실이다. 

 

우선 근본적으로 흑자재정은 아니더라도, 균형재정은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경우가 있다. 현실에서 경제상황이 좋고, 흑자재정이 가능한 국면이라면, 균형재정론을 지지하는 사람도 복지확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지만,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는 균형재정론을 주장하는 경우에, 추가적인 비용마련을 위한 대안, 즉 돈 마련까지 본인의 머리로 생각하려 한다. 물론 간단하게 생각해서 이것은 일단 복지를 확대하고 발생한 적자분은 재분배적 차원으로 누진적으로 부담한다는 큰 그림만 그리는 분들도 있겠지만, ‘균형재정’의 굴레는 점점 더 많은 변수들과 숫자들을 고려할 필요를 요구한다.

 

특히 ‘인구절벽론’의 경우 노인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한국에서는 향후 재정프레임에 미칠 영향이 엄청날 듯하다. 노동인구는 줄고, 부양해야 하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는 누가 봐도 밝은 전망을 제시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한국이 장기적인 저성장 국면에 들어선다는 전망이 가중되면서 ‘균형재정’의 시각은 ‘복지확대 = 재정확보’ 로 나아갈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특히 반복지세력의 세대갈등론(젊은 세대의 희생으로 연금, 복지 등 노인세대를 부양하게 된다는 논리)에 공감하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

 

건강보험은 2009년까지 근근이 재정수지를 맞추고 있었다. 2005년 일시적으로 1조 5천 억정도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이후 흑자는 지속되지 못했다. 보험요율이 10여 년 간 2배가 인상되었으나 보장성강화도 미미했다. 이 때문에 보장성강화 같은 핵심 의료복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재원마련이 절실했다. 일부에서는 국민들의 보험료를 인상해 보장성을 높이자는 운동이 제기되었다. 기존 사회운동이 주장한 ‘국고지원확대, 기업부담확대’ 주장으론 부족하다는 근거였다. 그러나 내부논리를 더 살펴보면 이는 건강보험 재정내의 ‘균형재정’ 뿐 아니라 국가복지재정 전반의 ‘균형재정’을 상정한 경우였다. 국가 일반회계에서의 지원확대는 타 복지영역의 축소, 혹은 확대를 막는다는 논리가 뒷받침 된 것이다.

 

그런데 2011년부터 건강보험은 흑자가 되었고 그 흑자는 매년 늘어갔다. 처음에는 1조 원 규모였으나 2013년 3조 원, 2014년 4조 6천억 원, 2015년에도 4조 원이 넘는 무려 6년간 흑자국면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 누적흑자는 자그마치 17조 원에 이른다. 1년에 2조 원이면 15세미만 아동의 모든 의료비를 면제할 수 있으며 1년에 3조이면 입원비 본인부담금을 모두 없앨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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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돈이 남았으나, 막상 이 돈을 보장성확대에는 단 한푼도 쓰지 못하고 있다. ‘돈이 있으면 복지확대가 된다’는 막연한 생각은 현실에서는 적용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 술 더 떠 정부는 건강보험의 흑자를 빌미로 2016년 만료인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예상금액의 20%)를 매년 평가해서 지원하는 일반회계지원으로 바꾸려 시도 중이다. 일반회계 지원이 되면 건강보험재정은 더욱 취약해지는데 말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보면, 장기적자전망 때문에 흑자를 쓰지 말고 적립해두어야 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적자나 균형재정일 때는 ‘돈이 없어서 복지확대는 불가능’하고, 재정여력이 있을 때는 ‘미래에 돈이 고갈될 테니 복지확대는 불가능’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결국 이런 논리라면 재정학적인 측면에서는 복지확대가 영원히 불가능하다. 만약 건강보험이 적자라도 일단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의 획기적 축소, 비보험의 급여화, 어린이, 노인 무상의료는 시행하자고 복지운동이 단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성공여부는 알 수 없지만, 좀 더 분명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복지는 이미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사회정의이며 당위라는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건강보험의 흑자를 둘러싼 논의와 싸움들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복지는 ‘균형재정’의 덫을 과감하게 극복해야만 이룰 수 있다.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인구구조 및 소득구조까지 악화되는 상황에서 복지세력이 재정적자를 감수하는 전략을 세우지 않고선 모두가 바라는 복지를 그 모두의 것으로 돌리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정부는 ‘균형재정’을 이야기 하면서 국민개개인의 부채는 끝도 없이 늘리고 있다. 포대 하나에 2조 원 가량 하는 사드배치까지 거론하고 있다. 개인은 빚져서 살라고 하면서, 나라는 돈이 남아도 안하는 복지, 결국 복지는 ‘균형재정’ 에 따른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내가 살고 싶은 나라, 내가 꿈꾸는 국가'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대선 기획 '100인의 편지'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은 '열린 기획'으로 시민기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차기 정권에 하고 싶은 말, 바라는 바에 대해 적어 기사로 보내주세요.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넘어 '이게 나라다'라는 새로운 지향점을 여러분과 함께 열어나가겠습니다.[편집자말]

'4대 중증질환 국가보장 100%'는 박근혜를 당선시킨 보건의료 핵심 공약이었다. 이 공약의 의미는 다층적인데, 우선 국가가 의료를 책임진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즉 기존의 한국 의료체계에 국가 책임이 결여되어 있다는 스스로의 반성이 들어있었다. 

다른 하나는 100%라는 지점인데, 이 부분은 공적 보험이 있지만, 높은 본인부담금, 비급여의 존재로 국민 부담이 높다는 것을 반증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의료의 보편적 국가보장 100%'가 아니라 '4대 중증질환'만 언급한 것은 우선순위에 따라 중증, 돈이 많이 들어가는 진단에 대해서 우선 적용하겠다는 의미였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일 오전 강원도 강릉 택시부광장 유세에서 권성동 의원과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와 함께 유권자들에게 손을 들어보이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날 박 후보는 "녹색 시범 도시로 추진중인 강릉을 지능형 전력망 거점으로 지정하고 동해, 삼척 지역과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원주-강릉간 복선철도 건설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공약을 제시했다.
▲  지난 2012년 12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강원도 강릉 택시부광장에서 유세하는 모습. 선거운동원이 '암 진료비 국가부담 100!'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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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공약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집권 1년 차에 이미 완전 누더기가 되었다. 간병비는 일찌감치 비용에서 제외되었고, 비급여도 차등 병실료와 선택진료비는 일부만 절감되었다. 공적 보험의 보장 범위도 국가 보장 100%가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로드맵을 따라가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4대 중증질환' 단어에 집중해서 기존 로드맵에 따르면 혜택을 보는 여타 질환자들의 초음파 급여화는 축소되기까지 했다.

공약 폐기도 심각한 문제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박근혜 정부는 이런 공약 일부도 지킬 수가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기반 자체가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의료산업화'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의료산업화는 박정희의 유산

혹자는 '박정희가 건강보험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는 박정희 정부 시절(1977년) 건강보험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만 사실이다. 실제로 건강보험은 당시 국민의 요구와 기업의 요구가 결합된 산물이었다. 

도리어 박정희도 자신의 공약사항이었던 건강보험 도입을 무려 10여 년간 미뤘다. 거기다 박정희는 건강보험에 단 한 푼의 국고 지원도 할 생각이 없었다. 왜냐면 그에게서 건강이란 개개인의 국민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소양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국가주의'는 국가가 책임지는 개념이 아니라, 국가의 헌신하는 개인들의 집합을 뜻했다.

암튼 국고 지원이 없었던 관계로 박정희 표 건강보험은 500인 이상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에게만 가입이 허용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상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진료의 범위도 의료보험 적용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거의 반반 수준이었다. 정말 꼭 필요한 절실한 진료의 일부만 의료보험이 적용되었다. 이것이 현재도 지속되는 급여와 비급여 구분의 시작이다.

또한 의료보험 제도를 만들어서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할 공급은 철저하게 시장원리를 따랐다. 때문에 직장건강보험이 도입되고 난 다음해(1978년)에는 대규모 민간병원의 개원 러시가 불붙었다. 일부 논문은 1961부터 1977년까지의 병원투자 규모를 이때 단 1년 만에 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암튼 건강보험을 만들면 의료서비스를 공급할 병원은 최소한 공공에서 책임져야 했는데, 박정희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미 1970년 삼성이 만든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등이 들어서 있었고, 민간 대학병원과 곳곳의 민간 중소병원이 성행하고 있었다. 병원은 박정희에겐 애초부터 돈이 되는 사업에 지나지 않아보였다.

그런데 유신 시절에 엉망으로 만든 건강보험, 의료공급체계가 아직까지 한국의 의료체계의 근간이 되고 있다. 물론 1987년 민주화 투쟁과 노동자 대투쟁은 건강보험의 대상을 임금노동자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1990년대의 시민, 노동단체의 요구로 건강보험도 단일보험자로서 통합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도 경험하듯이 급여와 비급여가 혼용되고, 민간병원들이 확장되며, 의료가 돈벌이인 상황은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

그 아버지에 그 딸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많은 국민이 희생을 치르고 나서 통과를 치르겠다는 얘기인지 이것은 정말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들"이라며 야당의 테러방지법 반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비판했다.
▲  지난해 2월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전 대통령.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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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서비스 산업'으로 한국의 성장을 바꿔야 한다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이론이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신지식인'이니 IT-소프트웨어 발전 등에서 시작했지만, 점차 확고한 수익성이 발생하는 공공 부분을 민영화하는 요구로 나아갔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요구를 제대로 구현하여, 민간이 도로, 철도, 수도, 가스 등에 진출할 수 있는 틈을 열어주었다. 박근혜 정부는 아예 철도, 수도, 가스를 상당 부분 민영화해냈다. 이런 과정에서 병원으로 돈을 벌겠다는 부자들의 욕심도 덩달아 커졌다. 그래서 투자이윤을 배당받을 수 있는 '영리병원'을 전면 허용하자는 주장이 진행되었다.

이는 국민 반발로 경제자유구역에 한정된 외국인 영리병원 허용으로 축소되었다. 이런 '외국인 영리병원'조차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도 진료할 수 있게 규제 완화되고, 의사들도 내국인이 하게끔 끊임없이 규제 완화 되었다. 이런 '영리병원'을 국내에서 최초로 허용(제주도 녹지병원)한 것이 박근혜 정부다.

이외에도 시종일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의료를 집어넣어 기획재정부 마음대로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청년 일자리 확대를 운운하면서 '원격의료', '의료기기 규제 완화', '국제의료' 등을 부르짖었다. 국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효과인 '영리자회사', '부대사업확대'도 밀어붙였다. '병원인수합병 허용'을 통해 국가에 기부채납된 비영리병원의 자산을 사적재산으로 전락시키려고도 했다.

문제는 이 모든 의료영리화, 산업화의 대가는 국민이 지불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의료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비율(재난적의료비)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독보적 1위였다. OECD 국가 중에 본인부담금이 높은 1, 2위 국가였고, 공적보험이 있는데도 별도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세대가 80%를 돌파하는 후진국형 보험제도가 유지되고 있었다. 공공의료기관이 전체의 5% 밑으로 추락했고, 때문에 2015년 메르스 사태일 때 제대로 대응할 자원이 없어 고통받았다.

여기에 국민은 과잉진료 논란으로 병의원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고, 여전히 고가진료(비급여)의 유용성을 스스로 인터넷이나 주변 사람들의 정보로 확인해야 한다. 아마도 공적보험이 있는 나라 중에 이렇게 '건강정보'가 TV와 인터넷에 범람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더 특이한 현상은 건강보험의 급여범위를 늘릴 재정은 충분했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의 흑자는 놔두고 국고지원 축소

박근혜 정부 기간 건강보험은 매년 4~5조의 흑자를 기록해 현재 20조 원 이상의 막대한 건강보험 흑자가 남아있다. 상식적인 정부라면 이 흑자를 모조리 국민의 의료비 절감에 썼어야 했지만, 박근혜 정부는 그렇지 않았다. 도리어 2023년이면 재정 재앙이 닥친다는 공포 마케팅으로 남아도는 재원조차 적립해서 쌓아둬야 한다고 겁박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건강보험이 흑자이니 국고지원금은 축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물론 박근혜 자신이 1% 부자들이 이용하는 '차움' 의원을 이용하고, 비선 의료진의 별도 진료를 받으며, 무엇보다 효과도 불분명한 각종 주사치료 및 미용시술에 빠져있었다는 점에서 볼 때, 의료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천박하고 비합리적인 사고는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만든 엉망인 민간중심의 한국 의료체계를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건 나만의 과도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왜냐면 대부분 국민이 현재 의료제도의 근본적인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1977년의 의료체계의 특징(민간중심 의료공급, 선별적 건강보험, 공적책임이 없는 수익자 중심 재정부담)이 계속 확대 재생산된 것이 현재의 의료산업화 과정이고, 의료영리화과정이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그 막장의 끝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이제 박근혜를 끌어내린 시점에서 보건의료 적폐의 제1 과제는 보건의료의 유신잔재(1977년 체제)를 일소하는 것이고, 여기에는 의료의 공공성 회복, 건강보험 재정의 공적  책임 강화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4대 중증질환 국가 보장 100%'같은 공약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실제로 국가가 재정과 의료 공급에 책임있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 모여 '보건의료인력 확충, 최저임금 1만원인상,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결의대회'를 마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광장까지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지난해 6월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보건의료인력 확충, 최저임금 1만원인상, 노동법 개악 저지를 위한 총력투쟁결의대회'에서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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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이 물론 한 번에 이루어지기는 힘들다. 우선 당장 남아도는 건강보험 흑자 20조로 비급여를 없애고, 민간 병원을 공공화하는 데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의료비가 없어서 진료받지 못하거나, 의료비 때문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비급여가 포함된 건강보험 상한제, 그리고 비급여 없는 제대로 된 건강보험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 

사실 이 정도는 누구든 집권하는 세력이 의지만 있다면 당장 가능하다. 왜냐면 당장 영국이나 스웨덴처럼 병의원을 공공화하자는 주장이 아니고 있는 재원을 재배치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박근혜 정부 집권 다음 날 한국 최초로 공공병원(진주의료원)을 폐원한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당시 "공공의료는 박정희 때 시작된 좌파정책"이라는, 기가 막히는 '박정희 색깔론'까지 들먹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박근혜를 계승하는 자유한국당의 대선후보가 될 듯하다. 이런 과정을 보고 있자니, 과거 홍준표가 막말을 하다 보니 실수했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라고 느껴진다.

아마도 한국의 강성우파들은 애초에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박정희가 공공의료를 완전히 잘라버리고, 건강보험이 아니라 미국 같은 민간보험 천국을 만들지 않은 것이 불만인 건 아닐까? 그리고 우익들은 박근혜가 그런 역할을 해낼 줄 알고 지지했던 것이 아닐까? 이것이 박근혜를 끌어내린 만큼 유신체제와 유신 망상도 걷어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병원에 게시된 입원료 본인부담 인상 공지문
▲  병원에 게시된 입원료 본인부담 인상 공지문
ⓒ 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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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결국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입원료를 인상했다. 정부는 2016년 7월 1일을 기해서 입원료 본인부담률을 현행 20%에서 30%까지 인상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장기입원 유인요소를 줄이겠다는 빌미로 15일 이상 입원하면 본인부담금을 25%로, 30일 이상 입원하면 30%까지 인상하는 안을 강행했다. 

이 안은 원래 최초로는 2015년 2월에 입법예고된 바 있다. 당시 초안은 무려 40%까지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고, 이에 대해 수많은 국민과 노동시민단체들이 반대한 바 있다. 메르스 감염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2015년 5월 중순 보건복지부는 이 시행령 관련 공청회를 했는데, 당시 시민단체, 의사협회, 병원협회 등 모두가 입원료 인상에 반대할 정도로 이 시행령을 동의한 전문가, 시민, 단체는 없다. 입원료 인상을 고수한 것은 오로지 국민들을 쥐어짜려는 박근혜 정부뿐이었다.

때문에 정부는 애초 계획인 2015년 하반기에 입원료 인상 계획을 시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수많은 의료민영화를 포함한 규제완화와 노동법개악시도, 국정교과서 강행 등을 하면서, 결국 소리 소문 없이 2015년 12월 국무회의에서 입원료 인상안을 슬그머니 통과시켰다. 

당시 한국 최초의 영리병원인 '녹지병원'을 허가한 상황이라서, 입원료 인상은 보건의료시민단체들 사이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수많은 폭탄들을 터뜨리는 와중에 이제 국민들이 입원시 내야 할 부담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나마 막무가내 박근혜 정부가 국민들의 저항과 반대로 40%까지가 아니라 30%까지만 인상하기로 한 것에 고마워 해야 할까? 사실 입원료 부담금을 인상하여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 정부의 반서민, 반복지 노선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반복지, 반서민 정책

우선 입원료 부담이 무서워 퇴원할 환자들은 단순히 떠올려봐도 가난한 환자들이다. 하루 몇 천 원의 본인부담금이 증가해도 부담이 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가난한 환자들은 간병해 줄 사람도 마땅치 않고, 소득이나, 연금 등이 없어서 밥 해 먹기도 빠듯한 현실에 놓여 있다. 또한 사회에 돌아갈 곳도 없어 병원에 울며 겨자먹기로 입원해 있는 경우도 많다.

물론 한국의 의료제도는 OECD국가 대부분처럼 본인부담금이 없거나 낮은 구조가 아니라, 미국, 멕시코와 견줄 정도로 의료보장도 형편 없어 입원해 있더라도 부담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나마 빈약한 여타 사회복지와 견주어 건강보험이 나은 제도이기 때문에, 빈곤층이 의존하게 된다. 

이를 다른 사회복지제도의 제반 조건은 외면하고 단순화시켜, 장기입원자를 쫓아내야 할 사람들로 보는 것은 정부가 해야 될 일이 아닐 것이다. 작은 돈에 민감한 빈곤층의 의료이용만 자제시키면 이는 의료 이용의 명백한 '부익부 빈익빈'만 부추기는 것이고, 돈이 없으면 아프지 말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여기다, 병원공급 측면에서 봐도, 가난한 환자들의 빠른 퇴원은 입원초기에 검사 및 수술로 높은 이익을 챙기는 대형병원들의 수익률만 극대화 시킬 조치이다. 병상 회전율을 높이면 입원하려는 대기환자가 있는 대형병원들만 행복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초기 수술이나 검사보다는 수술 후 입원치료가 중심인 중소병원들의 경우는 입원 본인부담 인상으로 병실가동률이 떨어지게 된다. 사실상 단기간 입원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대형병원이 유리한 조치이며, 대형병원의 수익률이 올라갈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입원료 인상은 건강보험의 보편적인 보장성을 악화시키는 조치라는 점이다. 현재 무려 30조(누적흑자 17조, 정부 사후정산 미납금 12조 3천억)가 넘는 건강보험 흑자 국면에서 입원비 본인부담금을 낮추지는 못할 망정, 올리는 것은 다름 아닌 돈이 남아 돌아도 환자들은 쥐어짜겠다는 일관된 긴축정책의 반영이다. 또한 이런 긴축을 통해서 국고지원 미납금은 물론이요,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책임을 면하려는 시도이다.

박근혜 정부는 의료복지 확충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건강보험 보장성을 높이겠다며, 4대 중증질환의 경우 국가보장을 100%까지 하겠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공약은 누더기가 되었지만, 거꾸로 역행하면서, 국민들의 여론까지 무시하는 행위는 기가막힐 따름이다.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이야기하면서 민간보험은 방치

정부정책의 모순은 또 있다. 정부는 본인부담금을 올려서 장기입원은 막겠다면서, 민간의료보험은 그대로 놔두고 있다. 15일 이상 입원한 환자의본인부담금을 올린다 해도, 현행 법정본인부담금까지 보장하는 민간실손보험이 있다면, 효과는 거의 없다. 

실손민간보험에 가입한 환자라면 법정본인부담금인상 만큼의 부담을 민간보험이 지면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서 본인부담금을 인상하면 할수록 민간보험이 보장할 시장이 확대된다는 뜻이다. 또한 민간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장기입원으로 인한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이 정책이 정말 장기입원을 막기위한 것이었는지도 되돌아보게 된다.

거꾸로 이 같은 보장성 악화안들은 가뜩이나 국민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으로 민간보험에 가입한 국민들에게 건강보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부추기게 된다. 또한 환자들에게는 민간보험 가입을 종용하는 셈도 된다.

만약 정말 환자들의 부담률을 올려 불필요한 장기 입원을 막을 요량이라면, 실손민간보험이 건강보험의 법정본인부담금을 보장해 주는 것은 최소한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민간보험의 시장만 넓혀주는 셈이 되는데 말이다.

때문에, 이번 입원료 인상강행은 몇 번을 생각해도 국민들과는 하등 상관 없는 부자들을 위한 반서민정책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정말 끝까지 대형병원과 재벌보험사를 위한 나쁜 정부로 남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이런 나쁜 정책들을 지속하지는 못할 것이다. 수많은 국민들, 특히 환자들의 분노가 쌓여갈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8월 9일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언론들은 ‘문재인케어’라는 말을 붙여 ‘보장성강화안’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보장성강화안을 발표한 점은 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간 보장성 강화는 매우 중요한 의료복지과제였음에도 대통령선거가 지나고 집권하게 되면 후순위로 밀리거나, 실제 이행되지 않는 공약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박근혜정부는‘4대중증질환 국가책임 100%’를 핵심공약으로 당선되었으나, 집권 1년도 안되어 본인의 약속을 누더기로 만든 바 있다. 때문에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의료복지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정책안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집권말인 2022년까지 목표보장율을 70%로 정했는데, 이는 OECD 국가평균인 80%보다도 한창 떨어지지만, 더 안타까운 점은 이명박정부가 제시한 75%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도 2022년이 되면 현재 63.7% 수준의 보장성이 70%가 된다는 것인데, 이는 쉽게 설명하면 평균적으로 그동안 자신이 부담하던 36%의 본인부담율이 30%가 된다는 것으로 실제 평균경감율은1/6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즉 평균적인 의료비 부담의 경감율 18%에 지나지 않는 계획에 너무나 큰 광고를 하고 있다는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건강보험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병원 내 어린이학교에서 어린이 환우와 색칠공부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오후 건강보험보장강화 현장 방문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병원 내 어린이학교에서 어린이 환우와 색칠공부를 하며 대화하고 있다.ⓒ뉴시스

보수언론과 정당의 재정고갈론은 허구

물론 이를 위해서도 무려 31조의 재원이 투자되는데, 현재의 재정상황에 비추어 이 정도 목표가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등의 보수정당은 연일 ‘문재인케어’의 재정문제를 거론하며 꺼꾸로 이정도 보장성강화안에 대해서도 재 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실제 31조의 재원투자는 매년 31조를 투자하는 확대안이 아니라 무려 6여년간의 누적투입금액일 뿐이다. 가장 많은 투입을 하는 것인 2018년인데, 추가투입은 고작 3조2천억수준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실제로 임금인상 및 보험료 사각지대해소로 인해 매년 자연증가분이 수조원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국고지원비율을 줄여왔지만, 자연증가분으로 인해 2013년에서 2014년으로 갈 때 3조3천억, 2015년은 전년대비 3조원가량이 증가했다. 당시에는 흑자로 인해 보험요율인상이 거의 없었는데도 말이다. 사실 2010년 건강보험 총재정은 34조원가량이었지만, 2015년에는 53조원을 넘어섰다. 만약 문재인정부가 최저임금을 약속한대로 1만원까지 올린다면 자연증가분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가장 많은 추가지출을 고작 3조2천억정도만 계산한 ‘문재인케어’의 재정추계는 사실상 매우 째째한 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단순계산도 못하는 바보처럼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과 보수정당이 재원마련에 대해서 주된 비판지점을 삼는 이유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에도 여타 복지담론에 대한 공격처럼 ‘세금폭탄론’을 들이대려는 심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보수우익의 공격이 ‘문재인케어’의 째째한 재정계획까지 합리화 해줄 수는 없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정부의 적폐 중 하나인 건강보험이 무려 21조이상의 누적흑자상황이라는 점이다.

박근혜의 건강보험 적폐

박근혜정부가 남긴 21조 흑자는 건강보험 경영을 잘한 결과가 아니라, 국민들이 낸 보험료만큼 의료비 절감을 받지 못한 결과다. 즉 서비스에 비해 비용을 많이 지불한 셈이다. 특히 한국의 건강보험은 철저하게 의료서비스 중심이기 때문에 현금을 적립할 이유가 전혀없는데도, 박근혜정부는 준비금명목으로 국민들을 쥐어짜서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결국 집권말에 본색을 드러냈는데, 박근혜정부 기획재정부는 사회보험 재정건전화라는 논리로 건강보험 흑자분도 국민연금처럼 돈놀이에 이용하려 했다.

따라서 박근혜 적폐를 청산하려는 문재인정부는 최소한 건강보험누적흑자 21조원을 수년내에 사용하는 보장성강화안을 제시했어야 했다. 또한 박근혜정부는 건강보험 국고지원을 축소해왔는데, 이를 정상적으로 모두 사후정산해도 10조가량을 더 내야 한다. 즉 박근혜적폐로 인한 가용금액만 31조원가량이 있다. 여기에 앞서 말한 자연증가분이 매년 3-4조, 그리고 앞으로 제대로 낼 국고지원금 추가금이 매년 2-3조, 또한 마지막으로 문재인정부가 주장한 소득주도성장론에 따라 순증할 보험금이 매년 1-2조가량 될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31조의 흑자분에 매년 6-9조가 자연증가되는 상황이므로, ‘문재인케어’의 계산법에 따르면 총 투입재정을 누적 100조 넘게 잡을 수 있다. 그런데 고작 70% 목표치에 한해 순증분 3조수준으로 누적 31조 투입만 광고한 것은여러가지 우려를 낳을 수밖에 없다. 사실 현재의 지출규모를 유지한다면 노령화를 고려하더라도 막대한 흑자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의료산업화의 밑밥

우선 제일 큰 우려는 남은 재정의 상당부분이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이 아니라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 등의 자본으로 빨려들어가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문재인케어’의 발표에 주식시장은 두 가지 반응을 보였는데, 보험사의 주가가 떨어진 반면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 주가가 올라간 것이다. 보험사 주가가 떨어지는 건 보장성강화로 인해 보험가입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 그런데 왜 제약, 바이오, 의료기기의 주가로 올라갔을까?

우선 문재인케어의 보장성강화안은 예비급여라는 비급여를 급여화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약제도 급여범위에 넣는다. 문제는 예비급여는 일반 건강보험 급여처럼 입원 20% 수준의 보장율이 아니라 50,70,90%의 높은 본인부담을 가지게 되고, 본인부담상한제에서도 제외된다. 사실상 가격을 결정하는 것외에는 별로 국민들의 의료비 절감에 도움이 되는 제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예비급여가 된다는 것은 사실 국가로부터 일부 효과라도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즉 예비급여의 포함된 기존 비급여 검사, 약제, 치료재료 등은 안정적인 시장이 열리게 된다. 여기다가 예비급여는 높은 본인부담율과상한제 제외로 인해서 건강보험총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하다. 따라서 책정된 가격도 높을 가능성이 크다. 보통 건강보험 급여를 정할 때 기존 가격보다 낮은 가격이 결정되는 이유는 공익적 고려와 사용빈도 증가를 예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비급여는 그런 과정이 기존의 건강보험 급여만큼 강하게 작용될 가능성이 낮다.

사실 로봇수술 같은 고가장비가 이용되는 수술이 예비급여가 된다면, 로봇수술 기계가 더 팔릴 것은 자명하다. 고가의 면역항암제등도마찬가지다. 때문에 의료기기 및 제약회사들은 ‘문재인케어’에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의료복지선진국들OECD 국가는 이를 어떻게 해결할까?

문제인 케어에 비판적인 보수 언론
문제인 케어에 비판적인 보수 언론ⓒ조선일보 인터넷 캡처

의료공급의 공공화

우선 유럽국가들은 병원의 대부분이 공공병원인 점도 있지만, 입원에 대해서는 총액계약제나 포괄수가제로 추가적인 행위가 있더라도 병원이 돈을 벌지 못하게 막고 있다. 가까운 대만도 병원에 대해서 이미 총액계약제를 실시한다. 동네의원이 담당하는 1차 진료도 환자등록을 중심으로 돈을 받는 인두제를 시행하거나, 한국과 같은 수가제도를 운영하더라도 일본처럼 비급여를 섞어 진료할 수 없는 ‘혼합진료금지’제도를 이용한다. 여기에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전국민주치의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네의원과 클리닉이 외래진료를 하고, 병원은 입원진료만 전담하는 임무분담도 명확하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한국처럼 의원과 병원이 무차별적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최소한 지역별로 공공병원이 거점병원으로 있어서, 돈이 없어도 진료해주는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문재인케어’에는 이런 의료공급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방향성은 전혀 제시되고 있지 않다. 지불제도 개편과 관련해서 ‘신포괄수가제’의 확대 정도만 언급했다. 노무현정부가 제시했던 공공의료 30% 확충이나 지역거점 공공병원 설립, 공약사항이었던 건강보험공단 산하 병원 설립도 제안하고 있지 않다.

사실 앞서 이야기한 재정계산, 목표 보장율 같은 것들은 틀릴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공공성을 확보하는 비전과 전략은 이제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과제다. OECD 최저수준의 공공병상 수준, 미국보다 더 시장화된 의료공급 등은 일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따라서 대통령의 이름을 붙일 정책이라면 의료공공성을 확보할 비전과 전망을 보여줘야 했다. 끝으로 공공의료를 중심에 둔 주치의제, 지역공공병상 확충이 빠진 이유가 혹시나 제약산업, 의료기기산업, 의료산업체의 확장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지도 걱정스럽다. 여전히 의료부분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추진하면서 주장하는 보장성강화안이 제대로 나올 리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케어’라는 대통령의 이름을 붙인 정책이라면 ‘의료산업화’가 아닌 ‘의료공공화’라는 명확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  2014
  •  2014.07.10 
  •  985

요양병원의 실태와 개선방안

 

정형준 l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문제의 시발점 - 민간 운영 요양병원 100%

 

2004년 114개에 불과했던 요양병원은 2008년 692개로 증가하고, 2013년에는 1161개로 급증하였다. 특히 2002년에서 2008년까지 정부는 중소병원의 경영난과 노인인구의 급증을 이유로 민간요양병원에 많은 지원 을 하였다. 정부는 애초부터 공립요양병원을 늘리기 보다는 민간병원의 요양병원으로의 전환을 주된 정책으로 삼았으며, 이 때문에 2008년이 되어서는 초기 목표치 이상의 요양병상이 확보되었다.

요양병상의 필요에 의해 난립한 민간요양병원에 대해 공적규제는 거의 없었다. 엘리베이터기준, 화재안전시설기준, 병상기준등도 문제가 발생한후 땜빵식으로 매년 추가되는 형국이다. 병원비도 처음에는 장기입원환자의 입원료 체감제를 기존의 건강보험기준보다 낮게 적용하도록 변경하였으나, 의료비 급증과 본인부담확대를 막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뒤늦게 2008년부터 요양병원에 대해서는 일당정액제 를 실시하여 의료비 통제에 들어갔다.

이 과정을 보면, 정부가 요양병상 확대에 사용한 방식은 그간의 한국의료체계를 도입한 방식과 똑같다. 민간에 인센티브를 주어 공급의 대부분을 책임지게 하고, 추후에 문제가 발생하면 통제책을 조금씩 마련하는 방식이다.

물론 요양병원의 초기 도입당시 공공요양병원을 지자체별로 확보하려 하였고, 현재 전국에 약 70여곳의 공공요양병원이 있다. 그러나 이 조차도 사실상 민간요양병원과 다르지 않다. 우선 현재 공공요양병원은 전부 민간위탁 운영되고 있다. 지자체는 ‘노인전문병원설치 및 운영조례’를 제정하여 시도립 또는 시군구립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의료법인이 해당 부동산을 지자체에 기부채납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지자체는 이들에게 노인전문병원 운영을 위탁하는 방식이어서 사실상 민영화한 공공의료기관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러한 위,수탁이 수십년의 계약유지를 전제로 하고, 지자체는 포괄적인 감독권만 행사하고 있어 사실 이들 병원이 자체운영규정을 마련하여 지자체의 승인을 받기 때문에, 사업내용에 있어서도 공공성을 찾기 어렵다. 그리고 여타 공공병원의 위탁과 마찬가지로 시설공사와 의료장비 대여 외에는 재정지원없이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무늬만 공공요양병원이라 볼 수 밖에 없고, 수탁자의 경영방침에 따라 운영이 좌우되고, ‘돈벌이’를 우선하게 되는 상황은 민간요양병원과 동일하다. 특히 ‘공공요양병원’이라서 더 믿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충족되지 못하고 역으로 ‘공공’이란 타이틀이 이들 위탁 병원경영에 도움이 될 뿐이다. 올 4월에 있었던 청주시노인전문병원 파업은 병원측이 인력충원없이 간병인 3교대 전환 근무제를 도입하면서 촉발되었고, 병원장에 대한 배임혐의도 제기되었다. 또한 청주시가 ‘청주시 노인전문병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에 맞지 않게 수탁자격이 없는 자에게 병원운영을 위탁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청주시장은 소극적 중재에 나서는 것 외엔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수익성이 최우선이 된 요양병원

 

따라서 현재 한국에는 민간이 운영하는 요양병원만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민간요양병원이 갖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첫째는 수익성을 병원경영의 제 1 목표로 두게 된다는 점이다.

병원이 돈을 더 벌기 위해서는 환자들에게 돈을 많이 받거나, 병원의 비용을 줄이거나 해야 한다. 즉 수익성을 위해서는 필요에 의한 진료보다는 돈이 되는 진료를 하게 된다. 그러나 요양병원은 지불제도가 일당정액제이고, 가난한 장기요양환자가 주된 대상이다. 때문에 극소수 요양병원이 비보험진료등을 하는 시도를 할 뿐 수익성 증가는 환자 한명한명에게 많은 돈을 받는 방식이 아니라, 입원환자수를 늘리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일례로 최근 인천의 한 요양병원이 서울역과 영등포역 등에서 노숙인들을 꾀어 입원시킨 뒤 건강보험공단과 정부에서 돈을 받아낸 일이 드러났다. 이 병원은 무려 입원환자의 42%가 노숙인이었고, 노숙인들이 의식주가 불안정하다는 점을 악용해 “숙식제공” 등을 빌미로 입원을 시키고, 놀랍게도 전체 병원 매출의 66.8%를 이들로 채웠다.

반대로 환자유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 환자들은 배제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대상이 에이즈환자이다. 전국에 1300개에 달하는 요양병원중에 에이즈환자의 입원을 ‘허용’하는 요양병원은 한군데도 없다. 민간이건 공공이건 요양병원들은 에이즈환자가 입원하면 다른 환자들이 입원을 꺼리게 되어 수익이 떨어질 것이라고 보고 아예 에이즈환자의 입원을 거부한다.

또 다른 방법으로 요양병원이 수익성을 높이는 경로는 비용을 줄이는 방법인데, 인력을 최소한 고용하거나, 비숙련인력을 고용하는 방법 등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요양병원의 의료 인력은 고령이거나 비숙련간호인력등이 많고, 유연노동이 가능한 노동자들이 많게 된다. 이는 요양병원에서 의료의 질을 크게 하락시킨다. 최근 벌어진 장성의 요양병원 화재참사에서 알 수 있듯이 충분한 의료 인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기인한다. 비용절감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려 하기 때문이다.

요양병원의 경우 환자가 줄어 병원경영이 어려웠다는 2013년에도 최고 연 223억9509만원의 매출, 18억4608만원의 당기순이익, 8.2%의 수익률을 거둔 경우가 있었고, 대체로 7-8%의 높은 수익률을 거두고 있는 걸로 보인다.

 

적정진료 모델자체가 없는 요양병원

 

진료나 약물치료, 처치, 검사, 그리고 입원에 이르기까지 의료에서 중요한 개념은 적정수준을 찾는 부분이다. 어느 정도까지 약물을 투여할 것인지, 어느 정도 상태까지 입원을 시킬 것인지, 이러한 기준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제시해야 ‘의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의료시스템은 이러한 적정모델을 제시할 곳인 공공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하여, 현재도 각종 의료영리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환자들은 받지 않아도 될 검사나 시술을 받은 게 아닌지 반대로 돈이 없다고 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는 게 아닌지 찜찜하기 일쑤다. 그나마 급성기 치료는 대학병원이나 소수의 공공의료기관을 통해서 적정진료의 모델이 일부는 제시되어 있다.

요양병원은 반면 민간중심의 의료공급체계로 인해 적정진료모델이 전무하다. 만성요양환자에 필요한 처치나 인력배치 등은 최소한의 기준만 있을뿐, 적정 모델이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 때문에 모조리 민간이 주도하고 있는 현재의 요양병원 시스템에서는 수많은 문제점과 사건사고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고작 문제점이 드러나면 땜빵식으로 대처하는게 유일한 대응이었다. 더구나 의료법에 요양병원에 대한 규정이 1994년에 처음 명시되었는데 20년이 지나는 동안 아직까지도 요양병원이 어떤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지 정립되지 못했고, ‘병원’인지 ‘수용소’인지 분간이 안 된다는 지적까지 피할 수 없는 지경이다. 때문에 최근 들어 옴진드기 감염, 결핵등이 요양병원에 퍼지고 있기도 하며, 기본적인 감염질환 관리까지 엉망인 상태다.

 

그럼에도 요양병원으로 몰리는 이유

 

그럼에도 한국의 낮은 사회복지수준은 울며 겨자 먹기로 요양병원으로 노인들을 몰아넣고 있다. 현재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8%대로 OECD 국가 최고이며, OECD 평균인 12.4%와 비교할 때 충격적이다. 이 때문에 노인들이 아프면 자식들의 허리가 휘고, 그나마 간병비나 병원비를 낼 수 있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일반병원으로는 갈 수가 없다. 또한 독거노인의 경우 밥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는 정도의 도움만 있으면 된다고 해도 어딘가 입소하거나 입원하는 게 나은 게 된다.

이때 어떤 곳으로 가는 게 더 경제적으로 나은 선택이 되는지는 여러 가지로 고려를 할 수 있으나, 그나마 본인부담금 20%만 내면 되는 국민건강보험에 의존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가장 낫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우월성보다는 다른 복지제도(기초연금, 주거시설, 상병수당, 퇴직연금, 지역사회시설 등)의 부재로 인해 거의 유일한 사회보장제도인 국민건강보험으로 운영되는 요양병원으로 노인들이 몰리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악용하여 민간의료기관은 돈벌이에 열을 올리게 된다.

이 때문에 한국사회의 복지공백과 건강보험에 의지하는 민간의료기관은 서로 공생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민간의료기관이 복지센터처럼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기존의 급성기 병원의 팽창, 고비용구조로의 의료양태 변화와도 관련이 있지만, 요양병원은 노인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온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여기에 간병은 비용과 인력 모두 철저하게 공적영역에서 제외되어 있어, 간병서비스는 환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철저하게 결정된다. 추가적으로 요양병원 환자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요양병원에서는 비숙련, 저임금 간병인을 고용한다. 물론 간병인들의 노동조건도 심각하게 열악하다.

 

가난할수록 사회와 격리되는 곳, 요양병원

 

이런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의 요양병원이다 보니, 입원한 사람들도 사실 대안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퇴원을 해서 외래로 치료 받거나, 집에서 안정가료를 해도 되는 사람들조차 요양병원이 경제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정말 경증이고 요양병원에 입원할 돈도 없다면 요양원으로 가겠지만, 요양원의 상태는 더욱 열악하기 때문에 그런 선택도 쉽지 않다. 미친 듯이 상승한 전․월세비, 높아진 물가등이 이런 현상을 가속화 시킨다. 급성기 병원에서 더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에는 종합병원의 높은 병원비와 추가비용 때문에 사실상 치료를 반쯤 포기하면서 요양병원으로 오게 되는 경우도 많다.

즉 한국의 요양병원은 오로지 경제적이유 때문에 선택되는 곳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 때문에 환자들의 자율성도 침해되고 사회복귀프로그램도 제공되지 못하며, 환자들도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을 전전할 뿐 사회로 복귀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환자인권은 물론, 환자 하나하나가 상품처럼 거래되는 형국까지도 가게 된다. 점점 더 요양병원 자체가 사회와 ‘격리된 시설’처럼 운영된다.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사람들이 질환의 중증도 보다는 개인의 가난, 간병인력의 부재, 사회적지원의 부재, 기본복지와 소득의 부재등이 주된 이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대안 – 공공화

 

정부는 그간 수많은 요양병원의 문제점을 알고도 제대로 된 대응은커녕, 시늉만 내는 경우가 많았다. 도리어 민간의료기관의 수익성을 유지하거나, 민간의료기관의 권한을 보장하려는 시도 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만약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공적통제조차 전혀 없는 요양병원은 어찌 될까? 에이즈환자를 배제한 요양병원들, 장성 요양병원 화재참사, 노숙인을 유인한 요양병원사건, 청주시 노인전문병원 파업 등은 시작에 불가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그나마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속히 공공요양병원을 확충하는 것이다. 최소한 권역별, 지역별로 공공요양병원을 건립하거나, 기존의 위탁된 병원을 직영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공요양병원을 통해 적정프로그램을 제시하여, 민간의료기관에 모범을 제시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올바른 방법이다. 물론 근본적인 한국의 복지지형이 변화하지 않고서, 요양병원 쏠림현상을 해결하고, 적정진료를 제공하는 것은 미봉책에 끝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폭주하는 민간요양병원문제를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만65세 노인이 2020년에 15.7% 2030년에는 24.3%가 되며 그 속도는 OECD국가중 최고로 빠르다. 지금 요양병원의 공공화에 실패할 경우, 이후에는 더 큰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http://www.gunch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689


건강보험 흑자와 복지축소[논설] 정형준 논설위원
정형준  |  akai07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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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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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 흑자가 2014년 말까지 12조원을 넘었다. 작년 한해에만 4조원의 흑자가 또 발생했다. 흑자의 원인을 다층적으로 분석하면 여러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있겠지만, 간단히 보면 경제위기로 인해 국민들의 의료이용이 줄거나 비용지출이 적은 쪽으로 이동한 것이 크다. 즉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남겨진 흑자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쉬쉬하거나, 대안논의가 거의 없다.

우선 정부가 2월 3일 발표한 중장기 보장성 강화안을 보면, 대략적인 건강보험예산 사용내역이 나온다. 연평균 1.3조(공약이행사항 제외 시 연 3500억 원 수준) 정도의 예산만 건강보험 재정에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 해에만 4조 원의 흑자가 났고, 만약 이런 의료이용행태가 유지되면 올해도 4조 가량의 흑자가 발생할 것인데 말이다. 즉 계속 엄청난 흑자를 내겠다는 이야기다.

원래 건강보험재정계획은 지출과 수입이 일치하게 세워야 한다. 건강보험은 매년 전년상황을 고려해 보험요율 및 수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부의 이번 계획은 이해할 수 없다. 근데 여기서 잘 봐야 할 지점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2일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건강보험 재정지원 만기도래('16년 말)에 대비하여 재정지원 방식 등을 재점검"을 언급했다.

실제로 2016년까지 국민건강보험재정 지원이 명시되어 있을 뿐, 지난 법안 도입 때(2010년)도 국고지원을 줄이려 한 세력이 많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국고지원을 축소할 것을 시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계속 저축하면 국고지원금 축소의 명분이 커지므로, 정부는 남는 건강보험 흑자를 쓰지 않을수록 이득일 것이다.

건강보험통계연보를 보면 건강보험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73.6%에서 2005년 이후 80%를 넘어섰고, 2012년에는 85.7%로 증가했다. 즉 국고 지원 비율은 계속 줄어들었고, 노동자•서민의 부담으로 보험 재정이 메워졌다. 사실상 복지긴축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병원들은 이런 흑자 국면에서 최대한 자신의 몫을 늘리려 한다. 대표적으로 3대비급여 해결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기준병실확대와 선택진료비 축소건은 조정되는 만큼 이상을 보상받았다. 보상액이 과다하다는 비판이 있는 정도다. 여기에 상대가치점수 조정을 앞두고, 전반적인 재정순증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수가인상협상과는 별개로 병원이 수가항목조정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국면이다.

그리고 그간 비용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각종 항목 등도 급여범위로 이참에 집어넣으려 한다. 물론 정부는 저축을 하고, 정부지원을 줄일 궁리중이라서, 의료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주려 하지는 않는다. 의료계가 원하더라도, 의료이용이 증가하거나, 비용이 급증할 사업은 제외한다. 대표적으로 노인본인부담금 정액 상한선은 올리지 않는다. 여기에 입원일수와 법정본인부담금 비율을 연동하는 개악안까지 입법예고했다. 모두 국민들의 병원이용을 어렵게 하고, 치료비의 국민부담을 증대시키는 조치들이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가고 있다. 건강보험재정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국민들의 입장은 반영될 경로도 없다. 부자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병원을 이용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병원 이용을 점점 더 자제하게 되는 구조다. 사실상 부자들에게 유리한 의료제도인 셈이다.

따라서 의료복지와 관련해서는 재정흑자에도 현재 긴축이 추진되는 형국이다. 그리고 긴축의 칼날은 서민과 빈곤층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진보’세력의 대응은 변변치 않다. 건강보험 흑자에도 강하게 복지확대를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복지를 재정 탓으로 돌리는 정부여당의 주장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증세운동까지 전개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건보재정이 많이 남아도, 왜 쓸 곳을 정하지 못할까? 재정확충을 해도 어떻게 사용할지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을까?

현재 흑자하의 의료긴축상황이 보여주는 지점은 복지는 결국 돈 문제가 아니고, 세력문제(‘정치’문제)라는 점이다. 돈이 없어서 복지를 못한다는 주장에 진보는 동의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보험흑자를 보장성 확대로 이끌 운동이다.<끝>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http://omn.kr/bs4e


의료민영화를 전면 추진하던 정부가 이제는 건강보험 내의 의료비 부담 확대까지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5일 보건복지부가 입법예고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그것이다. 개정안을 통해 정부는 불필요한 장기입원 유인을 줄이기 위해 입원일수가 15일이 넘으면 현행 20%인 법정본인부담금을 30%로 올리고, 30일이 넘으면 40%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환자 부담을 늘리는 방식으로 빠른 퇴원을 종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건강보험 흑자가 12조 8천 억 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입원비를 늘리는 정책으로 간다는 점 또한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내 본인부담금은 20%인데, 높은 수준이다. OECD에 속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가의료제도(NHS)를 도입해 입원에 대한 본인부담금이 없다. 영국이나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이에 속하는데 우리나라처럼 사회보험을 사용하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상황도 우리나라보단 나은 상태다. 프랑스나 일본도 입원법정본인부담금 요율이 우리나라와 같이 20%지만, 프랑스는 30일이 넘으면 면제가 되고 일본은 총 금액이 6만엔이 넘으면 면제다. 대만의 경우도 총의료비 본인부담이 전년도 소득의 6%를 넘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장기입원이 어렵다. 최근 정부가 제출한 자료만 봐도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우선 16일에서 30일 동안 입원하는 환자의 비율이 전체 입원환자의 10% 정도이고, 30일 이상 입원하는 경우는 4%도 되지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특히 경제위기와 더불어 소득감소가 가팔라진 최근엔 비용이 저렴한 요양병원을 찾거나 조기 퇴원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켜 적정입원일수를 유도하겠단 정부의 시도는 아파도 돈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악화시킬 것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입원시 법정본인부담금 인상이 아니라 전면 인하다. 기존의 부담금을 낮춰 의료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가 예로 든 대만과 비교해도 한국 현실은 암담

정부는 이번 발표를 하면서 입원일수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올라가는 해외 사례를 들며, 미국과 대만을 언급했다. 입원일수에 따라 본인부담금이 올라가는 나라들이 많지 않은 이유는 사회보험이나 국가의료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들에선 장기입원문제를 환자들의 부담 차등화로 해결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예로 든 미국, 대만과 비교해도 한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대만의 경우 원래 비급여진료가 불가능하다. 또 입원을 하더라도 총액예산제 등의 지불제도로 사실상 법정본인부담금 외에는 의료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거기다 우리나라와 달리 입원본인부담금조차 10%이다. 비급여문제를 차치하고라도 한 달 이상 입원해야 20%로 인상되어 한국의 입원부담금 수준이 된다. 이외에도 대만에는 총 의료비 본인부담상한제가 존재하는 등 한국하고는 비교가 불가능한 의료 보장수준을 갖고 있다. 미국도 만 65세 이상 전액 무상의료인 메디케어에서 그것도 60일 이상 입원 시 추가부담이 발생한다. 

찾기 어려운 외국의 예와 비교해 이미 높은 수준인 기본본인부담금(20%)이나 만연한 비보험진료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거기다 불필요한 장기입원의 경우에도 병원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고스란히 그 부담을 지우려는 것은 반서민적 정책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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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대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관련, 박근혜 선본 공약집.
ⓒ 박근혜 선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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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정안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2015년까지 4대 중증질환 보장성을 비급여 포함 95%까지 높이겠다고 밝혔다. 약속대로라면 차등병실료와 선택진료비 그리고 비급여진료, 법정본인부담금 모두를 포함해서 5%를 넘기면 안 된다. 물론 2013년에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4대중증질환에 대해서도 환자 부담을 이전보다 25% 정도 경감하는 수준으로 변경하는 등 공약을 누더기로 만들면서 이런 기대는 무너졌다(관련기사 : '박근혜 공약' 이래서 사기다). 근데 이제 망가졌다고 완전히 망가뜨리겠다는 것인가?

이번 정부의 안대로 하면 30일만 산정특례(희귀난치성 질환과 중중질환자들을 대상으로 본인부담금을 경감해주는 제도)가 적용되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환자도 한 달 이상 입원하면 본인부담금이 40%까지 올라간다. 정부가 보장성을 올린다고 했던 4대 중증질환에서도 환자 부담이 늘어나는 괴이한 정책이다. 

게다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뇌졸중환자의 경우 재활치료 등으로 대부분 한 달 이상 입원을 한다. 물론 국민들은 잘 몰랐지만, 박근혜 정부가 약속한 '4대중증질환'에는 애초 뇌수술을 하지 않는 뇌졸중 등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4대중증질환의 보장성을 높이겠단 박근혜 정부의 말만 믿고 장기간 입원했다가는 입원비 증가로 의료비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환자의 입원비를 올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애초 약속한 4대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에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건강보험재정 국고지원 축소, 진정한 복지긴축

사실 진주의료원이 폐원될 때부터 이런 상황이 예측되긴 했다. 즉 정부는 복지를 축소하고, 비용은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가 건강보험의 누적흑자다. 건강보험은 박근혜 정부 들어 무려 8조 6천억 원(2013년 4조, 2014년 4조 8천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마땅히 지출해야할 의료복지를 제공하지 않았음의 반증이다. 거기다 수입과 지출이 일치해야 하는 건강보험재정계획을 고려할 때 박근혜정부의 의료정책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정상적인 정부라면 이를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고 빨리 시정해야 했다. 그런데 도리어 국민의료비를 증가시키는 입원비 인상정책을 내놓다니... 더구나 정부는 건강보험이 흑자를 기록하는 와중에도 건강보험료는 계속 올렸다. 즉 증세는 하면서, 복지는 축소하는 게 의료복지영역에서는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서민증세, 반복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이보다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는 없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막대한 건강보험 흑자를 빌미로 정부가 충당해야 하는 국고지원금을 2016년 이후 축소할 요량인 듯하다. 건강보험재정의 국고지원 축소야 말로 진정한 복지긴축이다. 

한국의 허술한 복지제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건강보험에 의지하도록 만들고 있고 재가요양이나 지역재활센터 등도 턱없이 부족하다. 즉 전체적으로 복지의 확충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장기입원 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말이다. 

그리고 환자부담을 올리기에 앞서 병원 개혁과제인 병원인력충원, 병상규제, 지불제도개선등이 우선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당장 정부가 추진해야 하는 것은 비급여 문제해결과 입원 법정본인부담금을 현재 20%에서 10%이하로 경감해 국민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는 정책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복지확충이 아니라, 복지축소를 획책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복지 축소를 재정절감의 문제로 치환하려 한다. 만약 이런 주장이 틀렸다면 왜 12조 8천억 원이나 남는 건강보험재정을 뒤로하고 의료비를 올리려는 시도는 무엇인가? 정부는 지금이라도 입원료 인상시도를 철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서민증세'와 '반복지'의 끝에 결국 국민적 '정권퇴진' 요구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입니다. 이 글과 비슷한 내용을 토대로 24일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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