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가짜약 인보사 사태는 한국의 의약품 관리와 허가 체계 전반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우선 이 약은 핵심 성분이 무려 17년간 달랐지만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외에서도 서류로만 심사를 한다면서 교차확인을 의뢰조차 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입을 닫았다. 정부, 학계, 기업, 병원 모두 느슨한 점검 과정을 유지했다. 인보사 관련 논문, 연구용역, 정부의 각종 지원 가운데 단 한 곳이라도 제대로 점검하고 확인했다면 ‘가짜약’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가 과정도 석연치 않다. 이 약은 유전자치료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애초부터 1년간 통증 개선 효과로 허가를 받았다. 표준치료인 스테로이드, 히알루론산 치료와의 비교연구도 전혀 없었다. 유전자치료제는 기존 치료보다 현격히 나은 효과가 있어야 허가받을 수 있다는 법 규정도 모두 무력화됐다. 결국 허가 때부터 ‘비싼 진통제’라는 비판을 받아오다 사기극으로 결론이 났다.

이번 ‘가짜약’ 소동은 여러 시사점을 준다. 코오롱티슈진이라는 한 기업의 일탈로만 봐선 안 된다. 2005년 황우석 줄기세포 사기 사건 이후 우리는 최소한 연구윤리와 진실성 추구라는 큰 교훈을 얻었어야 했다. 당시 학계, 정부, 연관 기업들이 자정 노력을 했다면 이번 가짜약 사태가 재현되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문제는 황우석 사기 이후로도 냉정한 비판은커녕 ‘연구 애국주의’와 ‘세계 최초 타이틀’을 부추기는 일이 더 많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전 세계 허가된 줄기세포치료제 5개(현재 8개) 중 4개가 한국서 허가됐었다. 이들 치료제 가운데 지금까지 미국, 유럽, 일본서도 허가받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인보사도 세계 최초의 유전자조작 세포치료제였지만, 성분이 바뀐 사실조차 한국이 아닌 미국 FDA의 요청에 따른 확인으로 드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국제적 망신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다름 아닌 한국의 느슨한 약품 허가 과정과 연구윤리 때문이다. 이미 2012년 세계적인 과학잡지인 ‘네이처’조차 한국의 느슨한 치료제 허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약품들이 한국에서만 허가받고 있다. 이렇게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단기적인 투기 활성화뿐이다. 문제는 종국에 투기 자본의 ‘먹튀’와 비윤리적인 연구자들이 만연한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건실한 바이오헬스 연구 과제와 치료제까지 도매금으로 사장될 수 있다.

 

규제 완화로 허가받은 약품이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규제 완화를 통해 한국에서만 허가받은 바이오 약품이 양질의 일자리를 더 늘릴 수 있을까. 결국 투기 자본의 단기 수익성 추구를 제외하면 누구나 바이오헬스 규제 완화와 느슨한 약품 관리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지금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이윤에 눈먼 바이오 기업을 가려낼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 바이오헬스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춰 지속 가능할 수 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715029009

[기고] 가짜약의 시대 / 정형준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코오롱생명과학이 유전자조작 연골세포로 허가를 받아 수천명의 환자에게 투여까지 해놓고, 미국 세포주 확인 과정에서 걸려 정체불명의 가짜약을 판매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인보사’라는 가짜약 이야기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기업의 보고서만 믿고 이런 가짜약의 성분을 10여년간 한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더 황당한 일은 가짜약이 밝혀지고도 코오롱생명과학은 시판을 계속하려 했다는 점이다.

 

가짜약은 애초부터 가짜연구에 기반했다. 학계는 검증 없이 가짜약의 가짜연구 논문을 실어줬다. 현대과학에서 진실성은 인간의 도덕성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교차확인, 동료평가, 논리적 정합성 등의 장치를 통해서 진짜연구가 가려지는 게 상례다. 인보사 연구 과정은 20여년을 끌어온 연구와 각종 논문, 특허의 결합체였다. 이 때문에 이 과정에 참여했던 공동연구자, 논문에 이름을 올린 공동저자, 공동 특허발의자 등 모두가 지금 책임있는 해명을 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

 

가짜연구를 방기하는 동안 가짜약으로 인한 피해는 투여받은 수천명의 환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가짜약 회사에 속아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주식에 투자해서 지금 가산을 탕진했다. 가짜약이 성공하는 데에는 정부·언론의 기여도 컸다. 인보사는 수십년간 정부의 각종 연구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수십억원을 지원받았다. 인보사는 각종 일간지와 경제지를 통해 ‘세계 최고의 유전자 치료제’로서 환호를 받았다.

 

가짜약 시판을 허가한 담당 부처인 식약처조차 적법한 절차를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한다. 다행히 코오롱 쪽과 식약처는 지금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가짜의 시대’라서 그런가. 과학적이고 객관적 사실조차 아주 손쉽게 기계적 중립성 요구에 굴복해 왜곡되고 있다. 가짜약이 애초부터 정체불명의 신장세포라서 문제가 없었다거나 서류상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식의 무책임하고 근거 없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온다. 정부는 검찰 수사 외에는 나 몰라라 하고, 한술 더 떠 바이오헬스산업 규제 완화를 들고나왔다.

 

인보사가 느슨한 검증 과정과 허가를 받게 된 배경에는 ‘유전자 치료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기반하고 있다. 유전자 조작을 한 첨단의료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지금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 단계다. 효과에 대한 과학적 검증은 헐렁하다. 가짜약에 대한 기대가 성공하는 이유는 희망과 매력적인 약속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쉽고 기대할 만한 해법을 제공하는 단순한 설명도 첨가제 역할을 한다. 정부까지 효과 검증보다 규제 완화를 들고나오는 사태는 정부까지 가짜약에 취해 있지 않은지 의심케 한다.

 

과연 인보사만 가짜일까? 지금 인터넷에는 온갖 효과도 불분명한 줄기세포 치료제들이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해 있다. 이의경 식약처장은 지난 4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며,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줄기세포 시술을 받는 만명가량을 국내에 붙잡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규제 부처의 수장이 가짜연구, 가짜시술일 공산이 큰 치료 방식을 국회에서 버젓이 주장하는 현실은 가짜의 시대가 제도권에도 진출하지 않았는지 혼동에 빠지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이런 황당한 주장을 한 식약처장을 비판한 학계나 언론이 없다는 점이다. 가짜의 시대를 막을 수 있는 보루는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과 진짜과학을 구현해 진실을 밝혀야 하는 학계다. 그러지 않는다면 생명과학과 국민건강까지 가짜가 오염시켜 다른 부분의 진실은 더 미궁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1496.html#csidx8b8fac395c9c865892ee4c9992e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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