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수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우선 국민등록체계(주민등록번호)하에서 금융거래부터 휴대폰 개통까지 연계되어 있고, 편의성을 위해 정보제공동의서에 쉽게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다 수차례 수천만 명의 개인 로그인 정보들이 유출되었지만, 기업이 받은 처벌수준이 낮고, 가족 친지를 언급하는 보이스피싱을 경험하면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다.

편의성을 앞세워 구글 등 검색 서비스나 각종 소셜미디어 등은 가입자의 조회 정보, 위치 정보 등을 받으며 데이터채굴로 큰돈을 벌고 있다. 전방위 데이터수집이 새로운 먹거리로 각광받다 못해 이제는 이런 것들을 집적해서 연결해 더 큰 사업거리로 만들려 한다. 다름 아닌 ‘빅데이터’ 사업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정보축적은 광고시장에 내 정보가 팔려나간 수준이지만, 개인건강정보는 강도가 다르다. 검색엔진이 축적한 정보로 맞춤형 광고와 뉴스를 띄어주는 수준이라면, 건강정보는 직접적인 의료 이용, 보험가입, 개인 식별화 등에 직접 사용될 수 있다. 때문에 구글, 애플 등 IT 선도 기업들도 건강정보수집에 혈안이 되어 각종 생체정보와 건강정보를 모을 수 있는 앱 등의 플랫폼 개발에 여념이 없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우선 빅데이터 산업으로 포장된 데이터 댐 사업과 이미 통과된 데이터 3법으로 국민건강보험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들이 비식별화되면 민간기업으로 팔려나가게 허용된다. 아마도 이들 정보는 민간보험사에 제공되고, 이 정보로 보험사는 보험상품의 손해율을 줄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정보가 휴대폰 사용 내역, 위치정보, 금융정보와 결합되면 생길 부작용에 대해서는 낮은 처벌수준으로 보완하려 한다.

거기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월권으로 허용한 정책을 보면, 보험회사는 데이터사업체를 자회사로 가질 수 있고, ‘건강관리서비스’라는 포장으로 개개인의 건강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사업모델도 국회 입법이 아니라 금융위 허가사항으로 편법 허용한다. 거기다 병·의원의 개인건강정보도 실손보험 청구자료 전산전송화 법안 개정을 통해 손쉽게 수집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런 무차별적 건강정보수집 및 집적화를 산업계와 전문가, 언론은 국민 편의성 증가로 지지해왔다. 물론 실손보험 청구가 편해지고, 합병증이 없는 사람들은 민간보험료가 인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편리함에 비해 집적화된 건강정보로 생길 부작용은 매우 크다. 근거 없는 건강기능식품과 약품 구매 광고가 범람하고, 추가로 건강상품화가 가속화되는 게 시작이다. 이후로 보험 가입 거절, 보험금지급 변경이 다음 단계라면 최종 단계는 채용, 결혼, 인사제도 등 전방위에 건강정보가 적용될 것이다. 끝으로 정보량이 많아지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차별받고 배제될 것이다.

건강정보들을 축적하면 맞춤형 의료가 제공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심전도 판독 같은 수준에서도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진실은 쓰디쓰다. 이는 건강정보수집으로 인한 당장의 이익이 기업들의 돈벌이 사업에만 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대응으로 각종 개인정보가 마구잡이로 유출되어도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이 통용되는 시대다. 하지만 질환 내용, 투약내용, 가족력, 임신횟수 등이 포함된 건강정보만큼은 그렇지 않다. 부디 빅데이터, 데이터 댐, 정밀의료 같은 알아듣기 힘든 언어가 아니라 ‘개인건강정보유출’이라는 위험성이 더 강조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경고를 하면 할수록 데이터채굴산업의 일탈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의료위원장>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02821&path=202105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보유한 건강정보를 민간보험사가 ‘공공데이터’란 이름으로 제공받게 됐다. 국민의 건강정보를 영리기업에 넘긴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다. 상식적으로 공공영역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는 공공적 활용을 하고, 최소한 민간에서 활용하더라도 그 이익은 공익적 배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발표를 보면 민간보험사의 보험상품 개발, 보험이익 극대화가 주된 내용이다. 이를 ‘공익’이라고 포장한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민간기업을 ‘공공기업’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이런 황당한 일은 보험회사를 관리, 감독해야 하는 금융위원회 단독으로 이루어졌다. 금융위는 최근 민간금융업계의 민원처리와 보험업 확장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아예 ‘금융산업위원회’로 이름을 바꾸는 게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백보 양보해 금융위가 민간보험사를 위해 앞뒤 안 가리고 공사 구분 없이 이런 일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심사평가원 그리고 관할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무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간의료보험은 건강영향평가 문제로 보건 부처에서 관할하는데, 한국은 공사보험협의체를 만들고도 금융위에 주도권을 넘겨줬다. 건강 관련 데이터로 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를 넓히고 건강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책과 방안을 마련하는 건 복지부의 책임이 돼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최근 정부 규제혁신과제를 보더라도 원격의료, 택배 약 배송, 의료기기회사 내 임상시험 허용 등 보건의료 분야가 다수인데도 주도하는 건 복지부가 아니라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상자원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공병원 하나를 설립하는 것조차 기재부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해 사실상 거부권을 행사하고 복지부는 기재부 핑계만 대며 손을 놓고 있다. 국민건강은 뒷전이고 ‘비용 대비 수익이 얼마나 되느냐’만 기준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1년도 안 남았다. ‘관료들의 시간’이 돌아왔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관료들이 그동안 본인들이 하고 싶었던 것, 거부하고 싶었던 내용을 마구 쏟아낸다. 기재부 장관은 국가재정 여력을 핑계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대놓고 반대할 정도다. 그런 속에서도 복지부가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건강정보의 사적 활용은 ‘민영화’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자신의 업무 영역에서 벌어지는 것조차 손을 놓고 있는 게 지금 복지부다.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시작한 최소잔류주사기 허가단축 민원 처리, 산업부에서 주도하는 바이오제약업 활성화 같은 타 부처 하청사업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복지부를 해체하고 기재부 보건국, 산업부 보건국, 중기부 보건국으로 분해하는 게 낫지 않을까? 복지부 장관이라는 분이 금융위가 자행하는 월권조차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자신들이 주도해야 할 공공데이터 사업조차 눈 뜬 채 코 베이는 상황이니 말이다. 대한민국 복지부여 제발 정신 좀 차리시라.

2021-07-20 29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720029011

수년 전 병동회진 때 있던 일이다. 환자 한 분이 위암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깜짝 놀라 혹시 피를 토하거나 소화불량이 심한지 물어보니 계속 기침을 한다는 것이다. 기침과 위암이 어떻게 머릿속에서 연결되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날 아침 텔레비전에 대학병원 교수가 나와 만성기침이 위암의 증상일 수 있으니 검사해 보라고 권하는 방송을 봤다고 했다.

사실 만성기침이 있을 때 의심할 수 있는 질환 중에 위암이 있기는 하다. 방송 속 소화기내과 교수의 이야기는 들을 만한 고급 건강정보였지만, 현실 속 환자는 근심에 빠지고 검사를 원하게 되었다. 나는 수개월 전 시행받은 위내시경검사 결과를 설명하면서 환자를 안심시켰다.

지난 십여년간 텔레비전 방송을 가장 많이 수놓는 주제는 건강정보다.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주제로 건강만한 게 없기 때문이겠지만, 대중이 오해하기 쉬운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면 크기가 커진 뇌동맥류가 어지러움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와 어지러움증이 있으면 뇌동맥류를 검사해야 한다는 결론은 전혀 다른 문제다. 후자를 따르게 되면 어지러운 경우에 뇌영상검사는 필수가 된다. 환자가 원한 뇌영상검사로 인한 방사능 노출 및 자원 낭비는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사실 건강정보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단편적인 정보를 구체적으로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조합능력은 임상경험, 사회적 제도에 대한 이해, 거기다 인과관계와 구체적 환경도 포함한다. 그래서 의료영역은 데이터만 가지고 운영할 수 없고, 의료인들의 중재가 필요하다. 국민들 모두가 의료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상당수 선진국은 주치의 제도를 위시한 일차 보건의료 제도를 갖추고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기사를 가장한 의료광고, 건강기능식품 홍보, 입증도 되지 않은 임상시험에 대한 확증적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건강의 핵심요소인 수면, 운동, 식이를 부차적으로 만들고 특정 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만 있으면 된다는 잘못된 확신마저 심어 준다. 운동은 하지 않고 영양제만 수십개씩 먹다가 병원을 찾는 이들까지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들을 투기꾼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어 버린다.


현명한 의료소비자를 만들려면 건강정보에 목말라하는 대중의 관심에 편승하는 행태를 중단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들도 넘치는 건강정보보다는 믿을 만한 의료인과 전문가를 만나는 걸 신뢰해야 한다.

제 구실을 하는 국가라면 믿을 만한 의료인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인과관계도 불분명한 독감예방접종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건강정보 과잉시대에 정작 중요한 건강문제인 백신은 아니면 말고 하는 아무 말 대잔치에 휩쓸리는 모순적 상황이 씁쓸하기만 하다.

 

2020-11-10 29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111002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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