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후진국 미국을 추앙하는 나라

 

정부가 7월부터 ‘건강관리서비스 인증제 시범사업’을 시행한다. 건강관리서비스라고 하니 언뜻 들어서는 건강을 관리하는 좋은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정부가 말하는 게 과연 순수하기만 한 것일까. 건강관리를 기업이 사업으로 확장한다는 개념인데, 건강관리의 범주가 사실 무한대에 가까워 개인 헬스케어 전체를 사업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주요 선진국에서 건강관리를 기업서비스로 제공하는 나라는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 미국에서 건강관리서비스가 성행하는 이유는 딱 하나, 의료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미국은 의사진찰료가 기본 400달러가 넘는다. 검사하고 치료받으면 1만 달러, 우리 돈으로 1000만원 정도는 손쉽게 넘긴다. 생존을 위해서는 의사를 만날 일을 줄여야만 한다. 비용절감에 혈안이 된 민간보험회사 역시 보험료 지급액을 줄이기 위해 건강관리를 잘하면 보험료를 깎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과 달리 공공의료 체계를 갖춘 나라들에서는 건강관리는 당연히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건강관리는 사업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이웃 나라 일본만 해도 모든 건강관리 서비스는 건강보험이 책임진다. 유럽도 주치의가 건강관리를 담당한다.

건강증진으로 돈벌이를 하려고 덤비는 대한민국조차 건강관리서비스는 입법 사안이었다. 예방과 건강증진을 목적에 명시한 국민건강보험법과 상충될 뿐만 아니라 의료법이 규정하는 의료행위 제한 조건과도 부딪친다. 때문에 2009년과 2010년 이미 두 차례 입법 논의 결과 의료민영화 사안으로 분류돼 폐기된 바 있다. 보건 당국이 이를 다시 되살려 인증제를 실시하겠다고 하는 건 입법부 결정을 무시하고 행정독재를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물론 절차 자체는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 애초에 기본적으로 건강보험제도에서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공백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국가가 마땅히 책임져야 할 만성질환을 관리할 일차의료체계를 갖추거나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는 건 관심도 없고 지역사회 건강증진이나 사회체육과 체육시설 확충은 나몰라라 했다. 결국 국민들은 그 빈자리를 노리는 보험사와 정보기술 기업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그동안 보건 당국은 일차의료체계를 도입하지 못하는 걸 민간 병의원 의사들 반대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사실 개인사업자인 의원급 의사들이 주치의 제도에 호의적일 리 없다. 한국에서 상당수 의원은 돈벌이 의료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환자등록제도인 주치의 제도가 도입되면 과잉진료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을 찾으라고 정부가 존재한다. 명백한 문제를 방치하는 건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사회체육시설이나 건강증진사업도 비슷하다. 정부는 사회체육시설 확충에 민간헬스업체가 반대한다고 둘러댄다. 지역사회 건강증진사업은 민간주간보호센터와 민간요양시설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시작도 못 한다. 여기에다 예산도 문제다. 예방과 건강증진 사업에 배정되는 예산은 거의 없다. 어린이들이 운동을 하기 위해 체육학원에 등록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사실 미국조차 생활체육은 공공 영역이 담당한다.

동네의원과 민간헬스장, 민간요양시설 때문에 하지 못한다던 건강관리를 이제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민간기업을 인증해 주겠다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사업가들 눈치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면서도 꾸준히 건강 영역을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민간에 개방하는 시도는 이율배반 아닌가. 이럴 거라면 차라리 복지부를 해체하고 민간사업자들의 로비스트 단체로 재등록하는 게 어떠냐고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대통령이 말한 ‘공정’과 ‘상식’이 미국식 의료모델 도입이라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2022-07-01 25면

개인정보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감수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우선 국민등록체계(주민등록번호)하에서 금융거래부터 휴대폰 개통까지 연계되어 있고, 편의성을 위해 정보제공동의서에 쉽게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다 수차례 수천만 명의 개인 로그인 정보들이 유출되었지만, 기업이 받은 처벌수준이 낮고, 가족 친지를 언급하는 보이스피싱을 경험하면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다.

편의성을 앞세워 구글 등 검색 서비스나 각종 소셜미디어 등은 가입자의 조회 정보, 위치 정보 등을 받으며 데이터채굴로 큰돈을 벌고 있다. 전방위 데이터수집이 새로운 먹거리로 각광받다 못해 이제는 이런 것들을 집적해서 연결해 더 큰 사업거리로 만들려 한다. 다름 아닌 ‘빅데이터’ 사업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정보축적은 광고시장에 내 정보가 팔려나간 수준이지만, 개인건강정보는 강도가 다르다. 검색엔진이 축적한 정보로 맞춤형 광고와 뉴스를 띄어주는 수준이라면, 건강정보는 직접적인 의료 이용, 보험가입, 개인 식별화 등에 직접 사용될 수 있다. 때문에 구글, 애플 등 IT 선도 기업들도 건강정보수집에 혈안이 되어 각종 생체정보와 건강정보를 모을 수 있는 앱 등의 플랫폼 개발에 여념이 없다.

이런 와중에 한국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우선 빅데이터 산업으로 포장된 데이터 댐 사업과 이미 통과된 데이터 3법으로 국민건강보험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들이 비식별화되면 민간기업으로 팔려나가게 허용된다. 아마도 이들 정보는 민간보험사에 제공되고, 이 정보로 보험사는 보험상품의 손해율을 줄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정보가 휴대폰 사용 내역, 위치정보, 금융정보와 결합되면 생길 부작용에 대해서는 낮은 처벌수준으로 보완하려 한다.

거기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월권으로 허용한 정책을 보면, 보험회사는 데이터사업체를 자회사로 가질 수 있고, ‘건강관리서비스’라는 포장으로 개개인의 건강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사업모델도 국회 입법이 아니라 금융위 허가사항으로 편법 허용한다. 거기다 병·의원의 개인건강정보도 실손보험 청구자료 전산전송화 법안 개정을 통해 손쉽게 수집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이런 무차별적 건강정보수집 및 집적화를 산업계와 전문가, 언론은 국민 편의성 증가로 지지해왔다. 물론 실손보험 청구가 편해지고, 합병증이 없는 사람들은 민간보험료가 인하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편리함에 비해 집적화된 건강정보로 생길 부작용은 매우 크다. 근거 없는 건강기능식품과 약품 구매 광고가 범람하고, 추가로 건강상품화가 가속화되는 게 시작이다. 이후로 보험 가입 거절, 보험금지급 변경이 다음 단계라면 최종 단계는 채용, 결혼, 인사제도 등 전방위에 건강정보가 적용될 것이다. 끝으로 정보량이 많아지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차별받고 배제될 것이다.

건강정보들을 축적하면 맞춤형 의료가 제공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심전도 판독 같은 수준에서도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진실은 쓰디쓰다. 이는 건강정보수집으로 인한 당장의 이익이 기업들의 돈벌이 사업에만 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 대응으로 각종 개인정보가 마구잡이로 유출되어도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이 통용되는 시대다. 하지만 질환 내용, 투약내용, 가족력, 임신횟수 등이 포함된 건강정보만큼은 그렇지 않다. 부디 빅데이터, 데이터 댐, 정밀의료 같은 알아듣기 힘든 언어가 아니라 ‘개인건강정보유출’이라는 위험성이 더 강조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런 경고를 하면 할수록 데이터채굴산업의 일탈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의료위원장>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02821&path=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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