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 돈 좇게 만든 나라, 국민 돈 터는 민영보험

그 많던 전문의들은 어디로 갔나 [왜냐면]

 

진짜 ‘의료 개혁’ 위한 연속 기고 ③

정형준 |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재활의학과 전문의

2010년 이후 10여년간 상급 종합병원은 1500명가량 의사가 늘어난 반면, 의원급 종사자는 1만명가량 늘어났다. 매년 3000명가량 배출한 의사 대부분이 개원의가 된 셈이다. 그 결과 중환자를 돌봐야 하는 병원에서는 의사, 특히 전문의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왜 한국에서는 전문의들이 개원의가 되는 걸까?

우선, 대형병원들은 수익성이 낮은 진료과목의 전문의를 고용하지 않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흉부외과, 뇌신경외과, 소아과가 이에 해당한다. 응급환자가 늘어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더 고용하지 않는다. 응급실 뺑뺑이가 시작되는 첫 번째 길목이다.

반면 내과 계열과 통증·근골격계 의사들은 병원이 고용하려고 해도 개원가 소득이 높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개원가는 영양주사, 도수치료, 비급여 시술 같은 것들로 수익을 창출할 여지가 많다. 피부·미용 시장의 팽창도 원인이고, 탈모, 비만, 영양 등 이른바 관리의료 시장의 창출도 개원가 쏠림을 크게 부추겼다.

지난 20여년간 의료 상업화가 의사 공급의 불균형을 심화시킴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정부들은 모두 “의료 선진화”, “신성장 동력” 운운하며 의료 시장화를 가속했다. 의료 시장화의 천국인 미국을 제외하고, 복지제도로서 의료에 대한 이해가 있는 나라 대부분은 신의료기기나 치료 재료를 그 효능과 위험도를 엄밀하게 평가해 규제하는 데 반해, 한국은 신의료기기에 대한 안전성 평가를 무조건 간소화해 왔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안전성 평가는 나중에 하고 시장에 먼저 진입시키는 ‘선 진입, 후 평가’까지 추진한다. 그래서 개원의들이 할 수 있는 비급여 시술의 종류와 양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공급자 주도의 도덕적 해이인 것이다.

사례를 하나 보자. 지난해 7월 허가된 무릎관절 자가골수줄기세포 주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광고를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3만원짜리 연골주사와 비교해 별 차이도 없는 치료 대안이 규제도 없이 광고로 퍼지는 것도 문제지만, 환자들이 내는 수백만원이 의사들의 영리적 개원가 쏠림을 부추겨 의료 공급구조를 왜곡시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두 번째 핵심적 문제가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데, 이런 고가의 비급여 치료가 빠른 속도로 퍼지게 만드는 민영의료보험 시장의 엄청난 확장이다. 4000만명 이상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은 이런 비급여 시장을 창출하는 미다스의 손이다. 비급여 진료를 중심으로 하는 병·의원들이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물어보는 것은 상식이다. 자궁근종 치료 등에 선택적으로 활용되는 수백만원의 하이푸 치료도 의사가 아닌 상담사가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묻고는 적극 권유한다. 보험상담사가 무릎관절 유전자 치료제로 광고했던 수백만원짜리 가짜 약 ‘인보사’도 같은 사례다. 모두 실손의료보험이 없었다면 쉽지 않은 일들이다.

이 와중에 윤석열 정부는 실손의료보험 이용을 장려하는 ‘실손보험청구간소화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오는 10월부터는 민영보험사가 환자 개인의료정보를 축적해 보험사에 이익이 되도록 보험 가입과 보험금 지급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의료기관은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낭비적 진료를 더 늘릴 것이다. 엄청나게 증가하는 비급여 시장은 의사와 정부 모두 책임이 있다.

시장 중심 공급구조로 비급여 진료를 부추기고 실손보험을 활성화하는 정책은 한국 의료를 기형적으로 만드는 원인의 원인으로 작동해 왔다. 그 결과 응급, 중환자, 수술 진료에 집중해야 할 의사들의 개원 붐이 일어, 이제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도 집단 개원을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일차의료기관 역할을 해야 할 동네의원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무한 시장 경쟁으로 내몰려 고가 임대료와 인테리어 비용 등을 환자 주머니에서 회수해야 하는 사업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의 의료 대란을 해결하려면 의료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논의해야 하고, 공적 사회서비스로서의 의료를 되찾아야 한다. 이제 비급여 통제, 실손보험 규제를 통해 정상적인 일차 의료로서 동네의원을 복원해야 한다. 이게 의료의 공공성이다.

마지막으로 일본도 의사들의 개원 자율권을 인정하지만 민간 사업체처럼 운영하도록 놔두지는 않는다. 강력한 비급여 규제인 ‘혼합진료 금지’가 사회적으로 합의돼 있어 일본 의사들은 비급여가 아니라 필요한 의료행위는 모두 급여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혼합진료 금지’는 영리적인 한국의 외래진료 서비스를 바로잡을 최소한의 조치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135804.html

혼합진료금지는 의료의 가치 문제

정부가 ‘필수의료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비중증 과잉 비급여’에 대한 혼합진료금지를 언급했다. 언론을 보면 ‘혼합진료금지’에 반대하거나 시기상조를 주장하는 전문가 인터뷰가 있고, 일부만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혼합진료를 대부분이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선험적인 평가부터 난무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혼합진료’는 일본에서 유래된 용어다.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요양급여 범위와 그 범위 밖의 의료행위, 약제 등을 섞어 진료하는 걸 말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혼합진료 천국이다. 우리 시민들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비급여진료가 당연하다고 느낀다. 거꾸로 건강보험 급여진료만 받는 경우나 비급여진료만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급여진료와 비급여진료가 섞이게 된 것은 건강보험을 시작할 당시 열악한 재정상황으로 급여범위가 매우 협소했기 때문이다. 급여 진료행위나 약제가 적다보니 어쩔 수 없이 비급여를 섞어서 진료하는 게 허용됐다. 문제는 건강보험 총재정이 100조원을 바라보고, 경상의료비가 200조원을 넘어가는데도 건강보험 하나로 진료가 안되는 혼합진료를 방치한 것이다.

급여완결적 진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혼합진료 금지가 상식인 일본의 경우를 보면 처음부터 비급여진료를 섞을 수 없었던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는 건강보험 진료는 평등하고 보편적인 공급을 위한 것이란 이념 때문이다. 일본 의사회의 핵심 강령이기도 하다. 빈부격차나 권력 여부에 상관없이 동일한 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일본건강보험의 목적임을 일본의사들은 알고 있었다.

둘째는 건강보험진료 영역은 일본의사들의 전문가적 자존심이었다. 의학적 필요가 있는 경우는 일본의사들이 재빨리 그 진료행위나 약제를 급여화하려고 한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는 건강보험진료가 일본의사들이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들의 총합이고 자존심이 되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혼합진료가 허용돼 의사들이 건강보험급여를 만드는 데 열심이지 않다. 환자가 돈만 더 내면 비급여진료를 제공할 수 있고 병원입장에선 초과이익도 거둘 수 있어 굳이 의학적 필요가 있는 비급여를 급여로 바꾸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병원의 상당수가 비급여로 수입을 충족해 급여보상체계나 기초는 빈약하게 방치됐다. 결국 주객이 전도되어 비급여는 한국의료의 골치덩이가 됐다.

때문에 단순히 혼합진료가 당장 좋은가 나쁜가 가능한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이제 급여완결적 진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보건의료의 대전제는 의료공급자와 수용자 사이의 정보불균형이다. 이 정보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 환자의 대리인으로서 ‘주치의’가 필요하고 국가가 면허를 통해 의료인을 관리하고 약품과 의료행위를 허가한다. 즉 국가가 국민이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약제와 의료행위를 엄선하는 셈이다. 정상국가에서는 보험진료를 선택하느냐, 비급여를 선택하느냐만으로도 명확한 기준점이 마련된다.

혼합진료금지로 환자 선택권 보장해야

그런데 이를 섞어서 공급할 수 있게 되면 어떤 환자도 효용성과 경제성을 평가해 선택할 수 없다. 때문에 일본처럼 혼합진료를 금지해야 환자들의 진정한 선택권이 발휘될 수 있다. 의사들은 환자 선택권 문제로 비급여진료를 옹호해선 안되며, 꼭 필요한 약제나 치료재료라면 그 과학적 근거로 급여화를 해 나가는 게 할 일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

https://m.naeil.com/news/read/5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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