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된 지 4년째다. 이 정책은 문재인정부의 1호 공약이기도 했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크게 강조했던 정책이기도 하다. 아마도 노령화로 인해 치매로 고통받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기초했을 것이다. 따라서 현 정부와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한 정책인 만큼, 어느 정도 정책효과가 발생했는지를 이제는 조명해 보고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그런 평가 및 조망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이 정책의 목표가 혼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치매로 인한 고통은 환자 본인보다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몫이 크다. 대부분의 인지장애 질환처럼 주변에서 일상생활을 보조해 줘야 하고, 주변인들이 망상과 공격성, 의심증 등에 시달려야 한다. 이런 문제로 돌봄이 필수적인데, 한국에서는 치매 돌봄은 큰 비용이 들거나, 마땅한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가족 중 누군가가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

즉 치매국가책임제가 생겨난 이유는 ‘치매’라는 질환을 치료하고, 의학적으로 관리하는 문제보다는 사회적 돌봄서비스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공적 돌봄서비스의 부재는 실제로 한국에서는 간병 지옥, 장애인방치, 정신장애인 시설화 등으로 드러나는 문제다. 따라서 특정 질환군에 대해서만 거론할 사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돌봄을 어떻게 체계화하고, 공공화할지에 대한 대안제시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치매’만을 쏙 빼서 돌봄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마땅한 해결책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우선 치매 진단 시 건강보험부담을 낮춰주는 산정특례가 확대되었다. 산정특례 확대의 혜택을 받는 것은 온전히 건강보험적용이 되는 의료서비스에 한정된다. 따라서 치매 환자의 입원과 의학적 진단이 조장되었다. 거기다 ‘치매’가 나이 듦이 아니라, 의학적 치료의 대상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일부 특발성 알츠하이머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노인성 치매인데 말이다.

거기다 노화로 인한 과정이 대부분인 ‘치매’에 대해서 근본적인 치료와 예방을 위한 연구개발에 막대한 금액을 투입했다. 치매 연구에 투여된 금액이면 의료취약지에 공공병원을 3개 이상 짓고 운영할 수 있었지만, 정부는 제약회사의 연구개발비에 이 돈을 썼다. 물론 그 결과는 매우 미약하다. 무엇보다 치매에 대한 근본적 치료는 결국 노화를 막기 위한 시도에 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노화를 막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특정질환 연구로 개척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또한, 더 크게 보면 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점이 나이 듦마저도 상품화하려는 한 측면도 보여줬다.

따라서 치매치료제 개발, 치매 진단에 신경인지검사와 자기공명영상(MRI)을 급여화 해주는 내용은 일부 젊은 환자들의 비특이적 인지장애가 아니라면, ‘의료화’의 다름이 아니다. 더구나 이런 관점 때문인지, 치매 환자에 대한 지역공동체 강화나 공적 돌봄서비스 제공 체계는 제대로 계획과 예산조차 편성되지 못하고 있다. 막상 치료대상인 치매 환자로 분류되니 치매 센터와 요양병원, 요양원의 시설관리대상으로만 인식된다. 공적공급은 없고, 여전히 민간요양시설과 돌봄 용역업체들만 성행한다.

그래서 이쯤 되면 반문하지 않을 수가 없다. ‘노망’이란 불편한 단어를 ‘치매’로 바꿔 부른 이유가 돌봄을 외면하고자 한 우리 사회의 회피책이 아니었는지 말이다. ‘노망’이란 단어 속에 담긴 노인들에 대한 폄훼보다 ‘치매’라는 진단명이 가진 과학 뒤에 숨는 자기 위안이었는지도 말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노인 빈곤율이 50%에 육박하는 OECD 불명예국가에서 실제 중요한 것은 노화의 결과로 발생한 특정질환에 대한 상품화가 아니라, 공적인 돌봄서비스와 기본적인 삶이 유지될 수 있는 소득보장이 되어야 한다. 다가올 정치에서는 ‘노화’를 더는 상품화하지 않기를 빈다.

http://www.c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805486&path=202107

수년 전 병동회진 때 있던 일이다. 환자 한 분이 위암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깜짝 놀라 혹시 피를 토하거나 소화불량이 심한지 물어보니 계속 기침을 한다는 것이다. 기침과 위암이 어떻게 머릿속에서 연결되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그날 아침 텔레비전에 대학병원 교수가 나와 만성기침이 위암의 증상일 수 있으니 검사해 보라고 권하는 방송을 봤다고 했다.

사실 만성기침이 있을 때 의심할 수 있는 질환 중에 위암이 있기는 하다. 방송 속 소화기내과 교수의 이야기는 들을 만한 고급 건강정보였지만, 현실 속 환자는 근심에 빠지고 검사를 원하게 되었다. 나는 수개월 전 시행받은 위내시경검사 결과를 설명하면서 환자를 안심시켰다.

지난 십여년간 텔레비전 방송을 가장 많이 수놓는 주제는 건강정보다.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주제로 건강만한 게 없기 때문이겠지만, 대중이 오해하기 쉬운 내용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면 크기가 커진 뇌동맥류가 어지러움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야기와 어지러움증이 있으면 뇌동맥류를 검사해야 한다는 결론은 전혀 다른 문제다. 후자를 따르게 되면 어지러운 경우에 뇌영상검사는 필수가 된다. 환자가 원한 뇌영상검사로 인한 방사능 노출 및 자원 낭비는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사실 건강정보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단편적인 정보를 구체적으로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조합능력은 임상경험, 사회적 제도에 대한 이해, 거기다 인과관계와 구체적 환경도 포함한다. 그래서 의료영역은 데이터만 가지고 운영할 수 없고, 의료인들의 중재가 필요하다. 국민들 모두가 의료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상당수 선진국은 주치의 제도를 위시한 일차 보건의료 제도를 갖추고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건 기사를 가장한 의료광고, 건강기능식품 홍보, 입증도 되지 않은 임상시험에 대한 확증적 보도라고 할 수 있다. 건강의 핵심요소인 수면, 운동, 식이를 부차적으로 만들고 특정 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만 있으면 된다는 잘못된 확신마저 심어 준다. 운동은 하지 않고 영양제만 수십개씩 먹다가 병원을 찾는 이들까지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들을 투기꾼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어 버린다.


현명한 의료소비자를 만들려면 건강정보에 목말라하는 대중의 관심에 편승하는 행태를 중단하도록 해야 한다. 시민들도 넘치는 건강정보보다는 믿을 만한 의료인과 전문가를 만나는 걸 신뢰해야 한다.

제 구실을 하는 국가라면 믿을 만한 의료인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인과관계도 불분명한 독감예방접종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회를 잠식하고 있다. 건강정보 과잉시대에 정작 중요한 건강문제인 백신은 아니면 말고 하는 아무 말 대잔치에 휩쓸리는 모순적 상황이 씁쓸하기만 하다.

 

2020-11-10 29면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1110029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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